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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2/29 02:16
에에... 네로울프님 때문에 옛날 생각 났잖아요. ^^a
제가 살던 집 뒷산엔 정말 도토리 맺는 나무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참나무가 많았습니다. 가을이면 거짓말 조금 보태 땅 반 도토리 반. 언제는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옆마당에 다람쥐가 쪼르르 산에서 내려와서 도토리를 먹고 있더라고요. ^^ 어린 마음에 신기하고 귀엽기도 해서 살금살금 까치걸음으로 보러 갔는데, 머리를 슉! 슉! 몇 번 돌리더니 두르르르르르... 하고 잽싸게 도망치데요. 애고... 잡을려고 그런 거 아니었는데. ㅠ.ㅠ (집 근처에 뱀이 자주 나와서 그런가.... 그거 한 마리 보고 더는 보지 못했습니다. ) 유치원 다닐 때, 노란 옷 입고 동생 손 잡고 논에 들어가서, 페트병 한 가득 메뚜기를 잡았던 것도 기억나고요. 그때 유치원 애들에 선생님까지 합세해서 메뚜기를 잡았는데, 페트병으로 여러 개를 메뚜기로 꽉 채웠었답니다. 요즘은 농약을 하도 쳐서 메뚜기라고는 구경도 하기 힘든데 말이죠. 별로 오래된 얘기도 아닌데 무슨 다른 나라 얘기 하는 기분이네요. ^^ (음...그 메뚜기가 고소하게 튀겨져서, 다음날 도시락 반찬으로 나왔다면...믿으시려나? ^^) 잠자리 날개 손가락 사이에 끼워 가지고 다니면서 누가 더 많이 잡았나 시합하던 거, 문 닫은 누에고치 공장 담 넘어 다니던 거, 종이컵으로 올챙이 잡기, 개구리알 모으기, 개미 거미줄에 올려놓기(아 그땐 왜 그랬을까요;), 개미집 파헤치기 (ㅠ.ㅠ 미안해 개미야..), 뱀 보고 도망치기, 개울가에서 개구리 잡기, 겨울에 강 얼어 붙으면 아빠가 만들어주신 썰매 타고 하루 종일 놀기. 마지막으로 그곳에 가본 건, 철없는 저를 손녀딸처럼 귀여워해 주시던 한 할머니 장로님의 장례식 때였습니다. 몹시 추운 날씨였습니다. 검은 옷차림 그대로 상가를 혼자 빠져나와, 개울이 '있었던' 곳을 향해 걸었습니다. 개울은 다 메워져서 이젠 물도 없는데... 옛날 마을에서 콘크리트로 놓았던 조그만 다리는 그대로 있습니다. 어렸을 때의 나에겐 전세계였던 그 마을이 이상스러울 만큼 작아 보였습니다. 우-와, 성당처럼 올려다보았던 교회 창문이 지금 내 키보다 그렇게 크지도 않습니다.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8년간을 살았던 집, 그 8년 동안 집이 좁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않았는데, 다시 본 그 집은 18평도 안 되어 보이는 초라한 흙집이었습니다. 거기 얹은 싸구려 기와 지붕엔 아마 제 이빨도^^;; 몇 개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그 작은 집에서 무려 네 식구가 복닥거렸다니.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집도, 교회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제가 너무 많이 커 버렸던 겁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그곳을 떠나 올 때, 곧 도로가 날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옛 교회 건물과, 장로님 댁, 우리 집이 있던 자리로. 아마 지금쯤은 다 헐렸겠지요. 지금은 그 터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차들이 무심하게 지나고 있을 테지요. 자신이 누군가의 에덴 동산을 밟고 달리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떠올리지 못한 채. 불도저가 제 방 벽을 허물어뜨리는 순간, 제 고향은 온전히 추억이라는 깊은 물 속에 잠기게 되겠지요. 그곳에 가기가 망설여집니다. 이미 수용하고 있는 진실이지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몹시 사랑했던 그 시간, 텅 빈 풍경을 바라보며 온전히 추억으로 접어두기엔 아직 저는 좀 어린가 봅니다.^^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 구석 아려 오는 기억이지만, 추억으로의 졸업은 아직까진 보류하렵니다. ^^ 늦은 밤 좋은 글 감사합니다.
03/12/29 03:02
이제는 리플도 추게에 갈 시대가 온건가요..ㅠㅠ
원본글도 뛰어나고 이젯님의 글도 멋지고..ㅠㅠ 좋습니다.. 좋아..^^
03/12/29 11:13
그냥 뭔가 자꾸 달려가게끔 만드는 글이네요 -_ㅜ
가끔 할 일이 많더라도 제 영혼이 쉴 공간을 자주 마련해 주는 것이 정말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군요 ~ 좋은 글과 좋은 리플 달아주신 네로울프님과 ijett님께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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