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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8/11 06:09:57
Name Bar Sur
Subject [글] 토막 (6)
- 비행 대담


  눈을 뜨니, 몸이 떠있다.

  유감인지, 다행인지,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떠있을 뿐이다. 몸을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금새 괴로워지고 만다.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있는 곳은 고층 빌딩가의 중심지다. 바로 옆에는 10층에 이르는 높이의 빌딩이 서있고, 나는 사람이 지나지 않는 인도 중앙에 떠서 주변을 살필 뿐이다.

  발버둥처도 지금의 좌표에서 단 1cm도 전후진하거나 상승, 하강도 할 수 없다.

  지상에서부터는 약 2m 정도의 높이. 어린애도 고소공포증따위 느끼지 못할 높이로군.

  이 공간에서 나는 일종의 조형물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저 이유도 알 수 없이 떠있으면서 거의 모든 방향성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어떤 욕구도 형태로 맺어지지 못하고 이내 흩어져 사라진다. 나는 어딘가에서 주어 들은 표현처럼 조루 걸린 종마를 떠올렸다.

  "이봐. 자넨 그저 떠있을 뿐인가?"

  처음으로 사람과 만났다. 40세는 족히 되어보이지만 혈색이 좋고 육중한 몸매의 아저씨다. 그는 나와 비슷한 높이에 떠서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긴 시간에 걸쳐 거리를 좁히더니 결국 내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반갑다거나, 놀랍다거나 한 상황은 아니다. 사람이 있으리라는 건 어째서인지 알고 있었고, 이게 단순한 꿈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는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다. 그 무언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는 바가 없지만, 여기는 내가 생각하던 '가능성의 세계'와 조금 닮아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놀랄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예. 그저 떠있을 뿐.... 뭐,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운이 좋군 그래."

  의외의 말을 들었다. 지금의 내 상황이 과연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네? 전 그쪽이 부러운데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날아다닐 수 있는 겁니까?"

  "난 날고 있는 게 아냐. 다만 떠서 조금씩 이동할 수 있는 것 뿐이지. 알겠나? 난다는 건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른 거야. 게다가 말이지, 보통 인간은 날고 싶다는 생각따위 하지 않아. 그것도 요즘 세상의 인간은 말이지."


  그럴까? 나는 평소에는 전혀 해본 적 없는 의문에 부딪쳤다. 어쩌면 '날고 싶다.'라고 하는 강렬한 충동은 비행의 욕구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 그것을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라고 말하는 사람 따위도 없다. 인간은 기계의 힘을 빌어 하늘을 날았고,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럼 대체 나는 왜 이런 곳에서 이런 꼴로, 그저 떠있는 것인가.


  "자넨 정말로 날고 싶은 건가?"

  아저씨가 짐짓 좀전보다 착 가라앉은 어투로 묻는다.

  "에? 글쎄요. 정말이냐고 묻는다면,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렇지? 그런데도 어째서 우리는 여기에 떠서 '난다'는 것에 얽매일까? 분명 본질적인 것은 어딘가로 전이되고, 남아버린 것들은 쉬이 변질되고 말아. 그건 분명 예전부터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고 남아서, 무너진 성곽처럼 견고한 애수를 유지한다.


  "사람이 나는데 방법 따윈 없지. 지금 세상에서 인간이 그저 맨몸으로 날고 싶어 한다면, 그건 분명 어딘가가 어그러진 거야. 많은 것을 벗어 던지고 날아오른 만큼, 확실히 중력에게 복수당한다."


  그 순간, 하늘에서 무언가가 검은 고무찰흙처럼  쿵ㅡㅡㅡ 하는 소리와 동시에 떨어져 인도 위에 수직으로 부딪쳤다.

  완전무결한 추락.

  그리고 이내 형태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나와 아저씨는 반사적으로 빌딩 위를 올려다 보았다.

  
  "뭐였죠? 지금 그건?"

  "뭐긴. 멋지게 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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