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2011년 6월 25일을 기하여 ‘프로게이머’ 홍진호는 자신의 이야기를 끝맺었습니다.
최고의 무대에서 그가 번번이 쓴잔을 들이킬 때마다 함께 안타까워했던 사람들도 어느새 다들 좀 더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 길고 긴 이야기에 끝끝내 우승이란 글자가 올라가는 일은 없었고 결국 홍진호는 2등과 준우승의 아이콘으로서 자신의 은퇴식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그의 프로게이머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은 홍진호가 어떤 프로게이머였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지만, 2등도 많이 하면 이렇게 기억해 준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 기쁩니다.”
홍진호가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뒤, ‘콩라인’이라 불리던 선수들은 모두 거짓말처럼 우승을 차지했고, 스타리그는 마지막 두 번의 리그를 리쌍이 아닌 ‘콩라인’의 두 사람 결승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홍진호의 꿈에 바치듯.
그 이후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홍진호가 요즘 사람들의 입가에 다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이하 지니어스 게임)>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인데요. 이 프로그램에서 홍진호는 초반의 허당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 때 수많은 스타 팬들을 설레게 했던 매력적인 승부사의 면모를 다시 보여주면서 새로운 팬들을 끌어들이며 인기몰이를 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되니 스덕으로서는 참 미묘한 기분입니다. 내가 오랫동안 알아온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아닌, <지니어스 게임>의 홍진호가 이렇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홍진호의 선전이 기쁘기도 하고 꼭 우승을 차지해주었으면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아니라는 데에 조금 쓸쓸함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지니어스 게임>을 보고 있자면 참 여러 곳에서 ‘아, 홍진호는 여전히 홍진호구나,’ 하는 느낌을 참 많이 받습니다. 무슨 소리냐구요? 그러니까, <지니어스 게임>에서 보여주는 홍진호의 모습들에서 예전의 ‘폭풍’ 홍진호의 모습들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그 때와 변함이 없구나. 이 사람은 역시 내가 알던 ‘폭풍’이 맞구나.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말이지요.
물론 <지니어스 게임> 안에서 보여주는 홍진호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아무래도 아직도 코카콜라배 결승의 기억이 생생한 스덕으로서는 <지니어스 게임>에서 보여주는 홍진호의 모습 하나 하나를 예전 프로게이머로서의 ‘폭풍’ 홍진호와 자꾸 연결시키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게 제가 아는 홍진호이고, 제 기억 속에서 가장 빛났던 홍진호인 것을요.
그래서 이 글은 바로 그에 관한 글입니다. <지니어스 게임>의 홍진호를 통해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어떤 선수였는가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소소한 추억팔이입니다. ‘폭풍’ 홍진호가 익숙한 분에게는 옛 추억을 다시 떠올리는 글이, <지니어스 게임>의 홍진호가 익숙한 분께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홍진호를 접하게 되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홍진호, 게임을 이해하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아무리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게이머라고 해도 정상의 위치에 오랫동안 서게 되면 후대의 모든 게이머들은 그(홍진호)를 '모방'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홍진호의 유산」, Judas Pain
물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수백, 수천, 수억 게임을 했어요…’ 하고는 상관없는 애기입니다. 예.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사족이었네요.
사실 <지니어스 게임> 초반의 홍진호는 말 그대로 허당 이미지였습니다. 가넷을 잃어버리질 않나, 그 잃어버린 자기 가넷을 자기 가넷인지 모르고 받아서는 동맹인 이준석을 떨어뜨리지를 않나, 2회 차에서는 김구라의 ‘배신 전략’에 톡톡히 당하지를 않나…. 언변이 청산유수인 김구라나, 능수능란한 처세를 보여준 이상민에 비하면 아무래도 눈에 띄지 않는 참가자였죠. 오히려 보면서 혀를 끌끌 차게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홍진호가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실력자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바로 차민수 씨의 예상치 못한 탈락이었습니다.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차민수 씨는 프로 바둑 4단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프로 도박사로 더 이름을 떨친 분입니다. 전성기인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는 세계 상금 랭킹 3위를 유지했으며, 97년에는 미국 상금 랭킹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니까요. 차민수 씨는 첫 게임에는 조용했지만, 얼마 안 가 그 명성에 걸맞게도 <지니어스 게임>의 양대 축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됩니다.
차민수식 스타일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동등한 이득을 얻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공리(公利)주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연히 이런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게임 전반의 룰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바둑과 갬블로 다져진 차민수 씨의 넓은 안목과 빠른 계산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됐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차민수 씨와 뜻을 같이 하게 됩니다. 홍진호 역시 이런 ‘차민수 세력’의 일원이었고요.
반면 차민수 씨와 대립각을 세운 것은 김구라 씨를 주축으로 한 일명 ‘구라 동맹’이었습니다. 여기서 김구라는 악역을 도맡아 권모술수(?)를 구사하면서 몰아주기, 도박수, 포섭 등 뒷공작을 통해 ‘한방’을 노리는 스타일을 추구하지요.
그렇게 초반 차민수 – 김구라를 양대 축으로 세력 균형이 잡히나 싶었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다크호스 성규가 겨우 3회차 데스매치에서 상대 세력의 리더인 차민수 씨를 탈락시키는 이변을 만들어내고 맙니다. 리더인 차민수 씨를 잃은, 그것도 3회차 본 게임에서 ‘구라 동맹’에 완벽한 승리를 거둔 직후에 갑작스러운 일격을 당한 ‘차민수 세력’은 일시에 혼란에 빠져버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라 동맹 전성 시대’를 예측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홍진호가 차민수 씨의 뒤를 이어 본격적으로 ‘구라 동맹’과 대립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게 됩니다.
사실 차민수 씨는 홍진호가 허당 노릇을 하던 1회차에서 이미 ‘홍진호 씨가 게임 센스가 좋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또한 홍진호 역시 초반 <지니어스 게임> 내에서 차민수 씨와 비슷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두 사람이 가진 강점 역시도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해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포커 플레이어로서 경력을 가졌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홍진호의 포커 경력은 차민수 씨에 비해 결코 긴 편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 뛰어난 게임 이해력은 이미 홍진호가 프로게이머로서 데뷔하던 시절부터 드러났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등장과 함께, 그리고 필생의 라이벌 임요환과의 싸움으로 이름을 떨친 뒤 저그의 정점으로 군림하던 2003년 초반까지도, 홍진호는 언제나 저그의 ‘이단아’로 평가받았습니다. 그에게 ‘폭풍’이란 이름을 선사한 과감하면서도 집요한 공격은 결코 다른 저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임요환의 등장과 1.08 패치 이후, 대부분의 저그들이 테란에게 대학살을 당하기 시작한 무렵에도 홍진호의 폭풍 스타일은 홀로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임요환, 이윤열, 서지훈 등 당대 최강의 테란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저그의 유일한 희망, 그것이 홍진호였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홍진호는 저그이지만 저그가 아닌 저그, 일반적인 게임의 틀을 뛰어넘은 저그의 천재이며 이단아라고 확정짓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반만 옳은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진호는 분명 당대의 저그들과 다른 플레이를 추구했지만 이는 오히려 스타크래프트란 게임 내에서 저그란 종족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천재성이 최대로 발휘된 부분 역시 바로 이 지점, ‘게임에 대한 – 저그에 대한 이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저그는 빠른 생산, 대량 생산이 가능한 종족입니다. 이는 스타크래프트를 한 번이라도 플레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그의 이 강점을 살리는데 주목했습니다. 빠른 생산에 주목한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가난한 상태에서 최대한 빠르게 공격하는 방법을 택했으며, 곧 5드론, 9드론 등의 초반 저글링 러쉬가 이를 대표합니다. 반면 대량 생산에 주목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배를 째면서 어마어마한 물량을 확보하여 상대방을 밀어 붙이는데 주력했으며 히드라 웨이브가 이를 대표하는 전략입니다. 홍진호 이전의 저그들 대부분은 이렇게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하여 싸워나갔습니다.
그러나 홍진호는 저그의 이 두 강점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주목했습니다. 말하자면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이죠. 그리고 곧, 두 강점은 결국 ‘드론’이란 요소로 귀결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결국 저그의 모든 선택은 ‘드론(일꾼)을 생산할 것이냐, 병력을 생산할 것이냐’에서 시작됩니다. 드론보다 병력을 선택한 극단적인 예가 바로 ‘초반 러쉬파’이며, 병력보다 드론을 선택한 극단적인 예가 ‘배째기 파’인 셈이죠. 하지만 만일 게임 내내 필요에 따라 균형 잡힌 드론 생산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때 그 때마다 게임 양상에 따라 최적의 드론 수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러면 저그의 두 강점을 모두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찌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하고 당연한 결론이지만, 당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홍진호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홍진호는 이 결론을 기반으로 하여 저그의 두 장점을 모두 살릴 수 있는 스타일을 확립합니다.
균형 잡힌 드론 수를 유지하면서, 일꾼 대비 최대의 병력을 확보하여 ‘대량 생산’의 강점을 살리고, 또한 그 병력을 적절하게 소모하면서 소모하는 즉시 병력을 보충하여 ‘빠른 생산’의 강점을 살립니다. 더불어 저그 유닛 특유의 기동력까지 가미하면서, 현란한 공격과 뛰어난 유닛 회전력으로 시종일관 게임의 주도권을 틀어쥐는 것. 이것이 바로 ‘폭풍’인 것입니다.
홍진호의 공격에 휘말린, 그리하여 게임의 주도권을 뺏긴 상대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남습니다. 하나는 반격하는 것, 다른 하나는 방어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반격하게 되면, 홍진호는 소모전으로 서로 병력을 소진시킨 뒤 저그의 빠른 물량 회전력으로 밀어붙여 옵니다. 그리고 방어하게 되면, 저그의 가공할만한 기동력 때문에 어떻게든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고, 계속해서 피해가 누적되면서 결국 승세가 기울게 됩니다. 이것이 홍진호의 승리 메커니즘, 저그의 강점을 최대한으로 살린 승리 메커니즘이었습니다. 다만 당대 딱 한 사람, 일꾼까지 동원하면서 바락바락 방어하며 되려 제대로 된 크로스 카운터를 묵직하게 꽂아오는 한 명의 테란이 있었고, 그는 곧 홍진호에게 있어 필생의 라이벌이 됩니다. 불꽃 같은 크로스 카운터의 연속, 화려한 난타전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결은 많은 사람들을 반하게 했고,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의 대결만을 위한 이름 - '임진록'을 만들어냈지요.
각설하고, 여하튼 많은 사람들이 홍진호를 ‘가난한 와중에 병력에만 올인’하는 저그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홍진호는 드론 수의 균형을 생각한 최초의 저그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게임 이해력을 바탕으로 스타크래프트 – 저그의 본질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재해석하는데 성공했으며 그로써 저그로 하여금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은 그를 저그의 이단아이자 고립된 천재라 불렀습니다. 예, 실제로 홍진호의 전성기 당대에는 홍진호와 같은 저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변은종, 박태민, 박성준 등 후세의 강력한 저그 플레이어들에게서 비춰지는 홍진호의 일면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손과 머리가 굳어버린 신한은행 S1까지도 홍진호의 폭풍이 유효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답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홍진호, 천재성을 드러내다
“홍진호의 경기는 이전의 저그가 보여주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그의 경기를 보면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홍진호가 등장하고 나서야 저그의 계보라는 것이 생겼다. 그 이전까지 저그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그 저그의 선호유닛뿐이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공격형 저그라는 계파가 생긴 것인데, 아쉽게도 이 계파에 넣을 수 있는 저그는 홍진호 한 사람밖에 없었다. 홍진호 이후에도 홍진호처럼 경기할 수 있는 저그는 없었기 때문이다”
- 「Zergology 3.0」, 이악물기
자, 다시 <지니어스 게임>입니다.
3회차 이후 차민수 씨의 뒤를 이어 ‘구라 동맹’의 적수로 발돋움하긴 했는데, 사실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직 시청자들은 1, 2회 차에서 연속으로 구라 동맹에게 물을 먹은 허당 홍진호의 모습만을 기억할 뿐입니다. 3회차 본 게임 내내 게임을 완벽하게 틀어쥐었던 차민수 씨의 카리스마를 떠올리면 아무래도 더욱 대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차민수 씨가 탈락한 ‘전략 윷놀이’에서도 차민수 씨의 파트너로 나선 게 홍진호였으니, 그것까지 치면 ‘구라 동맹’에 세 번을 연달아…? 예, 세 번을 연달아 당한 셈입니다.
4회 차 ‘좀비 게임’에서는 와해된 ‘차민수 세력’을 규합하느라 고군분투하고, 5회 차 ‘사기 경마’에서는 ‘구라 동맹’에서 새 길을 찾아 이반한 김풍 씨와 함께 풍풍 (폭풍 – 김풍)연합을 결성하지만 눈에 띄는 활약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6회 차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4회차의 활약과 5회차의 풍풍 연합 때문에 경계를 받다가 데스매치까지 몰리게 됩니다. 게다가 홍진호가 데스매치 상대로 지명한 것은 다름 아닌 ‘구라 동맹’의 주축이자 많은 게임들의 흑막이었던 김구라.
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심지어 데스매치 ‘인디언 포커’에서도, 홍진호는 연달아 ‘다이’를 반복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지어 10카드를 들고서도 ‘다이’를 외치는 홍진호를 보면서 스덕들은 발을 동동 굴러대고, 게임을 지켜보는 다른 출연자들 역시 홍진호의 플레이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하죠.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은 불리해져만 가는데, 결국 완전히 핀치에 몰린 가운데, 홍진호가 뽑아든 카드는…?
EE!
우아아아아앙?!
스덕들은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 뒤이어 이제는 홍진호 전용 BGM이 되어버린 Moby의 Extreme ways가 반전을 예고하며 울려 퍼집니다.
앞서의 이어졌던 실점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이후 홍진호는 그야말로 폭풍처럼 상대의 칩을 따내며 화려한 역전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사실 홍진호가 연속으로 다이를 하면서 카드 카운팅을 하고 있었다는 반전이 대단원을 장식하면서 <지니어스 게임>에서의 홍진호의 평가는 일순 뒤집히고, 더불어 두 사람의 데스 매치는 그때까지의 <지니어스 게임> 최고의 화젯거리로 뛰어 오르게 됩니다.
그 뒤 홍진호의 행보는 사실상 <지니어스 게임>을 이끌어가다시피 합니다. 7회차 ‘오픈, 패스’ 게임에서는 다른 출연자들에게서 소외당하며 혼자만 필승법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듯하다가, 자신만의 필승법을 찾아내어 다른 출연자들을 압도하며 두 번째 반전극을 연출하고요. 11회차, <5:5 만들기> 게임에서는 ‘조건을 만들어낸다’는 기발한 발상을 떠올리면서 게스트들의 극찬을 받으며 다시 한 번 1위를 차지하지요.
대신 9회 차와 10회 차에서는 연달아 데스 매치로 몰렸지만, 9회차 인디언 포커에서는 박은지 씨를, 10회 차 전략 윷놀이에서는 게임 내 최고의 다크호스를 떠오른 성규를 치열한 수싸움과 심리전으로 물리치면서 1:1의 강자로도 부상하는 동시에 대량의 가넷을 획득하며 전화위복에 성공하기까지 합니다. 그러고 보면 6회차 데스매치 이후로는 사실상 거의 모든 게임마다 반전 혹은 대단원의 주연으로 활약한 셈입니다. 그 모습들을 쭉 지켜보자니, 11회차에서 게스트가 남긴 짤막한 감탄, “와, 이 사람은 진짜 천재다.”하는 말이 그다지 어색하거다거나 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앞서 홍진호의 천재성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게임에 대한 이해력’에 있다고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 외의 다른 부분에서는 그다지 재능을 드러내지 못한 저그였느냐 하면 물론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홍진호는 전설적인 프로게이머보다는 이름난 입스타가 되었겠지요. 홍진호의 다른 재능, 강점들은 대개 공격적인 플레이에서 드러났으며, 홍진호가 추구한 스타일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증폭시켰습니다.
그 강점들이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지니어스 게임>에서 보여준 바로 그것들입니다. 성규와의 전략 윷놀이에서 보여준 것, 곧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수싸움 혹은 심리전이 그 중 하나입니다. ‘오픈, 패스’와 ‘5:5 만들기’에서 보여준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번뜩이는 재치를 발휘하는 임기응변 능력이 또 하나이구요. 그 와중에도 게임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놓치지 않는 - ‘인디언 포커’에서 일찌감치 카드 수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 냉철함이 또 하나겠지요.
이상의 강점들에서 비롯하여, 대개 전성기 홍진호의 플레이에 대해 특기할 점으로 꼽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난전’, ‘견제’, ‘빈집털이’, ‘미끼 플레이’, ‘공격 위주의 소모전’, ‘빠른 체제 전환’ (이상,「홍진호의 유산」, Judas Pain)
사실 이러한 플레이를 뭉뚱그려서는 ‘적절하게 소모하며’, ‘현란한 공격을 펼치고’ 따위로 표현하긴 했습니다만, 어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우선 병력을 적절하게 소모하기 위해서는 최소 피해로 최대 타격을 줄 수 있는 전술적인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위치,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덮치는 게 가장 효과가 좋을 것인가를, 또 그를 위해서 상대의 마음을 읽어서 적 병력의 움직임을 예측해야 합니다. 이게 되지 않아 병력을 어처구니없이 들이박기라도 하면, 이는 곧 위험천만한 위기를 초래함은 물론입니다. 또 현란한 공격을 펼치기 위해서는 속도감을 살려 빠르게 플레이를 이어가며 공격의 주도권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항상 상대보다 빨라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와중에도 감정에 흔들려서는 안 되고, 냉정하게 다음 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까딱하다가는 기세에 편승해 무작정 달리다가 넘어지게 되겠지요.
여기서 예상 외의 요소를 포착해내어 이용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을 겁니다. 홍진호의 플레이를 오래 지켜본 분들이라면 히드라를 살짝 빼내 구석에서 러커를 변태시킨 뒤 급습하는 전술이나, 익스트랙터를 지어 가스로 막힌 입구를 넘어가는 등의 플레이에 익숙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카드 뒷면의 작은 문양을 포착해내는 것도, 이제 여기에 더해야 할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급박한 승부 속에서 이 모든 재능들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집중력이 가장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플레이어인 홍진호가 <지니어스 게임> 초반에 그렇게 열세를 보였던 이유는 뭘까요? 다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역시 게임이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갈수록 – 그러니까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수록 더욱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홍진호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 1:1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강자이지만 다수의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가운데 대인 관계나 처세술이 포함된 전략을 짜는 데는 약한 것이죠.
하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출연자들의 홍진호의 강점을 알아채는 게 늦었고, 그래서 그것이 호기로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게임 초반 두 세력의 중심이었던 차민수 씨와 김구라 모두 주요한 타깃이 되어 게임 중반을 넘기지 못했고, 1회 차에서 종횡무진했던 이준석 씨의 경우에도 가장 먼저 타깃이 되지 않았습니까. 또 중후반의 데스매치들이 ‘인디언 포커’, ‘전략 윷놀이’ 같은 게임들이 아니라 1회 차 데스매치처럼 대인 관계를 중요시 하는 게임이었다면 홍진호라도 언제 탈락할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어쨌든 결국 후반에 남은 것은 철저하게 2인자로서만 처세했던 이상민 씨, 허당 이미지로 포장하고 있었던 성규, 이쪽저쪽 갈팡질팡하는 듯 보이면서 어느 쪽에서도 원한을 사지 않았던 김경란 씨, 그리고 홍진호입니다. 최후반에 이르러 게임이 개인과 개인의 순수한 역량 승부 양상을 띠게 되자 가장 먼저 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것 역시 홍진호. 그걸로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홍진호, 고집을 부리다
“잘 모르겠다. 홍진호의 유산? 저그에게 미친 영광? 홍진호의 명경기? 그런 영광은 다른 선수에게 줘도 상관없다.
홍진호의 유산은 내 마음 속의 감동이 되어 화석처럼 굳어있다.
내 마음 속에 홍진호는 그 어떤 프로게이머보다 선명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기억되어 있다.
당신들의 마음속에, 홍진호는 기억될까?“
- 「홍진호는 기억될까」, becker
<지니어스 게임>이 막바지에 이르러 지금까지의 탈락자들이 모두 모여서 최후의 2인 중 한 사람을 선택한다는 룰이 발표되면서 탈락자들의 선택에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홍진호와 대립각을 세웠던 김구라 – 이상민의 ‘구라 동맹 듀오’, 김경란 씨와 쭉 친분을 유지했던 박은지 씨 정도가 김경란 씨를 선택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풍-풍 연합을 결성했던 김풍 씨와 게임 후반에 들어 홍진호와 행보를 같이 했던 차유람 씨, 그리고 성규 정도가 홍진호 씨를 선택할 거라 예상 되고 있습니다.
그 중 차유람 씨는 얼마 전 인터뷰를 통해 ‘홍진호 씨가 우승하길 바란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는데요. 다분히 콩빠 기질이 묻어나는(?) 내용을 한 번 옮겨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프로게이머 홍진호 씨가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홍진호 씨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남고, 자신의 실력으로 승부를 한다. 아무도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계속 배신을 당했지만 살아남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그가 하고 있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배신에는 한계가 있고, 사람들을 속이면서는 절대 최후의 일인이 될 수 없다는 걸 다른 출연진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097166)
물론 여기에 대해서 ‘이준석 : ????’ 같은 반응도 있었지만, 그 때는 그야말로 허당스런 처세술로 이준석 씨 or 김민서 씨를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살짝 넘어가기로 하고….
어쩌면 이런 차유람 씨의 평가는 단순히 홍진호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게임에 임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김구라의 데스매치를 기점으로 해서 홍진호는 거의 독고다이로 <지니어스 게임>에 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요. “역시 1:1에서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서 데스매치가 별로 두려워지지 않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전까지의 실패를 통해 대인관계를 통한 게임 진행이 자신한테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죠. 여하튼 본인의 역량에 근거하여 플레이하는 홍진호에게는 남에게 빚을 줄 일은 있어도 빚을 질 일은 별로 없었고, 결과적으로 데스매치에서 차유람 씨를 끝까지 지원사격하는 모습이나 이미 몇 차례 홍진호를 배신했던 성규를 챙겨주는 모습 같은 일들이 기억에 남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분명히, 홍진호가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소위 ‘뒷공작’을 거의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그에 비해 한 번 동맹을 맺은 사람은 끝까지 돕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준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최후의 3인 중 홍진호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이 상대적으로 대인관계와 처세에 역점을 두고 게임을 해온 플레이어란 점은 분명 생각해볼 부분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홍진호의 행동들이 어떤 어드밴티지로 작용한 적이 없었습니다만, 누가 알겠습니까?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것들이 홍진호에게 어떤 자산이 될지. 승부의 기로에서도 항상 자신만의 룰을 지키며 게임에 임했고, 그리하여 결국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을지언정 ‘이토록 멋진 2등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면서 만인의 기억에 씁쓸하지만 긴 여운을 남긴 그의 프로게이머 인생처럼 말이지요.
홍진호 하면 참 기억나는 일화도 많았던 게이머입니다. ‘홍진호에 관련된 일화’하니까 바로 ‘콩댄스’ 혹은 ‘3연벙’을 떠올리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잘 언급되지 않는 다른 종류의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2003년 즈음에 패러독스란 맵이 있었습니다. 본진에 자원이 잔뜩 몰려 있는 대신에 멀티가 별로 없는 섬맵이었는데요. 섬맵이었던 만큼 프로토스가 저그에게 아주 압도적인 우세를 자랑했고, 한편 저그는 ‘답이 없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당대를 풍미한 3대 저그, ‘조진락’의 일원인 박경락조차도 이 패러독스에는 저그 대신 테란을 고를 정도였으니,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할까요.
그러던 중 홍진호가 이 맵에서 프로토스와 게임을 하게 되자 사람들은 홍진호가 테란이나 프로토스를 고르지 않겠느냐 하는 예측을 조심스레 내놓았습니다. 스타리그 4강 진출권이 걸린 경기였으며, 더욱이 상대 역시도 보통 프로토스가 아니라 정점의 프로토스로 이름을 떨친 ‘프로토스의 혼’ 박정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홍진호는 일찍이 맵에 따라 종족을 바꾸는 일이 드물지 않았던 2001년에도 ‘저그의 무덤’ 라그나로크에서 이미 ‘여러분이 보잘 것 없는 나의 저그를 사랑해주시기 때문에’라는 이유만으로 끝끝내 저그를 고집했고, 그래서 그 첫 번째 준우승의 고배를 마셨던 고집불통의 저그 게이머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홍진호는 “저그로 한다. 남들이 해보지 못한 승리이기에, 내가 승리하고 싶다.”며 단칼에 사람들의 추측을 잘랐습니다.
어쩌면 예상대로, 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나 다를까 게임은 홍진호에게 불리하게 흘러갔습니다. 승부수로 띄운 폭탄 드랍이 좌절되면서 패색이 짙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홍진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적어도 “저그로 한다.”는 그 한 마디를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박정석의 컴퓨터가 서버 불안정을 일으킨 것은.
잠시 디스커넥션 메시지가 떴고, 곧 게임은 버벅거렸습니다, 아무리 봐도 곧 해결될 오류 같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심판 체제도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대로 경기가 중단된다면 아마도 재경기, 그야말로 홍진호에게 찾아온 천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 순간 짤막한 전자음이 울렸습니다.
홍진호의 gg였습니다.
그 직전까지 불사르던 홍진호의 투혼을 꺼뜨린 것은, 두 사람의 게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얻는 승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홍진호 자신의 룰이었고, 그의 고집이었습니다.
홍진호는 그렇게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 탈락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홍진호의 팬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득 홍진호 팬분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는데요. becker님이 「홍진호는 기억될까」에 쓰셨던 짤막한 느낌이 아마도 대다수 콩빠들의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becker님은 이렇게 쓰셨습니다.
“홍진호의 팬을 하길 정말 잘했다” 라고요.
패러독스의 이야기를 하고 나니, 아무래도 그보다는 좀 더 널리 알려진 올림푸스 스타리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올림푸스 스타리그 결승은 홍진호가 도전한 네 번째 결승이었습니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홍진호의 승리 가능성이 높이 점쳐지는 결승이기도 했습니다. 2003년의 홍진호는 그 전성기에서도 최고점에 올라 농익을 대로 농익은 운영 능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맵 밸런스도 홍진호에게 웃어주는 편이었고, 결승전 상대역시도 서로를 너무 잘 아는 라이벌 임요환이나 마찬가지로 오랜 적수인 이윤열이 아니라 그때까지 별다른 실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던 풋내기 서지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야 홍진호가 숙원을 풀 때가 왔다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2003년 7월 13일의 결승전. 1경기, 노스탤지어.
홍진호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9드론 앞마당 전략을 성공시켰고, 게임을 조금씩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나가고 있었습니다. 헌데 다시 한 번, 그것도 그토록 중요한 무대에서, 서지훈의 컴퓨터가 사운드 문제를 일으키고 맙니다.
수십 분간의 점검 이후 내려진 결정은 다시 재경기.
홍진호는 그때까지 그가 늘 그래왔듯이, 그리고 그 이후로도 그러했듯이, 그 자신의 룰과 고집에 따라 그 결정을 받아들였습니다. 어느 정도나마 자신이 차지했던 유리함을 포기하고, 그리고 전략의 노출 역시도 감수하고서.
재경기에서 홍진호는 1경기에서 노출된 9드론 앞마당 전략 대신 마지막 5경기에 쓸 예정이었던 전략을 가져다 사용함으로서 어떻게든 1차전을 승리로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그 날의 경기는 유례없이 치열하게 이어 졌고, 홍진호로서는 저 코카콜라배 스타리그에서의 승부 이래 가장 처절하고도 지독한 승부를 치른 끝에, 게임은 마지막 5경기 승부까지 이어지고 맙니다. 이미 준비한 전략을 1경기에서 써버린, 바로 그 5경기였습니다.
이 날 결국 홍진호는 네 번째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우승을 차지한 서지훈 선수는 평소의 포커페이스답지 않게, 눈물을 흘리며 “엄마, 사랑해요.”를 외쳤고,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홍진호는 담담하게 인터뷰를, 그리고 서지훈 선수에게의 축하를 마치고, 무대 뒤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유형의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그대로 도출해 주었다. 멋지고 강한 그러나 결국은 아쉽게 물러나는, 그러나 패자의 모습조차도 멋지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차분하게 시상식에서의 인터뷰와 승자에 대한 축하를 마친 후 무대 뒤에서 그는 눈을 비비기 시작했고 곧 대기실에 들어가 말없이 눈물을 닦아내던 그의 모습은 내 아픈 상처를 들쑤시는 것 같았다.“
-「홍진호, 그에게는 너무 잔인했던 게임의 법칙」, Judas Pain
이전에도, 이후로도, 올림푸스 스타리그는 홍진호에게 있어 최고의 기회였습니다. 그 날 그가 결승에서 보여준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멋진 패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기억하게 만들었지만, 뒷날 더 이상 홍진호가 정상급 게이머가 아니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그 날 홍진호가 1경기 재경기 판정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하는 이야기를 꺼내곤 했습니다. 혹시, 그 역시도 그 날의 결정을 후회했을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름은 또 얼마나 얄궂은지요.
1차전, 노스탤지어Nostalgia – 향수(鄕愁).
고향을 향한, 혹은, 과거를 향한 그리움.
그 뒤 결국 우승하지 못했고, 3연벙의 시련도 있었고, 까임의 아이콘, 그리고 2등의 아이콘으로 은퇴했습니다.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으며 그토록 저그를 사랑했던 그가 스스로의 입으로 ‘보통 저그’라는 말을 입에 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홍진호는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그의 방식대로 싸워나가는 중입니다. 다시 돌아와 일어서서 그의 룰대로, 그가 지켜온 고집대로 승부하는 중입니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지니어스 게임>을 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홍진호, 우승하다……?
“우승하고 그리고 볼썽사납게 울어버리고, 그렇다 해도 모든 게 변해버린 자신을 원망하며 은퇴해도 좋고, 그 모습 그대로 계속 더욱 성숙한 채 우리의 곁에 있어도 좋다.
하지만 난 그가 메이저 대회의 결승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후회하는 단 하나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갈 것이다.
그에겐 너무 잔인했던 게임의 법칙이 한 순수했던 청년의 빛나던 무언가를 상실케 하는 모습을 말이다.”
- 「홍진호, 그에게는 너무 잔인했던 게임의 법칙」, Judas Pain
당대를 주름 잡았던 인기 스타이자, 그토록 천재적이었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명경기를 남겼으며,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승부에 대한 철학을 지키고 올곧은 게임을 존중했던 게이머.
그럼에도 홍진호가 끝끝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한번만, 한번만 우승할 수 있었더라면 자신은 물론 그렇게 많은 사람들도 안타깝지는 않았을 것을.
대개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홍진호는 다전제 판짜기에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단판에는 강하지만 5전제 판짜기가 미숙했기에 결승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8강과 4강 역시도 다전제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판제에 약하다면 까마득한 후배인 김명운처럼 ‘16강 저그’에 머물렀어야 하는 게 맞겠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홍진호에게 부족한 건 판짜기 능력이 아니라,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는 능력 –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과감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도와 같은 맹공을 펼치는 홍진호이고, 거기서 비롯된 ‘폭풍’이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있지만, 사실 잘 살펴보면 오히려 가장 중시하는 미덕은 안정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니어스 게임>의 8회차, ‘콩의 딜레마’ 게임에서 홍진호는 차유람 – 이상민 씨와 한편을 맺게 되는데요. 마지막 두 번의 라운드만을 남겨둔 시점에서 이상민 씨는 크게 상대가 올인 해을 것임을 주장하지만 당시 게임 상황에 대해 어떠한 확신도 갖지 못한 홍진호는 결국 승부처를 마지막 라운드로 미룹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8회차의 결정적인 패인이 되지요.
그 외에도 홍진호는 <지니어스 게임> 내내 “나는 모든 게 확실한 상황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요지의 발언을 몇 차례나 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홍진호는 <지니어스 게임>, 특히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데스매치에서도 ‘지지 않는 싸움’을 해왔습니다. 특히 김구라 씨와 벌인 데스매치에서 자신의 카드 카운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점까지 인고하며 계속해서 다이를 반복하는 데서도 잘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사실 ‘폭풍 저그’ 시절의 무모해 보이는 공격 위주 스타일 역시도 저그의 메카니즘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음은 이미 서술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홍진호가 승부사 기질이라곤 없는 새가슴이냐. 하면 당연히 아닙니다. 승부사로서의 뛰어난 감과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는 그 부분에서 특히 뛰어나다고 알려진 라이벌 임요환과 비교해봐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무대가 크면 클수록 과감한 결단에 대한 부담을 심하게 느낀다는 사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부담을 크게 느낄 필요가 없는, 곧 ‘이벤트전’이라 명명된 대회들 – 사실 스니커즈 올스타전 같은 수준은 그냥 이벤트전이라고 하고 넘길 정도는 아니었죠 – 에서 홍진호가 보인 강세도 이로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홍진호의 천성적인 기질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결승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시면서 생긴 내면의 장벽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뒷날 ‘이벤트전’으로 규정된 온게임넷 왕중왕전 같은 경우도 당대에는 틀림없는 메이저 리그로 여겨졌으며, 홍진호가 여기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초기의 홍진호가 승부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 그야말로 분방한 천재 타입의 선수였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이후의 여러 번의 준우승,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쇠락해가는 기량, 그리고 3연벙 사건 등을 겪으면서 홍진호는 조금씩 승부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좋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승리를 쫓는 집요함’의 형태가 아닌,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형태로 이어졌으며, 홍진호가 현역으로 뛰었던 마지막 순간까지 홍진호를 괴롭혔다는 사실입니다.
<지니어스 게임>을 보면서, 홍진호가 녹슬지 않은 게임 이해력과 기발한 발상으로 승리를 차지할 때마다 ‘야, 홍진호는 건재하구나’ 하고 즐거워 할 수 있었습니다. 또 깨끗한 승부와 자신의 룰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와, 홍진호는 변하지 않았구나’ 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결승을 남긴 시점에서, 이제는 ‘홍진호가 달라졌구나’하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친 그가, 상처투성이의 이야기를 끝맺은 그가 2등의 아이콘으로서 기억을 극복하고 마지막 한 걸음을 멋지게 내딛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예. 어쩌면, 그것은 ‘홍진호가 달라졌구나’가 아니라, ‘홍진호가 돌아왔구나’가 되어야 할 지도 모르겠군요. 2013년 7월 12일로부터, 2011년 6월 25일 그의 은퇴를 거쳐, 2001년 9월 8일 임진록, 그리고 2000년 12월의 데뷔 무렵까지의 기나긴 귀향.
그토록 천재적이었고, 그렇게나 자유로왔던.
승부의 결과보다는 승부 그 자체에 대한 열정에 겨워, 누구보다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아주 오래 전 기억 속에 남은 그 모습을 내일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길어져 버린 추억팔이를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들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홍진호의 유산」, Judas Pain
「홍진호, 그에게는 너무 잔인했던 게임의 법칙」, Judas Pain
「Zergology 3.0」, 이악물기
「황제와 폭풍의 여명」, kimera
「홍진호는 기억될까」, becker
「홍진호에 대한 마지막 잡설」, becker
덧붙임(스포주의)
2003년 7월 12일, 홍진호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 1season 우승!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kimbill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3-07-11 12:38)
* 관리사유 : 게임 게시판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되어 이동 조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