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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12/31 14:03:00
Name Mechanic Terran
Subject 까마귀...
불행히도 큰머리만치 뇌기억력의 용량이 뛰어나지 않은 저에게 까마귀고기를 구워 먹었 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기억용량의 단편보다 '관심이 별로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성격 때문 일른지도 모릅니다.

학창시절... 학교로부터 2고(학사경고2회)를 먹고 상당히 암울했던 시절이 있었죠. (3고는 퇴학입니다. -_-;;;) 기나긴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교였건만 낭만이나 줄세우기 따위에는 관심이 전혀 없던터라 중간고사/기말고사때만 얼굴을 비춘 저로서는 당연한 결과였겠지요.

이십여년간 등록금에 용돈까지 따박따박 타쓴 저에게 부모님은 부족한 살림살이건만 한번도 싫은얘기 꺼낸적 없으셨고 이런 부모님께 저는 재수라는 덤까지 선물하였었던 상태죠. 게다가 2고라...

위기의식과 함께 공부할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죠. 2고... 다행히 F는 그다지 많지 않은 상태라 4년안에 졸업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계절학기는 예외로 하고 계산해 보니 2학점 정도가 부족하더군요. 방법은... 장학생이 되어 초과학점을 수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전공은 내가 약한 숫자가 들어가지 않는 과목으로... 교양은 점수를 잘주거나 내 배경지식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되는 과목으로... 그러다 눈에 들어온 과목이 '교양원예'와 '일본사정'정도 되는 과목이었습니다.

후에 알았지만 '일본사정'이라는 과목은 당시 학교 최고의 인기과목이었는데 그 이유가 담당 교수가 신바람 황수관 박사님을 능가하는 입담과 개그 및 외설을 겸비했는데다가 학점도 보통 B이상씩 주었기 때문이죠.

학생 많고 학교 넓기로 유명한 저희 학교건만 수강신청인원이 천명에 육박했죠. 수강인원짜르고도 A/B클래스로 나누어 강의는 이루어졌습니다. 어렵게(?) 수강한 강의인만큼 제값(?)을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교수님이 '무라카미 류'라는 작가(&감독)를 언급했고 그 작품을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69',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쿄꼬'등등...

아침마다 도서관 자리를 잡던 저는 공부하기 싫을때면 언제나 좋아하는 고대서적과 역사서를 탐독하였는데 그의 소설은 정말 '쇼킹'으로 다가오더군요. 그의 소설의 소재는 거의 대부분 자유, 섹스, 마약, 폭력, 음악으로 도배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에서 '무라카미'의 소설옆에 나열된 또 다른 무라카미를 발견하였습니다. 영화나 음악, 책등 한번 잡으면 아무리 재미 없어도 끝까지 읽거나 보는 저러서는 언제나 책선택에 신중을 기하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책을 선택하여 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많은 책들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의 책중 가장 얇았기 때문이죠. -_-;;;

당시 저는 '그해 겨울', '하구', '젊은날의 초상'등으로 이문열 소설에 나타난 자유와 고독에 심취해 있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또다른 자유와 고독을 제시해 주더군요. 그후 중독된듯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내 자유와 고독의 시기에 눈뜰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시해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로운 작품을 몇일전 읽었습니다. 해변의 카프카... 카프카는 주인공의 이름이지만 까마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군요. 후... 20대때에 느꼈던 만큼의 감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운은 여전하네요. (예전에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너무나 맥주가 마시고 싶어져 밤중에 맥주 사러 나간적도 있었죠.)


잘 아시겠지만 하루키의 장편 소설들은 대부분의 작품들이 유기적인 연관성을 띄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속편이 1973년의 핀볼이죠. '1973년의 핀볼' 후속이 양을 쫓는 모험이고 그 후속이 다시 '댄스 댄스 댄스'죠.

그냥 아무거나 붙들고 읽어도 좋지만 이런 순서에 관심을 가지고 읽으시면 좀더 내용이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을 듯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한번 전체 순서(주인공 나이와 상관이 많음)를 나열해 보았습니다. 참고로 아래의 순서는

발매시기, 한국판 제목, 원제
--> 소설속의 연도, 주인공 나이, 주인공 직업, 주인공의 연인(부대 설명)

순입니다.


#--------------------------------------------------
2002년작: 해변의 카프카 ; 海邊のカフカ>    
--> ??년, 15세, 중3, 사에키(40세 or 15세)

1987년작: <노르웨이의 숲(한국판: 상실의 시대) ; ノルウェイの 森>
--> ??년, 19세, 대1, 나오코(과거, 현재), 미도리(현재)

1979 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風の歌を聽け>  
--> 70년, 21세, 대3, 약지 손까락 없는 그녀(사라짐)

1980 년 <1973년의 핀볼 ; 1973年のピンボ-ル>  
--> 73년, 26세, 번역사무소 운영, 나오코(사망), 쌍둥이(208, 209; 후에 사라짐)

1982 년 <양을 쫓는 모험 ; 羊をめぐる冒險>  
--> 78년, ??세, 번역사무소 겸 광고회사 경영, 죽은 과거의 여친, 이혼예정의 아내(사라짐), 키키(현재; 후에 사라짐)

1988 년 <댄스 댄스 댄스 ; ダンス ダンス ダンス>  
--> 83년, 33세, 프리라이터, 키키(사망), 유미요시(현재)

1994 년 <태엽감는새 ; ねじまき鳥 クロニクル>  
--> ??년, 30세, 아네 쿠미코(사라짐), 가사하라 메이(?;현재)

1992 년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國境の南, 太陽の西>  
--> ??년, 37세, 재즈바 운영, 두딸과 아내 있음, 시마코토(과거의 친구)

1985 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世界の 終りとハ-ドボイルドワンダ-ランド>
--> ??년, 35세, 계산사, 이혼후 독신, 노박사의 손녀딸(?)

1999 년 <스푸트니크의 연인 ; スプ-トニクの 戀人>  
--> ??년, 22세, 작가지망생(주인공은 여자), 뮤(여성, 한국인, 17세연상)

#-------------------------------------------------

일전에 대구를 다시 방문하여 아끼는 후배녀석에게 '해변의 카프카 상,하권'을 사주고 왔었죠. (재미있다고 난리네요.) 관심이 있으신 분에게는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오늘이 2003년의 마지막이네요. 모두들 잘 마무리하시고 2004년에는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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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쓴 블루
03/12/31 14:57
수정 아이콘
왜..
해변의 카프카란 책을 못 읽었을까요..-_-a...
다른 책은 두번 이상 읽었는데 말이죠..

하루키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허탈감과 공허함에 휩싸여 버리더군요.

가끔은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지만
시간상...이라기 보다는 읽고 난 후의 느낌이 싫어서 이젠 읽지 않을것 같다는...
03/12/31 18:01
수정 아이콘
해변의 카프카.....최근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죠. 뭔가 찝찝하고 정리가 잘 안되면서도 눈을 떼기 힘들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카프카가 도서관 방에서 15살의 사에키 상을 보는 환상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Luxury Nobless
03/12/31 18:20
수정 아이콘
저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들을 물론 다 좋아하긴 하지만,
장편보다는 단편을 좋아하고 단편보다는 수필집들을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해변의 카프카> (하)권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03/12/31 19:27
수정 아이콘
양을 쫓는 모험에서의 나는 29살. 노르웨이의 숲은 68-70년이 배경입니다.
저는 10대 시절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 짜릿짜릿한 기분이 들더군요. ^^
Mechanic Terran
03/12/31 21:52
수정 아이콘
저는 '댄스 댄스 댄스'를 가장 좋아합니다. 예전에 이책 읽고 있을때 주위로부터 '너 춤바람 났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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