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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9/30 02:23:49
Name 김홍석
Subject 하나라는것
난 이충희 팬이었습니다. 농구선수중에 가장 발이 느리고, 한쪽눈의 시력도 너무나 안좋으며 단신에 그다지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지지 못한 그였지만, 그는 우리 모두의 영웅이었습니다. 아니 그런 그였기에 더 큰 감동을 주었겠죠. 늘 노력하는 모습, 포기하지 않는 모습, 그러면서도 늘 상냥했던 그였기에..
그런 나의 영웅이 점점 스러져가는 길목에 허재라는 또하나의 전설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더 화려하고, 더 뛰어난 운동능력에 뭐하나 빠질것 없는 그였기에, 나의 영웅은 세월과 함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허재의 이름이 더 높이 올라갈수록, 나의 영웅의 흔적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허재 선수를 너무나 증오했었습니다. 너무나..

어렴풋한 기억입니다. 87년이었던가요..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만난 중국과의 대결..
나의 영웅 이충희선수는 전후반 내내 온몸으로 거인 중국을 맞써 승리의 희망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눈물겨운 투혼이었습니다. 50점을 넘게 득점했으니까요.. 그런데..
나의 영웅은 쓰러졌습니다. 발목이 겹질린거죠. 테이핑을 하고 부랴부랴 나왔지만, 노회한 영웅에겐 너무나 큰 시련인듯 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포기를 모르는 그라는걸 알았기에 더 안타까웠습니다. 우리에게 더이상의 희망은 없어보였습니다.

그때.. 허재 선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는 듯이, 또하나의 불굴의 영웅이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군림했는지 모를 그를, 난 그 순간이 되서야 받아들이게 됩니다. 또한번 눈물이 났습니다. 이제 나의 희망은 허재 선수였습니다. 그가 있기에 우린 희망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아쉽게 패한 경기였지만, 난 너무나 감동어린 경기를 잊지 못합니다. 지금까지도요.
이충희란 나의 영웅을 밀어냈던 허재선수를 시기한 나머지, 이유도 없이 그를 미워하던 나였기에, 그들이 함께 호흡하며 하나되는 그때의 모습들은, 부끄러움과 함께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난 임요환 선수의 팬입니다. 그가 있었기에 스타는 게임을 넘어 감동을 주는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를 보기좋게 밀어내버린 또 한명의 전설, 이윤열 선수를 시기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습니다. 이윤열 선수가 나오는 경기 모두를 보며 그가 지기만을 목놓아 외쳤습니다. 임요환 선수의 승리보다도 더 간절했는지 모릅니다.
얼마전이었나요. 중국과의 친선경기를 위해 대표선수를 선발했었죠.. 물론 그 안엔 임요환 선수도, 이윤열 선수도 있었습니다. 중국과의 1차전.. 아무리 상대가 한수 아래라지만, 1차전의 부담감을 떨치고 기세를 꺾어버릴 선수는 누가 있을까, 혼자 고민했습니다. 상대의 어떤 예봉도 받아넘기고, 압도적인 경기 운영으로 시리즈 전체를 휘어잡을 능력을 가진 선수는 누구일까 말이죠.. 솔직히.. 경기가 있기 전까지 그게 이윤열 선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받아들일수 없는 모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경기가 시작되고 1차전을 위해 늘 그랬듯, 묵묵히.. 어쩌면 아무렇지 않은듯 경기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윤열 선수의 모습을 보며, 왠지모를 뭉클한 감동이 들었습니다.
87년의 그날.. 하나되었던 그날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 감동.. 그날의 그 느낌 그대로였답니다.
이윤열 선수는 너무도 당당하게, 너무도 압도적으로 상대를 요리해 나갔습니다. 한치의 방심함도 없이 너무나 그답게 완벽하게 말이죠. 늘 시기했던 그 완벽함이었는데, 이토록 안도감을 느끼게 하고, 이토록 뿌듯할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우리나라 선수라는게 너무나 다행이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전 이제 홍진호 선수의 팬입니다.
전 이제 강   민 선수의 팬입니다.
전 이제 우리나라 모든 프로게이머들의 한결같은 팬이렵니다.
그저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게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제겐 기쁨이고 감동입니다. 늘 한결같았던 그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배타적이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나와 다른 상대가 있기에 나의 존재를 느끼고, 나와 다른 견해들이 있기에, 나의 주장을 돌아볼수 있는 여유와 배려가 아쉽습니다.
한발짝만 멀리서 바라보세요. 우린 모두가 하나입니다. 스타를 사랑하고 아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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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러걸
04/09/30 03:34
수정 아이콘
가슴뭉클 하네요 ^^;
꼼짝마라
04/09/30 07:59
수정 아이콘
스타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저도 어느 한선수의 승패보다는 좋은 경기를 보내준 선수 모두들에게 박수를 보내게 되는군요.
04/09/30 10:24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04/09/30 13:06
수정 아이콘
하나라는 것 .....제목부터 주주룩 감동이군요.
레몬트리
04/09/30 13:17
수정 아이콘
솔직담백뭉클한 글!
이 글을 읽고 그동안 참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이해할 수 없었던
임요환 선수 팬들의 이윤열 선수에 대한 증오의 심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된게...
저로선 큰 수확이네요. 이래서 피지알이 좋다니깐요..!
이충희-허재 선수 이야기로 비교하니깐 단박에 팍! 꽂히네요.
그래서 울 아빠도 그렇게 허재를 싫어했나봐요.
그런데 그랬던 불세출의 영웅 허재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으니
참 세월 빠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Milky_way[K]
04/09/30 14:40
수정 아이콘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감동적인 글이네요...
멋진글 잘읽었습니다.
엘도라도
04/09/30 15:29
수정 아이콘
이충희선수와 비슷한 시기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현준 선수도 있죠. star에 대입해보면 김동수 or 홍진호 선수겠네요. 홍진호선수 팬분들께는 미안한 이야기이겠지만 김현준선수는 이충희선수의 현대를 제치고 우승도 차지하는등 김동수선수와 매치가 될듯 하네요. 저도 이충희선수의(감독님이 이젠 더 호칭이 편할듯 하지만) 열렬한 팬이였고 쭉 현대팬이였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김현준 감독님 생각이 나서 왠지 숙연해 지는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뱀다리) 흠 제가 너무 글의 내용과 상관없는 무거운 말을 했나요. 요 몇일 기분이 그렇네요. 이럴땐 생각없이 일이나 해야겠죠. 전 일하러 갑니다~
OnePageMemories
04/09/30 15:33
수정 아이콘
정말 가슴 뭉클해지는 글이네요.
X-JazzX2
04/09/30 16:29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니 이충희-허재와 임요환-이윤열 관계가 비슷하네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오는수요일
04/09/30 19:48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정말 조금만 더 넓게 본다면, 하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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