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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9/09 16:36:48
Name Judas pain
Subject 상실감에 대하여
게임대회의 결승 현장을 찾는 것은 무언가를 공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열정일 것이고, 무엇에 대한 열정인가 하면 내가 즐기는 게임을 나보다 백배는 잘 하는 사람의 플레이를 동경하며 가장 잘하는 사람들 간의 경쟁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에 열광하고자 하는 것이다. ‘프로스포츠는 본질적으로 엔터테인먼트(사회파괴曰)’며, 그 엔터테인먼트가 성립하기 위해선 강자와 일반인 사이의 압도적인 간격이 필요하다. 그 범인의 손으로 닿을 수 없는 존재로 인해 생긴 아득한 거리감이 경외감을 만들고 경외감은 이내 숭고함으로 승화한다. 요컨대 프로스포츠는 경쟁이 이룩하는 숭고함을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다.

물론 이 숭고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어떤 개성이나 자신이 직접 하는 게임 내에서 어떤 종족 어떤 캐릭터 내지 어떤 포지션을 갖는 게이머에게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강자는 언제나 추종자를 만들기 마련이다.

물론 굳이 왜 오락질에 열광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선 2012 9/8일 실황중계 벌레전설에서 수많은 스폰서들이 참여하여 1인이 24인용 군용텐트를 치는 도전을 큰 판으로 벌린 일에 대한 답변에서 찾을 수 있다.

“그거야 우리가 할 일이 없으니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요소를 추출할 수 있다. 성공적인 게임대회가 성립하기 위해선, 많은 그 사람들이 그 게임을 꾸준히 즐겨야 한다. 자신이 즐기고 또한 즐기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프로’가 생기는 것이다.

현대 매스미디어의 흥행이란 요소 그리고 스타에 대한 팬덤 문화와 가쉽 등이 결합되기 때문에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프로전자오락은 전적으로 그 게임이 재미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즐길 때 성립한다. 오로지 그것이 그 게임대회의 크기와 수명을 결정한다.

예비역 ‘LV7.벌레’가 하나의 전설을 만든 그날 용산 전쟁기념관에선 또 하나의 전설이 탄생했다. 온게임넷은 늘 잘해왔던 대로 숭고함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진행과 연출을 했으며 그에 동참하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심지어 어떤 사람은 돈을 내고서 그 현장에 입석했다. 문학적인 수사나 계산된 카메라 연출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많았다. 수많은 소년들이 있었고 비속어가 섞인 수많은 논평이 있었다. 한경기마다 섣부른 비난과 찬사가 오고갔고 매드라이프는 결국 신성을 입증 받았다.

바론 앞에서 아주부 프로스트가 우승으로 가는 길을 돌이킬 수 없게 된 그 순간 어느 소년은 외쳤다.
“이게 바로 매라신이야!”

나는 그때 아릿한 데자뷰를 느꼈다. 그것은 10여년 전 초창기 스타크래프트1이 대회로 발전할 무렵에 결승 현장에 모인 소년들의 외침이었고 내가 그랬듯이 그들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스타크래프트1이 영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들도 알 것이다. 스타1은 영속하지 않았고 LOL도 영속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게임은 게임회사가 사운을 걸고 개발하는 컨텐츠로서 어떤 게임이 충분히 프로게임화 될 만큼 성공할진 알 수 없고 그 게임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을지도 알 수 없다. IT시대의 물건들이 그렇듯이 게임도 짧고 빠르다.

스타1 초창기에 팬들이 관계자와 합심하여 직접 판의 성립과 선수의 보호육성에 개입할 만큼 과잉된 애정을 준 것은 스타1이라는 게임을 자신들이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축구나 야구와 같은 어떤 반영구적인 종목으로 만들려는 열망 때문이었고, 대기업 스폰의 지원을 받아 KeSPA라는 거대한 관료집단-한국의 프로게이머를 관리하는 관료집단-이 들어선 것도 그런 영속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절차였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유지하려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스타1 프로게이머라기보다는 집합으로서의 스타1 프로게이머라는 인적자원이었다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유지하려는 무엇에 대한 관료집단이란 예컨대 그것이 일상화되고 계속될 것이란 기대 하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국가가 그러하듯이.

스타1의 KeSPA가 짜증날 정도로 답답한 행보를 보였던 것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KeSPA의 전략위원회가 사악한 자본가 단체라서기 보다는 아마도 그 구성원들(프로게이머를 포함한)이 관료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관료체제 고유의 관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속하지 않는 대상을 상대로 관료집단은 이제 무엇을 관리하려 들 것인가?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스타1의 세계에서 두뇌회전과 반사신경의 정점을 기술로 승화시킨 탁월한 선인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LOL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자오락 그 자체를 빼고는 어떤 이야기도 전승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어떤 게임은 흥행할 것이고 어떤 게임은 온게임넷의 손으로 숭고한 포장을 받아 축제로 열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대를 넘어 전승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뜨겁게 떠오른 게임 컨텐츠에 대한 극적인 상황극만이 돌아가며 무대 위에 올려 질 것이다. 이것은 프로스포츠라기 보단 차라리 개개의 독자적인 컨텐츠인 극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연극에 가깝다.

그러므로 나는 쇼가 계속되어 하나의 성공적인 게임 대회가 열릴 때마다, 소년의 열망과 동시에 소년의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그것을 견디기 위해 나는 거리를 두고 경기를 관람하리라. 마치 무대 앞 객석에 앉은 관중들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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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09 16:45
수정 아이콘
스타1이 끝나서 서운하시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정붙일 게임이 생겼고, 스타가 그러했듯 10년은 팬들을 즐겁게 해주길 기대해봅니다. [m]
포포리
12/09/09 16:48
수정 아이콘
조용히 추천한번 누르고 갑니다.
오렌지샌드
12/09/09 17:06
수정 아이콘
거리를 두면 이것을 온전히 즐길 수는 없을 겁니다.

이런 저도 블레이즈가 이긴 날엔 이긴대로 일이 손에 안잡히고, 진 날엔 진대로 아무 것도 안돼서 괜히 또 팀에 정을 붙였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요.
느끼는 기쁨의 크기와 상실감의 크기는 비례할 거에요 예전에 배웠던 것처럼.
이카루스
12/09/09 17:26
수정 아이콘
천하장사 씨름대회는 해체되었지만 이만기와 강호동은 천하장사로 남듯이 리그는 없어졌어도 임요환과 장재호, 이영호 등의 이름은 이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되겠죠. 비록 다른 게임이었지만
잊혀진꿈
12/09/09 17:38
수정 아이콘
뭐 KESPA의 이유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로 책임을 돌릴수는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블리자드에서 이 게임 자체에 손을 떼고 관심을 뗀 순간, 이미 미래는 어느정도 보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모씨만 없었으면, KESPA만 없었으면...글쎄요. 그게 쇠락하는 - 즉 신규유저와 신규팬층의 영입이 눈꼽만큼도 없는 -
그리고 개발사로부터도 관심받지 못하는 게임을 극적으로 되돌릴수 있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드네요.
물론 블리자드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도 아닙니다.
단, 이렇게 될 꺼리는 이미 그때부터 생기고 있었다는거죠.
뭐 어차피...이제와봐야 죽은 자식 만지기입니다만...
마이너리티
12/09/09 17:52
수정 아이콘
스타1 리그가 기울어져 가는 이유를 많은 분들이 여러가지에서 찾고 있지만... 솔직히 별로 공감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차원의 이야기네요.
애초에 이스포츠 팬들이 가졌던 두려움, 그리고 외부인이 보는 냉혹한 시선.. 즉 게임이란 장르의 한계에서 비롯된 쇠퇴는 결국 극복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이런 한계를 알아버려서인지 롤이든 스2든 새로운 리그에 대한 제 개인적인 관심이 예전 스1리그적만 못한거 같습니다.
라라 안티포바
12/09/09 18:10
수정 아이콘
저는 스1(임요환 전성기~이윤열 전성기 초중반)->워3(CTB에서 확팩 초중반)->한참 e스포츠에서 거리를 떼다 스타 말기쯤에나 다시 보기 시작해서인지 스1에 대한 특별한 애착같은것은 없습니다. 다만 한때 e스포츠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스타1이 말년에 승부조작이나 굴욕적인 엠겜폐지 등을 비롯해서 참으로 좋지 않게 끝이 났던 것에 마치 역사의 한복판에 있는듯한 그런 느낌이더군요.

티빙 4강때만 해도 선수들 경기력이나 분위기가 엄청났지만, 막상 결승전에는 선수들 경기가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그저 마지막 스타리그라는 감성에 젖기 바빴습니다. 거기에 스2 관전에 나름 성공적으로 적응해서인지 스1에 대한 아쉬움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저에게 아쉬운 것은 제가 LOL을 한판도 하지 않은 롤알못이라 롤챔스는 스2리그처럼 볼 수 없다는 것이네요. 스2의 경우 스1과의 연관성도 있고 해서 딱히 게임을 즐기지 않아도 얼추 볼 수 있지만, 롤의 경우 수많은 챔프들의 스킬특성이나 운영패턴, 아이템과 크리핑같은걸 알지 못하니 감탄해야할 순간에 눈만 껌벅이게 되더군요.

하여간 새로운 시작은 또 하나의 이별을 낳는다는 데엔 공감합니다. 스1리그가 저물었기에 롤리그가 부상할 수 있는 것이겠죠.
그래도 이별이 또다른 시작으로 환원되는 것이 어디입니까. 그렇게 생각해야죠.
라라 안티포바
12/09/09 18:22
수정 아이콘
다만 게임을 즐기는 유저 수 자체가 많은 것은 해당 게임리그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스타1은 지금도 꽤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지만, 스타1로 진행되는 게임리그는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The xian님 말씀대로 피시방이나 집에서 스타1을 즐기는 그들을 리그관람으로 이끌지 못한 요인이 분명히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도 이번 티빙 스타리그 결승전에 동행한 2명은 그냥 친구들끼리 심심할때 스타를 하지만,
공방을 돈다거나 스타리그를 챙겨본다거나 하는 부류는 아니었습니다.
그 중 한명이 스타1 마지막 리그라고 굉장히 아쉬워했는데요,
정작 그 친구도 스타리그 관람을 하는 이유는 마지막이었기 때문이었지 아니었으면 동행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잠재적 수요를 관객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 결국 스1리그가 조금 더 가지 못한 요인이 아니었을까...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네요.
평소에 엄소리라고 무시보았던 엄재경 해설의 이야기도 나름 일리가 있다 싶었습니다.

물론 게임이라는 종목, 전자오락의 자체 내 수명의 한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기에
모든 일이 이상적으로 풀렸더라도 어디까지나 수명연장책일뿐
1세기 이상 갈 정도의 장수는 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캐간지볼러
12/09/09 20:02
수정 아이콘
스타1을 아주 좋아했던 유저 중 한 명으로서 스타1이 생명의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수렴'입니다.
2007년 이후로 고착화된 강자들. 어느 순간부터 당연시 여기게 되는 게임 패턴. 그 패턴을 어기고 승리하면 따라오는 패배 선수들에 대한 '경기력 부재' 질타.
바둑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 더 장수하는 문화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는 저는 '리플레이 저장'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가는 선수를 곧바로 손놀림만 되면 따라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급격하게 절대적인 실력에 대한 '수렴'이 다가왔습니다.
실질적으로 스타1에서 정점은 2008년 경에 완성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 이후에는 판짜기 심리전, 맵에 대한 다양한 응용이 존재할 뿐 패러다임이 변한 것은 없습니다.

아쉽지만 보낼 수 밖에 없는 스타1을 보면서, 앞으로 그런 넓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게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게됩니다.
12/09/09 21:43
수정 아이콘
온겜이 내년에는 꼭 hd채널로 승격되길 바랍니다. 온겜이 없으면 무료할것 같아요.
운체풍신
12/09/09 22:05
수정 아이콘
공감이 가네요. 저도 스타가 영속성을 얻으면서 스포츠로 승화하길 바랬지만 이렇게 사라지고 나니까 게임은 게임일뿐이라는 현실이 확실하게 느껴지네요. 네이버 같은데서 스타 관련 기사에 게임이 무슨 스포츠냐고 비난하는 댓글들 보면 옛날엔 기분 나빴는데 요새는 딱히 틀린 말이라고까지 할건 없지 않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샤르미에티미
12/09/09 22:14
수정 아이콘
본문에 동감하고 그래서 이스포츠는 게임의 다양화로 이루어져야하지 하나에 매달리는 건 정말 나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도의 투자는 꼭 필요하지만 그렇게 많은 게임단과 선수들과 감독들, 스태프들이 반 토막으로
줄어버리는 데에 아무런 대책도 없었죠. 그 후에도 힘 싸움이나 하려 했고요.
innellwetrust
12/09/09 23:23
수정 아이콘
게임팬들의 자각이 여기까지 왔네요...

스1이라는 특별한 경험(생성부터 소멸까지)이 불러일으킨 이러한 자각을 읽는다는 건 묘한 기분이네요..

흥미롭기도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비단 일반 팬들 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 종사자들도 어디까지 그림을 그릴 것인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혼미는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패러다임은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드네요.
13롯데우승
12/09/09 23:39
수정 아이콘
나이 서른 다 된 친구들끼리 모여서 봤는데 정말 스1 이후로 이렇게 빠져든 게임은 처음이고 이렇게 재미있게 중계를 보는 게임도 처음이네요.
참 재밌습니다
갓의날개
12/09/10 00:24
수정 아이콘
스1이 야구처럼 오랫동안 종속됐으면 했던 한사람으로 동감이 가네요.

이런저런 제 생각을 잘 정리해주신거같네요 추천합니다
Abrasax_ :D
12/09/10 01:05
수정 아이콘
지금부터라도 앞으로의 시장을 위해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운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저는 게임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스타1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감히) 동년배와 비교해서 수많은 게임을 섭렵했다고 자부하지만 정말 애착을 갖고 길게 했던 게임은 스타1이 유일했습니다.
스2도, 롤도 시작에 앞서 경기 보기가 힘드네요.
후란시느
12/09/10 01:48
수정 아이콘
한 번의 죽음을 보았을 때, 두 번째 죽음으로 흘리는 눈물은 이전과 같지 않겠죠. 아니 않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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