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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6/15 18:59:02
Name 生가필드
Subject PGR에선 욕쟁이 할머니를 만날 수 없을까?
1. 욕쟁이 작은 누나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나는 나름대로 어렴풋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옳고 그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만들어갈 시기였다. 그러나 그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장난치기'였다.특히 삼남매 중 둘째인 중학생, 우리 작은 누나의 자유분방한 욕설은 그 당시의 나에게 는 거의 예술 수준으로 느껴졌으며, 초등학교에서는 나올 수 없는 고단수의 욕지거리는 절대 따라 갈 수 없는 경지였다. 말싸움을 했다하면 100% 깨질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당시엔 논리적으로 3분 정도의 말 싸움 뒤에, 누나의 초강력 욕지거리에 이성을 상실한 나의 패배가 정해진 줄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을 전후로 작은 누나를 능가하는 물리적인 전투력을 갖추었기에 작은 누나와의 억울한 권력관계에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었지만 얌전한 큰 누나는 작은 누나의 강력한 고집과 욕지거리에 시집가기 전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하여튼 내가 5학년이던 매우 심심한 어느 오후, 안방 이불에서 나무늘보처럼 쳐져있던 나와 작은 누나. 나른한 기운이 엄습하는 가운데 심심해서 몸이 비비꼬여가는 순간 작은 누나가 아주 조용히, 나지막히 외쳤다.
"CB놈아......"
아!!!!!! 그 미묘한 분위기를 어떻게 말로 설명하랴! 그것은 싸움을 건 것이 아니라, 마치 내공 6갑자의 무림 초고수가 개미에게 장풍을 쏘듯, 유닛 200채운 이윤열이 마우스만으로 스타를 하는 초보의 본진에 무브로 탱크를 보내듯한, 그런 도발적인 장난의 제스춰였던 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지거리로 화답했고 돌아온 것은 더욱 강력한 장풍과 탱크 2부대쯤 되는 욕지거리였다. 그러나 평소 작은 누나의 욕지거리를 존경해오던 나로서는 이처럼 황홀한 장난은 근 몇달간 처음이던 터였다. 배가 아플 정도로 숨죽이고 낄낄대며 서로 몇차례 욕을 주고 받으며 내 나름대로 최고의 기술을 구사하던 순간, 불행히도 거실에서 낄낄대는 남매의 대화를 수상히 여긴 아버지께서 몰래 안방에 귀를 대시고는 나의 ~~~!!!한 욕지거리를 듣고 말았다. 그 아름답던, 그리고 황홀하던 정겨운 남매의 욕지거리의 즐거움을 아버지께 어찌 설명할 수 있으리오? 무죄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꾸지람은 도저히 피할 길이 없었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그 황홀한 욕지거리의 기억은 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서른을 넘겨, 약간은 인생을 알고 약간은 옳고 그름을 알게된 지금도 그 욕지거리들은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2. 욕쟁이 할머니, 그리고 욕쟁이 나
허름한 소주집에서 쓴 소주를 들이킬 때 욕쟁이 할머니의 욕 한 사발을 삼겹살과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다.
친구가 나의 도덕율에 심각히 위배되는 짓을 할 때 '친구야, 니가 그런 나쁜 짓을 하다니 난 도저히 용서할 수 없구나'라고 말하기 보다 ' 야이 CB야, 전봇대 기둥에 묶어놓고 스캐럽 100방, 사이오닉 스톰 3분쯤 맞아야 정신차리겠냐, 이 dog baby야!' 라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3. 욕쟁이는 어떻게 피지알에서 욕안먹을 수 있을까? (지금부터 존댓말)
맞춤법, 15줄 이상 쓰기, 욕설 필터링 등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통털어 피지알의 게시판 글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제가 피지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게시판 하나 하나를 장식하는 글들이 가진 내용의 '실질적' 매력에 있습니다.
단순한 단어와 구절의 조합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글을 만들어가는 사람의 지적인 능력, 감수성, 그리고 글의 구성하는 내용의 가치가 다른 어떤 사이트에서도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욕쟁이 작은 누나가 나에게 주었던 즐거움, 욕쟁이 할머니가 여러분에게 주었을 구수함,욕쟁이인 내가 친구들에게 퍼부어즐 즐거운 독설 같은 것을 제가 피지알에서 사용해도 될까요? 안 될까요? 전 제 스타일의 좀 더 저질스런 단어를 사용해야 글이 잘 나오는 편인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피지알 자유게시판에 오늘 첨으로 올리는 글이고 글쓰기가 가능해 졌으므로 내가 좋아하는 게시판에 종종 글을 올릴 것 같아서 미리 물어보는 겁니다.

※1
영어로 문장과 문장사이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헤아린다는 뜻에서 'read between the lines'라는 표현을 쓴다는데요, 글이란 그것을 구성하는 단어보다는 조합을 통해 나타난 진정한 의미가 중요하겠지요. 다 아시는 얘기지만 제 글의 핵심은 이겁니다. -.-

※2
그리고 우리 작은 누나는 욕은 잘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정도 많고 부지런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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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6/15 19:04
수정 아이콘
게시판에서의 '욕쟁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욕을 아무리 즐겁게 욕을 잘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욕을 듣기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죠.
만약에 대화에서 그런 욕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회피해 버리거나 욕쟁이 할머니의 소주집은 안 가면 그만이지만..
게시판에서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욕을 하는 경우는 피할 수도 없으니까요..
제 생각은 전체 뜻을 떠나서 한 단어 한 단어에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04/06/15 19:17
수정 아이콘
만일... 실제듣는 욕쟁이 할머니의 구수한 느낌을 글로 써서 느끼게 하실정도의 달필이 아닌이상...

아 다르고 어 다른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보다 더 어려운 것이 글이고. 그런 구수한 느낌이 들수 있을
정도의 달필은 온라인에서는 거의 본적이 없군요.(기억이 나지 않는것을 보니...)
LurkerSyndromE=
04/06/15 19:20
수정 아이콘
위의 hovehis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욕은(물론 다른말들도 그렇지만) 말로 듣는것과 글로 보는것이 상당히 차이가 나더군요. 저도 그런 경험들이 있습니다. 실제 말로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 정도의 욕인데 글로 보니 상당히 열이(!) 받더군요.
피그베어
04/06/15 19:21
수정 아이콘
욕쟁이 할머니의 욕이 구수한 이유는 말투와 표정이 섞어있어서 일 것입니다. 글에는 말투와 표정이 담기지 못하므로 구수한 느낌이 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Marine의 아들
04/06/15 20:07
수정 아이콘
딴 소리지만 글에 감정을 담기 위해 나타난게 이모티콘이죠^^
04/06/15 20:37
수정 아이콘
이모티콘...을 텍스트에서 쓴다면..더욱 큰 역효과가-_-;;

이런 X새X가.^-^<<흠..-_-;
04/06/15 22:08
수정 아이콘
욕쟁이 할머니의 욕이 구수하게 들리는건 그욕을하는 상대가 할머니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의 욕이 구수하게 들리는것도 그상대가 아주 절친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잘 알지못하는 어느 사내가 욕쟁이 할머니처럼 욕하면 그걸 기분좋게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요?
04/06/16 01:50
수정 아이콘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서 그녀가 욕을 해도 괜찮은 건, 그곳에 오는 손님들이 식당 내에서 욕쟁이 할머니의 욕질에 암묵적인 동의(내지는 합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그곳에 찾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그 할머니가, 이를테면 초대받지 못한 남의 결혼식장에 가서 욕을 쏟아놓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건 GG입니다.
Return Of The N.ex.T
04/06/16 03:39
수정 아이콘
글곰님 의견에 동의 하겠습니다..

욕쟁이라.. 말과 글은 엄연히 다르죠..
뉘앙스라는 것이 있으니..
그 문제를 해결 하신다면 정말 글로는 신의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 합니다..^^;
59분59초
04/06/16 11:08
수정 아이콘
어쩜 저와 같은 생각을... 저도 욕쟁이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아니 왜 그 분들 욕은 먹어도 먹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거죠? 오히려 그 욕을 먹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갑니다.
도대체 듣고 싶은 먹고싶은 욕의 메커니즘은 뭐란 말입니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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