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억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 시절의 바다에, 키틴질 외골격과 분절된 사지를 가진 채 바다를 누비는 등각류라는 녀석들이 처음 등장했다.
갑각아문(=갑각류) 연갑강에 속해있던 이들은, 같은 갑각류이자 연갑강에 속하며 우리가 즐겨먹는 친구들인 새우나 게, 가재와는 먼 친척뻘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드넓은 해양 생태계 속에서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적응방산하는데, 어떤 녀석들은 바다 속에서 가장 흔하게 볼수 있는 물고기들에 빌붙어 사는 생존방식을 터득했다.
이렇게 비교적 평범한 '흡혈' 전략을 취한 녀석들은 그냥 물고기의 비늘에 들러붙어 피를 빨아먹거나 살을 파먹는데, 조금 창의적인 녀석들은 대신 더 소름끼치고 영리한 전략을 구사한다.
물고기의 혀에 달라붙어 썩게한다음 숙주의 혀뿌리 근육에 착 달라붙어 혀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다.
유생단계엔 모두 수컷인 이들은 숙주 물고기를 찾아 바다 속을 유영하는데, 마침내 적절한 숙주를 찾아내면 아가미에 달라붙어 그대로 수컷 상태를 유지하거나, 혀에 달라붙고 탈피하여 헤엄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고정된 암컷이 된다. 암컷은 이 상태로 계속 숙주의 혈액이나 점액을 빨아먹는다.
이들은 물고기 혀의 기능을 완전히 대신할 수 있어서 물고기들은 이들에게 감염된 이후에도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둘 이상의 개체에게 중복감염된 개체는 대개 저체중이며, 혈액 손실로 인한 빈혈이나 상처로 인한 병변, 영양실조 등으로 인해 사망할 수도 있다. 이렇게 숙주가 사망하면 이들은 혀에서 분리돼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하는데, 이후의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선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있다.
인간에게 어획된 물고기 중에서도 혀가 이들로 대체된 불쌍한 녀석들이 종종 발견되는데, 사실 이들의 끔찍한 외모와 생활양식 때문에 좀 (많이) 혐오스럽긴 해도, 갑각류의 일종이니만큼 사람이 먹어도 별일은 없을 것이고, 맛 자체도 생각보다 먹을만할 것이다. (본인은 안먹어봐서 모릅니다)
참고로 양식장에서도 감염되면 물고기들 크기가 줄어들어서 퇴치대상인데, 어부들은 그냥 혀에 달라붙은 녀석들을 손으로 잡고 뽑아버리는 방식으로 치료한다고 한다. (물고기 속에 사는 애들이라 화학약품으로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나봅니다.)
그런데 등각류 중에는 생활방식말고도 아예 서식지 자체가 달라진 녀석들도 있었다. 일부는 바다가 아닌 담수에 적응해 강바닥을 기어다니기 시작했으며, 바다 깊숙한 곳의 심해로 흘러들어가 '심해 거대화' 현상을 겪은 녀석들은 최대 50c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해졌다.
등각류 중에서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녀석들이 겨우 0.5mm 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100배나 거대한 바튀노무스속(Bathynomus)의 이 녀석들은 그야말로 초거대 등각류인 셈이다.
(아니 지금 다시 보니 1,000배네요...)
(참고로 영장목에서 가장 작은 녀석들은 피그미마모셋Cebuella pygmaea이라는데, 얘네가 15cm 전후라고 합니다. 인간은 대충 10배 정도 큰 것 같으니, 대충 17m 짜리 영장류가 있는 느낌으로 크기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 이것도 다시보면 170m짜리 느낌이네요)
그러나 어쩌면 가장 독특한 축에 속하는 녀석들은 따로있었으니, 2억 년 동안의 물 속 생활을 청산하고 약 1억 년 전에 처음으로 육지에 상륙한 위대한 벌레들이 바로 그들이다.
심해에 사는 초거대등각류들을 마치 크기만 축소해서 그대로 육상에 옮겨놓은 것처럼 생긴 이녀석들 중 일부가 바로, 우리가 아는 '쥐며느리', 즉 쥐며느리아목에 속하는 꼬물거리는 녀석들이며, 쥐며느리, 콩벌레,갯강구 모두 쥐며느리아목에 속하므로, 전부 '쥐며느리'라고 부를 수도 있다.
쥐며느리의 맛은 이들이 갑각류인데다가, '땅새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는 불쾌한데, 아주 진한 소변의 향과 맛이 난다고 한다. (진짜 안먹어봤으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소변과 쥐며느리 양쪽 모두를 말하는겁니다물론)
이런 거지같은 맛이나는 이유는 요산 농도가 높기 때문이라 한다.
끝.
참고문헌
Brusca, R. C., & Gilligan, M. R. (1983). Tongue Replacement in a Marine Fish (Lutjanus guttatus) by a Parasitic Isopod (Crustacea: Isopoda). Copeia, 1983(3), 813–816.
Sfenthourakis S, Taiti S (2015) Patterns of taxonomic diversity among terrestrial isopods. In: Taiti S, Hornung E, Štrus J, Bouchon D (Eds) Trends in Terrestrial Isopod Biology. ZooKeys 515: 13–25.
Parker, D., Booth, A.J. The tongue-replacing isopod Cymothoa borbonica reduces the growth of largespot pompano Trachinotus botla . Mar Biol 160, 2943–2950 (2013).
Horton, T., & Okamura, B. (2001). Cymothoid isopod parasites in aquaculture: a review and case study of a Turkish sea bass (Dicentrarchus labrax) and sea bream (Sparus auratus) farm. Diseases of aquatic organisms, 46(3), 181–188.
Mladineo I. (2003). Life cycle of Ceratothoa oestroides, a cymothoid isopod parasite from sea bass Dicentrarchus labrax and sea bream Sparus aurata. Diseases of aquatic organisms, 57(1-2), 97–101.
* 본래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대본이니 (점잖으신 분들이란 걸 당연히 알지만) 수익화하지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pgr 사이트 특성상 이미지 업로드가 힘들어서 그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담
쿠쿠 최근에 삼국지 공부하느라 동물 공부를 너무 게을리한 것 같아서 한번 써봤습니다. 쥐며느리처럼 생긴 녀석들(등각목)이 생각보다 엄청 다양한 녀석들이더라구요! 생물이란 참 신기한것 같아요. 혐오스럽게 생긴 기생충같은 녀석들도 사실 그냥 생활양식만 그럴뿐 우리가 먹는 새우같은 놈들하고 크게 다를 것은 없다는 게 또 신기해요. 저런 혐오감만 없앨 수 있다면 충식도 도전할 수 있을텐데 말이에요...
곤충 <- 절지동물문 육각아문 곤충강
새우, 게, 가재, 쥐며느리, 바티노무스, 엑시구아... <- 절지동물문 갑각아문 연갑강
우리는 곤충강은 혐오하면서 또 연갑강에 속하는 새우, 게, 가재는 잘만 먹고 또 연갑강 중에서도 등각목 친구들은 대체로 혐오하면서도... 그 등각목 친구 중에서도 콩벌레는 귀여워하고 키우기도 하면서도 마찬가지로 등각목인 엑시구아는 혐오스러워하는... 신기한 원숭이들인 것 같습니다 쿠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