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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1/10 04:19:26
Name 기고만장특공
Subject 포기하는 것을 배우기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기회비용 때문에 고민하게 되죠.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수능시험을 보았을 때 기대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아 재수를 해서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대학생의 낭만을

마셔보고 싶어 더 이상의 도전을 포기했던 기억들.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하자니

코앞에 닥쳐있는 전공 시험이 두렵고 재수강이 두려웠습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기념일에 좋은 선물도 주고 싶고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 날은 어머니 생신.

착한 아들이 되려고 백화점에 가서 여자 친구 선물대신 어머니의 목도리를 삽니다.


새벽 늦은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스타를 열심히 하다가 허기진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주저없이 라면을 끓여 포만감을 느끼지만

시나브로 늘어가는 뱃살에 또 다시 후회해 버리죠.


감기에 걸려 콧물, 기침에 시달리지만 그 놈의 담배가 뭔지 어느샌가

발걸음은 담배가게를 향합니다. 담배에 불을 붙여 한모금 내뿜고 금단현상에서

벗어나지만 또 다시 부어오르는 목구녕이 고통 스럽습니다.


내 단점을 직선적으로 충고하는 사람이 눈에 거슬려 화를 내고 그를 멀리하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좋은 친구 한 명을 잃게 되는 것이구요.


술에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를 구박하는 어머니 편을 들어주면 당장은

귀여움을 받을지 모르지만 다음날 잡혀있는 저의 술자리가 부담스러워지죠.  


너무도 괜찮은 여자가 나타나 적극적으로 대쉬해서 결국엔 사귀었지만

영원하지 못한 사랑으로 가슴 아파하며

'사귀지 않았다면 그저 친구로 오랫동안 남길 수 있었을텐데...'

라며 한개비 담배에 추억을 태워버리게 되기도 하는 것.

이것이 인생이라는 걸 서서히 알게 됩니다.


어떤 선택이건 간에 얻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습니다.

두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쉽지가 않고 어떤 쪽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나이가 먹을 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분명한 건 포기하는 것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되도록 적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어차피 시간을 돌릴 수는 없고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잃어버린 것에

대해 후회해 봤자 아프기만 할뿐이죠.


포기하는 것을 배우는 것...

내가 포기한 것에 대해 얽매이지 않게 될 때 한단계 성숙한 사람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겠죠.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지금 내가 가진 것, 내가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해 할 줄 아는 것. 주관적인 행복일지라도 멋지잖습네까.  


얼마 전에 스타를 그만두었죠. 99학번인 제가 대학 성적을 버리고

게임에 온갖 열정을 쏟아 부었던 지난 몇 년의 노력이 아까웠고

양민학살 수준에 불과하긴 하지만 합쳐서 2000승 정도 올린 베틀넷

레코드가 눈에 밟히지만 스타 cd를 뽀갰죠.

퇴직하신 후 저만 바라보시는 아버지와 지금껏 저만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가

그토록 싫어하시는 게임을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아요.

이제 저도 항상 남의 일만 같아보였던 치열한 사회 생활, 총칼없는 전쟁터에

출격할 준비를 해야겠죠. 더 나은 제가 되기 위해

그동안의 추억은 당분간 종이접기 처럼 예쁘게 간직해 두려구요.

꽤 오랜시간 게임을 하면서 함께 했던 베틀넷 친구들과

게임을 시작해서 지금껏 교과서로 삼고 있는 강도경 선수의 플레이,

수많았던 전투들...

이 모든 추억이 몇 년동안 저를 가장 흥분시킨 일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미소로 이 놈들을 보냅니다. 흑흑

              2004년 1월

                    -서초동의 폭풍저그-

p.s/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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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10 04:21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블리자드는 폐인 양성게임을 만드는 조직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기고만장특공
04/01/10 04:25
수정 아이콘
수많은 고시생과 재수생에
눈에서 피눈물을 쏟게 했던 게임이죠.
이런 나쁜 게임! 하핫.
배에힘준드론
04/01/10 04:29
수정 아이콘
기고만장특공뮤탈 , -서초동의 폭풍저그- 멋지네요^^
Marionette
04/01/10 04:31
수정 아이콘
짧은 인생이지만 지난 22년 2개월의 삶에서 진실로 깨우친 단 하나의 진리가 '일을 행함에 있어 얻는 것과 그로인해 잃는 것이 존재한다.' 라는 것이었답니다.
지금 이 새벽에 깨어있음으로 인하여 여러 좋은 글을 남들보다 미리 접하고 조금먼저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로인해 폐인의 길로 조금 더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경우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떤점이 더 큰 것인지..)
04/01/10 04:46
수정 아이콘
어려워요.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근데.. 배워가야죠. 배워가는게 삶이겠죠. ^^;
'스타' 를 포기하신거 몇 배로 보상 받으시길 바랄께요. =)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구요~
04/01/10 04:48
수정 아이콘
마음에 와닿는 글이네요. 내일이 두렵습니다. :(
윤수현
04/01/10 04:56
수정 아이콘
스타를 포기하신 일이 결과적으론 정말 '잘' 하신 일이길 빕니다
진심으로요
RED-thief
04/01/10 05:06
수정 아이콘
당장은 스타를 버리시고,어느정도 안정이 찾아오시게 됀다면 다시 스타를 구우시길^^
껀후이
04/01/10 05:42
수정 아이콘
강도경 선수의 이름이...ㅠ_ㅜ
전에 어떤 책에서 얼핏 봤는데..
우유부단한 선택은 후에 더욱 큰 아픔을 만든다.. 라는 말이 있더군요.
음... 글쓴이께서 쓰신글 정말 동감하는 바예요
전 고2라 사실 그렇게 크게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앞으로 차차 느끼게 될 사회의 한 단면이라 생각하고, 또 어떤 선택이건 간에 얻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습니다. 이 문장은 정말로 공감 대박-_- 이런건 많이 겪어봤걸랑요.특히 밤에 스타하다 라면 을 예로든거, 원츄!--
근데 말이죠.
어떤 분이 그러더라구요.
제가 공부하는게 정말 싫고 그래서 한번 그냥 속마음을 털어놓는 심정으로... 정말 포기하고 싶다. 라는 글로 서두를 시작하여 쭉 써내려갔었는데..(사실 그 글은 속풀이용 글이라고 고백하는....-_-++)
어떤 분이 리플을 달아주셨더라구요.
"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 아닌가요?^^ 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다면 아무리 안좋은 일이 있더라도 밀고 나가시는게 나을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더라도,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자신의 옳고 그른 생각을 갖고 행동에 주의한다면, 포기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을거예요.
어린 나이에 포기를 배우기보단, 먼저 "용기와 인내심"을 배우는게 우선 아닐까요?힘내세요~^^ " 라는..리플이었죠-_-
글쓴이님께서 하시는 모든일에 글쓴이님의 모든 마음을 쏟을수있는 한해가 되기를 빌게요.(사실 이렇게 말은 뻔지르르하게 해도 돌아서면 잊는 일이 다반사라죠ㅡㅡ 참...그래도 이해해주실거죠? 헤헤...-_-;)
기고만장특공
04/01/10 14:24
수정 아이콘
강도경 선수를 정말로 보고 싶네용.
너무 보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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