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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1/05 00:41:47
Name MyEyes
Subject XellOs[yG], 그리고 [ReD]NaDa




"… 지쳤나?"

나다의 섬뜩한 칼날을 피부로 느끼며 제로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앞으로 패자를 상징하는 흰 천이 떨어져, 모래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플레인즈 투 힐의 사풍(沙風)이 뺨으로 부딪치며 생채기같이 날카로운 아픔이 스쳐나갔다. 처음 나다를 만났던 곳도 이 곳이었다.

같은 전장에서 두 번째의 패배를 경험하다니…

턱 아래까지 바짝 들이대어진 날은 차가웠으나 나다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안온했다. 제로스의 서늘한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나다의 시선과 마주쳤다. 얼핏 어린 듯, 그러나 승자의 강인함을 확연히 담은 나다의 눈동자.

이것으로, 몇 번째의 패배인가…

그러나 제로스는 곧 머리를 흔들어 그 생각을 떨치며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이 정도로 지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벽, 벽이라고 했다. 결코 뛰어넘을 수 없을 만큼 높은 벽이라고. 그러나 그가 제로스 자신의 강함을 상회한다고는 단 한번도 생각한 일이 없었다. 나다에게 또다시 패배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뛰어넘을 수 없는 벽 따위가 존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가 말했듯이, 그러한 생각이 지금까지의 자신에게 독이 되었던 것일까- 제로스는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나를 뛰어넘을 수 있겠나… ?"

나다의 조용한 어조에 제로스는 눈을 들었다. 다시 한 번, 나다가 가볍게 웃었다.

"뛰어넘기 이전에 따라잡을 자신은?"

제로스는 눈을 내리감았다. 어둡게 닫힌 눈꺼풀 안으로, 자신의 위에 드리워진 거대한 벽의 그늘을 보았다.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은 없다는 생각이, 지금까지의 자신에게는 분명 독이 되었을지 모른다. 오늘의 결투에서 진 것은, 어쩌면 그러한 자신의 무모함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나다-

플레인즈 투 힐의 거친 사풍이 점차 잦아들었다. 제로스는 감았던 눈을 뜨며 나다를 마주보았다. 건조한 공기 중으로 뿌옇게 흩날리는 모래 입자에도 아랑곳않고, 제로스의 날카로운 눈매 안에서 날을 세운 눈동자가 빛을 뿜었다.

"따라잡는다, 혹은 뛰어넘는다…."

나다의 말을 되풀이한 제로스는 웃었다. 나에게는 나다라는 벽을 뛰어넘으려는 생각 자체가 독이라고, 그 독에 스스로 중독되어 무모하게 돌진하다 자멸하는 것이라고, 나다라는 벽의 거대한 그늘에 스스로 갇힌 채 하늘을 보지 못하더라고 누가 내게 말했던가?

"어느 쪽도 아니다."

패자의 상징인 흰 천 위에, 제로스는 떨리는 팔을 들어 검을 꽂았다. 부욱-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플레인즈 투 힐의 사구 위로 날카롭게 울렸다. 어느 한 쪽도 물러나지 않는 시선이 서로 맞부딪쳤다. 나다의 눈동자를 마주보는 제로스의 눈동자 안에서 새파란 불꽃이 타올랐다.

"…지금까지의 승리에 취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너를 무너뜨릴 테니까.
나다, 너는 강하다. 그것은 자신해도 좋다. 그러나 내게 자만하지는 마라!"

뛰어넘을 수도 따라잡을 수도 없다면, 무너뜨리는 수밖에.
나다의 동안(童顔)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좋아, 제로스…다음 전장에서 너를 기다리겠다."

제로스는 사구 위에 선 채 다음 전장인 엔터 더 드래곤으로 향하는 길을 보았다. 사풍이 가라앉은 플레인즈 투 힐의 언덕 너머 아득히, 저녁의 첫 번째 별빛이 반짝였다. 인사를 건네고는 등을 돌리며 사라져 가는 나다의 뒷모습에, 제로스는 주먹을 꽉 쥐며 오래도록 눈을 붙박았다.

나다, 반드시 나는 너를 무너뜨린다.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날이 될 것이다.








p.s.
오늘 리그 챔피언쉽을 보고 너무 아쉬운 마음에 친구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지훈 선수의 팬인 이 친구가(물론 저도 제로스의 팬입니다^^) 무척 속상해 하더군요.
제로스가 나다의 벽을 뛰어넘기 참 어려운 것 같다면서요.
위의 글은 이 친구가 속상한 마음에 썼다는 글인데
제로스의 팬분들과 함께 보고 싶어 허락받고 가져왔습니다.
(아주 어렵게 허락받은 글이랍니다^^;;)

이 글처럼 15일의 MSL에서 서지훈 선수가 힘내주었으면 합니다.
물론 나다도 좋아하는 선수지만요^^ 화이팅, Xel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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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05 00:50
수정 아이콘
슬램덩크의 한장면이 생각이 나네요...
서태웅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고서...
이정환:서태웅은 진짜 플레이어다 너와 같은 학년에
저런 선수가 있다는것은 평생 너를 따라다닐 골치거리다
전호장:알고있어요...
셀로수와 그랜드슬래머는 같은 나이이고 최소 군복무를 하기전까지
수차례 만날겁니다...
셀로수 당신이 정말 정상을 원하면 반드시 넘어야 됩니다...
셀로수 파이팅!!!
04/01/05 00:57
수정 아이콘
유훗.. 멋지구리한데요.. 왠지.. 플투힐 사막 팩토리 옆에 흰 옷 입은 아랍인과 검은 아랍인이 생각나는가..
나에게있어 서지훈선수..의 이미지라면 과거 듀얼(인가??)에서 베르뜨랑선수와 사투끝에 졌을때의 거만한 무표정이 계속 생각나서..(그때 이긴 베선수는 땀흘리며 헉헉 거리고..) 에.. 저선수 열라 쿨하잖아..
그 이후 서지훈 선수 다음 시즌부터 차곡차곡 올라갔더라죠.. 이번에도.. 이윤열징크스 대로라면 엠겜은 결승입니다.. 화이팅..(좀 전엔 이윤열 선수 응원해놓고 뭐하는 짓인지.. 15일 기대하겠습니다. 둘다 화이팅.. )
꽥~죽어버렸습
04/01/05 01:05
수정 아이콘
조~기 밑에 글에서 박서와 나다를 이정환과 윤대협에 비교 했듯
나다와 제로스의 관계는 서태웅과 전호장 보다는 윤대협과 서태웅쪽이
오히려 어울릴거 같아요~ 윤대협 = 나다 서태웅 = 제로스
그랜드슬램
04/01/05 01:15
수정 아이콘
정우성도 등장하면 재미있을듯...........
정우성은 박서일까요?
리안[RieNNe]
04/01/05 01:34
수정 아이콘
멋집니다. 저도 나다와 제로스를 보면, 윤대협과 서태웅이 생각납니다..
제로스, 나다를 뛰어 넘으리라 믿습니다. 반드시!

화이팅 :)
04/01/05 01:48
수정 아이콘
제로스는 지금껏 제가 원하던 많은 것들을 완벽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경기가 더 아쉽고 속상한 것 같네요. 이번엔 그 뛰어넘음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결 마음이 나아졌어요. 제로스도 그러리라 믿고요. ^^
04/01/05 01:50
수정 아이콘
이 글 쓰신 분 멋지십니다 ㅠㅠ;; MSL 징크스.. 유지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04/01/05 01:54
수정 아이콘
""나다, 너는 강하다. 그것은 자신해도 좋다. 그러나 내게 자만하지는 마라!" 감동적 ㅠ_ㅠ; 분명히 이윤열 선수를 뛰어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서지훈선수라면 반드시 해낼겁니다.. 제로스 화이팅!!!!
KILL THE FEAR
04/01/05 02:03
수정 아이콘
푸허허허~ 이미 팬으로써의 모든 경지에 다달했습니다. 이제는 져도 좋고 이겨도 좋고-_-; (언젠가는 이길거라니깐요!! 오늘 이말 엄청했다ㅠㅠ)
04/01/05 02:28
수정 아이콘
아...전호장과 비교한것은 아니고요..
그냥 상황이 비슷하지 않나해서 쓴겁니다^^;;
그런데..이정환=임요환? 윤대협=이윤열? 글쎄요
좀 부족하지 않나요..만화책에서 윤대협은 이정환에게 한수 아래로 나왔죠
그러나 그랜드슬래머는 이미 성적으로는 황제를 이미 능가했죠...
다만 팬들에게 미친 파장력이 박서에게 아직 안되는거죠...
제가 볼땐 nba에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수상 경력과 절대적인 전성기를 보냈던 조단=박서
조단과는 달리 압도적인 힘..누구에게도 절대 지지 않으는 샤크=나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v
04/01/05 07:45
수정 아이콘
어-_-;; 슬램덩크에서 윤대협이 이정환보다 한 수 아래였나요?
정우성보다 한 수 아래라는 건 본인 스스로가 인정했지만 이정환이나
서태웅에 비해선 전혀 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팀이 패한
것도 변덕규가 퇴장당해서였고.. 그런 팀을 가지고 연장전까지 밀고 간
(어쩌면 이길 뻔도 했죠. ㅠ_ㅠ)것만으로도 윤대협이 이정환에 밀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단지 이정환이 윤대협보다 쌓아온 게 더 많을 뿐이죠. ^^

개인적으로 플레이스타일은 정우성 = 나다, 서태웅 = 박서 정도의 비유도 괜찮지 않나 싶은데요(으음.. 외모가.. 쿠쿵;;;;)
(그러고보면 아예 산왕 = 나다, 북산 = 박서라는 팀 비교도 의외로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
Greatest One
04/01/05 07:57
수정 아이콘
단 한 번만 제로스가 나다를 이긴다면 전적이 팍팍 올라갈 거 같네요.
단 한 번만 이긴다면.. 흑 -_-
04/01/05 09:02
수정 아이콘
서지훈 선수... 많은 준비 하셨는데 패배하셔서 안타깝네요.
부디 다음 경기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세요..
new[lovestory]
04/01/05 10:21
수정 아이콘
글이 너무 가슴에 와닫는군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제로스의 화이팅을 기원합니다..
04/01/05 12:50
수정 아이콘
이번에는 꼭 이기는 모습을 바랬는데..속상하군요..ㅡ,ㅠ
그렇지만 반드시 나다를 뛰어넘을거라 믿습니다^^ 화이팅~!!
이동환
04/01/05 15:32
수정 아이콘
윤열 선수의 팬이지만 서지훈 선수의 패한 모습은 참 안타깝더군요.
개인적으로 두 선수의 실력을 동급으로 생각하는데 결과는 너무나
당혹스런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서지훈 선수 힘내기 바랍니다.
나똥구리
04/01/05 15:58
수정 아이콘
멋지네요...^^ 플레인즈투힐의 사막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 위에 운명처럼 마주한 두 선수도요.. 언젠가..제로스가 나다에게 그 특유의 거만하고 쿨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 어때?? 무너진 소감은??"... (추게 추천합니다..^^)
04/01/05 20:30
수정 아이콘
이기기 힘든 상대가 있다는것은 힘겨운 일일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성장의 가장 큰 활력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윤열선수는 최고가 되기위한 좋은 활력소가 되어주신다고 생각하죠^-^ 서지훈 화이팅/
04/01/07 00:23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는 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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