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란 꽃을 피우는 식물에서 꽃에 있는 씨방이 자라서 만들어진 것으로 씨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암술이 단독으로 자라서 열매가 되는 과일을 단과라고 합니다. 두 개 이상의 암술이 하나의 열매를 이루는 것을 복과라고 하며, 특히 수많은 암술들이 다른 부위에 붙어서 된 열매를 총과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열매는 씨앗과 열매껍질(과피, pericorp)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씨앗은 나중에 싹으로 자라나는 배(embryo), 배의 성장에 필요한 배젖(endosperm), 씨를 둘러싼 씨껍질(종피, seed coat)로 구성됩니다. 이 씨껍질은 열매껍질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한편 열매껍질은 세 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층들을 겉부터 안으로 겉열매껍질(외과피, exocarp), 가운데열매껍질(중과피, mesocarp), 안쪽열매껍질(내과피, endocarp)라고 부릅니다. 다음 그림은 복숭아에서 배, 배젖, 씨껍질, 겉열매껍질, 가운데열매껍질, 안쪽열매껍질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림을 보시면 우리가 까먹는 껍질이 겉열매껍질, 먹는 과육이 가운데열매껍질, 흔히 씨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안쪽열매껍질입니다. 가끔 복숭아를 씨째 깨물어먹다 보면 이 안쪽열매껍질이 깨지면서 타원형의 또 다른 작은 씨앗 같은 게 나오는데 이게 진짜 씨입니다. 자두나 살구 같은 핵과들은 복숭아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핵과에서 이 안쪽열매껍질은 목질로 되어 있어서 단단합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 핵과류의 씨앗은 일반쓰레기로 버리는데, 나무를 음식물쓰레기로 버리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감도 복숭아처럼 핵과라서 같은 구조인데 대신 안쪽열매껍질이 얇습니다. 애석하게도 한국어 자료는 꼭 사과의 잘못된 구조와 같이 있고 영어 자료는 없어서 일본어 그림을 가져왔습니다. 왼쪽의 カキ는 가키라고 읽는데 이게 감입니다. 오른쪽의 モモ는 모모라고 읽으며 복숭아고요.
다른 과일들을 살펴볼까요?
복숭아만큼, 아니면 그보다도 더 크고 단단한 씨앗이 안에 있는 과일로 아보카도가 있습니다. (추가할 수 있게 해주신 잉어킹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아보카도도 핵과가 아닐까 싶은데요,
실제로는 안쪽열매껍질이 매우 얇아서 장과에 속합니다. 일반쓰레기로 버리는 이유는 껍질이 아니라 씨 자체가 매우 단단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대추야자는 겉껍질이 겉열매껍질, 먹는 과육이 가운데열개껍질, 씨를 감싼 얇은 막이 안쪽열매껍질입니다. 아래 그림의 (B)를 봐주세요.
콩은 콩깍지가 열매껍질입니다. 콩깍지가 얇아서 잘 안 보이지만 어쨌거나 콩깍지도 겉열매껍질, 가운데열매껍질, 안쪽열매껍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콩깍지에서는 안쪽열매껍질이 바깥쪽의 a와 안쪽의 b로 나뉘었다가(아래 그림 D) 콩이 다 익으면 안쪽열매껍질 b만 남아서 목질화합니다(아래 그림 E). ex는 겉열매껍질, ms는 가운데열매껍질, enda는 안쪽열매껍질 a, endb는 안쪽열매껍질 b입니다.
호박은 바깥 껍질이 겉열매껍질, 과육은 가운데열매껍질이고, 씨앗을 감싸고 있는 섬유질 태좌 같은 부분이 안쪽열매껍질입니다.
오이도 호박처럼 바깥 껍질이 겉열매껍질, 과육은 가운데열매껍질이고 씨앗을 감싸고 있는 부분이 안쪽열매껍질입니다. 멜론, 수박, 참외도 호박, 오이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포도는 바깥 껍질이 겉열매껍질, 과육이 가운데열매껍질과 안쪽열매껍질인데, 가운데열매껍질이 더 답니다.
석류는 바깥 껍질이 겉열매껍질, 하얀 속살이 가운데열매껍질이고, 씨를 덮은 종이 같은 껍질이 안쪽열매껍질입니다.
토마토는 구분이 잘 안 되기는 하는데 어쨌든 바깥 껍질이 겉열매껍질, 과육이 가운데열매껍질, 과육과 씨가 잔뜩 있는 안쪽 사이를 덮는 부분이 안쪽열매껍질입니다. 토마토는 과육 안의 씨 부분도 많이 먹죠.
얼핏 보면 두 부분으로만 되어 있는 것 같은 바나나도 3중구조입니다. 껍질이 겉열매껍질, 먹는 부분은 가운데열매껍질과 안쪽열매껍질인데, 가장 안쪽의 어스름한 삼각형 셋이 모여 있는 것 같은 부분이 안쪽열매껍질과 퇴화된 씨입니다.
키위는 껍질, 과육, 흰 속으로 나뉘니까 각각 겉열매겁질, 가운데열매껍질, 안쪽열매껍질일 것 같은데, 과육이 가운데열매껍질이긴 하지만 안의 씨를 둘러싼 부분이 안쪽열매껍질입니다. 흰 부분은 태좌(Placentation)입니다.
사과는 어떨까요? 사과는 씨방이 아니라 꽃받기가 자라서 열매가 되는 대표적인 헛열매입니다. 사과를 반으로 갈라보면 안쪽에 초록색 줄이 보이는데 여기가 겉열매껍질이고, 그 안쪽은 가운데열매껍질, 그 안쪽의 초록색 줄 부분이 안쪽열매껍질입니다. 우리가 먹는 부분은 대부분 겉열매껍질 바깥의 꽃받기가 자란 부분입니다. 배도 사과와 같은 구조입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열매들 중에서는 코코넛의 구조가 꽤나 이질적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코코넛의 특이한 구조와 식사방법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코코넛을 사보면 삼중 껍질 구조가 안 보이죠. 실제로는 우리가 먹는 코코넛은 씨만 발라내서 먹는 것라서 그렇습니다. 코코넛은 복숭아 같은 핵과이긴 한데, 가운데열매껍질까지 목질 같은 다공성 섬유질로 되어 있습니다. 핵과에선 보통 과육이 가운데열매껍질인데 코코넛은 아니죠. 우리가 코코넛의 과육이라고 하는 것은 고체 배젖이고, 코코넛 워터는 액체 배젖입니다. 코코넛 젤리는 액체 배젖을 발효해서 만들어지는 젤리고요. 코코넛은 물에 둥둥 떠다니다가 해변에 닿아서 번식하기 때문에 물에 뜨기 좋게 가운데열매껍질을 저런 다공성 구조로 만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코코넛보다도 더 특이한 구조는 바로 귤입니다. 귤, 오렌지, 자몽 같은 귤속 과일들의 구조는 다 같아서, 겉껍질이 겉열매껍질, 껍질에 붙은 하얀 살인 귤백이 가운데열매껍질이고, 먹는 부분은 다른 열매들에서는 주요 과육 부위가 아닌 안쪽열매껍질입니다. 안쪽열매껍질이 크게 자라서 과육이 된 것이지요.
딸기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추가할 수 있게 해주신 구운아몬드님께 감사드립니다)
딸기는 대표적인 총과입니다. 꽃부터가 한 꽃에 수많은 암술이 들어 있는 구조라서, 우리가 먹는 과일 딸기도 이 여러 개의 암술에서 생긴 작은 열매들이 모여서 만들어집니다. 작은 열매들이 어디 있냐고요? 우리가 딸기 씨라고 하는 게 사실은 하나하나의 작은 열매들이에요. 그래서 이 '씨' 하나하나에 열매껍질과 씨 구조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딸기의 과육, 그러니까 먹는 부분은 꽃 전체를 받쳐 주고 있는 기관인 꽃턱이 크게 자라난 것으로, 한 꽃에서 열린 열매들이 꽃턱에 받쳐서서 하나의 딸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 아래 그림에서 achene라고 되어 있는 것은 '수과'라는 열매의 일종으로, 열매껍질이 말라서 목질이나 혁질이 되는 열매입니다. 수과는 익어도 열매껍질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열매 전체가 하나의 씨앗처럼 보입니다. 딸기 외에도 민들레의 홀씨가 사실은 열매껍질을 온전히 갖춘 수과의 예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과일들의 겉열매껍질, 가운데열매껍질, 안쪽열매껍질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설에 과일을 드신다면 한번 갈라보고 구조가 어떤지 살펴보시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덧붙여서 왜 복숭아 씨앗은 일반쓰레기인지도 기억하실 때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