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4/06/03 01:22:31
Name manic
Subject [남 따라 써본글] 90년대 가요 어느부분에 관한 개인적 회상.
먼저 아래 SEIJI님 글 잘 읽었습니다.(문득 생각난 내용이라 하셨는데 글이 꽤 길어서 잠시 당황했습니다.^^ ) 물론 동의할수 있는 부분도 많고, 저와는 다른 부분도 조금은 있기에 어설프지만 한번 써볼랍니다. 90년대의 대세를 따라 댄스 위주가 될거고 앨범이나 뮤지션들에 대한 평가, 기타 견해는 당연히 주관적이고 제 맘입니다...--; 대부분 등장인물 호칭은 생략합니다.

Intro - 서태지 이전 몇년간.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 음악수용층(10-20대)에서는 팝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장구도가 역전되기 시작한건 80년대 중반 이후죠. 뮤지션으로 따지자면 그 역전의 중심에는 들국화와 이문세가 있었습니다.(많은 메틀 밴드들이 있었습니다만 메틀은 다소 매니악한 수용층을 지닌 일종의 컬트문화 비슷한 경향이 강했습니다. 시장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만한 정도는 아니었죠.) 바닥에서 시작해 미디어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30만장을 넘게 판 들국화 1집은 일종의 전설이 되었고, 86년에 나온 3집부터 작곡가 이영훈과 손을 잡은 이문세가 한단계 업그레이된 발라드를 들려주며 가요의 시장을 넓혀 갔습니다.

음악 바깥의 상황도 시장구도에 꽤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80년대 후반쯤에 미국의 음반, 영화 직배사들이 한국에 상륙을 시작합니다. 영화계쪽은 좀 격하게 반발을 했고(직배사 영화 개봉하는 극장에 뱀 풀고 난리 났었습니다...--;) 음반계쪽은 조금은 온건하게 당시 음반 구입층들의 주된 source로 활용되던 라디오(TV가 아닙니다!)에 적극 로비를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갑자기 라디오에서 트는 가요와 팝의 비율이 8:2 정도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 이후 고 유재하님의 앨범이 나오고 들국화, 시인과촌장의 기존멤버 이외에 박학기, 푸른하늘,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 장필순 등의 동아기획사단 뉴페이스들이 속속 나타나면서(족보를 따지자면 뉴페이스라고 말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지만) 음반시장은 가요가 팝을 완전히 누르는 형국이 됩니다.

이때는 지금의 오버-인디의 구도가 아니라 TV-라디오의 대립구도 였습니다. 라디오도 방송이고 하기에 이들을 지금의 인디 개념으로 호칭하는건 좀 그렇고 그정도의 적대 관계정도까지도 아니었습니다. 손무현이 김완선 5집에 곡을 쓰는것도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았고... 음반 판매량은 라디오쪽의 판정승 분위기였구요.(소방차나 김완선, 박남정 같은 경우 그 명성에 비해 음반 판매는 그다지 짭짤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녹음기술이나 음악수준이나 등등해서 나이트같은데서도 별로였구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그당시도 그렇게 믿을말 하지는 못했습니다. TV출연을 거의 하지 않은 이문세 같은 경우 4집앨범이 80만장을 넘기는 판매고를 올렸지만 가요톱텐 10위안에는 한번도 들지 못했습니다. 저 정도가 TV 출연 꺼리는 가수들의 일종의 한계선이었죠.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이승철이(발라드 계열에서는 신승훈) 이문세와 변진섭의 바톤을 이어 받아 지존의 자리에 서고 신해철, 정석원이라는 한때 같은 배를 탔던 첩혈쌍웅(--;)도 등장을 합니다. 작곡가로 먼저 출발했던 윤상은 표절시비가 조금 많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 사람들은 그대의 머리위로 뛰어다니고...

크게 요동을 치기 시작한 92년. 홍서범의 '김삿갓'과 박남정의 '멀리보이네' 부터 시작해서 신해철, 정석원, 현진영등에 의해 조금씩 영역을 넓혀나가던 랩이 이땅에 안착하기 시작합니다.(랩은 당시 새로움을 추구하려던 젊은 뮤지션군들에게는 일종의 화두였습니다. 91년에 나온 푸른하늘 4집에도 랩이 실리기도 했었습니다. 완성도야 뭐...) 저는 서태지의 가장 큰 발상의 전환이 '랩을 전면에 내세운 음악을 시도했다'라는 사실이 아니라 당시만 해도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로 취급받던 랩으로 '댄스'를 했다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란의 여지가 좀 있을지도...--;) 댄스를 아직까지는 진지한 장르로 안쳐주는 사람도 많던 시절에 등장해서 실리(TV를 포함한 곳에서 대중적 인기)와 명예(음악적 인정)를 한꺼번에 움켜쥐어 버린거죠. 한시절 음반계에서 군림하던 동아기획의 몰락도 조금의 반사이익을 서태지에게 안겨줍니다. 김현철의 교통사고로 김현철 보다는 대중성 면에서는 조금 떨어지던 조규찬이 주 작곡가로 나서면서 조금씩 힘을 잃던 동아기획이 뉴키즈 공연사태로 날벼락을 맞게되죠. 음반 시장의 주류가 어쿠스틱한 발라드, 퓨전쪽에서 전자음악, 리듬 위주의 음악으로 교체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물론 발라드 팬들은 여전히 있었고 신승훈의 인기는 그 숫자를 말해줍니다.)

스타일을 바꾼 신해철의 넥스트, 하우스뮤직을 들고나온 015B 3집이 나오고, 신해철은 테크노를 내세운 EOS를 프로듀싱하기도 합니다. 92년 하반기에는 현진영 2집과(아마 이때도 현진영 소속사 사장은 이수만이었을 겁니다.) 기획사의 상품같은 분위기도 나는 노이즈와 잼, 철이와 미애등도 나오고...(신철은 나마의 '인디언 인형처럼'부터 한 랩 하던 사람이었고 잼은 명백하게 서태지 계열이기보다는 소방차 계열에 가깝습니다. 노이즈는 조금 복잡한 경운데 뒤에 좀더 자세히...) 서태지와 아이들이 앨범 1장으로 조용필의 위치에 필적할 정도로 올라섰어도 이 시기에 기획사의 상품들이 많지 않았던건 적어도 국내에서는 새로운 흐름이었기에 이런 곡을 쓸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게 가장 큽니다. 부랴부랴 배우기는 생소한 측면이 많아 곡 쓰기가 어려웠던거죠. 93년에 나온 듀스까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벤치마킹이라 그러면 섭할 사람들 대부분일겁니다.(서태지 이후에 단기속성으로 배워서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뭐 그런 이야기지요. 아니면 말고..--;)

94 ~ 95 - 트렌드 리더의 교체, 작가주의의 패배, 혹은 얼터너티브를 찾아서

서태지는 93년 2집 앨범으로 스타를 넘어서 일종의 신화(워너비 엔싱크 sm소속 댄스그룹 이야기 아님)가 되고 능력이 안되서, 혹은 이게 몇년이나 갈까 하는 의구심에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던 사람들이 돈냄새를 맡고 본격적으로 이 쪽으로 뛰어들기 시작합니다. 포문을 연건 그나마 능력있는 김창환을 두었고 신승훈으로 돈도 좀 벌어놓은 라인음향에서 나온 김건모 2집의 '핑계'죠. 레게의 바람이 몰아칩니다.(뭐랄까. 이 시기는 소위 X세대, 신세대 바람에 휩쓸린 청중들이 새로움을 갈망하던 시기입니다. 사실 핑계가 레게의 처음은 아니죠. 본격 시도는 아니긴 했지만 '그냥 걸었어'를 만든 김준기가 그 10년쯤 전에 김창완의 '꼬마 인형에 날개를 달자'에서 시도를 하기도 했었고, 91년에 어느정도 뜬 오석준의 '웃어요'도 있었습니다. 묻히긴 했지만 93년에 코나의 '그녀의 아침'도 레게라 할만 했고. 하지만 미디어를 앞세워 새로운 장르로 포장된거죠.) 이는 삽시간에 숱한 아류들을 양산하고 라인음향은 서태지에게서 트렌드 리더의 바톤을 가져옵니다. 이는 단순한 교체가 아니라 음반시장의 주도권이 싱어송라이터로 대변되는 뮤지션에서 기획사라는 조직적인 가수양성소로 넘어온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간의 공백기를 가진후 화려하게(?) 컴백하는 마케팅 전략도 그대로 가져오는데 이는 가요의 인기 사이클을 이런식으로 단축시켜 '메뚜기도 한철이다' 마인드로 가는게 돈벌이에 더 유리하겠다고 판단한 듯 보입니다.

서태지는 댄스음악으로 이를 다시 찾아오는 것을 택하지 않고 강산애의 한국적 정서의 락과 넥스트의 한 시절 정통이었던 락에 추가하여 스매싱펌킨스와 RATM 스타일로 대변된 미국락의 신주류를 던져놓습니다. 댄스대 락의 대립구도가 형성되던 시점에서 자기가 만들어놓은 흐름의 반대편에 서는걸 택한거죠.(오버 섞어서 말하자면 '반신화의 신화'라고나 할까요. 이때부터 얼마동안 서태지는 미국 흑백의 하위문화를 같이 짊어질려고 가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4집에서 극명히 드러나죠. 펌킨스 스타일과 갱스터랩이 공존하는, 놀랍다면 놀랍고 이상하다면 이상한 음반.) 이후 인디신이 형성되면서 댄스대 락의 반목은 더욱 심해지죠.

잠시 옆으로 빠져 노이즈 이야기를 하자면 라인음향에서 94년에 노이즈 2집이 나오고 실패로 끝나게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노이즈의 천성일은 91년에 훗날 업타운을 만드는 정연준과 같이 통기타 들고 모래시계라는 보사노바 음악하던 듀오에 있었습니다.('나 떨고 있니' 그 드라마 나오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오해는 사절..--;) 처음 노이즈를 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란 걸 알고 잠시 황당했었던 기억도 있는데. 천성일과 리드보컬 홍종구, 두 댄서로 구성되었던 노이즈(래퍼가 아니라 순수 댄서입니다. 춤추는게 쪽팔린 일도 아니고 어설프게 랩하느니 사실 이게 더 깔끔합니다. 한때 인기끌던 영국 테크노 팀 프로디지에도 댄서 있습니다.)의 1집은 음악적 면에서는 천성일과 김창환의 불완전한 동거였습니다. '너에게 원한건'과 '변명'의 스타일의 차이는 그를 말해주고 있죠. 노이즈 2집은 천성일의 일종의 야심작이었습니다. 타이틀 곡이 '내가 널 닮아갈때'라는 1집의 '너에게 원한건' 스타일인데 앨범에 한두곡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이 템포와 스타일로 밀고 나갑니다. 지금의 편곡 기술을 업고 요즘 출시되었다면 브라운아이즈 정도의 평가를 받을수도 있었다고 (개인적으로)생각합니다만 당시 시장에서는 실패로 끝납니다. 싱어송라이터들의 작가주의가 기획사의 파워에 밀려 댄스판에서 자리를 잃어가는 징조의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이후 3집은 김창환 작곡의 '상상속의 너'가 대박이 터지며 천성일은 같은 소속사의 신승훈, 박미경등의 곡을 써주면서도 자신들의 앨범에서는 주도권을 김창환에게 뺐겨버린 이상한 모양새가 되버리죠.

그리고 95년, 다시한번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으로 이번엔 '레이브'라는 단어가 퍼지게 됩니다.(외국에서 레이브는 음악장르가 아니라 음악으로 인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뭐 귤이 물건너면 탱자가 된다고도 하니 그러려니 해야죠. 레이브 이펙트라는 말이라는 R.ef도 등장하고...) 그리고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 노이즈의 '상상속의 너'가 연속 히트를 하며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있는 한국 댄스음악의 스타일의 틀을 잡아나갑니다. 어설프게 분류하자면

나이트류 - 잘못된 만남, 이후 클론, 김현정, 이정현, 코요테 등등
뽕짝류 - 날개잃은 천사, 이후 쿨을 위시해 무수히 많음. 대표 작곡가 주영훈
동요류  - 상상속의 너, 이후 드문드문 나옴. 대표작곡가 장용진(HOT, UP등)
* 2000년 즈음부터는 본토 팝을 바로 따라가려는 경향도 많이 나타나 좀 다양화됩니다. 윤일상이나 최준영은 곡이 지나치게 많아 분류가 힘들고...--;

이 정도 되겠습니다.(동의하지 못하실 분들도 많겠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제가 쓰는 글인데요.--; 리플이나 남겨주세요.^^) 이 와중에 듀스 3집은 30만장을 넘게 팔고도 상업적 실패로 해체가 되는 이상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댄스음악의 작가주의는 그 명을 다하게 되죠.(박진영은 조금 예외적인 케이스긴 한데... 작가란 말을 붙이기는 저는 꺼려집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이 이후 10대들로 구성된 팀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언타이틀이 미약하나마 듀스의 계보를 이어갈려고 하는듯도 하지만 듀스의 전철을 밟듯 3집때 소속사랑 강력한 트러블이 생기면서 이후 앨범 하나 더내고 해체가 됩니다. 이건 작가주의 댄스음악에 대한 확인 사살이죠. 인디에 힙합신이 생기면서 인재들은 대부분 그 계열로 향하고....

outro - 그때부터 지금까지...
HOT의 성공으로 주류 음악의 마이다스의 손은 김창환에서 이수만에게로 넘어갑니다. 주류 음반시장의 타겟 연령층은 낮아지고, 음악적 완성도는 답보된 상태에서 더이상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낼 필요를 느끼지 못한채, 팬덤은 기획사의 손에 의해 조직화되고 이미지의 교체, 혹은 복제와 재생산이 시간이 흘렀음을 말해주는 유일한 증거가 되죠.(밀레니엄의 끝이 다가오면서는 조금 틀려졌습니다만...) 개개의 댄스팀에게 돌을 던지고자 하는것도 아니고 그들의 실력을 비하하고자 하는것도 아닙니다. 상황이 대형기획사를 중심으로 그렇게 흘러갔다는거죠. 판한장 팔리면 인세 20원 받는다는 애들이 사실 잘못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 와중에도 3,4집 정도부터 본격 양아정서를 표방하는 DOC같은 팀도 있었고 업타운 같은 팀도 있었지만 트렌드를 바꿔놓지는 못합니다. 발라드가 R&B로 넘어가는게 변화라면 변화랄까요.(우리나라에서 알앤비는 리듬앤블루스가 아니라 랩앤발라드라는 시니컬한 말도 있습니다만...) 대형기획사들은 미디어를 장악하고 더 이상의 라디오 스타는 없어졌습니다. 성과라면 사전심의 폐지 정도겠지요. 정태춘씨가 열심히 홀로 기초공사 하고, 시대유감이 마무리 테이프를 끊게 만들었던...

반대편에서는 인디씬의 형성으로 대립각은 더욱 커지고, 90년대 초반의 트렌드리더들, 한시절 라디오스타들은 잠적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혹은 영향력이 줄어든채 일종의 섬 비슷하게 고립된 상태에서 그냥 그렇게 갑니다. 주류 댄스와 저항적 인디씬 사이에 갖혀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버렸다고 할까요. 이소라 1집이 대박나고 동아기획이 다시 사는듯도 했고, 전람회, 패닉, 토이등이 등장하면서 뭔가 될것도 같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도 잠깐이었고 그들도 너무 빨리 선배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여담좀 하자면 앞에 세이지님 글에서 패닉이 '제 2의 서태지'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평론가 강헌이 그 말 했다가 '일부 극성' 서태지 팬에게 무지하게 씹혔었습니다...--;) 주류와 인디, 그리고 주류쪽에서는 비주류이고 인디쪽에서는 그놈이 그놈격인 또 하나로 만들어지는 이상한 삼각구도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혹자는 정치판에 비유해서 주류댄스는 한날당, 인디는 민노당,  또 하나는 열우당 정도로 말하기도 합니다..--;) 바뀔수 있을것인가 물으시면 희망을 말해야 할지 회의적인 견해를 말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뭐 그렇습니다. 부실하고 쓸데없이 길기만 한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스크롤의 압박을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모싸이트 식으로 3줄요약 하겠습니다.
1. 서태지가 명예와 실리를 동시에 거머쥔건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긍정, 부정적인 영향을 동시에 미쳤다.
2. 현재 왜곡된 시장의 틀이 형성된건 94-95년 경 부터다.
3. 저보고 90년대 댄스 음악 앨범 5장을 꼽으라면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노이즈 2집, 듀스 3집, 언타이틀 3집, 샾 2집이다. 이상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4/06/03 01:28
수정 아이콘
원래 서태지 팬들이 좀 극성스럽긴 하죠.. -_-;;; 김사랑도 제2의 서태지라는 소리를 듣자 일부 극성스러운 서태지팬들에게 많이 씹혔다는...
04/06/03 01:31
수정 아이콘
서태지 팬 분들이 극성 스럽기 보다는 김사랑이 제2의 서태지가 아니었고 씹혔다기 보다 김사랑씨가 음반 내는데 어떤 싫증 혹은 실망을 해서 않냈거든요.
04/06/03 01:36
수정 아이콘
그래도 전 94년에서 95년은 그나마 작가주의를 가진 가수와 기획사가 키우는 가수가 어느정도 공존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도 기획사는 존재하고 또 기획사가 키운 아이돌적 가수는 존재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한쪽으로 완전히 획일화되어버린건 96년 이후라고 보고 있고 그때를 한국대중음악의 암울기로 보고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이돌 가수도 몇몇정도 있는것은 그리 나쁘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한 가수로 완전 획일화될때가 훨씬 문제라서요.
DeGenerationX
04/06/03 01:43
수정 아이콘
95년 드렁큰 타이거의 Tiger JK가 솔로앨범을 국내에 내놓았었죠...
평은 졸작이라는 반응이 더 많지만...
이 당시에 국내에 Hip-Hop 앨범이 나왔다는게 신기하더군요..
앨범작업은 전부 92년작들인데... 95년에 앨범을 낸것도 신기하고
아방가르드
04/06/03 01:47
수정 아이콘
'얼터너티브를 찾아서' 라는 것이 단순한 대안을 찾아서의 영어적 표현인지 아니면 장르의 표현인지 헷갈려서 좀 헤맸네요.

잘 읽었습니다.
04/06/03 01:49
수정 아이콘
seiji님/ 뭐 제말은 틀이 형성되고 자리를 잡은게 95년이다, 그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말씀대로 완전히 획일화 되기는 전이지만 말입니다. 물론 라인음향이나 룰라때는 이후 에쵸티-젝키처럼 팬덤이 조직화되지도 않았지만(무슨 남진-나훈아도 아니고..--;) 음악적으로는 그때 해논걸로 그 이후 몇년을 울궈먹었다 대강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요...
아방가르드님/ 서태지도 3집에서 나름대로 장르로서의 얼터너티브도 하고 해서 중의적인 표현을 해보고자(핫핫..--;) 한겁니다. 정신사납게 해서 죄송합니다.
04/06/03 01:52
수정 아이콘
mauic님// 예 님 생각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도 94년 95년부터 왜곡된 시장의 싹이 트고 있었다라는 것에 동감합니다.
BoxeR'fan'
04/06/03 01:58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패닉이 제 2의 서태지라는데 저도 열심히 비판했습니다.
개인적 판단으로는 패닉이 서태지와 아이들보다는 100배는 낫다고 판단했기에 어떻게 제 2의 서태지가 될 수 있냐고 열심히 비난했는데..
그리고 듀스는 30만장이 팔림에도 불구하고 해체한게 아니라 해체로 인해서 30만장이 팔린 케이스고 윤상씨는 진짜 너무 완벽주의자라서 실력에 비해 그렇게 잘되지 못한 케이스..특히 작곡 능력도 뛰어나지만 윤상씨의 진면목은 프로듀싱쪽이라고 생각합니다.
04/06/03 02:11
수정 아이콘
BoxeR'fan'님/ 님글 읽고 보니 제가 윤상씨를 조금 비하한듯한 느낌도 드는데 그럴 의도는 아니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물론 그의 완벽주의적인 작업과 프로듀싱은 저도 잘 알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소위 68년생 사단의 등장(신해철, 정석원, 김현철, 윤상등등)을 이야기하며 빼먹으면 섭할것 같아서 적어놨는데 어째 모양새가 좀 이상하게 되었네요.
그리고 듀스는 어찌 되었건 당시 월드뮤직의 오버덕택에 50만장을 팔았어도 실패소리 들었을겁니다. 눈만뜨면 백만장 돌파 하던 시절이라 미리 만들어 뿌려놓은 물량이 엄청났으니 말이죠.(훗날 듀스 뮤직비디오에 3집 cd끼워주는거 보고 도데체 얼마를 뿌려놓았던 걸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본의아닌 숫자놀음의 희생양이 되었다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쓰는 글이 완벽할 리도 애당초 없는것이고..--;
elusivedream
04/06/03 06:20
수정 아이콘
근데...요새 양파는 머하나요......ㅡㅡ;;
시미군★
04/06/03 07:09
수정 아이콘
윤도현밴드는 안나왔네요 ㅜㅜ
04/06/03 09:12
수정 아이콘
노이즈 2집 저도 정말 좋아하는데...
1집 때 노이즈에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있다가 2집 때는 정말 좋아했었죠. 앨범 전체의 분위기가 저랑 잘 맞아서... 저도 이때부터 천성일을 눈여겨 봤었답니다. ^^;
그런데 2집의 실패로 인해 (이때 가요프로그램 1위 한번 겨우 했나? 그럴 겁니다. 별로 상대할 만한 팀이 없는 상황에서 1집 때의 인기를 감안하면 실패긴 하죠) 3집에선 '변명' 스타일로 회귀하는데 이게 오히려 잘 먹히더군요.
그러다 보니 4집도 3집이랑 비슷한 스타일로 나왔다가 실패하고.. 근데 전 4집도 좋아했었어요. 어째 실패한 음반이 저랑 잘 맞는 이상한 팀 -_-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노이즈 2집이 약간 더 편곡이나 음향을 보완하고 지금 나왔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드네요. ^^
04/06/03 10:20
수정 아이콘
서태지와 아이들은 1집,2집까지가 인기의 절정 아니었는지 생각하네요.
대중적인 인기만을 따지면요....
이후에 4집에서 "필승","컴백홈" 등으로 어느정도 만회가 되긴 했습니다만...

양파는 소속사와의 갈등이 있습니다.
양파측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냈던 베스트앨범을 계약내의 앨범갯수로 포함시켜야한다고 주장하고
소속사에서는 베스트앨범말고 정규앨범이 하나 더 나와야 계약이 만료된다고 하죠.
시미군★
04/06/03 11:04
수정 아이콘
Calvin // 그렇게 느껴지는건 아마 방송출현횟수 때문이 아닌지..
3집 발해를 꿈꾸며는 가요관련 방송출연 4회에 뉴스출연 9회라는 기록을 본적이..
교육문제, 통일문제.. 윗분들이 보기엔 좋지 않은 주제라 ^^
세브첸코
04/06/03 11:12
수정 아이콘
엄청난 식견에 찬사를 드립니다. 이글 퍼가도 되나요? 먼곳은 아니고 그냥 제 싸이에~~ 더불어 SEIJI님의 저 아랫글도~~
04/06/03 12:10
수정 아이콘
다른건 몰라도 이글에 언급되어있는 듀스에 대해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제가 듀스팬이고 이현도 자서전도 갖고있어서 어느정도는 정확히 알고있는데 '상업적 실패로 해체하셨다.'고 글을 올리셨는데 정확히 말하면
'인지세도 제대로 못받고 댄스가순데 제대로 된 연습실하나 없어서...
그리고 기획사에서 안정적으로 판을 팔릴수있는 음악을 만들라고
계속 권했기때문에.' 라고 합니다 그리고 듀스3집이 30몇만장 팔린게 출처가 어딘지 알고싶고... 윗글에 '93년에 나온 듀스까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벤치마킹이라 그러면 섭할 사람들 대부분일겁니다.' 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무슨말인지 이해가 안가는데요... 설명 부탁합니다.
04/06/03 12:52
수정 아이콘
하이님/ 듀스3집 판매량은 앨범 발매 즈음과 연말 골든디스크 시상식때쯤의 언론보도를 참고로 한거구요, 확실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용하신 문장은 그러니까..
'일부 극성' 서태지 팬들중에 서태지 이후의 댄스 음악들을 서태지의 아류쯤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간혹' 나타납니다.(말조심, 말조심.--;) 거기에 반하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 쓴 부분입니다. 92년의 신해철, 정석원, 천성일등이나 93년의 이현도 정도까지의 싱어송라이터들은 단순히 서태지와 아이들보고 랩댄스하기로 결심한 따라쟁이가 아니라 개성적 스타일과 나름의 음악관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 정도의 의미로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안전제일
04/06/03 14:08
수정 아이콘
듀스는 취향은 아니지만 의미있는 가수였죠.
다만 안타까운 것은 듀스 이후 이현도씨의 행보인데......
59분59초
04/06/03 21:33
수정 아이콘
저도 서태지 세대이자 워크맨세대입니다(-_-;)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신성우(이분 그때는 아이돌스타였다는..), 김종서, 강산에, 윤종신, 이현우(요분 그땐 말썽많았었는데^^;)넥스트, 공일오비, 룰라, DJ DOC, 쿨, 동물원, 여행스케치..... 또 누가 있더라.. 앗 강수지씨 노래도 꽤 좋아했었네요.. 특히 노래방용으로(^^)
어릴적 참 귀가 닳도록 들었던.. 좋아했던 가수들인데.. (물론 지금도 좋아하죠)
그땐 이분들 나 성인될쯤엔 사라지면 어쩌나 혼자 걱정했었드랬죠..
그런데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군요. 왠지 고마운 마음이.. 아~ 그시절이 그립다..
calmlikeabomb
04/06/03 22:06
수정 아이콘
의외로 여자 가수중엔 댄스 쟝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가수들을 찾아보기가 힘들군요.
manic님// 다음엔 '한국 미(소)녀 가수의 계보' 같은 걸 주제로 한 편 써주세요.^^
04/06/03 23:58
수정 아이콘
댄스 베스트 5장 절대 동감입니다!
Return Of The N.ex.T
04/06/04 00:33
수정 아이콘
저역시 듀스출신 이현도님께 무한한 안타까움을..ㅠㅠ
레드드레곤~
04/06/04 01:49
수정 아이콘
베복 이나 핑클 ses 도 나온지 한참 댄거 같은뎅 큰 족보엔 못 껴줘도
20th Century Baby
04/06/04 03:16
수정 아이콘
난알아요가 나오기 1~2년전쯤에 faith no more의 epic이란 곡이 락계에서 약간의 인기가 있었죠.
클럽등지에서 뮤비도 종종 나오곤했었는데요. 앤슬랙스도 랩 넣고 그랬었지만 얘네는 음악이 뭔가 좀더 다른방향이었죠. 신선했다고 할까요.
요새야 락음악에 랩들어가는건 너무나 흔하디 흔하지만.. 당시에는 메탈에다 랩 넣었다고 욕도 많이 얻어먹고 매냐들 사이에서 꽤 멸시 받았었는데 (그바닥이 좀 그렇죠 폐쇄적)
요새는 얘네를 랩메탈의 시조다 아니다 추켜세우기도 하고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그렇더군요.

암튼 난알아요 처음 들었을때 우리나라에도 랩메탈 밴드가 나왔나보네..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티비를 보니 연주를 하는게 아니라 댄스를 하더군요 ;;;;;;
그냥 제 생각으로는 당시의 난알아요가.. 물론 댄스위주로 넘어가긴했지만 랩으로 댄스를 했다는것보다 랩메탈스런 요소가 있는점이 더 특이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설사~ 어쩌면!! girl you know~~~의 편곡이라 할지라도 거의 새로운 곡과 다름없을정도로 아주 잘 만들었구요 (저는 난알아요가 girl you know~~~ 에서 분명 모티브를 얻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쪽)
갠적으로 1집에서 '너와함께한 시간속에서'를 참 좋아라 했지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댓글잠금 통합 규정(2019.11.8. 개정) jjohny=쿠마 19/11/08 392117 0
공지 게임게시판 운영위원회 신설 및 게임게시판 임시규정 공지(16.6.16) [3] 노틸러스 15/08/31 461145 4
공지 공지사항 - 게시판 글쓰기를 위한 안내 [29] 항즐이 03/10/05 629221 13
80712 [LOL] 2025년도 롤 대격변 정리 [41] 퍼그7017 24/11/26 7017 2
80711 [오버워치] [OWCS] 팀 팔콘스, OWCS 초대 챔피언 등극 [10] Riina1913 24/11/26 1913 1
80710 [LOL] 젠지 쇼케이스..이긴한데...Live [18] Janzisuka6387 24/11/25 6387 0
80709 [기타] 활협전 마침내 업데이트? [21] 길갈4091 24/11/25 4091 6
80708 [LOL] 협곡의 새로운 변화: 오브젝트 아타칸 출시 [45] 한입7889 24/11/25 7889 0
80707 [LOL] LPL 최고의 슈퍼팀 거피셜을 보고 [46] Leeka6665 24/11/25 6665 3
80706 [LOL] 앰비션 공식 사과문 [289] Leeka16798 24/11/25 16798 8
80705 [LOL] 순위합 방식을 통한 2025 lck 순위 예측 [75] gardhi8938 24/11/24 8938 2
80704 [랑그릿사 모바일] 통곡의 벽! 황혼의 영역에 필요한 캐릭터들을 알아보자! [16] 통피3816 24/11/24 3816 3
80703 [LOL] 2025 LCK 주전 50인 기준, 라인별 IN & OUT 정리 [15] gardhi7234 24/11/24 7234 3
80702 [LOL] 롤 유니버스의 럭셔리하고 화려한 관짝. 아케인2 [23] slo starer9553 24/11/24 9553 7
80701 [콘솔] 모던 고우키 다이아 공략 - 파동 승룡과 기본기 편 [11] Kaestro5092 24/11/23 5092 4
80700 [LOL] 2024 LCK 어워드 예상은?! [올해의 밈?!] [69] Janzisuka7062 24/11/23 7062 0
80699 [LOL] 롤에서 각 포지션별 중요도는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84] 무한의검제7259 24/11/23 7259 0
80698 [LOL] LCK CL 올프로 현황 [32] 길갈8948 24/11/22 8948 1
80697 [LOL] 조마쉬의 글이 올라왔습니다feat.여기까지 [477] 카루오스23088 24/11/22 23088 0
80696 [LOL] LCK 감독+코치+주전 로스터 정리 > 한화 감독자리만 남음. [64] Leeka7103 24/11/22 7103 0
80695 [LOL] 제우스 선수 에이전트인 더플레이 입장문이 발표돠었습니다. [797] 카루오스30396 24/11/22 30396 1
80694 [LOL] DRX 주한, 쏭 ~2025 / 리치, 유칼 ~2026 오피셜 [53] TempestKim5713 24/11/22 5713 0
80693 [LOL] 기인과 제우스의 에이전시가 같은곳? [50] 찌단7103 24/11/22 7103 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