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 희(熙)는 뱀/여섯째천간 사(巳)에서 유래한 한자로, 지금은 아래에 불 화(火=灬)가 들어가 있지만 옛날에는 火 없이 巸로 썼었다. 여기에서 巳를 뺀 부분은 신하 신(臣)과 비슷하지만 다른 한자다. ???? - 이것은 '턱 이'라고 하는 한자로, 유니코드로는 U+268DD 코드에 해당하는데 이게 유니코드 기본 영역이 아니라서 많은 글꼴이나 프로그램에서 깨져 나온다. 저거보다 더 臣과 비슷하게 생긴 ????, 유니코드로는 U+268DE도 있는데 이것 역시 자주 깨져서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왼쪽의 두 글자는 턱 이로 각각 유니코드 U+268DD, U+268DE. 오른쪽 글자는 신하 신(臣).
熙도 손으로 쓸 때에는 턱 이 부분을 臣으로 쓰는 경우가 잦지만, 강희자전에 이 글자가 실려 있지 않다 보니 유니코드에서도 뒤늦게 U+242EE 코드에 추가되어서 컴퓨터에서는 제대로 쓰기 어렵다. 한편 한자 글꼴의 표준으로 통하는 강희자전에서는 熙의 턱 이를 U+268DD로 쓴 煕(유니코드 U+7155)로 쓰지만, 현대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턱 이를 U+268DE로 쓴 熙를 더 선호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빛날 희(熙), 강희자전의 빛날 희(煕), 턱 이 대신 신하 신(臣)을 쓴 빛날 희
다음 네 글자는 이 턱 이에서 파생된 글자들이다. 현대에 자주 쓰이는 글자는 없다시피하지만 턱 이의 자원을 추측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살펴보자. ('아가씨 희'라고도 하는 姬를 계집이라고 풀이한 것은 어문회 급수 한자 설명을 따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 말에 지금처럼 여자를 낮잡아 부르는 의미는 없습니다. 옛날식으로 여자를 평범하게 가리키는 말입니다.)
姬(계집 희) - 무희(舞姬), 희첩(姬妾) 등, 어문회 2급
宧(방구석 이) - 급수 외 한자
䇫(빗 기) - 비기(篦䇫) 등, 급수 외 한자
頤(턱 이) - 이화원(頤和園), 해이(解頤) 등, 어문회 특급
턱 이와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한자 모양에 일관성이 없는데, 강희자전의 글꼴인 頤는 수록하지 않고 熙에서 사용한 U+268DE 꼴의 턱 이도 쓰지 않고 대신 頥를 썼다.
다행히도 이들을 파생시킨 턱 이는 깨지는 반면 다른 한자들은 깨지지 않는다. 그럼 가장 근본이 될 턱 이의 옛 형태부터 살펴보자.
턱 이의 금문, 설문해자 소전, 전초고문자.
설문해자에서 이것이 턱을 그린 글자라고 했고, 또 이 글자에 뜻을 더하기 위해 頁(머리 혈)을 덧붙인 頤(턱 이)가 있다 보니 이 그림은 턱 그림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만으로는 턱 그림인지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더 많은 자료를 제공하는 글자가 있다. 바로 姬(계집 희)다. 이 글자는 고대 중국의 8성 중 하나인 희성(姬姓)으로 주나라의 왕성이기 때문에 주나라 금문에도 많이 나오고, 심지어 갑골문에도 나온다.
姬의 갑골문이 적혀 있는 《갑골문합집》 34217. 출처: 國學大師
위의 갑골문에 적혀 있는 姬. 출처: 國學大師
이 글자는 지금과는 달리 턱 이에 해당하는 부분이 왼쪽에 붙어 있는데, 위에서 나온 턱 이의 금문 중에서는 맨 왼쪽에 가까워 보인다. 다른 姬의 갑골문에서는 같은 부분이 세 번 반복되기도 하고, 두 번 반복되기도 하고, 위 갑골문처럼 따로 떨어져 있기도 하고 붙어 있기도 하다. 女 대신 每(매양 매)가 많이 들어가는데 의미에는 차이는 없다.
姬의 또 다른 갑골문들. 출처: 小學堂
그런데 왼쪽에 들어가는 부분이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금문은 어떨까?
姬의 금문. 출처: 國學大師
금문에서는 姬가 주나라 왕성의 의미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식별하기는 비교적 쉬울 것이고, 따라서 저 얼핏 보면 달라 보이는 글자들이 모두 姬라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위의 서로 달라 보이는 턱 이의 옛 형태들도 한 형태에서 변형된 형태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저 턱 이라고 하는 글자가 저렇게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다면, 진짜는 무엇을 본뜬 것일까? 이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설인 '턱'으로, 곽말약은 수염이 난 턱을 본뜬 것이라고 보충 설명했다. 다른 하나는 '빗'으로, 나중에 뜻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竹(대나무 죽)을 더해서 䇫(빗 기)를 만들었다는 설이다. 마지막은 시라카와 시즈카의 설로, 여자의 유방을 본떴다는 것이다. 나중에 뜻을 분명하기 위해 女를 더해서 姬(계집 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姬의 자원은 세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하나는 턱 이가 단순히 소리만 나타낸다는 설이고, 하나는 '빗으로 머리를 빗는 여성'이고, 하나는 '유방이 갖춰진 성숙한 여성'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떨지? 턱일까, 빗일까, 유방일까?
이 설들을 검토하면서, 같은 부분이 세 번 반복되는 글자들 때문에 유방 설에 의심을 품었다. 그러면 세 개의 유방이 있는 여자를 본뜨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데 鬲(다리굽은 솥 력)의 풀이를 보고 다시 유방 설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鬲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
상나라 시대의 도기로 만든 역(鬲). 허난성 정저우시 상청바이자좡(商城白家庄) 출토. 출처: 雅道
이 역은 세 발 달린 솥인데 솥 다리가 유방과 유두를 본따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유방을 본뜬 글자라도 꼭 유방이 두 개만 있어야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유방 모양을 본뜬 빗이 턱 이의 본래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姬의 뜻을 더 추정하기 어렵게 하는 것은 이 글자가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제사의 이름으로 쓰였기 때문에 용례에서 뜻을 추정할 수 없고 다만 그림과 후대의 파생 글자만을 분석해서 추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턱, 빗, 유방 이 세 가지 중에서 무엇이 맞을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위의 그림들을 보면 頤나 姬의 다른 형태 중 전혀 턱 이와 상관 없어 보이는 글자들도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頤와 姬의 다른 형태.
이 글자들은 턱 이 대신 阜(언덕 부)가 들어간 모양새다. 뜻과도 소리와도 전혀 상관 없는 阜가 나타난 까닭은 이 阜가 턱 이의 옛 형태와 닮았기 때문이겠다.
한편 頤는 턱 이 대신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로 운모가 같은 止(그칠 지)를 써서 頉로 쓰기도 한다. 이 글자는 거의 쓰이지 않으나, 한국에서는 '탈나다' 할 때의 '탈'을 표기하고자 하는 한국식 한자로 쓰기도 한다. 이렇게 기존에 있던 한자를 한국 고유의 뜻이나 소리로 달리 쓰는 한자를 국의자나 국음자라고 한다. 頉를 '탈날 탈'로 쓰는 것은 국음자에 해당한다.
요약
턱 이는 턱, 빗, 유방을 본뜬 상형자라는 세 가지 설이 있다.
턱 이에서 姬(계집 희)·宧(방구석 이)·䇫(빗 기)·頤(턱 이)가 파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