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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6/28 20:02:00
Name 식별
Subject [일반] 삼국지 장각 시점에서 본 황건적의 난

브금
https://www.youtube.com/watch?v=rz1a_rZVHt4


지난 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4부: 천하대길





 장각은 수제자와도 같았던 마원의가 황제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천하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모든 제자들과 대방 소방들에 격문(檄文)을 돌리고는 그 스스로도 장보, 장량과 함께 본거지인 기주 거록에서 기의했다. 장각은 천공장군(天公將軍), 장보는 지공장군(地公將軍), 장량은 인공장군(人公將軍)을 자칭했다. 후세 사람들이 말하는 황건의 난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궐기령이 기주 전역에 퍼지자, 안평(安平)과 감릉(甘陵) 두 나라의 황건적들은 곧바로 각각 안평왕 유속(劉續)과 감릉왕 유충(劉忠)을 포박했고, 상산의 왕 유고(劉暠)는 아예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버렸다. 


더 북쪽의 광양에서도 황건군이 기의해 유주자사(幽州刺史) 곽훈(郭勳)과 태수 유위(劉衛)가 죽었다. 남쪽에서도 황건의 깃발이 세워졌으니, 장만성(張曼成)은 군을 이끌고 남양태수 저공(褚貢)의 군대를 단박에 쳐 깨트렸으며, 또한 적의 우두머리인 태수 저공이 난전 중에 사망했다. 


 영천과 여남에서도 각각 파재(波才)와 팽탈(彭脫)이 군을 일으켰다. 특히 파재(波才)는 황건군 중에선 처음으로 한나라 중앙조정의 토벌군을 맞닥뜨렸다. 파재를 상대한 토벌군의 대장들은 좌중랑장 황보숭과 우중랑장 주준이었는데, 특히 주준은 일전에 수만 단위의 남방 이민족들을 1년도 안되는 사이에 제압하는 등 군략에 매우 뛰어난 자였고, 황보숭이라는 자는 아직 젊어 별다른 무공은 없었지만 강족을 토벌한 일로 '양주삼명'이라 불렸던 바로 그 황보규의 조카였다. 


 파재는 진군해오는 주준의 관군을 용감히 맞았다. 해가 질때까지 이어진 전투는 황건군의 승리로 끝났다. 주준은 살아남은 병사들을 간신히 수습해 퇴각했고, 황보숭은 후퇴하여 장사(長社)에 틀어박혔다. 여남의 팽탈 또한 여남태수 조겸(趙謙)을 패퇴시켰다. 곳곳에서 황건군이 관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나라 조정은 당황했으나, 더 많은 인재와 병사, 그리고 자원을 보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장만성에게 죽은 남양태수 저공(褚貢)대신 진힐(秦頡)을 새로이 임명해 병사를 딸려 출진시켰다.


 장사성 안에 틀어박혀 있던 황보숭은 주준이 군대를 다시 수습해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밖으로 나가 싸우기로 결정했다. 이때 황보숭은 강풍이 부는 것을 활용해 성 안에서 화공을 하고 북을 두드리며 진군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파재는 황보숭-주준 연합군을 맞아 분전했으나 결국 수적 열세로 인해 크게 패했으며, 새롭게 중앙에서 파견된 기도위(騎都尉) 조조(曹操)가 이에 합류, 관군은 그 기세를 몰아 양책에서 파재의 잔당을 토벌하고, 여남으로 진격해 팽탈(彭脫)의 군대마저 꺾어버렸다. 


 남양에서도 새롭게 태수로 임명된 진힐(秦頡)이 장만성(張曼成)의 군대를 발견하고는 돌연 돌격해 그를 죽임으로써 전임 태수의 원한을 씻었다. 이렇게 마원의도, 장만성도 없는 황건군의 남쪽 지형이 크게 요동쳤다. 


 장각은 제자들의 잇따른 비보에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유가 없는 것은 북부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각의 상대는 뛰어난 학식과 무력을 겸비한 북중랑장 노식(盧植)이었다. 그는 키가 8척 2촌(190cm가량)의 거구였으며 음색은 종소리와 같았다는데, 일전에 남쪽에서 야만족들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바 있던 걸물이었다. 장각은 노식과의 전투에서 연전연패하다가 결국 광종(廣宗) 땅에서 포위되는 절체절명의 운명을 맞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노식의 군대가 후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노식은 후퇴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그는 이대로 천천히 포위를 지속해 장각의 군세를 조여들다가 물자가 부족해져 기근에 허덕이고 서로 반목하기 시작한 순간 들이쳐 일망에 타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낙양에서 천자의 조서가 도착했으니, 그 내용은 "공격에 미적거리는 역적 노식을 추포하고 군은 새로운 지휘관을 보낼 때까지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라"는 얼토당토 않는 소리였다. 


이 일의 배후에는 피눈물을 머금고 있던 환관들이 있었다. 


 이 당시의 후한서에는 바로 이 시점에 한가지 기괴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낙양의 한 여자가 머리 둘에 몸이 하나인 아이를 낳았다(洛陽女子生兒,兩頭共身。)"는 이야기였다. 이것이 실제로 이 시기에 존재했던 샴쌍둥이를 묘사한 사례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황건의 난을 진압하는 그 순간에도 한나라의 조정이 환관과 조정대신들, 그 둘로 갈라져 마치 머리가 두 개인 것처럼 싸우고 있었다는 비유의 일종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해임된 노식 대신 파견된 장수는 동중랑장 동탁(董卓)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강족들과 어울리며 깊은 신망을 쌓았고,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재주가 매우 뛰어났으며, 병사들 대우하기에 있어서 마치 자신의 가족들과 같이 하니, 밑의 사졸들은 하나같이 그를 목숨바쳐 따를 정도였다. 그러나 노식과 달리 그는 장각의 군대에 맞서싸워서 이기질 못했다. 어느새 전투경험이 쌓인 장각의 황건군은 이미 이때에 이르러 서량의 정병과 겨뤄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정예화된 것이다.


 동시에 지휘관이 요격당한 남양의 황건적 잔당은 새로이 장만성의 부장이었던 조홍(趙弘)을 대장으로 세워 다시금 세를 불리니, 그 수가 무려 10만에 달했다고도 한다. (심하게 과장됐을 것이다.) 그들은 완(宛) 땅에 여전히 웅거하며 저항을 계속해나갔는데, 형주자사 서구(徐璆), 남양태수 진힐의 대병력에 포위된 상황에서도 수백일 동안이나 성을 굳건히 지켰다. 


 공성 과정에서 조홍(趙弘)이 죽고, 한충(韓忠)이 새로운 대장이 되었음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북방의 황건군, 하늘의 장군이신 장각께서 자신들을 구원해주러 오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해 꺾일것만 같은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런 하늘은 이들을 버렸다. 대현량사 장각이 오랜 포위전 끝에 걸린 역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고 만 것이다. 태평도의 신자들로서는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그러나 장각이 죽었다해도 아직 누런 하늘은 죽지 않았다. 장각과 함께있었던 막내 동생 인공장군 장량이 대군을 인수했고, 직접 관군을 맞아 들판에 나가니, 동탁 대신 이들을 맞이한 적장은 바로 남쪽에서 동료들을 잔륙했다는 그 황보숭이었다. 


 광종(廣宗) 전투에서 두 정예한 군대가 맞붙으니 명확한 승부가 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장량의 군세가 관군의 기세를 꺾었고, 황보숭은 다시 퇴각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장량의 군대가 승리했다고는 하나, 총사령관이 이미 죽고 없어진 황건군의 전의는 시시각각 약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현량사 장각은 단순한 총사령관도 아니고, 그들의 어버이이자 신과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남의 병을 고치던 그가 병에 걸려 죽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장량과 장보는 애써 "곧 부활할 것"이라며 군의 사기를 진작시켰지만, 약속시간도 어느새 지나버렸다. 장량의 군대가 이렇듯 당황해하며 전의를 잃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황보숭이 보낸 정탐꾼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황보숭이 야음을 틈타 기습하자, 황건군의 운명이 그날 아침쯤에는 결딴나고야 말았다.


 장각의 동생 장량은 난전 중에 죽었다. 얻은 수급만도 3만여 급이었으며,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보다도 많았다. 무엇보다, 죽은 병졸들의 숫자보다도 살아있는 그들의 처자식들이 더 많았다. 수없이 많은 가족들이 황건의 기치와 운명을 함께해왔고, 이것이 그들의 결말이었다. 


 황보숭은 장각의 관을 파헤쳐 그 머리를 낙양으로 보냈고, 대현량사의 지혜로운 머리는 말에 매달린 채 낙양거리에서 조리돌려지는 신세가 되었다. 형과 동생의 비보를 전해들은 지공장군 장보는 여전히 잔당을 수습해 저항을 지속했으나 황보숭에게 마저 토벌당해 죽고 말았다. 


 완(宛)에서 원병을 기다리던 남부의 황건군은 주준과 진힐 등에 의해 한충(韓忠)이 죽고, 새롭게 손하(孫夏)라는 자가 대장이 되었으나, 다시 주준에 의해 토벌되어 완전히 흩어져버렸다. 참고로 이때 완성 내부에 가장 먼저 진입한 부대의 지휘관이 손견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렇게 황건의 난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다. 황건을 두른 수많은 청년들은, 앞으로도 각지의 군벌 세력에 흡수되어 새로운 이상을 품을 것이다. 


장각은 실패했지만, 태평의 도는 중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황건적 시점에서 보는 삼국지 시리즈 完.)





참고문헌

『典略』
『後漢書』
『三國志』
『資治通鑑』

Kaltenmark, M. (1979). The Ideology of the T'ai-p'ing ching.
de Crespigny, R. (2010). Imperial Warlord: A Biography of Cao Cao 155-220 AD. Brill Academic Publishers.
de Crespigny, R. (2017). Fire Over Luoyang: A History of the Later Han Dynasty 23-220 AD. (1 ed.) Brill.
Loewe, M. (2022). Ways to paradise: the Chinese quest for immortality.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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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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