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
2012/07/11 00:06:36 |
Name |
영웅의등짝 |
Subject |
영무야 고맙다. |
지금으로부터 딱 십 년 전 고등학교 1학년.
어머니의 저녁을 먹으면서 켜서는 안 되는 채널을 키게 되었고 TV속의 모습은 나에게 새로운 충격이었다.
그날 처음 셔틀에서 내린 하이템플러가 벌쳐와 탱크를 지우는것을 보고 '아 벌쳐는 저렇게 잡는 거구나' 라고
생각한 스타 초보는 배틀넷에서 테란 상대로 질템을 뽑다가 20연패를 하고 드라군을 뽑는 법을 알게 되었다.
테란을 상대로 질템을 뽑게 한 , 그리고 후에 드라군을 뽑아야된다는것을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박정석이었다.
그렇게 2002 sky배 결승을 시작으로 스타리그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누구나 아이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박정석의 팬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영웅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 될 줄 몰랐었지만, 박정석은 무언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선수였었고
다른 선수와의 경기와는 다르게 무엇인가 나의 일처럼 느껴졌었고 그래서 사실 따지고 보면 남인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의 경기에
열광하고 아쉬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했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스타리그와의 인연은 2006년에 박정석이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1차적으로 관심이 떨어졌고, 2008년말 군입대를 통해서 경기를 볼 수 없게 되자 조금씩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듯이 결국 나도 스타리그를 완전히 떼어놓지 못하였다. 간간이 경기결과만 보면서 지내던 군대 시절
나의 병장진급을 축하하듯이 군대에 쿡이 보급되면서 그날부터 항상 티비에는 온게임넷이 켜져 있었고 나는 박정석이 아끼는 동생을
응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스타를 보면서 처음으로 최강자의 팬이되었다. 전역 두 달 전에 보았던 이영호의 3회 우승과 KT의 우승은 박정
석을 응원하면서 느낀 안타까움. 그리고 ' 라이벌이라고 쓰고 호구라고 읽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던 KTF가 항상 결승에서 SKT1에 힘 못쓰
고 졌던 그때의 분함을 조금이나마 잊게 해줬었다. 그렇게 나는 스타리그와 예전만큼의 열정은 아니지만 간간이 중요한 경기를 보면서 나의
10대의 추억을 회상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번 T-ving 스타리그가 시작되면서 사실상 마지막 스타리그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고 이제 스타1의 마지
막 챔피언까지 남은 경기는 최소 9경기 , 최대 15경기를 남겨두게 되었고 나는 오늘 허영무의 경기를 보았다.
처음부터 프로토스의 팬이었고 주종도 프로토스인 나는 아이러니하게 나의 마지막 선수로 이영호를 택했었다.
처음으로 최강자를 응원하면서 이윤열, 최연성의 SKT1의 팬들을 심정을 나도 느껴볼 수 있게 되어서 좋았고 이영호의 플레이 역시
단순히 게임 그 이상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허영무의 경기에서 게임 그 이상을 한단계 더 넘어서 나의 모습이 보았다.
프로토스의 팬으로서 당연히 오늘은 허영무를 응원했고 1경기가 끝났을 땐 지난번 4강처럼 3:0도 가능할지 모른다고 설레발을 쳤으나
정신 차린 김명운은 무서웠고 잡았어야 할 3경기를 놓치고 GG를 치는 순간 나의 머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경기 김명운의 토스 입구에서의 에그센스를 보는 순간 희망을 놓기 시작했고, 앞마당이 깨진 순간 솔직히 희망을 버렸었다.
그리고 마치 허영무의 상황이 짝사랑하는 그녀와 다가오기 시작한 취업 스트레스에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기 시작되었다.
앞마당이 깨지고 허영무가 시도했던 삼질럿드랍은 어떻게든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어서 무엇이라도 하는 내모습과 어떻게든 조
금이라도 스펙을 쌓아서 취업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려고 하는 생각을 매일 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러쉬를 보는 순간, 설마가 현실이 되는 것을 오늘 보았다. 솔직히 내가 해도 이겼을 것 같은 상황에서 최고의 저그 중 한
명인 김명운은 무너졌고 허영무는 다시 일어섰다.
살면서 나이가 먹으면서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스타를 보면서도 '역전하면 대박이겠다.'라고 생각했던 어렸을때와는 다
르게 끝까지 경기를 포장해야 하는 해설자들과는 다르게 '나는 이 경기는 끝났네.'라고 먼저 판단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판단을 내렸던 경기는 100% 내 판단이 맞았었다. 오늘 허영무가 이기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나도 때론 놓아버릴까 하고 생각했던 그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될 때까지 취업에 매달리겠다는 두 가지 결심을 오늘 하였다.
친구의 수많은 조언도, 내 수많은 생각도 내리지 못했던 결론을 허영무의 스톰과 질럿과 드라군이 나에게 내려주었다.
앞으로 내가 허영무처럼 참고 참아서 나가는 한방이, 현실과의 타협이라는 GG일지, 내 능력이 현실을 바꾸는 GG를 받을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볼 생각이다.
고맙다 영무야. 결승 꼭 챙겨볼게. 이기든 지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 보여줘.
PS1. 게임내용이 있어서 게임게시판에 작성하였는데 내용은 게임이야기가 별로 없어서 어떻게 해야 될지 애매하네요..
그래도 일단 게임게시판에 올리겠습니다.
PS2. 제대로 이렇게 긴 글을 게임게시판에 올리긴 처음인데 떨리네요. 눈팅만 9년 했는데 이제야 write 버튼의 무게를 실감합니다.
PS3. 오늘 김캐리의 눈물은 모든 스타 팬들을 대표해서 흘린 눈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이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e-sports에 대한 열정은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