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소모적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 전제를 달겠습니다.

지금의 스1 리그의 위기는 일시적이거나 극복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혹은 극복하지 못해서 리그가 사라질 경우라도 e스포츠판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거나 혹은 스1이 아닌 e스포츠는 망해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굳이 아래 내용을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즉, 이 글은 스1리그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이대로 방치하면 스1리그 뿐 아니라 스1리그에 무게중심을 둔채로 운영되던 e스포츠판 자체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전제를 공유하는 분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굳이 이런 전제를 늘어놓는 이유는 비슷한 토론을 했던 포모스나 이곳 PGR에서 역시 단지 '스1리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자체로 감정이 상해서 격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도 스1리그의 지속 가능성을 믿는 분들이라면 저와 기본적인 전제 자체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토론으로 입장을 좁히는 건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냥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의견을 존중하고 넘어가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블리자드가 양대 방송사 대신 그래텍과 손을 잡은 것은 큰 실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냐 그르냐, 또 양대방송사와 손을 잡지 못한 것이 누구의 책임이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스2 중심으로 e스포츠 판을 키우려는 것이 블리자드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전제로, 그래텍에 2013년까지 스2의 독점 중계권을 준 것은 그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는 행보였다는  주장일 뿐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미 아래 두 글에서 쓴 적이 있습니다 :
https://pgr21.com/zboard4/zboard.php?id=free2&no=44405
https://pgr21.com/zboard4/zboard.php?id=starcraft2&no=2487
)

이러한 문제제기의 핵심 전제는 이렇습니다 :

(1) 그래텍의 독점이 끝나는 2013년까지 스1리그가 존속하면서 스2로 자연스러운 이행을 바라긴 어렵다.
(2) GSL의 흥행 추이를 보면, 기존 양대방송사를 필두로 하는 스1 리그 중심의 e스포츠판에 필적하는 스2 중심리그를 위한 수요를 단기간에 창출하긴 어렵다.
(3) 2013년 이전 스1리그가 종료될 경우 스1의 파이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반면 스2의 파이는 스1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4) (3)을 해결하기 위해 2013년 이전이라도 양대 방송사가 스2로 자연스럽게 이행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5) 하지만 (4)를 위해서는 독점계약 문제도 풀어야하고 무엇보다 스2의 파이가 스1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상 3개 방송사가 나누어 가지는 구도는 성립하기 어렵다.

이렇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줄어드는 스1의 파이를 양대 방송사가 어렵게 나눠 먹고 있었다면 그보다 더 작은 스2리그의 파이를 양대방송사와 그래텍까지 3개 방송사가 나눠 먹어서는 도저히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양대방송사가 스2에 진입하려면 블리자드가 GSL의 흥행에 불만을 가지고 그래텍을 버리는 식의 무리수가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블리자드가 처음부터 곰티비에게 독점계약을 준 것 자체가 e스포츠 판에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엠비씨게임이 사라진다면 (5)의 전제가 변하게 됩니다. 즉, 3개가 아닌 2개의 방송사가 스2의 파이를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며 특히 엠비씨게임에서 퇴출이 불가피한 해설진, PD등이 그런 면에서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래텍과 결합해서 새로운 양대리그를 출범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마침 곰티비의 안준영 해설이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것도 호재가 될 것입니다).

이 경우, 앞서 토론했던 내용대로 협회의 주도로 1군 출전이 어려운 2군 선수부터 스2로의 전향을 적극 지원하고 기존 프로구단들이 해체하는 대신 스2로 점진적으로 이행할 로드맵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당분간 스1과 스2리그를 병행하게 되는데, 이 때 2013년 이전 스2리그를 온게임넷에서 방송하기 위해선 그래텍의 양보가 불가피합니다. 이 부분을 협회차원에서 지원을 해서 서브라이센싱을 하던지 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기존 엠비씨게임의 인력을 흡수한 곰티비를 '양대리그'라는 이름에 걸맞는 지위로 대접해준다면 충분히 큰 틀에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협회 입장에서는 2013년까지 무리해서 스폰을 유지하며 스1리그를 끌어 가다가 그래텍과 정면대결을 통해 스2 중계권을 뺏어오는 대신, 조기에 스2로의 자연스러운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텍의 입장에서도 GSL의 지지부진한 국내흥행으로 인해 만일 2013년에 블리자드가 양대 방송사에도 스2 중계권을 주는 날에는 가뜩이나 부족한 스2의 파이를 인터넷이라는 배포 채널의 한계가 없는 양대 방송사와 경쟁해서 나눠야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비록 엠비씨게임의 게임방송 중단은 심정적으로 안타까운일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e스포츠의 존속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호재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