지난 글에서 다룬 어조사 의(矣)가 새겨져 있는 중산왕정 명문의 주인공 중산왕 착은 업적뿐만이 아니라 본인의 이름만으로도 특이한 한자로 이름을 남겼다. 바로 중산왕 착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한 전용 한자인 사람이름 착 자다. 유니코드로는 U+30BFC인데, 예전에 소개한 턱 이보다도 지원하는 글꼴이 더 없어서 컴퓨터에서는 거의 다 깨져서 나온다고 봐야 한다. 위키백과에서도 글꼴 깨짐을 어찌할 수 없어서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중산왕 착의 이름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왕이나 왕족의 이름에 어려운 한자를 쓰는 것은 후대에도 '피휘'라는 관습 때문에 지속되어 왔다. 피휘란 '꺼린다'라는 뜻인데, 어른의 이름을 공경하는 의미로 사용을 꺼리는 것이다. 이 공경해야 할 어른의 이름으로는 집안 어른의 이름이나 높은 사람의 이름, 왕의 이름 등이 있었다. 그런데 왕이 쉬운 한자로 이름을 지으면 나라 사람들이 죄다 이 쉬운 한자를 쓰기 그만두어야 하니, 어려운 한자를 써서 나라 사람들이 피휘하기 쉽게 도와주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으로는 아예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 한자를 새로 만들어서 쓰는 것인데, 중산왕 착도 이런 사례일지 모른다. 역사에 남은 다른 사례로는 삼국지 오나라의 3대 황제 경제 손휴가 자기 아들들의 이름을 모두 새로운 한자로 지어준 일이 있다. 정작 경제가 일찍 죽고 동맹인 촉한이 망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오나라에서 경제의 아들들이 아닌 장성한 조카 손호를 다음 황제로 세우면서 경제의 배려심은 설레발이 되고 말았지만.
중산왕정 명문. 사람이름 착 자는 오른쪽에서 둘째 줄, 위에서 둘째 줄에 있다.
이 글자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아래와 같다.
중산왕정, 중산왕방호에 새긴 사람이름 착, 장함서와 상승조가 쓴 사람이름 착.
이 글자는 복잡해 보이지만 크게 아래쪽까지 죽 내려와 감싸는 윗부분과 윗부분에 감싸진 아랫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위쪽 부분은 상당히 복잡하게 생겼는데, 일어날 흥(興)의 윗부분과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다른 글자다. 정확히 말하면 피바를 흔(釁)의 윗부분이다.
아랫부분은 장함서와 상승조가 쓴 사람이름 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금문의 예 석(昔)이다. 중산왕정의 글꼴이 꽤나 일관적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오른쪽에서 여섯째 줄, 위쪽에서 넷째 줄에 있는 글자가 중산왕정에 새긴 사람이름 착의 아랫부분임이 잘 드러난다. 이 글자가 금문의 昔이다. 이렇게 반듯하게 잘 새겨 놓고 矣를 잘못 새겼다면 좀 의외이긴 하다.
昔은 갑골문에서도 나오는 오래된 한자다.
갑골문의 昔. 출처: 小學堂
지금은 日(날 일)이 아래에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日이 위에 있기도 하고 아래에 있기도 하다. 日의 위나 아래에는 물결무늬가 3개나 2개 배치되어 있다. 이 물결무늬는 갑골문 연구 이래로 수재 재라는 한자로 본다.
왼쪽의 네 글자는 수재 재의 갑골문, 오른쪽은 수재 재의 해서체. 출처: 小學堂
물결무늬를 가로로 쓰기도 하고 세로로 쓰기도 한다. 가로로 된 물결무늬는 물이 범람하는 모양을 본뜬 것이라고 하고, 세로로 된 물결무늬는 물이 막히는 모습을 본떴다고 한다. 넷째 갑골문에는 팽이 모양의 문자가 들어 있는데 이건 재주 재(才)의 갑골문이다.
才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
그래서 수재 재는 원래는 범람하는 물이나 막히는 물을 본뜬 상형자였다가 성부인 才(재주 재)를 덧붙인 형성자가 되었고, 나중에 才가 물 모양과 합쳐지면서 지금의 글자가 된 것이다. 昔에 있는 수재 재는 이 才가 없을 때의 모습이다. 《설문해자》에서는 원래 昔은 육포를 뜻하고 육포를 말리는 데 시간이 지나므로 옛날이란 뜻이 파생되었다고 하지만, 갑골문을 보지 못했기에 나온 착오 같다.
昔은 갑골문에서부터 이미 지금의 뜻인 예전, 과거의 뜻으로 썼다. 그래서 해를 가릴 정도의 심각한 홍수가 있던 옛 시절을 가리킨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왕홍위안의 《한자 자원 입문》에서는 昔의 지그재그선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짧은 선을 새겨서 날짜를 세던 습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시간을 재기 위한 과거의 시스템에서 딴 글자로 보았다.
昔(예 석, 금석(今昔), 석일(昔日) 등, 어문회 3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이번에도 급수 외 한자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용례가 있는 한자가 있다.
昔+人=借(빌/빌릴 차): 차용(借用), 임차(賃借) 등. 어문회 준3급
昔+心=惜(아낄 석): 석패(惜敗), 애석(哀惜) 등. 어문회 준3급
昔+手=措(둘 조): 조치(措置), 실조(失措) 등. 어문회 2급
昔+斤=斮(벨 착): 어문회 특급
昔+耒=耤(짓밟을 적): 적관(耤官), 동적(東耤) 등. 급수 외 한자
昔+肉=腊(육포 석): 석엽(腊葉), 비고석(鼻槁腊) 등. 어문회 특급
昔+足=踖(조심해서걸을/밟을 적): 축척(踧踖▽) 등. 어문회 특급
昔+酉=醋(초 초): 초산(醋酸), 식초(食醋) 등. 어문회 1급
昔+金=錯(어긋날 착): 착각(錯覺), 교착(交錯) 등. 어문회 준3급
昔+鳥=鵲(까치 작): 작두(鵲豆), 오작(烏鵲) 등. 어문회 1급
耤(짓밟을 적)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耤+竹=籍(문서 적): 서적(書籍), 적몰(籍沒) 등. 어문회 4급
耤+艸=藉(깔/핑계할 자): 자자(藉藉), 위자(慰藉) 등. 어문회 1급
昔(예 석)에서 파생된 한자들.
耤(짓밟을 적)은 용례는 있어도 급수용 한자도 아니고 직접 파생된 글자는 두 글자뿐이지만, 이 글자는 昔에서 파생된 한자들 중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耤의 갑골문을 살펴보자.
耤(짓밟을 적)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
서중서는 이 글자를 사람이 옆으로 서서 쟁기를 밀며 발을 들어 땅을 고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았다. 이 글자는 갑골문에서는 경작하다, 농업 관련 관직의 이름 등으로 쓰였다. 갑골문에서는 昔이 보이지 않으므로 지금의 자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금문에서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昔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耤(짓밟을 적)의 금문. 출처: 小學堂
금문에서는 사람의 모양이 손만 남아서 단순해지기도 하고, 사람 모양을 유지한 채 昔만 들어가서 더 복잡해지기도 한다. 가장 복잡한 형태를 현대의 해서로 바꿔보면 다음과 같다.
이 글자에서 쟁기를 잡은 사람 모양이 빠지고, 뜻을 나타내는 쟁기 뢰(耒)와 소리를 나타내는 昔이 남아 지금의 耤이 되었다. 이런 관계로 昔은 耤에서 어떠한 뜻도 나타내지 못하고 소리만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昔에서 파생된 글자들은 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우선 藉가 있다. 이 글자의 본의는 깔개, 농사 관련 관직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구석규 등이 출토문헌을 근거로 농사 관련 관직이 본의였다고 했고 이는 耤에서 파생된 결과다. 또 借가 있다. 借는 단옥재, 주준성이 옛날에 藉로 쓰던 데서 전주로 분화된 글자로 보았다. 藉나 耤이 임금이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고 그 곡식을 신에게 바치는 제도를 나타내던 데서 유래해 '백성들의 힘을 빌려서 농사짓다' 즉 '빌리다'가 되었다. 한편 籍은 〈형성자 성부 표의 기능 연구 - 『설문통훈정성』 택(澤)부 형성자를 중심으로〉에서는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명물사이므로 그 부호가 임의적이기 때문에 제외했으나, 어쩌면 쟁기를 들고 밭을 고르듯 붓을 들고 죽간을 지나간 것이라는 데에서 문서라는 뜻이 파생되지 않았나 싶다.
그 다음으로는 踖이 있다. 耤에는 쟁기를 들고 발로 밭을 고른다는 데에서 밟다는 뜻도 있다. 이 밟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足을 더한 것이다. 한편, 지금은 엇갈리다는 뜻으로 金(쇠 금)을 덧붙인 錯을 쓰지만, 옛날에는 辵을 덧붙인 逪을 썼다고 하며 이것 역시 밟다는 뜻에서 파생되었다.
그리고 錯의 본의는 《설문해자》에서 금속으로 기물에 바른다는 뜻으로 설명했다. 이는 농경에서 밭을 고르는 작업과 청동기에 무늬를 새기는 작업이 비슷하기 때문에 耤에서 錯이 파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措는 이렇게 금속을 가공하는 것처럼 '조치하다'라는 뜻이 파생된 것이다.
한편 斮도 昔이나 耤의 의미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급수 외 한자들인 矠(창 색), 簎(찌를 착)과 '찍다'라는 뜻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昔이나 耤의 뜻과 이 한자들의 관계는 불명이다. 어쩌면 昔과 耤과는 무관히 斮에서 나머지가 파생되었을 수도 있겠다.
이외의 나머지 昔에서 파생된 글자와 昔은 의미 관계가 없고 昔이 단순히 소리만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서 耤의 의미로서 쓰인 昔과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昔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공교롭게도 昔에서 파생된 형성자들에 昔의 뜻인 '옛날'이 의미에 기여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耤의 뜻인 '쟁기를 들고 밭을 갈다'가 의미에 기여하는 한자들만 있다.
※이번 편은 Yang Liu의 석사논문 〈형성자 성부 표의 기능 연구 - 『설문통훈정성』 택(澤)부 형성자를 중심으로〉 4장 2절 '昔得聲字 분석'의 내용을 기초로 썼습니다.
요약
昔은 해와 날짜를 세는 선들, 또는 해를 뒤덮는 홍수가 있던 시절에서 옛날을 의미한다.
耤은 본디는 昔 없이 사람이 쟁기를 들고 밭을 가는 모양이었으며 나중에 昔이 소리 부호로 추가되었다.
昔에서 借(빌/빌릴 차)·惜(아낄 석)·措(둘 조)·斮(벨 착)·耤(짓밟을 적)·腊(육포 석)·踖(조심해서걸을/밟을 적)·醋(초 초)·錯(어긋날 착)·鵲(까치 작)이 파생되었고, 다시 耤에서 籍(문서 적)·藉(깔/핑계할 자)가 파생되었다.
昔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昔의 소리만을 가져왔고, 그 중 일부는 耤에서 의미를 가져와 '왕이 농사짓고자 백성의 힘을 빌리다', '밭을 갈듯 금속에 새기다', '밭을 밟듯 엇갈리다' 등으로 파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