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에 갔다가 막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롭게 신년 맞이 종소리를 들으러 다녀온 것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집회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연인들과 신년 타종식 보러 온 사람들이 섞여 구호도 좀 외치고 하긴 했지만
그 분들이 빠져나가니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이 되더군요. 하지만 이만큼의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는 게
너무 오래간만인지라... 눈물이 다 나더군요.

대충 상황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루하다고 느껴지시면 스킵하셔도 좋습니다.

7시가 좀 넘어서 제일은행 앞에 자리를 잡았는데, 부당 징계 철회를 촉구하는 교사들의 노란 풍선 배부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구호를 두어 번 외치니 전경들이 갑자기 불법 집회라며 연행을 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며
구호를 외쳤고 그 이후로도 시민들과 경찰들 사이에 실갱이는 계속 됐구요. 풍선만 나눠줘도 불법, 인도에서 구호 좀 외쳤다고 불법.
도대체 그들의 기준에 합법은 무엇인지... 답답하고 알 길이 없습니다. 모여 있는 사람은 200명쯤 되었던 듯 하구요.
이 때 모임의 주축은 해임, 파면교사들의 부당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8시쯤 제야의 종 행사 리허설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보신각과 마주하고 있는 제일은행 쪽은
전경 버스로 가로막혀 있어서 방송으로 찍어도 하나도 보이지도 않습니다. 거기다가 안 보이는 쪽만 찍는 리허설을 하고 있네요.
나중에 이게 기가 막히게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 장면에서 예전에 봤던 사진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빈민촌은 보여줄 수 없다는 정부의 결연한 의지로
빈민가와 신시가지를 벽을 세워 격리 시켰던 모습. 철저히 격리되어진 집회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빈민촌 같은 존재였나 봅니다. 자신의 소신을, 의견을 말하는 우리가 그렇게 부끄럽고, 그래서 숨기고 싶었던 걸까요?

9시쯤 건너편 국세청 건물 쪽에서 사물패 소리가 울리다가 경찰과의 충돌 소리가 들려서 이동했는데 '사물놀이 연행해요!'라고
말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실이라고 믿어버린 상태에서도 뭔가 이상하여 앞쪽으로 굳이 가서 확인해보니
연행이 아니라 사물놀이를 자제해 달라고만 말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사람들은 연행 소리만 듣고 '폭력경찰 물러나라'며
꽤 긴 시간을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 지르고 간 사람... 이상하다했습니다 어쩐지... .

10시가 좀 넘어서자 깃발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진보신당과 다함께의 깃발이었고, 오래간만에 보이는 전대협 깃발과
촛불청, 아고라 깃발들도 있었고 촛불 집회 때 종종 보았음직한 안티mb, 지역 촛불 깃발들도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구요.
보신각 앞쪽에 모두 자리를 잡고 손에는 노란 풍선, 붉은 색 피켓을 들고 '독재타도 mb퇴진'을 외쳤습니다.



11시쯤 제야의 종 방송이 시작됐던걸로 기억하는데, 시간은... 손시려워서 시간을 잘 못봐서 정확한 시간은 기억 못합니다.
대략적인 겁니다. 정말 목이 터져라고 구호를 외치고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은 풍선에 피켓을 들고 몇십개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어도
방송엔 하나도 안나오더군요. 혹시 방송을 보시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하셨나요? 가수들 노래 부를 때
보통은 모인 사람들을 찍어주게 마련인데 가수들만 줄창 클로우즈업 하고 사람들 찍을 땐 화면에 열사람도 안나오게 찍어댔던거 말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은 분명 보신각일텐데 사람들 모여서 환호하는 모습은 대학로 화면만 보여주던거...
이상하지 않으시던가요? 언제부터 연말 방송에서 대학로에 모인 사람과 보신각 앞 공연을 이원으로 따로 보여주던가요.
kbs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렇게 철저하게 집회 모습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리허설은 괜히 한 게 아니더라구요. 아나운서들... 정말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지기도 하였더란 말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야유를 하고 구호를 외쳐대도 시종일관 웃으면서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멘트들을 하는데...
하긴... 망쳐도 문제가 있긴 했겠네요. 타종 행사 할 때, 이용대 선수... 얼굴 굳어있던 모습 보셨습니까?
그게 보통 나와야 하는 반응일겁니다 그 상황에서. 앞에 깃발이 몇십개가 올라오고 사람들은 야유와 구호를 외쳐대는데 웃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요. 그 와중에 오세훈 시장...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시민들 어쩌고 하는데... 와...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하긴... 그러니까 정치를 할 수 있는 걸까요?



12시 반쯤, 행사가 끝나고 방송이 끝난다 싶으니까 살수차 등장. 참으로 오래간만에 봅니다. 이 추운 겨울날에
살수를 하려고 끌고 나오신 건지... 전경들이 종로3가쪽 도로부터 막 밀어닥치기 시작합니다.
집회 참석자들이야 이젠 뭐 그렇다고 해도 그냥 종 치는거 보러 온 시민들 정말 화들짝 놀라서 도망갑니다.
게다가 전경들... 도로를 막는가 싶더니만 인도로 들이닥쳐 인도를 그냥 막 점거하구요.
'도로에서 시위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우리 전경들은 인도를 전부 차지하고 있습니다. 도로에서 시위가 안된다는 거...
뭐 원칙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런 건가요? 정말 길하나 안 터주고 막 죄여오는데 가서 욕 좀 하고 길 터달라고 했더니
사람이 게 마냥 걸어가야 겨우 나갈 수 있을 만큼의 길만 터줍니다. 그렇게 전경들이 보신각부터 탑골공원까지 점거하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견뎌낼 재간이 있나요. 슬슬 해산되기 시작합니다.
전경들이 들이닥쳐 인도를 점거 하는건 비방용 2008 타종행사 마지막 이벤트였나봅니다. 허허


어이없었던 사건 하나. 갑자기 어떤 50대쯤 되어보이는 아줌마가 와서 저를 툭툭치더니
'아가씨 이거(피켓) 받으면 뭐 준대? 그래서 받은거야?' 이러면서 시비 걸고 짜증내길래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더니
사람들 사이로 빛의 속도로 유유히 사라집니다.

어이없었던 사건 둘. '촛불 반대' 피켓이 올라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살지!'
아직도 그 말을 믿습니다. 일년간 이렇게 무너졌는데도 믿습니다. 이정도면 환각에 빠졌다고 해야 하나요?
아... 일 년간 경제를 죽였놨으니 살릴게 있긴 하겠네요. 살릴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제 넘는다는 건 알지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왜 20대가 행동하지 않나요?  뭐가 무서워서 생각도 하지 않고 행동도 하지 않는 건가요? 취업이 힘들어서?
막상 취업하면 직장 잃을까 무서워서 행동하지 못하고, 결혼하면 지킬 가족이 걱정돼서 행동하지 못할게 뻔합니다.
아직 잃을 것이 없는 20대가 무엇이 무서워서 자기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건가요?
앞으로 부당한 세상에 가장 많은 차별을 받을 것은 20대임이 틀림이 없는데 말입니다.
취업이 안되는 것도,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도.
왜 자기들의 이익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얻으려고 하는건가요.
그리고 사람인지라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사람들이 자신을 대신해서 싸워주고 있다는 부채의식 정도는 가지고 있었으면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신물이 나서 정치에서 관심을 끊는 것? 축하합니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되셨습니다.
억울한 마음을 성토만 하는 것? 그들에게 부담은 될지 몰라도 무서운 존재는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비단, 20대들에게만 해당되는 소리가 아니지만 말입니다.


새벽에 추운데서 격하게 싸우다 왔더니 좀 과격한 문장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한 숨 자고 일어나서 과격한 표현이 있다면 고치도록 할테니 혹, 읽으시는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표현이 있다면
쪽지로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해 벽두를 전경들과 함께할 줄은 몰랐거든요 저도...

2009년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