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디즈니의 100주년 기념작 <위시>를 보고 왔습니다. 사실 90년대 뉴 에라 디즈니를 보고 자란 사람으로서
2000년대 이후 작에는 크게 애정이 없는 사람이라 보지 않으려 했는데,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제작에 참여했다고 해서
보게 되었네요.
간단히 총평을 하자면, 처음에는 몹시 지루했지만 마지막 엔딩의 여운이 남게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에도 종종 있죠. 전체적으로 보면 불만족스럽지만 마지막의 10분이 그 모든 걸 잊게 해주는 작품이요.
(스포일러 주의)
1. 스토리(★★★☆☆)
위시의 메세지는 명확합니다. 어린이(그리고 몇몇 어른들)들의 꿈과 마법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 온 디즈니의 자화상 같은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단순하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스토리를, 제대로 정제하지 못하여 지루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플롯이 정제가 되어있지 않고 완급조절이 들쑥날쑥합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빠르고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느려요.
사실 애초에 디즈니는 원래 있었던 동화들을 음악과 화면으로 멋지게 구상해내는 것에 더 장점이 있던, 스토리의 오리지널리티라는 부분에서는 좀 약한 면이 있던 제작사였습니다. 오리지널 작품들도 있긴 하지만 황금기를 이끌었던 애니메이션들은 대다수 동화를 차용했죠. 심지어 2000년대 디즈니의 최대 히트작인 겨울왕국조차 유명 뮤지컬 <위키드>와 상당 부분 닮아 있잖아요.
위시는 독자적인 스토리라인을 지닌 작품처럼 보이지만, 기존 동화들이 제공하던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완벽하게 플롯이 짜여있는 안정적인 장점은 지니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디즈니의 태생적 한계이지요.
2. 퍼포먼스, 미술과 음악(★★☆☆☆)
미술에 있어서는 다소 시범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일단 배경이 색연필로 채색한 듯한 질감을 노골적으로 줍니다. 동화책 삽화같은 느낌을 주려고 한 연출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질감이 부족해서 마치 덜 완성된 화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 달리 색감 자체가 회색톤이 지배적이라 좋게 말하면 차분하고, 나쁘게 말하면 우중충합니다. 화려함이 부족해요. 질감과 색감의 에러가 맞물려 화면 자체가 주는 힘이 약합니다.
음악의 경우, 팝적인 성향이 강한 넘버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이 제일 좋더군요. 화려하거나 장엄한 대규모 편성곡은 별로 없지만 귀에 쏙쏙 잘 들어와서 듣기 좋아요. 그냥 플리같은데에 넣으면 일반 음악이랑 구분이 별로 안 갈것 같아요. 주인공 두 명(아샤, 매그니피코)이 목소리도 좋고 노래를 상당히 잘 불러서 놀랐습니다. 매그니피코 역에 크리스 파인이던데, 목소리가 이렇게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만, 퍼포먼스 부분에 있어서 이 모든 문제가 드러납니다. 심지어 퍼포먼스가 은근히 안 드러날 수도 있었던 모든 분야(플롯, 미술 등)의 단점을 극대화시켜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서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관객들이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 이 뮤지컬적인 퍼포먼스가 굉장히... 당혹스럽습니다. 보기 힘들 정도로 난잡하고 정리가 안 되어 있으며, 미적으로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의미 없는 슬랩스틱 개그도 너무 많이 나와요. 웃기지도 않은데 말이죠. 마치 어설픈 코미디언이 냉엄한 관객들을 상대로 억지로 웃기려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안그래도 약한 미술과 음악이 이 퍼포먼스에 다 힘을 잃고 말아요. 게다가 2시간도 안되는 짧은 상영시간에 스토리에 음악에 볼 것까지 우겨넣으려니, 마치 작은 상자에 온갖 것을 넣은 것처럼 여기 튀어나오고 저기는 찌그러지게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디즈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네요.
3. 외적인 부분(★★★☆☆)
디즈니의 자기 패러디와 헌사의 장입니다. 100주년 기념작이라 그런지, 디즈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알아차리고 추억에 잠기게 할 만한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일단 주제와 마스코트인 귀요미 별이 디즈니의 테마곡인 'When you wish upon a star'를 생각나게 하죠. 아샤는 '마법사의 제자'로써 시험장에 들고, 마법에 걸린 버섯과 동물들이 말을 하는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법봉 싸움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 매그니피코가 타락할 때 생기는 녹색의 빛은 말레피센트나 자파 같은 사악한 마법사 악당들의 빛을 떠올리게 합니다(왜 디즈니는 마법사 악당들에게 녹색을 주로 배정할까요?). 이런 부분을 알아채는 재미가 있어요.
사회적 측면, PC 면에서 이야기가 좀 나오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생각보다 갈등사안이 될 만한 부분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실제로 꽤 다양한 인종을 보여주고, 과거에 주류로 다루어져 왔던 금발 벽안 백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지만 그게 끝이에요.
주인공 아샤와 친구들 VS 매그니피코 의 구도로 페미니즘 세력과 안티 PC주의 대결구도로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아샤와 친구들은 다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깊이 파고들어가지는 않아요. 마법 왕국 자체가 어느 정도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의 국가로서의 미국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는데, 그 주제를 표출하는 것으로도 좋았다고 봐요.
매그니피코를 기득권 백인남자로 보는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매그니피코는 백인보다는 약간 라틴계가 섞인 남성처럼 보이고, 어떻게 보면 주인공 아샤보다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라서 매력이 있습니다. 이 매력 있는 악당의 최후 처우에 대해서는 좀 불만이 있지만요. 잘못 길을 든 선량했던 마법사이기에, 좀 더 관용적인 마지막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하네요.
4. 총평 (★★★☆☆)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엉성한 스토리와 당혹스러운 퍼포먼스의 앙상블은 위에서 말했듯 종반 10분에는 상당부분 치유가 됩니다. 좀 아쉽긴 하지만 말예요. 사실 외적인 부분에서 보자면 위시는 실패한 작품에 가깝습니다. 관객들을 끌만한 매력적인 부분이 별로 없지요.
하지만, 메세지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어느 정도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법이 왜 달리 마법이겠어요? 그럴 듯한 설명이 없어도, 바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힘이 나게 하는 마법같은 소원들을 디즈니는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 디즈니의 마법에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 당장 한 명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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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후기를 쓰긴 했지만 대체로 밋밋한 부분에는 공감이 있는거 같고
아이러니하게 그래서 요즘 피씨에 절여진 매운맛 디즈니에 비하면 다른의미로 꽤나 노력한 작품이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저도 그런쪽으로 꽤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영화보면서 불편한 구간은 없었습니다
스타가 너무 귀엽긴 했지만 입체적 캐릭터들이 부재하고 영화 배경 자체의 스케일이 좀 작은 느낌이에요
메시지는 뻔하지만 좋았으니 동화로서의 기본 소임은 했다고 보이네요
(수정됨) 소원을 바쳐서 뭐였는지 잊고 산다는 것은 진중한 문제이지만 어른도 문제의식이 없을 정도인데 애들은 뭐.. 그래서 별의 이질적인 귀여움이라도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엘사가 원래 악역이었다는데 많은 서사 투자를 받게 되면서 새로운 동화를 이끌게 되었죠. 매그니피코도 그렇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나쁜 놈보다는 아픈 놈에 속하는데. 어떻게 자랐는지 풀어주는 건 바라지도 않고, 그의 진짜 소원도 하나 다루었으면 어땠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