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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9/18 20:54:32
Name 불타는밀밭
Subject [LOL] LOL로 읽는 사회학 - 1. 대리와 성과주의 -
LOL로 읽는 사회학 - 1. 대리와 성과주의 -


1. 성과주의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TED에서의 강연에서 성과주의(成果主義)의 장점, 단점 그리고 문제점과 경계 하여야 할 점에 대해서 말했다. 우선은 말해 둘 점은 현대의 우리 모두는 이미 상당히 성과주의자다. 어떤 사람이 귀하거나 높은 사회적 스테이터스를 가지려면 그것이 혈통이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위치, 성별, 피부색 등 '태어나는 것과 동시에 결정되는'요소에 의한 것이라면 말도 안 되며 그럴 위치를 가지려면 합당한 능력을 증명했거나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난한 구두공의 아들딸이라도 수상이 될 수 있음을 원칙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성과주의이며 현대의 정치가들은 모두 이러한 기회의 균등이 모두에게 보장될 수 있도록, 즉 사회를 더욱 성과주의화 시키겠다고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잘 나갈 때가 아니라 못 나갈 때이다. 중세의 영국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표현할 때 불운한(unfortuned)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과는 별 상관없이 말 그대로 하늘의 운이 없어 가난하거나 힘들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이들을 표현할 때 현재 우리는 패배자(loser)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영국 기준). 이렇게 같은 이들을 표현하는 단어가 변화한 이유는 그들을 바라보는 외부 사회의 시선을 반영한다. 성과주의에 의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여 마땅히 높거나 귀한 지위를 획득한 이들이 정당하다면, 사회적 지위란 상대적인 것이므로 낮은 지위에 처하게 된 이들도 마땅히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실제의 실력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잘 설계된 시험을 공정하게 치뤘다면 10번째의 실력을 가진 이는 10등이 나올 것이고, 100번째의 실력을 가진 이는 100등이 나올 것이므로 역으로 100등을 거둔 이는 자신의 실력이 100번째에 속함을, 10등을 거둔 이는 자신의 실력이 10번째에 속함을 받아 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비해 현대 사회는 모든 구성원이 원칙상 평등해지고 기회의 문은 더 없이 활짝 열리게 되었으나 사회적 성공과 실패가 오롯이 모두 자신의 책임과 그에 따른 결과가 되어 버렸으며, 때문에 성공하였을 때는 모르되 실패 시의 타격은 두배가 되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게 되었다. 성과주의 하에서 실패란 그 실패로 인한 불편과 불행의 감수 외에도 개인의 능력이 열등함을 드러내는 표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 남자 성인들을 대상으로 '귀하의 운전 실력이 대충 어느정도 된다고 스스로 평가하십니까?'라는 설문에 '나는 평균 이상은 한다' 라는 답변이 64%였다는 결과가 도출된 연구가 있다고 한다. 적어도 14%는 거짓을 말하고 있거나 자신의 운전 실력에 대하여 착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미국과 같은 강력한 성과주의 사회에서 운전과 같은 대단해 보이지 않는 능력이라도 '그래도 내가 평균보단 나을 거야'라고 인지하고 사는 것이 자아를 보호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되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결과는 아니다. 운전 실력을 누가 엄정히 평가하고 일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를 매기진 않으니까. 그렇지만 짤없이 실력이 엄정히 평가되고 객관적인 수치로 일등수터 꼴등까지 순위가 매겨지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학업 성적 발표 같은 것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때 상위의 성적을 거둔 사람일 수록 자신의 성과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그 경우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 내 실력이 증명되었군! 나는 이 정도 성적을 받을 만해.


이론상으로 상위의 성적이나 성과를 내고도 '아, 이번은 운이 좋았어. 나는 이런 성적을 받으면 안되는데.' 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생각해볼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위를 반대로 생각하면 하위의 성적을 거둔 사람일 수록 자신의 성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고 위의 결과와 일관성이 있으려면

- (성적이 나빠도)내 실력이 증명되었군! 나는 이 정도 성적을 받을 만해.

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데,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 이번엔 운이 나빴어.
- 시험이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아
- 시험이 공정하지 못했어

대강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될 공산이 크다. 즉 입장을 넘어서는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인데, 결론적으로 성과가 좋은 이들은 사고 방향이 성과주의를 더더욱 지지하는 쪽으로, 성과가 나쁜이들은 반(反) 성과주의 쪽으로 사고의 방향이 기울게 된다. 결국 같은 상황을 두고 서로에게만 유리하게 해석하게 되는 셈이다.


2. 기만 전략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기본적으로 모두 성과주의자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성과주의를 더욱 확대하는 것이 선(善)이라 교육받고 교육하고 있다. 따라서 위의 반(反) 성과주의적 견해들, 운이 나빴느니 좋았느니 실력이 제대로 평가가 되지 않았느니 하는 것은 변명(辨明)으로 치부가 되며 이러한 변명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은 딱 다음의 한 마디로 정리 할 수 있다.

'변명은 죄악이란 것을 모르나!!' By 제로 경 '몬타나 존스'


그렇지만 여기에서 한가지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다. 변명을 말 그대로 변명으로 만들어 버리기 위해 시험을 여러번 치게 한다던가, 평가 방법을 더욱 연구하여 실제 사후 드러나는 수행능력과의 상관관게를 높인던가, 엄격한 감독으로 부정행위를 일소한다던가, 이렇게 노력해서 실제로 시험결과를 더욱 공정하고 확실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하면,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하위권이 받는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이를 내적이든 외적이든 이를 회피할 유인을 증가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모두들 느슨하게 공부해서 적당히 시험치는 토익 시험에서의 꼴등보다, 자신을 포함해 최선을 다하고 엄격하게 관리되는 수능에서의 꼴등이 더욱 충격이 큰 것과 같다. 따라서 실제와 상관없이 하위층에선 더욱 스트레스와 회피 유인이 증가하니. 성과주의 평가 방법을 개량하고 개량하여 1등부터 꼴등까지 모두 변명의 여지 없이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 들일 수 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과주의가 내면화된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에 불과하다. 이것은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로 인간의 본성을 바꿀 방법을 찾지 않고서는 이러한 딜레마의 해결이 불가능할 듯 하다.

여하튼 이로 인하여 성과주의의 압박과 자아 보존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만족을 얻지 못한 하위층이며, 압박이 거세질 수록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기만(Deceive)' 전략이다.

일단 윤리적인 면은 따로 떨어뜨려놓고 전략 면에서만 평가하면 기만 전략이 성립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1.적발 확률이 작거나 기만 행위를 통해 얻을 이득이 커서 행위의 기대이득이 기대손실을 초과할 것

2.평소의 자신의 성과나 능력을 자기만 알고 남들은 알지 못할 것

3.시험이나 평가가 반복적이지 않고 한 번의 결과가 불확정 요소에 크게 좌우되는 경우가 있을 것


위의 특징이 성립하는 예로 대리 수능이나 학력 위조, 운동 경기에 있어서의 도핑(효과가 장기적이므로 3번의 조건이 필요없다) 등이 있을 수 있으리라 본다.

위의 기만 행위들은 그 전략의 성공적인 수행은 개인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 주지만 평가의 공정성을 크게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강력하게 감시하고 처벌하기로 사회적인 합의가 되어 있다. 때문에 감시와 감독에 크게 비용을 들이더라도 적발 확률을 높이고 강력한 형사처벌 등을 통해 기대 손실을 높여 기대 이득이 기대 손실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여 제어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이다. 원칙적으론.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이런쪽으도 워낙에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 6월에 도핑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킨 프로 야구선수가 두 달도 되기 전에 복귀하여 멀쩡히 뛰고 있는 사례를 볼 때, 다른 쪽도 형사 처벌까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장담할 수가 없겠다.

또한 기만 전략에 해당하지만 처벌의 대상이 안되는 애매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아직까지는 안되는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나라 대학의 염원대로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어 드디어 우리나라 대학도 기부금 특례 입학이 가능해 졌다고 가정하자. 개정된 규정대로 기부금을 지불하고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정당한 것이고, 이를 공정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현재 상위권 대학의 누리는 사회적 프리미엄은 그 대학에 일단 합격한 거의 전부가 적어도 고교 때까지는 일정 기대 수준 이상의 학업적 성취를 이뤄 증명하였음을 전제로 한다. 기부금 입학자는 이러한 능력이 되지 않으면서도 졸업장에 따로 기부금 입학이라 나오지도 않을 것이므로 이러한 사회적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게 되는데 다른 이에게는 엄격한 성과주의를 강요하면서 이를 '판매' 하는 것이 공정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기부를 할 수 있는 재력도 능력이라 쳐야 되는 것일까? 이는 LOL에 있어서의 '버스 듀오' 문제와 비견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부를 할 수 있는 재력도 정당한 능력이라 친다면, 원할때 버스 태워줄 듀오를 구할 수 있는 인맥도 능력이라 쳐야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대체 뭐가 문제인거지?



3. 대리의 수수께끼



이제 롤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이다. 우선 롤에서의 대리 행위가 위에서 언급한 기만 전략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자. 조건 2는 별 어려움 없이 성립한다. 솔랭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지 프로 선수라 할지라도 누가 늘 옆에서 지켜보고 평가하는 건 아닐테니까. 조건 3에서 일단 문제가 발생한다. 롤 한판 한판의 불확정 요소는 엄청나다. 게임 구성 자체가 5인의 협동 전략 게임에 역병처럼 창궐해 사라지지 않는 트롤,대리,핵 등의 존재로 인해 한판 한판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롤 한판에 걸리는 시간은 40분 내외이고 결과가 독립적인 게임이 몇 십판, 몇 백판 반복되다 보면, 통계적 법칙인 대수의 법칙에 의해(불확정 요소의 기대값이 0이라는 가정 하에) 불확정 요소가 결과값에 미치는 영향은 점차 0에 수렴하게 된다. 이것이 롤 랭크게임에 있어서의 성과주의자들이 성과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을 공격하는 수학적 근거가 되고 있기는 하다. 일단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여기서 주시해야 할 점은, 쉽게 말하면 대리받아서 랭크 올려놔 봤자 자기 실력이 안되면 결국 승률이 낮아서 다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대리가 성행하고 있을까? 조건 3을 극복하는 방법은 생각해보면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로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없다면 그나마 게임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서폿만 주구장창 하는 수도 있겠다. 다시 대리받을 돈은 아깝고 점수는 떨구기 싫고 자신은 없고 하다면 어쩔 수 없겠지. 그렇지만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질 뿐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떨어지게 될 것 같긴 하다. 두 번째로는 지코가 예전에 하던 마냥 시즌 초에 어떻게든 점수 올려둔 다음에 그건 잘 키핑해두고 부캐만 주구장창 돌리는 수가 있겠다. 세번째는 돈이 안 아까우면....떨어지면 다시 대리받는 것이다. 세번째 방법은 설마 그럴까 싶지만 롤이 한국에 정식 런칭 된지도 벌써 몇 년째, 현재까지 대리가 성업중인것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 이 아니라 이게 아니면 설명이 안될 것 같다.

여튼 어떤 방법을 썼건 조건 3을 성립시켰다고 치자. 가장 큰 문제, 그리고 가장 주요한 문제점은 조건 1 안에 있다. 우선 적발 확률? 라이엇은 현재 대리건 트롤이건 핵이건 손놓고 있기로 유명하니 적발 확률은 0에 가깝고 때문에 기대 손실은 대리에 들어가는 비용 외에 있을 수가 없다. 문제는 개인이

'대리를 받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대 이익'

이 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솔직히 이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롤이 한국에 런칭되는 초창기 현재와 같은 정도로 롤 대리 시장이 활성화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경우는 있었다. 도파에게 당시 상당히 유명한 프로게이머가 개인적으로 대리를 의뢰한 일이 있었다. 이유는 롤 프로 게이머는 5인 팀랭 경기에서 성적을 낼 것과 동시에 개인 솔로랭크 점수도 일정 유지할 것을 요구받는데, 둘 다 하기에는 벅찰 수 있다. 그러니 솔랭점수 쪽 대리를 의뢰한 것인데, 이러한 경우라면 모를까 일반 개인이 랭크를 실버에서 플레 상위/다이아 하위 쯤으로 올려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정확히 무엇이라고 해석해야 하나.  


여기 한 명 수능을 제대로 망친 고3 학생이 한명 있다고 치자. 이 학생이 기분이 나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의 독립적인 이유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수능 점수가 평소와 같이, 혹은 평소와 다르게 낮게 나옴으로 인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되거나 장학금을 탈 수 없게 되는 물적인 손실이 야기되는 것에 대한 절망이고, 두 번째는 성과주의 사회, 모두가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공정하다 알려진 시험에서 빼도박도 못하고 자신의 능력이 낮은 걸로 드러났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자존에 대한 위협에 따른 절망감이다.

똑같이 수능을 망친 건 망친건데, 이번에는 본인이 점수를 매겼을 때는 아주 잘 나왔는데, 막상 성적표를 받아보니 컴퓨터 사인펜에 문제가 있었거나 하는 어이없는 사고로 인하여 수능을 망치게 된 학생의 예를 들어보자. 뭐 결과야 같고 아마 기분이 나쁜 건 마찬가지겠지만, 전의 학생과는 달리 두 번째 학생은 심리적 자존감까지는 위협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일은 사고인 것이고 다음에 사고가 없다면 원래의 만족스러운 성적을 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롤 이야기로 돌아와서 대리로 랭크를 올린다 한들 아무런 물적 이득은 없다. 그래서 순전히 심리적 이득을 위하여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인데, 어떤 심리적 이득을 볼 수 있을까?


4. 순수한 승리만의 가격


롤만이 아니라 Rank 점수와 순위를 공개하는 게임들의 특징은, 굳이 각 개인을 대결시키지 않아도 누가 더 실력이 나은지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서 실버2와 골드2라면, 굳이 같이 게임을 시켜 대결시키지 않아도 현재까지 쌓아온 전적 면에서 누가 더 잘하는지를 쉽고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롤은 1:1 게임이 아니라 맞대결의 의미는 퇴색되지만). 즉 내가 골드 2 랭크라면, 비교 대상이 실버 2 정도라면 직접 싸워 않고도 내가 상대에 비해서 우위에 있음을 인정받을 수 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고 롤이 뭐 길어야 10년 가지도 않을 것이고 하지만, 지금 현재일 뿐이라도 별거 아닌 대상이라도 나와 내 동료집단이 가치를 인정한 대상이라면 확실히 가치가 없지 않다. 어렸을 적 조개 싸움에 단단한 조개 하나가 그렇게 가치가 있었고, 그걸 가진 아이를 얼마나 부러워 했던가.

이건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이 없다. 아버지들의 골프나 테니스 모임에서도 모임에서 자신의 실력이 유달리 쳐지거나 한다 하면 따로 시간과 돈을 들여 몰래 개인 레슨을 받는 건 흔한 일이다. 어차피 프로도 아닌데 테니스같은 취미야 잘 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는 거고, 이론상 직장과 집안 일에 바쁠 수록 취미를 위한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이니 부끄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어쨌건 저쨌건 '변명은 필요없고' 그냥 그저 친구들에게 '쫄리기' 싫어서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리와 개인 레슨 간에는 레슨이 비밀이던 아니던 간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개인 레슨은 어쨌거나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승리도 오른 성적도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리는 여전히 기만이고 직접 말로 표방하지는 않지만 대리 받은 유저가 표명하는 견지는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실제로 잘 할 필요도 없다. 만약에 들켜서 조롱을 받게된다 해도 그럴 위험을 감수하겠다. 다만 너희들에게 쫄리지 않기만을 원한다. 그를 위해서 비용을 지불하겠다.'

현재는 대리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활발해져서 많이 대리의 가격이 안정되었지만 여전히 대리게임을 수행하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롤은 게임이 아니라 노동이며 그 노동의 비용을 반드시 1:1로 지불하여야 하기 때문에 비용의 부담이 크다. 특히 롤 유저의 대부분은 학생인 만큼 그 비용이 꽤나 부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대리시장이 활발한 결과에서 역산할 때 학생일지라도 그 비용을 그렇게 무겁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는 추론을 할 수 있다. 비록 게임일지라도 남들보다 낫거나, 적어도 쫄리지 않는 것이 그렇게 까지 할 가치가 있나?

사회 전체적인 지출의 형태를 관찰하면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이 'Yes'라고 해석이 된다. 현재에 와선 패키지 게임이라는 게임의 판매 형태는 멸종해 버렸다. 게임 유저들이 게임이라는 무형의 재화 자체를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은 몇 만원일지라도 크게 아까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부분 유료화 게임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유저들은 일단 게임을 시작하면 상대를 이기거나 상대보다, 혹은 동료보다 더 좋은 게임 내 재화를 구매하는 데에는 몇 십만원이 되더라도 비용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http://raimine.egloos.com/1413127

그 후론 대충 위 링크와 같이 된 듯 하다.


롤은 이 점에서 약간은 상궤를 벗어나 있다. 게임 내 재화를 구매하더라도 캐릭터를 꾸밀 수 있을 지언정 승리에는 도움이 안 된다. 이러한 공정성이 롤이 유례없는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든 이기고 싶고, 승리를 다른 방식으로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구매하고자 하는 유저에게는 이만큼 답답한 것이 없다. 결국 위험을 부담하면서 계정을 통채로 맡기는 대리 이외의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아, 요즘은 방법이 생겼다. 헬퍼가 요즘 그렇게 많다지?

사태가 이 정도까지에 이르면 처음에는 순수한 재미로 시작하였으되 결국 게임 마저도 치열한 자아확인의 각축장이 되고 좀 더 돈을 많이 쓰고, 좀 더 비열하기로 작정한 인간들이 상위에 올라서며, 정직하게 게임을 하려는 인간들이 손해를 입고 하위에서 멸시를 받는다.그리고 더욱 대리를 확대 재생산하겠지. 그리나 이러한 구조를 드러내거나 불만을 품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아까 말했듯이

'변명은 죄악이란 것을 모르나!!' By 제로 경 '몬타나 존스'



따라서 비도덕적인 정도는 다를지라도 대리와 현질, 과외 등 기저에 있는 욕망은 동일하다고 본다. 남들을 추월하거나, 적어도 남들보다 뒤쳐지기는 싫다는 것이다. 게임에 있어서 현재까지는 게임 자체의 공급에 따른 대가는 게임 공급사가, 게임 내에서 남들을 추월하기 위한 비용은 작업장이나 해커 등의 게임 내 공급자와 매니아같은 중개업자가 나누어 먹었지만 부분 유료화와 애초부터 Pay to win 을 모토로 하는 게임이 대세가 되면서 종래 작업장이나 해커 등이 차지했던 몫이 게임 공급사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넥슨은 종래 정액제에 Free to win을 게임 정체성으로 하던 MMORPG에서도 직접 게임 내 장비들을 (랜덤박스로) 게임사 자체적으로까지 공급하고 있는데, 이를 긍정적인 현상으로 평가해야 할 지는 모르겠다.

본래 게임은 현대인들의 여가 생활의 일부로 출발하여 즐거움과 휴식의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즐기고 다시 사회 생활을 위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자 하는 활동에서조차 완전히 사회에서 고통받던 것과 여전히 같은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각축장이라면, 예전처럼 게임을 게임으로써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버텨낼 수 있을까?


알려진 바로는 게임 산업 자체가 경기역행적 성질이 있다고 한다. 어떤 말이냐면, 사람들이 쉽게 직업을 못 구하고, 장사가 안되고, 해고가 쉬우며 남겨진 사람들에겐 업무가 과중 되는, 사회의 상태가 나쁠 때 사람들이 게임에 돈을 오히려 더 많이 쓰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계량적인 해석은 이렇다.

직업을 못 구하거나 해고자가 많아진다 + 장사가 잘 안된다 -> 집에서 노는 사람이 많아진다 -> 집에서 노는 사람들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게임을 하게 된다 -> 게임의 매출이 증가한다.  

사람들이 여행이나 낚시 등 '비싼' 취미보다는 상대적으로 '싼' 취미활동을 찾게 된다 -> 게임의 매출이 증가한다.

여기에 더해서 비계량적인 이야기이지만 사회에서 입은 좌절과 실패를 게임 활동에서 보상받으려 하는 심리 역시 게임 매출의 증가에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는 일이 안 된다고 게임 현질해서 스트레스 풀겠다는 건 자기가 생각해도 찌질해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일도 안되는데 게임에서 조차 템귀의 무쌍에 쓸려나가는 잡졸 1 역할만 맡는다는 것도 기분 나쁜 일이니까. 적어도 남들만큼은 해야 하지 않을까? 뭐 대충 이런 흐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Pay to win을 인정하는 부분유료 게임과 달리 LOL은 대리나 핵 등의 부정을 막을 유인이 있었고, 막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도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전혀 손 쓰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게 되었지만, 대입이나 자격시험등의 공신력이 유지되고 사회가 그 시험을 통과한 자의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감시와 처벌이 강력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라이엇 게임즈는 하지 않았고, 단순히 게임의 랭크 순위이지만 그를 두고 현재의 분란과 카오스가 생겨났다. 작은 게임 상의 기득권이지만 상위 랭크를 획득한 사람들은 자신을 인정받기를 원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쪽은 나름의 논리로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여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갈등이 발생하고 싸움이 일어난다. 결국은 동일한 게임을 즐기는 게임 내 커뮤니티의 일이기에 찻잔 속 태풍으로 취급해도 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사회 분열과 같은 뿌리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리나 스크립트 핵, 오토, 부계정 거래 등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것이 겉보기엔 조용할 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게임의 수명을 갉아먹고 앞당길 것이며, 사람들은 라이엇 게임즈가 신작을 내놓는다고 해도 미리 실망하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라이엇이 굳이 신작 욕심을 부리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라이엇 게임즈가 망가진 신뢰를 회복하고 건실한 게임 운영을 유지하여 세계적 대세 게임으로써 오래 가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왜? 라이엇과 롤에 일말의 애정 같은 것이 남아서는 아니다. 이 글이 전제하고 있는 바대로 게임에서의 플레이어는 또 다른 나이고 게임에서의 행태가 사회를 반영한다면, 라이엇의 문제 해결을 본보기 삼아 사회 갈등을 봉합하고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거보다 한화가 한국 시리즈 우승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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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18 21:07
수정 아이콘
현재 진행중인 [우왕]에 참여하셔도 좋을 것 같은 글이네요. 게임과 법학(가제) 따위를 써볼까 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보니 제 주제를 알고 안쓰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계속해서 기대할게요!
칼국수
15/09/18 21:19
수정 아이콘
제목에 [우왕]이 빠진것 같네요! 좋은글입니다!
15/09/18 22:20
수정 아이콘
[추천] 글알못 이지만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후에라도 말머리가 수정될 것에 대비하여 추천합니다.
15/09/18 22:51
수정 아이콘
[추천] 현상에 대한 비판만이 아닌, 현상에 대한 탐구와 해석이 절실했었습니다. 롤유저 뿐만이 아니고 게이머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E-스포츠 관계자 및 게임업계 종사자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글입니다.
임마리
15/09/18 23:16
수정 아이콘
집까지 오는길에 시간가는줄 모르고 즐겁게 읽은 글이네요 크크 추천드립니다!
남극소년
15/09/19 00:16
수정 아이콘
[추천]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네요.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눈뜬세르피코
15/09/19 16:23
수정 아이콘
[추천] 대박글입니다!
걱정말아요 그대
15/09/22 15:35
수정 아이콘
[추천] 이렇게 묻히기에 너무 아까운 글인데요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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