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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12/11 21:29:00
Name 시퐁
Subject 나에겐 그래도 퍼펙트 테란.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일이란 천차만별입니다. 그 수많은 것들 가운데서도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살고 있는 '동시대'의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때까지 인류가 살아왔을 그 수많은 역사를 젖혀두고 신기하게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함께 이런 감정들을 느낀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네요. 수많은 싸움들이나 질투같은 것들도 함께 공감하는 것들이 있기에 벌어지는 것이니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너무 거창하게 시작해버렸네요.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계기'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런 극단적인 시작이 아마도 글을 망칠거라 생각하지만..그건 그것 나름대로 즐거울 것 같네요. '문장'을 읽으시는 분들은 '문장'에 즐거워하실테고 '흐름'을 보시는 분들은 '흐름'에 즐거워하실거라 믿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악의에 찬' 반응이라도 저는 그것이 '즐거워하는 것'의 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사설은 여기까지 하고..시작하겠습니다.

위에 쓴 내용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스타 리그를 좋아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천차만별'이라는 단어를 썼듯이 모두들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요? 이제는 좋아하게 되어버린 마당에 계기는 아무래도 좋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을텐데요, 저는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올림푸스 스타리그 결승전,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를 소유하게 됨으로써 '테레비전'과의 이별을 하고 있었던 저를 지금까지 다시 텔레비젼 앞으로 끌어당긴 선수, 퍼펙트 테란 서지훈의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경기들을.

응당 아둥바둥 살아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긴 여름이었습니다. 여름에 태어난 이들은 여름을 즐긴다고 하죠. 저 또한 군대 가기 전엔 그러했지만 전역하고 나서 바라본 사회는 바로 '현실'이었습니다. 열혈남아로써 끓어오르는 양심으로 투쟁판에 뛰어들고 작은 정리에도 인연을 느껴버리며 술과 음악이 너무나도 좋아 스스로 헤어나오지 않았던 20대 초반의 풍류들은 전역과 개인적으로 안좋은 일들이 겹쳐 정말 그야말로 '꿈처럼' 날아가버리고 흔히들 말하는 '냉혹한 현실'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거죠. 물론 나이드신 분들의 숱한 인생에 비할 바는 아니겠습니다만 사실 하루 세끼 먹던 사람이 한끼만 먹게 되어서 생기는 배고픔이 아무리 소말리아 아이들을 생각한다고 하여도 줄어들지는 않죠 -_- 고통은 상대적인 거니까요..어쨌거나 매일매일이 좌절이었고 불만인 '냉풍'이 불어버린 터라 여름의 무더위를 그리워할 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야말로 '우연히' 보게 된 것이 퍼펙트의 경기였습니다. 임요환이라든가 홍진호라든가 하는 이름은 어찌 어찌 알고 있었지만 서지훈 선수는 저에게 생소한 존재였고 '저마저 알 정도의' 선수가 이기리라고 생각한 건 정말 당연했었습니다. 실제로 방송에서도 해설자분들의 말씀들이나 분위기가 홍진호 선수의 저그 최초 우승으로 가닥을 잡는듯한 느낌이더군요..실제로 스코어도 '홍진호-서지훈-홍진호' 식으로 선승은 홍진호 선수가 하고 서지훈 선수는 따라가는 듯이 흘러갔죠. 하지만 사실은 절대 '따라간'것이 아니었습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한가닥의 실을 잡아 결국에는 승리라는 타래를 잡아나간 겁니다. 저는 그 날 두 선수의 투혼에 감동했고 서지훈 선수의 '불가능은 없다'모드에 감명받아 그의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날의 경기를 기점으로 저의 마음가짐 또한 많은 부분 바뀌게 되어버립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에 대한 불만이 없어지고 긍정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힘든 부분이 있어도 '힘든것은 지금뿐'이란 생각부터 떠올랐고 또한 그 경기를 떠올렸습니다. 단지 스타크래프트 경기일 뿐인데..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의 하나가 되어버린 거죠.

여러분은 어떤 계기로 인해 스타 리그를 좋아하시게 되었습니까? 그 계기가 무엇이든 간에 가장 순수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까'니 '빠'니 하는 단어가 쓰여지고 '찌질이'마저 날뛰지만 여기 오시는 분들은 어쨌거나 스타 리그와 선수들을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좋아하는 선수가 져서, 혹은 근거없는 욕을 먹어서, 또는 게임 외적인 이유로 마음 상하더라도 스타리그에 빠져들게 된 가장 첫 계기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계기가 어떤 선수로 인한 것이라면 그 당시에 보였을 열정들을 기억하십시오. 다시 챌린지 리그로 떨어지게 되었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선수..무너진다는 단어가 뭔지도 모르는 저의 즐거움과 감동의 계기는 그래도 퍼펙트 테란 서지훈 선수입니다.


p.s 01 쓰고 나니 문단들이 약간 산만해 보이네요 -_- 아직 저는 멀었습니다.

p.s 02 지난번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제가 록음악을 무지무지무지무지 좋아한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매니아라고 자처하는 이로써 '시퐁의 추천음악' 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릴 예정이었습니다만..Lacrimarum님을 비꼬는 것 같아 분위기 수그러들면 올리기 시작하겠습니다.(참고로 목록까지 작성했다가 포기하는 겁니다 ㅠㅠ) 서로 서로 용서할 부분은 용서하시고 이해할 부분은 이해하시고 상처 입은 분들은 힘내세요.

p.s 03 항상 행복하십시오..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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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island
04/12/11 21:55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그 당시에.. 홍진호 선수를 이기고 우승했던것 보다는,, 준결승에서 임요환선수를 이긴것이 더 큰...충격이었죠~
소하^ ^☆
04/12/11 22:04
수정 아이콘
저도 스타리그 좋아한 계기가 서지훈 선수의 올림푸스 결승전을 본 것이죠..
그 땐 다만 그냥.. 서지훈 선수가 제가 좋아하던 모 힙합그룹의 오XX 씨를 닮아서 관심을 가졌던 것..-_-;;
그러다가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린..쿨럭;
Jonathan
04/12/11 22:08
수정 아이콘
정말 올림푸스때의 서지훈의 모습이란.. (박경락 선수에게만 유독 약했죠. 아.. 전위..)
준결승전 임요환 선수를 3:0으로 셧아웃 시켜버린 엄청난 포스..
그때 모든 게시판이 마비였죠.
그 시절의 포스가 그립습니다.
XellOsisM
04/12/11 22:17
수정 아이콘
그 시절, 최강이라고 알고 있던 임요환선수를 3:0으로 셧아웃.
그래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 홍진호선수를 이기고 올림푸스배 우승.
그리고.. 웃을 것 같지 않던 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면서 "엄마, 사랑해" 라고 외치는 모습.
단지 이 3가지 이유가 저를 XellOs + ism으로 만든 계기였죠.
곧 죽어도 제로스주의, 제로스광신자 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너에게로또다
04/12/11 22:29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저한테도 퍼펙트테란은 서지훈입니다.스타리그로 직행하세요!
더이상의 추락은 안됩니다!
바람의언덕
04/12/11 22:37
수정 아이콘
저는 이윤열선수가 계기입니다.
어떤 남자아이(조금 특별한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고 했던 사람이 이윤열선수라서 둘이 만나는 모습을 공중파TV 에서 보고 프로게이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제가 아는 프로게이머는 윤열선수 뿐이었고,
모든 프로게이머는 윤열선수와 관련지어 생각했답니다.
서지훈 선수는 우승까지 한적 있는 선수인데 윤열선수에게 한번도 이긴적이 없는 선수로만 알았느데 ...그 유명한 " 엄마, 사랑해" 때문에 올림프스 결승전 VOD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그러다 아주 좋아하게 된건 올해 WCG 전후, 한참 기세가 좋을 때...
늘 -_- 하던 표정이 자주 장난스러운 ^-^ 가 되고, 여유가 있어보이면서
경기에서는 윤열선수 징크스도 깨버리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던 ...그때, 스플래쉬이미지나 파포포토뉴스에서도 자주 잡혀서 더 그랬던건지 지훈 선수가 끌리더군요.
그래서 지금 ...
XellOS 는 저에게 삶의 활기를 주는 또 한명의 고마운 선수입니다.
이디어트
04/12/11 22:40
수정 아이콘
제가 처음 테란이라는 종족에 빠져서 제대로 마스터 해보자 라고 마음먹으며, 접했던 리플레이가 서지훈선수 리플레이였던 기억이나네요....
나름대로 많은 도움을 줬던 선수;;
김민수
04/12/11 22:56
수정 아이콘
저도 올림푸스 결승전이 큰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서지훈 선수와 이병민선수의 경기에 빈드랍쉽 플레이.. 감명받아서 아직도 자주 즐겨 쓰는 전략입니다. 챌린지라고 좌절하지 말고!!! 강해 모이는 모습처럼 다시 스타리그로 GOGO!!
04/12/11 22:58
수정 아이콘
서지훈 선수를 처음 본 것은 올림푸스배 시작과 동시였는 것 같네요.
올림푸스 때 서지훈 선수 정말 대단했었죠.
얼른 그 강력한 포스가 살아 났으면 좋겠습니다.
퍼펙트 테란 언제나 힘내세요! 화이팅입니다!
히또끼리
04/12/11 23:15
수정 아이콘
난 파나소닉에서 봤는데....정말 저그전 잘했지 암.....ㅋ
동방이몽
04/12/11 23:32
수정 아이콘
저는 2차챌린지리그 결승전때부터 서지훈선수를 봤습니다.
그 때 임성춘 선수를 3:1로 물리치고 1위를 차지하셨죠.
그리고 파나소닉배를 거친 후 올림푸스배에서 우승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엄마 사랑해..."ㅠ.ㅠ 저도 괜히 이 말에 눈물이 찔끔나더군요.
비록 지금 다시 챌린지리그로 갔지만 다시 강해져서 돌아오리라고 믿습니다.^^
edelweis_s
04/12/12 00:06
수정 아이콘
역시 서지훈 하면 올림푸스, 올림푸스 하면 서지훈 선수죠... 결승전 5경기 때 러커와 1:1로 맞짱 뜨던 그 마린들... 크으... 러커 5기 마린 7~8기 정도가 싸울 때는 정말 전율이 일었습니다.
영원히 응원합니다, 서지훈 선수~!
천사야
04/12/12 00:22
수정 아이콘
전 아쉽게도 올림푸스때는 스타를 몰랐죠..저도 스타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서지훈선수입니다. 지금 스타에 너무 빠져버렸습니다. 서지훈선수 꼭 4번시드로 스타리그 직행하시길...
04/12/12 03:42
수정 아이콘
처음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기 위해서 했습니다.
점점 실력이 늘고 "너 꽤 하는구나" 소리를 들었습니다.
점점 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리니지에 빠졌죠 - -;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냥저냥 재미있더라구요..
게임큐부터 열심히 봤습니다.
하지만 프로토스의 몰락과 더불어 볼 맛이 안나더군요.
입시도 있었구요.

...다시 방송도 보고 게임도 하였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꿈'
그것을 보여준 강민 선수가 있었습니다.

힘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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