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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9/10 16:52:43
Name 번뇌선생
Subject 본격e-sports로망활극 - 제 1 화 박태민, 치욕당하다
제 1 화   박태민, 치욕당하다

"네~! 오늘 씨유앳 배틀넷 행운의 주인공과 통화해 보겠습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사회자의 재차 물음에도 수화기 반대쪽에서는 답이 없었다.

    "연결이 안됐나요? 다시불러볼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연결 됐군요.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전화를 받은 남자의 목소리는 이제 막 변성기를 지난 듯 했다. 그리고 경상도 사투리가 묻어있었다. 사회자는 장난스럽게 그의 사투리를 따라했다.

    "여기는 씨유앳 배틀넷이거든요. 신청한 사연이 걸리서 전화 드린기라요."
    "네."
    "우리 시청자 분 소개좀 해줄래요."
    "무슨 소개요."

    목소리는 적잖이 퉁명스러웠다. 사회자는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애를 썼다.

    "우리 시청자분은 학생이에요?"
    "네."
    "고등학생? 몇살?"
    "18살이요."
    "우와~ 한창 공부할떄 아이가~"
    "...."
    "지금 어디에요?"
    "피씨방인데요."
    "잘됐네. 바로 게임하면 되겄네~ 우리 스튜디오에 박태민 선수 나와 있는데 인사하세요."
    "그냥 바로 게임하면 안됩니꺼?"

    전화 연결된 시청자의 뚱한 반응에 인사를 하려던 프로게이머 박태민도 순간 얼굴이 굳어 졌다. 사회자들도 조금 당황한 듯 했지만 평소에 단련된 유려한 말쏨시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넘겼다.

    "우와~ 우리 친구가 박태민선수하고 게임이 느무느무 하고 싶은가 보네. 그라지뭐.
     갱상도 싸나이 화끈해서 좋다! 바로 하자!"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여자 진행자의 물음에 주인공은 마지 못한듯이 대답했다.

    "정인우요."
    "네, 그럼 인우 친구 방제 비번 확인하시고 접속해 주시구요. 핸디캡은 뭘로 하실래요?"
    "됐으요."
    "우와~ 갱상도 싸나이 정인우 친구 화끈하네! 그래도 핸디캡은 해야지."
    "꼭 해야 되요?"
    "프로랑 붙는 건데 안하면 힘들걸?"
    "그럼....키보드만 쓸랍니까?"

    황당한 소리 였지만 웃기지 않았다. 키보드만 쓰라는 정인우의 말에는 비꼬는 듯한 뼈가 느껴졌다.

    "하하하. 농담도 잘하네! 그거 말고 뭐 없으요?"
    "발로 할랍니까?"

    이번 것은 조금 수위가 높았다. 초대손님으로 나온 박태민도 웃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자들은 표시하나 내지 않고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끌어가기 위해 애썼다.

    "발로 하면 발타 크래프트가? 아하하.이제 진짜 핸디캡 말해봐요. 인우 친구가 유머 쓰는게 방송을 좀 아네."
    "네 그런데요 정말. 자, 그럼 인우씨 헨디캡은요?"
    "됐십니다. 그런거 없어도 됩니더. 인구수나 200넘지 말라 카이소."

    더 이상 대화를 끄는 것이 무리겠다 싶었던지 사회자들도 급하게 게임을 진행했다.

    드디어 지정 된 방에 정인우와 박태민이 들어오고 종족을 선택했다. 인우의 퉁명스러움에 사회자들은 그의 종족조차 묻지 않았다. 인우가 고른 종족은 프로토스였다.

    "자, 그럼 박태민군과 갱상도 싸나이 정인우 군의 경기 시작합니다!"

    5, 4, 3, 2, 1, 0 경기 시작. 맵은 로스트 템플.

    경기가 시작되고 박태민은 내심 나빠진 기분을 경기를 통해 풀어보려 맘을 먹었다. 저그 플레이어 중에서도 탑클래스에 속하는 그를 상대로 핸디캡도 없이 경기를 제안하는 아마츄어가 괘씸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을 놀린 듯한 멘트가 맘을 맴돌았다.

    12시 박태민은 3시의 인우를 확인하고도 쓰리 해처리를 구상한다. 아마츄어의 컨트롤이나 타이밍은 한계가 있으니 1차 러시를 무난하게 막고 빠르게 자원을 확보해 높은 테크의 유닛으로 화려하게 장식할 구상이었다. 드랍이라도 해준다면 박태민에게는 더욱 고마운 일이다. 시간은 시간대로 벌고 무난히 막아버리면 그만이니까. 초반 압박이라도 들어 와 준다면 저글링으로 현혹시켜 본진을 소홀하게 만들수도 있었다.

    그러나 경기는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12드론에 앞마당을 가는 순간, 채팅창이 떴다.

    '3 hachery?'

    12드론 앞마당의 일상적인 빌드였음에도 3해처리라고 묻는 바람에 조금 흠칫했다. 박
태민은 여유를 부리 듯 웃음 이모티콘으로 답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drop won hae? cho ban won hae?'

    마치 자신의 심리를 거꾸로 읽힌 듯 조금씩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심리를 읽고 영리한 플레이가 장기인 그가 오히려 이런 수를 당하니 조금 당황스러워 졌다. 그러나 이내 평상심을 되찾았다. 상대는 아마츄어다. 프로는 자신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경기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그의 뜻대로 되었다. 상대는 고전적인 1 프로브 1질럿으로 압박을 들어 왔으며 하이 템플러 드랍을 시도 했다. 그러나 마치 무엇에 홀린 듯 박태민은 그것에 다 당하고 말았다. 컨트롤, 타이밍 모든 것이 아마츄어가 아니었다. 마치 자신의 빌드를 다 보는 듯이 움직였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박용욱 같잖아'

    아마추어의 실력은 마치 박용욱 같았다. 완전히 당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상대는 아마츄어가 아닌 프로급의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숨긴 저글링으로 이리저리 흔들어도 마치 미니맵만 보고 게임을 하는 듯 흔들림이 없었다. 얕본 댓가였다. 박태민은 완전이 농락당하고 있었다.
    
    박태민은 그러나, 포기 하지 않고 계속해서 돌파구를 찾았다. 남은 멀티가 있었고 가스의 잔량이 800정도 였기에 그는 회심의 가디언을 찔러보기로 했다. 아마츄어를 상대로 이러한 필살기를 쓴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지만 진다면 더욱 쪽팔릴 것이다.  박태민은 상대의 앞마당 언덕에서 무탈을 변태 시키고 얼마 남지 않은 히드라와 저글링으로 입구를 들이 치며 타이밍을 벌었다.
    
    의외로 그의 필살기가 먹혀 들어 갔다. 역시 상대는 아마츄어 였다. GG를 칠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던 찰나에 얼마간의 병력이 앞마당으로 들이 닥치자 질럿들이 우왕좌왕 거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은 가디언의 역습. 결국 앞마당과 본진이 순식간에 밀려 버리고 상대는 GG를 선언 했다.
    
    박태민은 뭔가 이상했다. 필살기라고 생각했지만 이길수 있을 거라고는 스스로도 생각 하지 않았다. 분명 뭔가가 이상했다. 게임 내내 보여 주었던 그 타이밍, 그 컨트롤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겨서 쪽팔림은 면했다.

    더욱 다행인것은 박태민보다 사회자였다. 연결된 행운의 주인공의 반응이 뚱해서 조마조마 했는데 핸디캡도 없이 박태민을 이겨버리면 더 할말이 없어지니까.

    "역시, 박태민 선수 마지막 필살기가 있었군요."
    "맞아요. 저 사실 지는 줄 알고 조마조마 했다니깐요.'
    "다시 전화 연결 해 볼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인우군?"
    '여보세요......"

    전화 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아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인우의 목소리와는 굉장히 많이 달랐다. 훨씬 앳된 목소리였다. 사회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어, 목소리가..아까랑은 좀 다르네요? 인우군? 져가지고 속상해서 울었나?"
    "저기요...저기..저는 인우형이 아닌데요."
    "에?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요..인우행님이요 게임하다가요 내보고 하라 카고는 전화기도 던지 주뿌고 나가서요 제가 했는데요."

   새로운 행운의 주인공의 말에 사회자와 게스트 셋 모두 얼어 버렸다. 이것은 방송사고다.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박태민은 다른 이유로 얼어 있었다. 자신이 진 사람은 인우가 맞지만 자신이 이긴 사람은 인우가 아니었다.

    "어..그래요? 그럼 안되는데..허허..이런 경우는 저도 정말 처음이네요.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 말씀 드립니다."
    "몇살이에요?"

    이번에 질문을 던진 사람은 사회자가 아니었다. 박태민이었다.
    
    "몇살이에요? 고등학생이에요?"
    "예? 저요? 아니요. 고등학생 아닌데요."
    "그럼...중학생?"
    "아니요...내년에 중학교 가는데요."

    이것은 모욕이다. 박태민은 순간 가슴 속 깊은곳에서 분노를 느꼈다. 자신은 능욕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근데 인우형은 어디갔어요? 왜 게임 하다 말았대요? 질것 같아서?"
    "어디 갔는지는 모르고요 질 거 같다고 안한다던데요."

    무슨 소리인가. 분명 실수만 없다면 그가 이길 경기였다.
    
    "행님이요, 하다가요, 프로게이머가 질 것 같다고요 그냥 저보고 하래 그랬는데요."
    "!!!!"
    "프로게이머가 자기한테 지면 쪽팔린다고요. 내한테 주고 갔는데요."

    이것은 박태민 게임인생의 가장 완벽한 치욕이었다.

    그것이 처음이었다. 정인우의 방송경기는.

    공식기록은 아니었지만 그의 데뷔전은 패배였다.



*P.S : 생각만 하다가 스토리를 잡고 써보았습니다. 스크롤의 압박으로 적잖이 읽기 싫어 하실 것 같습니다만 천천히 읽다 보시면 2편 3편 점점 재미있을 겁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게이머를 모두 실명으로 할 예정입니다만 나름대로 리얼하게 쓰고자 하는 마음에 혹시라도 당사자에게 누가 될까봐 조금 꺼려 지기도 합니다. 물론 당사자의 동의는 하나도 못받았습니다만(^^)  만약에라도 보시게 된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저번에 한번 올렸었는데 미흡하여 수정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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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ssay
04/09/10 16:59
수정 아이콘
기대하겠습니다. 계속 건필해주세요~화링~~~
비오는수요일
04/09/10 17:11
수정 아이콘
기대됩니다.
빨리올려주세요~
스타 절정 팬
04/09/10 21:38
수정 아이콘
이거.... 설마 실화인가요?
저 실화인지 알고 계속 읽었는데 다 읽고 위에 리플 다신 두분의
글을 보니... 실화는 아닌것 같네요... 순간 제가 열받았습니다..-.-;
그 아마추어분한테 ..
글 재밌습니다. 저기 저같은 사람을 위해 미리 실화가 아니라고
써주세요.. 제가 이런 글은 처음 읽어서 .. -.-
아케미
04/09/10 21:41
수정 아이콘
아니 이게! 또 하나의 연재수작 예감이 드는군요. 기대하겠습니다.
빠순이 씨발라
04/09/10 22:58
수정 아이콘
실화인줄 알고 당황했음 - -a
김빠순
04/09/10 23:47
수정 아이콘
-_-실화인가요?헐 ㅋ
완성형폭풍저
04/09/24 16:50
수정 아이콘
초반에 장문(?)의 채팅까지 하며 로템에서 플토킬러 태민선수를 농락하는 아마츄어 플토가 있는줄알고 가슴이 서늘했습니다..-ㅁ-;;
휴.... 놀란가슴 진정시키고.....하하....
흥미진진해지는데요..?? 전 뒤쪽보고서 정인우라는 프로게이머의 데뷔전을 설명하는줄 알았습니다..
충격적인 데뷔라서... 더욱.. 놀랐다는....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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