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나의 전쟁 (This war of mine)”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이 하나 출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게임에서 만드는 모든 선택이 현실적인 요소를 선택적으로 재미있게 바꾼 가상현실에 불과하다는 어떤 사람들에게,
진정 마우스를 잡고 있는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게임이었습니다.
내전이 일어난 어느 국가에서,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으로서 존엄하게 살기위해 약탈하는 그런 게임이었지요.
“나의 전쟁”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훈계하는 지루한 게임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요소를 불쾌하지 않고 재미있게 잘 풀어내는 게임이면서도, 도덕적인 질문들을 하나씩 던졌거든요.
2018년 4월 24일. 같은 개발사 '11 bit studios'의 “프로스트펑크 (Frostpunk)”가 출시될 예정입니다.
한 번 짧은 트레일러 하나 보고 가실까요?
[도시는 살아남아야 한다.]
[지옥까지도 얼어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끝나지 않았다.]
“설국의 탑”이라고 부를만한, “프로스트펑크”는 여러분에게 이런 자기소개를 하는 게임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기말? 극단적인 세상? 새로운 주제는 아니죠.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도시라는 장소는
한 영웅이 총알과 식량을 사기 위해 잠시 들리는 배경에 불과했습니다. 그곳의 사람들, 그곳의 물자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여러분께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도시의 이야기입니다.”
“프로스트펑크”는 기본적으로 도시 경영 게임입니다. “트로피코”나 “심시티”와 같은 평범한 게임들과 같이
여러분은 “지도자 (The Captain)”의 역할을 맡아, 도시의 생존을 가능하게 만들어야합니다.
새로운 빙하기의 시대에서, 추운 장소에 머무는 사람은 일정확률로 감기나 동상에 걸리고 결국 목숨까지 위험해집니다.
다행이도, 구시대의 기술력은 거대한 ‘발전기’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발전기는 ‘석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순간에도, 그것이 내일의 석탄 채굴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몇몇 일터와 집에 석탄 ‘난로’를 설치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일할 일터입니까? 누가 살 집입니까?
또한 ‘나무’와 ‘강철’이라는 건축 및 유지보수를 위한 자원도 필요하지요. ‘식량’은 두말 할 것 없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것을 언제까지 준비해둘 것인가.]
우리는 ‘발전기’를 찾아 너무나도 멀리 왔습니다. 기술력을 복원하는 것에는 자원, 시간, 인재가 모두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더 깊게 파는 석탄 광산인가요? 더 따뜻한 농사용 하우스인가요?
다음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얼음폭풍이 찾아왔고 연구소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모두 손가락을 자를 수도 있죠.
[극단적인 상황은 극단적인 수단을 정당화시킨다.]
단순히 기술만이 우선순위를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도시의 법과 제도 역시 귀천에 따른 순서가 있는 법이지요.
24시간 노동제? 아동 노동? 국물 배급법? 인간투기장?
도시의 어떤 법안들은 양자택일입니다.
도시는 어떤 것이 필요한가요? 아마 주어진 시기의 여건, 그리고 지도자의 성향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위생적이고 깊게 묻히는 묘지인가요? 필요할 때 다시 살점을 파 올릴 수 있는 얼음구덩이인가요?
재활을 통해 간단한 일이라도 돕는 동상환자인가요? 빠르게 팔을 자르고 의수를 달아주는 숙련된 의료진인가요?
한번 선택된 법안은 전통이 되고,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순간들을 정해진 전통에 맞춰서 해석하게 되겠지요.
[아직 얼어 죽지 않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연료라면?]
복잡한 ‘증기 기관 (Steam Core)’은 도시에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물건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용감한 시민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모험과 원정을 떠나야합니다.
도시 근처의 지점들은 미처 ‘발전기’에 도달하지 못한 옛 무리들이 남기고간 조용한 물자들이지요.
그러나 더 많은 자원과, 특히 ‘증기 기관’을 위해서 멀리 떠날수록, 그럴싸한 마을과 다른 도시에 도착하게 됩니다.
도시가 이주민을 필요로 하고, 또 받아줄 수 있다면 그들의 물자를 나눠받고 우리의 도시로 돌아오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손가락과 발가락도 모자라고, 밥도 축내는 필요 없는 이들이 ‘증기 기관’을 가지고 있다면요?
우리 도시에서 더 좋은 일에 쓸 수 있는 석탄 공장인데, 몇몇 생존자가 조잡한 마을을 꾸리고 농성하고 있다면요?
“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보다는 ‘우리 도시’니까 죄책감은 덜 가져도 될지 모릅니다.
[도시가 먼저다.]
도시가 커지면서 사람들의 욕구도 다양해집니다. 야채뿐만 아니라 고기! 다른 사람보다 따뜻한 집! 따위 소리를 하죠.
심지어 언제부턴가 사악한 정치파벌이 등장해서 발전기를 고장 내고, 식량을 훔치면서 지도자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날씨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극단적이 되지요. 또는 도시가 너무 커져서 ‘발전기’의 온기가 다 닿지 못하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따뜻할 때만 일하라고 했더니, 하루 내내 섭씨 –30도라며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는 날이 올 것입니다.
비인간적인 추위에 따른 증기 기관의 자동화 기술의 발달로 할 일 없는 한량들이 가득해지는 날도 올 것이고요.
따라서 우리는 도시에게 ‘의미 (Purpose)’를 부여해야합니다.
지도자는 ‘불만 (Discontent)’이 가득차면 물러나야합니다. 그런 배은망덕한 행위를 받아들일 수는 없죠! 누구 덕인데!
따라서 ‘희망 (Hope)’으로 상승할 ‘불만’ 수치의 비율을 깎아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진실일 필요는 없죠.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질서 (The Order)’, 또 하나는 ‘신앙 (The Faith)’입니다.
두 단호한 단어가 암시하는 내용은 꽤나 노골적입니다. 도시 운영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건물과 선택지를 주겠지요.
그리고 ‘발전기’ 앞에는 항상 어떤 죄인과 그를 단죄하는 도시 지도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들이 있겠지요.
게임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의 도시는 단순히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인류 최후의 보루이니까요.
[얼어붙으면서도 살아 숨 쉬는 도시]
여태까지 출시된 데모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게임의 장점은 바로 ‘시청각’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추위’가 모든 의미를 가져가버린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 개발자가 엄청난 노력을 했음이 느껴지는 게임입니다.
빛바랜 실제 사진과 유화로 그린 역사기록화가 반반 섞여있는 일러스트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분위기를 담당합니다.
난방이 되지 않는 건물은 눈이 쌓이고, 반면 난방이 잘되는 건물은 기계와 사람의 연기를 하늘로 뿜으면서 진동합니다.
사람들은 동이 트면 주거지에서 무리지어 입김을 불면서 나와 일터로 가고, 새벽공기가 너무 차지기 전에 집에 가죠.
일의 교대 시간을 알리는 잡음 섞인 방송은 처음에는 ‘잘 해봅시다!’라는 친근한 단어들로 시작되어서,
‘도시’가 ‘의미’를 찾은 뒤에는 ‘도시를 위하여’, ‘노동이 우리 모두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선동문으로 어조가 바뀝니다.
도시 경영 게임이 다 그렇듯이, 엄청 매우 자세하게 개인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다 반영하지는 않습니다만,
간략화 되고 축소된 비율에서는 도시의 살아있는 모습이 잘 드러나는 소소한 요소들이 곳곳에 가득합니다.
멀리서만 봐도 각 일터의 작업자 수와, 도로의 배치, 환자의 수, 자원의 수급 량이 잘 정리되어서 보입니다.
자세한 수치를 보고 싶다면 메뉴에서 지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수치를 볼 수도 있고요. 기본기는 탄탄합니다.
[마지막 온기는 얼마나 선할 수 있을까?]
정말 괜찮은 게임이 오랜만에 나옵니다. 여태까지 공개된 데모에서는 밸런스가 아직 완벽하게는 잡히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그래도 게임성이 떨어지는 요소는 크게 없는 내공을 보여줬습니다. 요즘 게임들은 보통 출시되어도
내용물이 빈약한데, 이 게임은 몇 번 다시 할 가치를 제공해주며, 동시에 하드모드로 진행하면 정말로 생존싸움,
그 자체를 보여주는 면모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알려진) 인류 최후의 온기를 드린다면, 그 온기는 얼마나 선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지금까지 “프로스트펑크” 영업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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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비슷한 정서가 좀 보이긴합니다. 다만 다른 도시 경영게임이었던 "배니쉬드"의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중세 마을에서 전근대의 식량난과 돌림병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부조화스러운 대량사망을 연출해 사람들을 곤혹스러운 현실주의자로 만들어준 것에 비하면 "프로스트펑크"는 대놓고 암울하려는 겜이라 분위기와 밸런스를 조정하는게 좀 어려워보이더라고요. 일단 데모버전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동화를 연구하고 집에서 노는 사람들을 괜시리 이념주의로 압살하면 행복하게 깰 수 있어서 조금 주제의식이 퇴색하는 면이 있습니다.
(수정됨) 좋은 게임 영업글 감사합니다. 곧 출시하니 영어에 거부감 없는 분은 한글 아니라도 덥석 물어도 될 듯합니다.
저는 이게 옛날 블랙앤화이트 하던 느낌이 겹쳐서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게임에서 "괴로웠다"는 건 게임에 몰입을 해서 즐거웠다는 뜻입니다) 특히 본문 중에 [한번 선택된 법안은 전통이 되고,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 구절, 정말 공감이 가네요. 뻔히 그릇된 결과로 이어질 걸 아는데도 당장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한 번 길을 어긋나고, 그 뒤로 모든 게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아니, 말은 바로해야죠. 그 뒤로, 내가 작품 속에서 양심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니까요. 설국도시는 신천지로 넘쳐나고~ 우리집 소는 사람 잡아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