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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9/28 07:58:57
Name kama
Subject [생각보다 긴 글]비상(飛上)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산소다. 산소가 생명체 안에 들어가 각종 영양분을 연소시키고 그때 발생하는 에너지로 삶을 얻는다는, 간단한 원리 때문이다. 물론 사람도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니 당연히 일정량의 산소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의식조차 하지 못한 체 행하는 숨쉬는 행위가 그런 산소를 얻기 위한 자동적인 몸의 움직임이다.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하는 요소가 있는데, ‘뇌’라는 신체의 부분이다. 뇌는 기본적인 생명유지 활동은 물론, 각종 사고와 정보처리라는 고등기능까지 수행하는 중요기관으로 그 존재와 활용 여부와 고등 생명체를 구별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흔히 생물의 정점이라는 자화자찬격 문구로 종족을 미화하는 인간에게 있어서도 당연히 뇌는 가장 중요한 기간 중 하나로, 다른 장기들과는 차별화되는 특성을 지닌다. 다른 장기들은 산소의 공급량이 부족할 경우에도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 특이한 병원체나 바이러스의 활동이 없는 한, 위나 간, 심장 등의 장기가 죽는 경우는 그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뿐이다. 하지만 섬세하고 복잡한 구성을 이루고 있는 뇌는 산소공급이 충분치 못한 경우 생명체와 별도의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가 흔히 뇌사(腦死)라고 부르는 상태로, 이 경우는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혼수상태 등과도 다르게 절대로 회복되는 일이 없다. 말 그대로 죽음이니까. 다행스럽게도 우리 몸은 이런 상태가 빈번히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동방비책을 지니고 있다. 뇌에 보급되는 산소의 양이 부족할 경우, 순간적으로 호흡량을 늘려 공급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능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회의장에서 그가 하품을 한 것은 산소 부족을 해소, 뇌의 기능을 유지하고자 하는 몸의 자동적인 행위이지 절대로 지겹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닐 것이다.

  ‘이번에도 할 일이 없겠군.’

  열띤 토론과 그에 추가되는 격렬한 말싸움의 파도가 격렬하게 몰아치고 있는 회의장이었지만 남자는 한가해 보였다. 하긴 그렇게 한가하니까 생명유지를 위한 필요행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사실 회의내용이 그와 상관없는 내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관계가 없다는 것 역시 그는 잘 알 수 있었다. 남자는 턱을 괴고 게으른 표정으로 회의장 가운데에 있는 대형상황판과 그 주변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언제나 똑같은 주제와 똑같은 내용으로 그렇게 흥분할 수 있다는 정도가 신기할 따름이다. 저그의 누가 어디에 병력을 배치했으며, 우리 쪽은 이에 대응하여 누구를 어디로 보내야 한다. 아니다, 그 장수를 상대로는 누가 나가는 것이 더 낫다. 지금까지의 기록을 살펴봐라. 네 눈은 동태와 함께 찌개 끓여먹었냐. 뭐라고? 그러는 너는 뇌를 찜 해 먹었구나. 자자, 조용! 조용히 하세요. 지금 저그만이 아니라 프로토스 족의 누구도 지척에 다가왔단 말입니다. 젠장, 거기 썩은 이빨 그만 내보이고 잠이나 쳐 자라고! 내가 재워줄까! 등등. 작전회의인지 이종격투기 장인지 구별이 안가는 것은 고대나 현재나 똑같고 미래나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그럼에도 결론이 나와서 병력들이 배치되기는 하는 것도 미스테리 중 하나다.

  ‘문제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이지만.’

  남자는 상황판에 나타난 최종 병력배치 결정안을 보고선 남들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눈에 익숙한 이름들이 많았다. nada, oov, xellos......항상 전장의 선두에 서서 테란을 침공하는 수많은 적들을 격파하고 역으로 상대 진영으로 쳐들어가 무수한 전공을 세워온 자들이다. 무서운 기세로 저그나 프로토스 병력이 테란 본영의 지척으로 밀고 내려왔을 때, 참모나 각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찾아가는 자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항상 그 뒤에는 외우기 힘들 정도의 수식어가 내붙기 마련이지. 상승(常勝), 무적, 최강, 완벽, 괴물. 언제나 바빠서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힘든 분들이지. 남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은 자신을 원망하면서 한 이름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본지 오래되어서 자기도 잊어버렸을 것 같은 chrh란 이름은 전장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습관적으로 오른쪽 손목을 돌려고, 파열된 인대가 뒤틀리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이것도 고통에 따른 몸의 자동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셨습니까?”

  입구 쪽에 앉아서 알 수 없는 뭔가를 계속 컴퓨터로 치고 있던 부관이 그의 모습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아아, 역시나 이번도 별 가치 없는 회의의 연속이었어. 별 예정 없지?“

  “없습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다지 부관과 긴 대화를 나눌 기분이 아닌 chrh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분이 상한 상관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부관 역시 더 말을 걸거나 하는 일없이 자신이 하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닫히는 문 사이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그는 하날 없는 시간을 보내는 자신이 부하들에게는 좋은 지휘관일지 모르겠다는 냉소 섞인 농담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보이는 소파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기능적으로 디자인되어있는 그의 방은 깔끔했다. 호의적으로 본다면 주인의 얼굴만큼이나 세련되고 정갈하다 하겠지만 그다지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그는 좀 더 비판적인 평을 내렸다. 결제할 서류도, 안건도 없는 장수의 집무실답군. 한 숨을 내쉰 그는 습관적으로 방 한쪽에 있는 디스플레이를 작동시켰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우주를 수놓았던 수많은 대전(大戰)들의 기록이 담겨있었다. 오른손을 다쳐 실질적인 활동을 하기 힘든 그는 그런 과거의 무수한 기록들을 보며 연구하고 분석하면서 전투 감각을 유지시켰다. 반드시 모의전을 벌이며 연습을 해야만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니까.....기만이다. chrh는 개의치 않고 자신에게 비웃음을 날려줬다. 과거 기록을 연구하는 것 역시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는 그런 행위가 진정한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이 아닌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할 일도 없는 자신을 그저 위안하기 위한 핑계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을 계속해서 속일 수 없었다.
  그는 아무런 무늬도 없는 하얀 천장을 보았다. 티끌 하나 없는 그 표백된 미학이 그의 머릿속과 같다고 느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선고를 내렸다. 이봐, chrh. 자네는 도태되었어. 손목의 고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듯 했다. 개운함 따위는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점철시키면서 거기서 만족을 얻는 행위 따위는 맘에 들지 않았다. 마치 두뇌의 한 지점에 굵은 못이 박혀있는 듯한 찝찝함. 하지만 뽑을 방법을 모르니 그저 놔두는 수밖에 없지. 그는 잠시 동안 그렇게 눈을 감고 모든 것을 잊으려했다.
  그리고 온 몸이 울리는 굉음을 느끼며 눈을 떴다. 망막이 빛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틈타 그는 그 굉음이 그의 텅 빈 사고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며 더욱 정확히는 귀, 아니 몸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보면 꽤나 괴상한 일이고 두려워해야 할 일이기도 하겠지만 적당히 익숙한 느낌일 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숙련된 동작으로 부관을 부를 수 있었다.

  “지금 출격을 한 부대는 누구의 것이지?”

  “진동을 느끼셨군요.”

  “그래, 그래서 건물 근처에서 무자비하게 전투선을 쏘아 올린 인간이 누군지 알고 싶어.”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텔레폰 너머로 다급하게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계를 통해 여과된 소리가 왠지 음악소리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chrh는 그 소리를 리듬 삼아 사고를 전개해 나갔다. 보나마나 그들 중 한 명이겠지. 회의가 끝나자마자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했다는 소리는 그 상황이 꽤나 다급하거나 아니면 전선이 꽤나 멀리에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두 가지 상황 모두 믿을 수 있는 장수의 병력들이란 소리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부관의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의 진동 때문에 고막이 상한 것 일려나.

  “누구의 부대라고?”

  “sync의 부대입니다. gorush의 저그 병력을 상대하러 가는군요.”

  “......오늘 회의에서 나온 부대 배치표 있지? 그것 좀 나에게 보내주겠어?”

  “알겠습니다.”

  chrh는 벌떡 일어나 디스플레이의 화면을 켰다. 그리고 부관이 보내준 자료를 열어보았다. 무수히 많은 행성과 전장들이 표시되어 있고 테란과 저그, 프로토스의 병력들이 그 장소들을 수놓았다. 그는 빠르게 그 화면이 주는 정보들을 보며 머릿속에 풀어나갔다. 역시 nada군, 프로토스의 신성(新聖) terato를 격파하자마자 저그의 oversky마저 제압해 버리다니. oov도 비록 rainbow에게 패퇴하기는 했지만 jju를 잡아내고 기세를 회복하고 있고......그리고 sync가 보였다. 연전연승. 놀랍다. 지금 그의 군대은 테란은 물론 다른 종족들의 병력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기운찬 기세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단순한 디스플레이 화면만으로도 감탄이 나올 정도. chrh는 살며시 관자놀이 부분을 눌렀다. sync의 얼굴이 떠올랐다. 솔직히 말해 그런 무표정한 얼굴은 쉽게 잊혀지지도 않은 얼굴이다. 부상 기간 중에 기록만 무수히 봐서인지 그가 걸어온 행적도 같이 떠올랐다. 그는 그 행적을 천천히 곱씹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같은 선상(線上)에 있는 줄 알았는데. 손목이 아파 왔다. 습관적으로 다시 한 바퀴 돌린 모양이다. 그는 왼손으로 지긋이 오른 손목 부분을 눌렀다. 잠시 후, 디스플레이의 빛이 순간의 번뜩임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어. 화려하고 눈부시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눈을 찌르는 횃불도 언젠가는 꺼지고, 빛나던 태양도 석양과 함께 사라지는 법이지.’

  죽는 것이 무서워서 삶을 포기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지. 하지만 삶을 위해 죽음을 잊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야.’

  꽃은 죽음을 알지만 벌을 유혹해, 새롭게 피어난다는 희망으로. 포기를 위한 자기변명. 지겹지 않아?
  ‘냉정한 상황판단이라 생각해줄 수는 없을까’

  정말 그렇게 믿어? 자신이 냉정하고 계산적이라고?
  ‘......미안하군. 믿지 않아. 난 의기소침해 있지. 비판적인 사고와 염세적인 사고의 틈새는 깊고 넓어.’

  자신이 누군지 알아?
  ‘chrh. 부상으로 인해 도태되어 버린 테란의 장수.’

  전 우주를 누볐던 순속(瞬速)의 검객, 테란 6인방의 한 명으로 전장을 지배했던 남자는?
  ‘그 남자는 지금 과거의 영광을 뒤쫓는 다큐멘터리 속에서나 존재하겠지.’

  오른 손목이 좋지 않군. 손을 움직이면 어떻지?
  ‘아프지. 움직인 것을 후회할 정도로. 이 빌어먹을 부상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 됐어.’

  자신을 기만하지마. 핑계거리를 만들어 숨는 것이 이제 지겹다고 느꼈잖아. 넌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아니지, 잠깐. 알 것 같기도 해. 그래, 내 오른손은 움직이지.’

  무서운 거지? 손목의 고통이 아니라 전투의 긴장감이, 분노와 회한이, 패배가.
  ‘그런 것 같군. 하지만 이제 그게 무슨 소용이지? 앎과 행동의 불일치는 전통 있는 고민거리라고.’

  늦었을까?
  ‘너무 늦었어.’

  잠들었던 폭풍이 다시 불고, 녹슨 제위(帝位)는 주인을 되찾았지. 꺼졌던 불꽃은 다시 타오르고 있고. 늦었을까?
  ‘늦지 않았을까?’

  검 하나로 세 종족을 아우른 사람은 누구지? 잊혀진 영역에서 승리의 영광을 쌓은 사람은 누구지?
  ‘누구지? 알 것도 같은데.’

  잊지마. 진정한 불꽃이 짙은 어둠 속에서 더 강하게 타오르듯 기사(騎士)의 검은 세월의 먼지 속에서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잊지마. 날개 꺾인 새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데......란 사실을 잊지마.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못은 없었다. 어차피 그런 건 있지도 않았다. 그런 희한한 생각에 기묘한 상쾌함을 느끼며 chrh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슬럼프라는 현상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다른 영향을 받기보다는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법이다.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이게 없다니 이럴 수가! 집요하게 반복되는 자기 암시. 이것은 기막힌 함정으로 양면이 동일한 코인으로 하는 앞뒤 맞추기다. 스스로 길 하나를 폐쇄하고 자신을 막다른 길로 밀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 속내를 비집고 들어가 살펴보면 나약하고 상처 입기 쉬운 내면의 유리창이 존재한다. 이런 일이 있으면 일이 잘 안 풀리거든. 미안해, 이런 건 전문이 아니라 난 좀 힘들 것 같아.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만드는 회색 장벽들, 핑계거리. 반복과 기만을 통해 그 두께는 점점 쌓여가고 자신은 스스로 만든 함정에 계속 허우적댄다.
  하지만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문제일 수록 그 대답은 쉬운 편이다. 아주 간단한 계기 하나면 해결된다. 다만 그것 역시 스스로가 만드는 법이라는 점이 어렵다고 할까.

  “에?”

  오늘도 역시나 실망감과 좌절감을 품은 체 회의에서 돌아올 상관을 볼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던 부관은 자신의 예상이 틀렸음을 알아차렸다. 물론 그녀는 독심술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의 상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적어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회의가 끝났다는 통보가 없었음에도 돌아왔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에 놀라워하던 그녀는 또 하나의 변경점을 발견하였다.

  “어머, 머리 자르셨나요?”

  “아아, 좀 시원해질까 해서.”

  chrh는 짧아진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렸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그 얼굴에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 역시 저마다 모두 다르다. 누구는 긴 웨이브가 어울리고, 누구는 짧은 컷트가 어울리고 누구는 약간은 느끼한 올백 스타일이 어울리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상식에 이율배반적인 암묵적인 동의가 존재하는데, 미남은 무슨 짓을 해도 미남이라는 설이다. 그리고 부관은 자신의 상관을 보면서 하나의 설을 보편적 이론으로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기로 했다.

  “회의는 끝났나?”

  자부심에 대한 희열을 느끼고 있던 그녀는 잠시 대응이 늦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그 바람에 상관에게 오보를 전하는 잘못은 피하게 되었다. 그녀가 막 대답을 하려는 사이, 회의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가 그녀의 컴퓨터로 전해졌다.

  “아, 막 끝이 났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나는 빈둥거려야 하는 것인가?”

  부관은 또 한가지의 법칙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발생하면 기쁨이 커진다는 법칙. 아무런 생각 없이 회의 결과를 넘기던 그녀는 분명히 상관의 이름을 발견하였고, 그녀는 비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음절로 외쳤다.

  “있습니다!”

  “있어?”

  “네, 별로 중요한 위치는 아니지만 어쨌든 배치가 되었습니다. 상대는......”

  순간, 건물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뒤흔드는 진동이 그녀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급격하고 격렬한 진동은 공기로 전파되는 그녀의 목소리마저 뒤흔들어 분산시켜버렸다. 부관은 살짝 한 숨을 내쉬며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려 했다. 하지만 그 진동이 상관의 집중력을 그녀가 아닌 창 밖으로 이끌었음을 보고 의자 등받이에 살며시 기대앉았다. 우연이 만들어낸 행운에 만족하기로 하면서. 대낮의 태양이 만들어내는 멋진 후광을 한 몸에 받는 상관의 모습은 젊은 여인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기 충분했던 것이다.
  
  ‘저 것도 sync의 함선일까나?’

  알 수는 없었다. 이미 무수한 함선들은 대기권을 돌파 중일 것이고 아무리 그의 눈이 매섭고 밝다 하더라도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으니까. 뭐, 상관없지. 이제 곧 그도 저들과 같이 이 답답한 행성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날아간 함선이 누구의 것인지 궁금하지도 않을 정도로 바빠질 것이다. 전투부대를 꾸미고 전장을 살피고, 상대를 분석하고......그는 살며시 오른손을 움직여봤다. 이마를 창문에 갖다 박을 정도로 아팠다. 마음가짐이 바뀐다고 부상이 금새 나아버리지는 않지. 마찬가지다. 승부는 상대적인 것이고 절대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태가 좋고 의지가 충만하다고 항상 이기고 무적 초인이 되어버리면 세상은 이미 상당히 맛이 가버렸겠지. 지기도 하고, 분개하기도 할 것이다. 허탈한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굴 것이다. 하지만 서둘 필요도 없고, 조급할 필요도 없다. 패배도, 실패도, 두려움도 내가 느끼는 것이고 나를 만들어 가는 요소일 뿐이다. 어차피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자(勝者)라 하지 않았는가? 그저 맑은 공기를 마시며 흘러내린 땀을 닦고 크게 웃어주면 그만인 것이다.
  새가 다시 날아오르는데 늦었다는 말은 없는 것이다. 그는 짧게 자른 머리가 예상보다 더욱 시원하다고 가볍다고 느꼈다.

  “그래 상대가 누구라고?”

  밝게 웃는 상관의 모습을 본 부관 역시 방긋 미소를 지었다.



......추석 특집! 더 길어졌습니다(자랑이냐!) 사실 전 이 선수의 팬이 아닙니다. 이 선수의 전성기 때 제가 스타방송을 깊이있게 보지 않아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최근 에버 스타리그나 프리미어 리그를 보면서 이 선수가 떠오르더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2002년 상반기를 풍미했던 테란 6인방이란 집단(?)이 있었습니다. 김정민, 변길섭, 이윤열, 임요환, 최인규, 한웅렬. 그 중에 꾸준히 성적을 내던 이들 말고 슬럼프다, 은퇴다 하며 안보였던 선수들도 최근 다시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이 점이 마음에 걸려서 써본 글입니다.

P.s-1) 소설은 소설일뿐, 착각하지~말자!(으쌰으쌰) 이미 자른 머리 다 길었다느니 하는 태클은 사양입니다ㅡㅡ;;;;\

P.s-2)제대까지 50일 격파! 사회여~ 내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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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미
04/09/28 08:28
수정 아이콘
최인규 선수 파이팅! ^^ 잘 읽었습니다. 멋진데요.
영웅토쓰 방정
04/09/28 09:10
수정 아이콘
잘읽었어요~
나라당
04/09/28 09:59
수정 아이콘
kama님 잘읽었어요~~근데oversky는 누구죠??
세상만사
04/09/28 10:25
수정 아이콘
OverTheSky. 이주영 선수죠.
햇살의 흔적
04/09/28 14:13
수정 아이콘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최인규 선수가 랜덤으로 한창 날릴때부터 보진 못했지만, '마우스 오브 조로' 라는 닉네임은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요~ 마우스 오브 조로~
04/09/28 16:18
수정 아이콘
문득 sync와 ChRh의 그날 경기가 떠오르는군요...
04/09/28 21:34
수정 아이콘
움.... 전 팬이예요...ㅠ_ㅠ 얼른 그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죠... 그렇지만 전장에 나가서 장렬히 전사하길 바라진 않아요...=_= 오랜기간동안 손목에만 신경써온 그가 이번 마이너에 나가게 되서- 최근 잘나가는 게이머들 팬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는 그런 일이...- 제겐 너무 큰 기쁨이군요.
그리고.... 저 부관처럼 설레요.... 역시 그에겐 경기장이, 무대위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팬들과 함께하는 자상한 그도 좋지만....
그래도 경기장에서, 티비에서, vod에서 모니터를 부숴버릴 것 같은 강렬한 그의 눈빛을 보는게..... 그게 더 좋아요...

ChRh 홧팅입니다...^^*
언제나 전 당신 편이고 언제나 당신을 응원합니다.
좋은 경기 보여주세요~^^/
04/09/29 18:09
수정 아이콘
정말 오랫만에 로그인하게 하는 글입니다. ^^

ChRh 화이팅. ~~`
The girl with april
04/09/29 19:47
수정 아이콘
헉. 군대시면 이거 한편으로 끝인가요?...나머진 경기에서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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