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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9 12:23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초반부 인명 보고 호다닥 내려서 댓글부터 씁니다만
저 분 이름 언급하시는 순간 카테고리가 정치가 됩니다. 카테고리를 수정하시던가 언급을 삭제하시던가 해야...
23/10/19 12:30
감사합니다. 정치글 관련 공지는 읽어 보았는데 인명 언급이 중요한 요소인지는 몰랐네요.
카테고리를 정치로 해야하나 고민을 하긴 했습니다만,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일반으로 지정하였는데요. 문제제기가 된다면 카테고리를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23/10/19 13:18
현대 문명의 생산력의 공을 자본주의 체제에 돌리는 것은 컴퓨터 업무의 성과를 윈도우즈에 돌리는 것만큼 범주의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글 전체적으로 1세계적 관점이기도 하구요. 어쨌든 문제는 그 괴물을 이제 다스리거나 물리칠 수 있는지이긴 합니다.
23/10/19 13:27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체제경쟁 당시의 공산권도 어쨌든 생산력 증강 노력을 기울였고 일시적으로는 성공하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저는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로 만드는 그 고유한 특성은 무제한적 축적 강박(혹은 논리)이라고 배웠습니다. 임노동도, 시장도 아닌 자본의 무한 축적 논리요. 근데 사실 이것도 자본주의=현대문명이라는 걸 당연 전제한 관점이고, 사실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현대 문명'이, 나아가 압도적 기술력과 자연지배력을 획득한 인간이(그것이 자본주의이든 공산주의이든 뭐든)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23/10/19 13:59
"분배정의의 문제를 최우선 해결과제이자 화두로서 논의의 장으로 올려놓지 않는다는 사실"은 논의의 장에 있는 사람들이 분배정의의 문제를 해결했을 때 손해를 볼 사람들 이라는 이야기 이지요. 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의 장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80억 인구가 칼라로 연결된 것 처럼 80억 인구의 생각을 모두 대변 할 수 있도록 논의의 장을 개편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23/10/20 13:43
80억을 수용할 수 있는 공론장..따위는 사실 불가능한 것이겠죠. 또 논리적으로는 우리가 꼭 공론을 거쳐야만 좋은 해결방법을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겠고요. '칼라'이야기를 한 것은, 이 문제가 달리 말하면 이해관계가 각자 다른 80억이 연관된 문제라 매끄러운 해결책은 상상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차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넘어)그래서 정책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23/10/19 14:02
제가 막연히 생각하던 바를 명쾌하게 글로 정리해주신 거 같아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냉소와 외면이 구조적 당위라는 말이 인상 깊네요. 동의합니다. 많은 이들이 게임체인저적인 안티테제의 등장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올 수 있을지, 온다 한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모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직감하기에 다들 이토록 '적자생존'의 기치 아래 회피적 삶을 영위하는 거겠지요.
23/10/19 14:43
[한국사람들이 위에서 다소 과격하게 서술한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동시에, 이러한 삶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어도 자신에게는 허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강력하게 직감] 이게 좀 중요한 대목같은데요. 지금까지 SNS로 상류층의 삶이 적나라하게 공유되면서 누구나 그 일부를 경험해보고 또 그런 경험을 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시대라면 이제 각자도생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개개인들이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게 되는 것이 수순이라고 봅니다.
어자피 내가 못하더라도 남도 못하면 배가 덜 아픈게 이 사회의 태생적 본능이라서요. 국가단위의 분배구조 개편보단 눈 가리고 문제가 없었다는듯 서로 못사는 (또는 못사는것처럼 위장하는) 사회로의 회귀가 더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느끼기엔 그게 지금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23/10/19 16:42
말씀하신대로라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들 어련히 포기하고, 체념하고, 순응하기를 '원한다면', 그게 우리가 원하는 방식인데 딱히 문제될 것은 없겠죠. 그런데 저는 실제로 뭔가 광범위한, 개혁적인 실천의 흐름이 발생할 수 있냐와는 별개로 사람들이 '순응'일변도를 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체제가 '상승욕구'를 끊임없이 부추겨 왔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은 이미 너무 똑똑한(눈이 높아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기본권 향유 가능성이 문제시되기 시작하는 상황까지 가버린다면(가령 의료 붕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23/10/19 15:21
사실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저출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뭔소리야 싶겠지만, 미래의 자식의 고생이 뻔히 보이는데 아이를 낳으려면 국가적인 위기가 예측되는 상황에서 개인의 능력으로 그 위기를 돌파할수 있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저출산 반등이 어려울거라고 생각하는게, 저출산으로 힘들어지고 미래가 더욱 팍팍해질수록 더 안낳을겁니다. 육아비용을 줄이고 육아 혜택을 늘리고 이런게 있더라도 내 아이의 미래가 불행해보이면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덜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23/10/19 22:40
저출산이 저출산의 원인이 되는 건 물질적인 문제도 있을 겁니다.
옆집이 애를 안 낳는다는 건 내 애 키울 비용도 올라간단 얘기거든요. 당장 육아물품 가격이 올라갑니다. 기업들은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을 올려서 대응할 테니까요.
23/10/20 11:08
무엇을 분배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죠.
부채를 늘려 현세대에게 분배하는 것은 가뜩이나 엄청남 부담을 질 수 있는 미래세대에 더 큰 짐을 지우는 거고요. 법인세를 일부 올릴 수는 있지만 기업에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은 성장성을 꺽어버릴 수 있고요. 그러면 분배를 크게 늘릴 재원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돈을 찍어 분배를 하면 인플레가 엄청나게 될 겁니다.
23/10/20 13:01
분배 정의 논의를 구체적으로 시작하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한 가지 이론적 이상향은 '파격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재)분배 정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체적 방법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연히 '사회주의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이구요. 물론, 이런 과정도 결국은 시민사회의 공론장과 의회를 거쳐 정책적 지지를 얻는다면 실행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별 도리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은 사람들이 원해야 하는 것이지 의사결정자 한 두명이 뚝딱 해치울 수 있는 게 아닐 테니까요.
무튼, 이 재분배 정책이란 것은 경제 성장률은 거의 의식하지 않는, 고통 분담을 위한 도구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장률을 포기한다라? 사실 반 쯤은 이미 궤변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글의 관점은 '무한 팽창'으로서의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고, 결국 우리가 같이 먹을 수 있는 파이의 크기가 줄어드는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3/10/20 13:45
파격적으로 분배하자는 말은 있지만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지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논의를 이어나가기 어려울 것 같은데 뭘 분배할지를 생각해 봐야되고 그냥 삼성전자 팔아서 국민들한테 나눠주자는 식이면 성장률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엄청 마이너스 성장으로 꼴아박는 게 될 겁니다...
23/10/20 13:51
굳이 꼭 당장 기업에 철퇴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기업에는 임원들만 있는게 아니니까요),
매우 장기적으로 1)최초 분배(임금)의 차원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바꾸어간다 2)재분배의 차원에서 재산세를 올린다. 큰 틀에서 이런 방법인 것이겠죠. 물론 당연하게도 강력한 저항이 예상됩니다.
23/10/20 11:52
경제, 돈문제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 돈문제라는 프레임을 씌워 사람들에게 온전한 사유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 외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기준이 존재함을 인식할 수 없게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23/10/20 12:26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을 돈과 자본으로 일원화하는 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프레임이니까요.
1) 그런 자본주의 프레임에서도 출산을 하도록 가치를 변경 (인센티브, 싱글세 등...) 2) 자본주의에서 새롭게 나아간 새로운 프레임 도출 & 사회적 확립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내용도 2번에 가깝고 글쓴분 의견도 2번이 필요하다는 것 같아요.
23/10/20 13:29
새롭게 합의된 단일 프레임이라는건 또 다른 모순을 낳는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80억 개개인 모두가 다를 수 있으며, 그러한 각자의 프레임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공통된 프레임, 단일한 세상 속에 살아가기를 강요받지만, 실은 타인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기싸움을 하고 권력관계를 생각하고 수지타산을 따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가스라이팅 하고 있죠. 그러다보니 가족, 연인, 친구에게마저 내려놓지 못한 채 이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스스로의 기준을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확립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러한 상대방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내려놓고 허물 없는 대화를 할 수 있죠. 저출산을 받아들여야 한다? 개인화된 세상? 저는 그래선 안된다고 봅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 수 없는 동물이고,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빠르게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23/10/20 13:28
사실 궁극적으로는 저도 탈물질주의적-가치지향적인 삶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가치체계가 개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우리가 꼭 지금 수준의 생산력을 유지해야만 하느냐,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덜 누리더라도 훨씬 '행복한'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죠. 분배 정의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관점이 더욱 널리 받아들여진다면, 논의는 더욱 수월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가령 시저님과 제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물질적인 것'이 중요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죠. 결국은 이 '물질적인 것'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생각할지의 문제인 것으로, 달리 말하면 우리는 경제의 문제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겠죠. 우리는 생물학적 기관을 지녔고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있는 인간인 것이니까요. 그리고 가치체계에 관한 논쟁은 필수적으로 분배정책과 같이 진행되어야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압도적으로 호화로운 물질적 삶을 누리고 있는데, 탈물질이 중요하다는 구호만 외친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반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들만 돈 많이 벌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빈낙도 하라고 하네, 이거 기만 아니냐..(!) 하는 종류의 비판이 당연히 있을 것이구요.
23/10/20 13:43
위에 단 댓글과 비슷한 맥락으로 시작해서 답변을 드리고...
탈물질이 중요한게 아니라 탈물질도 물질적 세계관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각자가 어떻게 기준을 잡느냐에 달렸다는 것이고요. 문제는 물질적 세계관이 다른 생각들을 모두 박해한다는 것에 있지요. 또한 말씀하신 마지막 문장의 논조가 바로 생각이 전환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마지막 허들입니다. 사실 그건 물질적 세계관이 변하지 않는 공통의 절대진리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외에 파생적으로 각자 개인의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거든요. 그러한 전제부터가 부정될 수 있다는 인식이 선행되지 않는 한, 이러한 논의는 진짜 해결책으로 다가가기 어렵게 됩니다. [경제적 유물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23/10/20 17:4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막연히 해왔는데 이렇게 정갈하고 구체화된 글을 읽으니 생각이 조금 더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만, 저는 근본이 낙천적이라 그런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요새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어쩌면 몇몇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묘사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은 정말 '디스토피아'일까요? 중세 봉건사회나 조선시대의 사람이 지금 우리 세상을 보면 신분 질서나 마땅히 지켜야 할 가치들이 무너지고 타락해버린 그야말로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멋진 신세계'같은 세상이 지금 우리 눈에는 디스토피아로 보일지는 몰라도 막상 그런 세상이 도래한다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자유를 좋아하고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세상을 생각하면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부에 대한 욕망을 거의 신성시하면서 안빈낙도하는 삶은 위선이라는 한 단어로 간단히 매도해버리는 지금의 사회도 디스토피아적으로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글 중간 [물론, 이 모든 고민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우리에게는 존재하는듯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세속화 시대의 신앙의 대상인, 과학이다.] 이 부분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저는 과학의 발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맹신적인 사고방식을 많이 경계하는 편인데도 인류가 더 발전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조건을 꼽으라면 과학기술의 발전을 꼽을 것 같거든요. 또 어차피 기술의 발전 없이는 답이 없으니 거기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하고요. 생각해보면 심지어 여러 창작물에서 묘사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마저도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전제하고 있지요 크크.. 어쩌면 현대 인류의 사고방식의 근간에는 자본주의보다도 합리주의가 더 깊게 뿌리박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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