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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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도발, 원이삭]
"협회 선수들은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스타테일 선수 원이삭. 옥션 스타리그 본선진출 인터뷰 中)
스타2가 출시되는 날부터, 아니 출시되기 전부터 으르렁대온 협회 팬덤과 연맹 팬덤이었지만 그 기싸움이 선수들의 영역까지 번지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직접 얼굴을 맞대는 '관계자'들끼리 그러기에는 너무 민감한 문제였으니까요. 그러나 그 불문율을 깨고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지는 선수가 연맹측에서 드디어 등장합니다. 데뷔 시절부터 패기넘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던 원이삭이었죠.
협회 팬덤은 즉시 원이삭에 대한 공격에 나섰습니다. 스1리그의 멸망과 스2 적응에 대한 어려움으로 가뜩이나 혼란을 겪고있던 협회 팬덤에게 원이삭의 직접적인 도발은 울고싶은 사람 뺨 때려주는 격이었죠. 그리고 불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8게임단 코치 한상용. 트위터 中)
인터뷰를 본 협회측의 한상용 코치는 트위터에서 불쾌한 심경을 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사건의 파장은 엄청났고 스2 관련 얘기가 나오는 커뮤니티가 모두 들썩이기 시작합니다. 격분한 연맹 팬덤은 저정도 도발은 스1 시절에도 흔했던건데 인성 운운하는 한상용 코치가 잘못된거라고 공격했고 협회 팬덤은 먼저 도발한 원이삭이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양쪽 팬덤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고 그 폭풍 앞에서는 PGR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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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갑론을박이 오갔던 PGR 게시물)
뒤늦게 경솔함을 인정한 한상용 코치가 사과글을 올리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팬덤의 앙금은 풀리지 않았고, 원이삭은 협회 팬덤이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주목하는 선수가 됩니다. 이런 민감한 분위기 와중에 곰TV가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 드디어 막을 열게 됩니다.
[최초의 대결, 크로스매치]
'스타크래프트2 Ready Action 크로스매치'
본래 곰TV의 스2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레디액션에 크로스매치라는 부제를 단 이것은 매주 협회와 연맹의 선수를 각각 2명씩 초청하여 이름을 가리고 대결한뒤 최종승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이벤트매치였습니다. 협회VS연맹의 진검 승부이자 최초의 방송대결이라는 대형떡밥에 모두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7월 9일, 역사적인 첫 경기가 열립니다.
연맹 팬덤은 당연히 승리를 낙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지난 몇주동안 봐온 프로리그에서 협회 선수들의 스2 실력은 말그대로 형편없었고 연맹을 따라잡으려면 한참 멀어보였으니까요. 이기는건 당연한거고 부종으로 플레이해도 낙승을 거둔다는 예측이 오갈 정도였습니다. 협회 팬덤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긴했지만 이변을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스2판을 금새 정복한다고 큰소리치긴 했어도 막상 현실로 닥치고보니, 이제 겨우 스2경력 2~3개월 밖에 안된 협회 선수가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리라 예상하긴 힘들었죠.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협회측 프로토스는 1차전에서 연맹테란을 2:1으로 제압하고, 2차전에서도 연맹토스를 2:1로 깨부수며 1주차 크로스매치의 최종승자가 됩니다.
웅진 스타즈 소속 김유진 선수였죠.
커뮤니티는 발칵 뒤집혔고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얻어맞아 패닉상태에 빠진 연맹 팬덤은 선수 정체 밝히기에 나서서 연맹토스가 스타테일 소속 정우서 선수라는 것을 알아냅니다. S급이라 평가하기엔 조금 모자란 정우서 선수였지만 진건 진거였고 전초전에서 승리를 거둔 협회 팬덤은 신이나서 김유진을 '갓유진'이라 칭하며 GSL과 연맹 팬덤에 대한 맹렬한 공격에 들어갔습니다. 연맹선수가 협회선수에게 어쩌다 실수로 1세트쯤 내준거라면 몰라도 경기를 내준다는건, 그것도 2연속으로 패배했다는건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태였죠. 자존심이 상한 연맹은 2주차에서 당시 토스 최강자로 불리던 박현우와 막 떠오르던 신예 이승현을 내보내서 협회 선수들을 무참히 압살했지만 1주차의 데미지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날의 충격은 두고두고 회자됩니다.
[균열의 조짐, WCS]
3주차 크로스매치는 때마침 블리자드에서 주최한 스타2 세계대회, WCS(World Championship Series) 한국대표 선발 예선전으로 대신 치뤄졌습니다. 16명의 선수를 뽑는 예선대회는 예상대로 연맹의 압승으로 끝이 났지만, 협회 진영에서 김유진 선수에 이어 또 한명의 스타가 탄생합니다. 모든 협회선수가 탈락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아 본선에 진출한 선수가 나온 겁니다. 삼성전자의 테란 김기현 선수였습니다. 운좋게 진출한 것도 아니고 당시 연맹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저그강자 강동현을 완벽하게 꺾는 대파란을 일으켰죠. 덕분에 연맹 팬덤은 15:1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이겨놓고도 찝찝함을 감추지 못했고 협회 팬덤은 병행리그 2~3개월만에 가능성을 보여주는 협회선수가 하나둘씩 나오자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여론은 연맹 팬덤쪽이었습니다. 정우서, 강동현이 진건 어쩌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진것에 불과하고 아직까지 협회선수들은 '안된다'는게 연맹 팬덤 대부분의 생각이었고 협회 팬덤 또한 기분좋은 이변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대놓고 '스2 정복'을 논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연맹 팬덤은 WCS 한국 본선에서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칼을 갈았고 그 예상대로 8월 6일 열린 WCS 한국대표 선발전 본선 첫 경기에서 당시 프로리그 다승 1, 2위를 다투며 시드를 받고 온 정윤종과 이제동은 한수 아래의 경기력으로 이원표, 한이석에게 2:0으로 깔끔하게 패배합니다. 다음날 고병재를 상대한 김민철도 유령 다수에게 핵관광을 당하며 농락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고, 그 다음날 김정우, 김준호도 차례로 패하며 패자조로 내려갑니다. 프로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거두며 시드를 받고 온 협회선수들이 줄줄이 패하는 와중에 김기현이 연맹의 정승일을 제압하는 이변을 만들어냅니다만 역시 협회는 아직 안된다는 의견이 옳아보였습니다. 자력으로 예선을 뚫은 김기현은 인정할만하지만 나머지 시드를 받고 온 선수들은 연맹과의 실력차이를 뼈저리게 깨닫고 돌아갈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죠.
그러나 운명의 8월 9일, 흐름이 바뀌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