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삭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 놓았다.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창세기 22:9~22:10)
바인딩 오브 아이작은 2011년 9월 29일에 출시된 인디 게임으로 슈퍼 미트 보이 제작진의 차기작이기도 합니다. 전작인 슈퍼 미트 보이도 그랬지만 이 게임은 그걸 뛰어넘는 괴기스런 센스로 똘돌 뭉쳐 있습니다. 스팀에서만 판매하며 가격은 4.99달러.
스토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엄마와 단 둘이서 사는 아이작이 주인공입니다. 엄마는 기독교 방송을 열심히 시청하는 독실한 신자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신의 계시(?)를 듣고 나서 아이작은 놀이감을 빼앗기고 옷도 벗겨진 채로 방에 감금당하며 급기야 성서속의 이삭 처럼 신에게 제물로 받쳐질 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아이작은 식칼 들고 죽이려 드는 엄마를 피해서 뭐가 있는 지도 모를 지하로 도망치게 됩니다. 남은 길은 2가지 뿐입니다. 어둡고 차가운 지하 어딘가에서 죽던가 아니면 끝까지 살아남아 엄마와 맞서던가.
<플레이 영상. 대충 이런식으로 진행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기본적으로 로그 라이크식 게임으로 여기에 슈팅 게임을 가미했습니다. 게임의 목적은 제일 깊은 층까지 내려가서 엄마를 물리치는 겁니다. 매층은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방마다 적들이 출현하는데 적을 다 물리치면 다음 방으로 넘어갈 수 있고 매층 마다 있는 보스방에서 보스를 때려잡으면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문이 생기게 됩니다.
<보스전에 돌입하면 이런 식으로 타이틀(?)이 뜹니다.>
로그 라이크 식이기 때문에 매번 게임을 시작할때마다 등장하는 적, 아이템, 보스, 레벨 구성 형태가 전부 다 바뀌게 되며 아이작(플레이어)에게는 단 한번의 생명만이 주어지고 세이브 따위는 없습니다. 죽으면 무조건 그걸로 끝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합니다. 이게 가장 큰 묘미로 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아이템은 수백가지가 넘으며 수십종이 넘는 보스 및 여러가지 숨겨진 요소들은 1번의 플레이로는 다 경험해볼 수 없습니다. 어떤 것들은 반복해서 클리어해야만 등장하게 되며 클리어 횟수에 따라서 엔딩도 달라지기 때문에 1번 깨놓고 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1회 플레이에 들어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편입니다. 짧으면 20분 정도에서 길어도 50분 내외.
대부분의 아이템은 어떤 성능인지 상세한 설명이 없고 써봐야지만 알 수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직접 경험해야 됩니다. (물론 공략본 보면 되지만.) 또한 온갖 적들의 공격 패턴을 숙달해야 쉽게 게임을 진행 할 수 있습니다. 로그 라이크가 그렇듯 게임속 주인공 보다도 플레이어 자체가 단련되는 게임. 그렇다고 너무 어려운 건 아니고 기본적인 게임감만 있으면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대신 게임 클리어 횟수에 따라서 게임 전체 난이도가 상향되는 등 상당히 숙달된 플레이어도 흥미를 잃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아이작이 흘리는 눈물 방울이 기본 공격. 이걸로 온갖 기괴하게 생긴 적들을 다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로 아이작이 아이템을 얻을때마다 겉모습이 확연하게 달라지고 그게 누적되서 반영됩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때는 위의 그림처럼 눈물 질질 흘리는 꼬맹이에 불과하지만 게임이 끝날때쯤 되서 여러개의 아이템을 얻게 되면 괴물보다 더 기괴하고 악마보다 더 사악해보이는 끔찍한 형상을 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심연을 들여다본 끝에 그 속의 존재와 똑같이 되버린 듯한 아이러니.
<어떨때는 천사표가 될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런 엽기적인 몰골이 되기 쉽상>
요즘 나오는 난다 긴다 하는 게임들의 그래픽에 비하면 정말 단순한, 어린애 장난 같은 그림이지만 게임 자체의 재미는 상당합니다. 사실 인디 게임에서 그렇게 대단한 그래픽을 기대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그래픽을 제외한 BGM이나 게임내 컨텐츠는 상당히 훌륭한 편입니다. 5달러 짜리 게임으로 60시간 이상 플레이할 수 있으니까요. 작년 할로윈에는 확장팩급 추가 패치가 있었고 바로 전달 말 무렵에 확장팩 Wrath of the Lamb(가격:2.99달러) 이 출시 되었으며 전주에도 추가 패치가 있는 등 컨텐츠 추가가 매우 다양한 편입니다. 인디 게임 계에서는 꽤나 잘 팔린 모양인데 원래 다운로드 판매만 하는 이 게임이 영국에서 언홀리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한정판 패키지가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인디 게임 중에서 걸작으로 평가 받을 만한 게임이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게임이 플래시 기반이라서 오브젝트가 많아질 경우 심하게 버벅거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용량 인디 게임 치고는 버그가 무척 많은 편이었고 특히 컨텐츠 추가 패치가 있을때마다 버그가 쏟아져나와 정상적인 진행이 어려울 정도 였습니다. (지금은 버그 문제는 거의 다 해결되었습니다.) 또한 스토리와 배경 설정상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 비관적인 분위기다 보니 호불호가 좀 갈립니다. 얼핏 보기에 어린이용 그림 같아보이지만 사실 잘 보면 데드 스페이스의 네크로모프 뺨치는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니까요. 더해서 광신에 빠진 엄마가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설정부터가 독실한 신자분들이 보기에 불편할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에 멈추는 게 아니라 온갖 기독교적, 악마적 상징들이 나옵니다.
<단적인 예,묵시록의 4기수가 보스로 등장합니다.>
<7대 죄악 또한 등장합니다.>
애초에 제목부터 The Binding of Isaac. 창세기의 일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게임입니다.
<확장팩에 추가된 BGM. Penance>
*추천 대상 : 로그 라이크 류 게임, 인디 게임, 기괴하고 음침한 분위기를 선호하시는 분, 파고들 요소가 많은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
*비추천 대상: 스팀 이용자가 아닌 분, 세이브 없는 게임은 질색인 분, 독실한 신자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