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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2/01 01:53:08
Name becker
Subject 엠겜이 떠나가는데 부치다
뭔가 긴 시간동안 글은 적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그 어느때도 해보지 않았던 즉흥적인 태도로, 퇴고 하나 없이, 떠나는 MBC게임을 추억한다.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를 한때 참 좋아했었다. 초밥하나로 일본열도를 정복한다는 뻔하디 뻔한 클리셰,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레파토리중 하나는 무너져가는, 이미 대중과 주류의 찬바람을 강하게 맞아 더 이상 목숨을 부지할수 없게 된, 사연있는 많은 이들이 주인공 세키구치 쇼타의 초밥을 먹으면서 힘을 얻고 다시 한번 일어나 그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나가는 모습이였다. 그 어리던 중학생시절에 보면서도 참 말이 안되는 억지감동이다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나도 모르게 그 억지감동에 휩싸여 세상의 아름다움, 기적, 부활, 뭐 이런것들을 믿고 있었다.

MBCGAME이 폐지된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외로 냉정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태동때부터 스타판은 사실 시한부인생을 띄고 태어난것과 다름없었다. "얼마나 이 바닥이 성장할까"라는 기대보다는 "그깟 게임질이 얼마나 오래 가겠냐" 라는 스타판의 수명을 묻는 비관적인 물음이 주류를 이뤘다. 임이최마고, 택뱅리쌍이고, 그들의 세대교체기마다 들어왔던 말은, 그리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해왔던 말은, 저 정상에 위치한 게이머가 선대의 명분을 이어받아 이 바닥을 살릴수 있겠냐라는 말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말이다. 우리가 봐오고 사랑해온 스타판의 책임을 시스템이 아닌 선수들에게 물어왔으니. 결국 환자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의존한것은 그 환자의 건강 자체가 아니라, 그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능력뿐이였다.

선수들뿐만이 아니였다. 리그가, 해설자가, PD가, 작가가, 스포츠라는 이름하에 우리는 스타판의 수명을 본질을 넘어서 엉뚱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것만 같았다. 시드가 어떻고, 리그제도가 어떻고, 결승장소가 어떻고, 관객수가 어떻고, 그 많은 가십거리들을 왈가왈부하면서 우리는 어쩌면 은근히 그들이 망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그래왔듯이, '그깟 게임질은 오래 가지 않을거니까.'


MBCGAME에 대한 내 감정을 생각해봤다. 추억의 한페이지라는 말이 너무나도 적당해 보였다. 엠겜이 폐지된다는 순간, 이것을 어떻게 살릴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고민을 했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올바른 해답을 찾지 못한 채 2012년 2월 1일 엠비시게임은 그렇게 다른 채널의 이름을 띄고 가고 있었다. 스무도가 어떻고 MSL이 어떻고 테크가 어떻고를 떠나서, 떠내려가는 강물을 역류시킬수 없듯 그렇게 물흐르는걸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분하고, 안타깝고, 원통한 감정을 떠나서 무덤덤하다라는 감정이 가장 앞서는것이 사실 제일 말이 되지 않는다. 엠겜은 분명 그들의 추억의 한페이지보단 내 인생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의 인생에서 더 큰 역할을 한 방송국이였다. 모두가 그렇게 분하고 원통했더라면, 나라를 빼앗긴것 마냥 서러웠다면, 납득할수 없는 불의가 정의를 뒤엎은거라면 이것보다는 좀 더 시끄럽게, 더 크게라도 발버둥치면서,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가 밑도끝도 없는 깽판이나 치면서 엠비시게임의 폐지를 온몸으로 흐느꼈으면 했다. 그런 미친놈 하나라도 나타났으면 사람들이 조금은 더 엠겜을 옹호해줬을까. 나는 이것보단 더 시끄럽게 울어줬을까. 하지만 그 아무도 그렇게 느끼진 않았나 보다. 시청률에, 사장의 독단에, 음악이 먹어주는 대한민국의 섭리에, 돈이 깡패인 비지니스의 원칙하에... 이런 많은 원인들을 모두가 납득하는것만 같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나 마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나보다. 그러지 않고선 이렇게 덤덤하게 글을 써내려 갈 수가 없다.



그래, 엠비시게임에게 쇼타의 초밥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깟 초밥 하나에도 힘을 낸다는데 역시 만화는 만화일 뿐이였나 보다. 엠비시게임이 떠나는데 있어서 바랬던 일말의 기적도, 수많은 팬들과 관계자들이 일어나주길 바랬던 실낱같은 희망도 이제는 굿바이다. 하지만, 그런 희망과 기적을 바라고도 정작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았던 본인 스스로를 보며, 어쩌면 그렇게 스타판을 사랑했던 나 마저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건 고작 게임이였으니까."


MBCGAME, It was just a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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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D.루피
12/02/01 01:57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고작 게임에 불과했지만 저에게는 참 재밌는 게임이었습니다.
용욱우승하자
12/02/01 01:58
수정 아이콘
이미 떠나보낸 엠겜이나
이미 흘러버린 내 청춘이나 매한가지인거 같아 가슴이 쓰리네요
전 감성적인놈은 아닌데 오늘 왜이렇게 술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꿈꾸는꿈
12/02/01 03:48
수정 아이콘
그래도..저에겐 추억이였어요..
정말 보내는 건 아닌데.. 환경은 그렇치 못하네요.
Ace of Base
12/02/01 04:08
수정 아이콘
아오 캐~씌~~~~~~~~~~~~

저도 요즘 pgr눈팅만하지만 오늘만큼은 할말 참 많은데 분을 삭히는게 최선인가봅니다.
슬프기보다는 분노가 아직도 지배적이네요.

교통사고 뺑소니에 보낸 가족을 문상 치르는 기분입니다.
RegretsRoad
12/02/01 05:14
수정 아이콘
참.. 안타깝네요 [m]
the hive
12/02/01 12:40
수정 아이콘
마재윤-원종서-김재철-안현덕 이인간들 MBC게임 부활하는 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jTBC의 심정을 알겠네요
열혈남아T
12/02/01 17:59
수정 아이콘
잘가요. 나의 엠겜.....
날기억해줘요
12/02/02 11:29
수정 아이콘
글 자체만 보면 무덤덤하고 시크한 느낌인데.
읽고 나서 가슴이 왜 이리 서글픈걸까요
하나린
12/02/02 17:36
수정 아이콘
베커님 글은 언제나 이렇게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것 같네요.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추억의 종막을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너무 늦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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