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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6/16 01:31:13
Name I.O.S_Daydream
Subject 보내고 싶지 않은데. 정말 보내고 싶지 않은데.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중



2년 전에 김준영선수가 떠났을 때였습니다.
그 때 참 기분이 울적했었죠.
제가 두번째로 좋아하던 저그 선수였는데, 정말 좋아하던 선수였는데,
이제 다시는 그의 경기를 볼 수가 없구나...
씁쓸하고 많이 서운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게 두번째네요.

처음에는 그냥 약간의 놀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무슨 생각으로 마우스를 놀렸는지 모르겠네요.
떠날 때가 됐구나. 정말 이제 그도 떠나는구나.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서운하고 씁쓸합니다.
너무 서운하고 너무 억울합니다.
이렇게 보내기는 싫은데. 정말 이렇게 보내기는 너무 싫은데.

2006년 6월, 제가 한참 방에 박혀 있을 당시에,
제 친구가 스타리그라는 게 있다는 걸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때가 한창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을 하고 있을 때였고,
홍진호의 폭풍에 관심을 가지면서,
저는 조금씩 홍진호라는 사람의 팬이 되어 있었습니다.

듀얼토너먼트 패자전에서 심소명선수 라오발에서 잡고 기사회생하고,
러시아워에서 차재욱선수를 상대로 최종진출전에서 이겨서 스타리그 진출하고,
전상욱선수 상대로 815에서 벙커링 막고 러커 비비기 역러쉬로 승리,
변형태선수 상대로 러시아워에서 디파일러 운영을 보여주며 승리,
송병구선수 상대로 백두대간에서 히드라 몰아치기로 승리,
3승으로 16강 진출하고,
16강에서 이병민선수 상대로 2승, 8강에서 최가람 상대로 1패 후 2연승 및 스타리그 100승 달성,
4강에서 한동욱선수를 만나서 분패하고
감기 걸린 상태에서 3/4위전에서 변은종선수 잡고 3위 차지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2008년 6월의 더운 날 이윤열선수 상대로 가글링을 보여주며 타우 크로스에서 승리하고,
공군에 입대해서 2009년에 김택용선수를 잡아내고,
그런, 제가 직접 보았던 그의 경기 하나하나가 여전히 눈에 선하건만...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네요.

너무 슬퍼서, 너무 안타까워서 글을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고,
제가 저그를 잡은 계기가 되었고,
제가 가난한 운영을 선호하는 계기가 되었고,
제가 스타크래프트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걸로 친구를 사귀고 일상생활에서 힘을 얻는 계기가 된 선수였는데...
더 이상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허탈하네요.

우승 그런 거 상관없어요.
나와서 10연패, 아니 100연패를 해도 상관없어요.
그냥 한 경기 등장해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나오는 걸로 만족하고, 게임하고 있는 그걸로 만족하고 있었고,
그걸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데...
이건 아니잖아요. 정말 이건 아니잖아요.
전역하고 경기 기다리게 해 놓고 은퇴경기도 없이 이렇게 떠나는 건 정말 아니잖아요.


너무 서운하고 답답하고 슬픈데, 정말 너무나 슬픈데,
마음 같아서는 억지로라도 연습실에서 마우스 잡고 다시 게임하게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어서 오히려 스스로에게조차 화가 나고 서운하네요.
조금 더 관심을 가질걸. 오프 더 뛰고 방송에서 더 보고 싶다고 조금이라도 더 어필할걸.
아니, 스타판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질걸.
원래 절대 후회 안 하는 성격인데, 이번 일만큼은 후회도 물밀듯이 밀려오네요.

보낼 수밖에 없다는 거 알지만,
서운하다는 말밖에 못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기다리고, 응원할래요. 어디서든.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은퇴한다고 했으니까 도전하는 곳에서 응원하면 되겠죠.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이 했어요, 홍진호선수.

Goodbye, YellOw.







PS.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 역시 한용운의 <님의 침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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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어참치
11/06/16 01:34
수정 아이콘
다른 누구보다도 훨씬 더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것만 같네요 ㅠㅠ
누구나 그렇지만 저도 이 선수가 다시한번 재기에 성공하고 개인리그에 올라가서 우승컵을 거머쥐는 상상을 가끔 하곤 했었어요.

그러면 가끔씩 올라오는 몇몇 글들처럼 그날만큼은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흔드는 유례없는 축제가 될 거라고 농담삼아 얘기 하기도 했었구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누구의 팬인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홍진호 선수를 좋아했고
다들 이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10년간이나 아껴뒀던 이야기의
화려한 마지막을 정말로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기분좋은 상상을 할 여지마저 사라졌다는게 정말 아쉽습니다.
지금 떠나는 위대한 프로게이머를 어떤 모습으로 보내주어야 하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네요.
서주현
11/06/16 01:34
수정 아이콘
홍진호 선수의 선택은 물론 존중하고 싶지만...

그래도 은퇴경기 딱 한 경기만 어떻게 안 될까요.

딱 한 번만...
너구리매니아
11/06/16 01:35
수정 아이콘
가슴이 먹먹하네요..
Over The Horizon
11/06/16 01:37
수정 아이콘
아...
YellOw.
라는 말도 이제...
Han승연
11/06/16 01:37
수정 아이콘
홍진호선수 최소한 한경기는 출전해야죠 전역후 경기도없이 이렇게 은퇴하는건 아니잖습니까..
11/06/16 02:29
수정 아이콘
아 파란만장한 게이머생활이었는데 ㅠㅠ 진짜 은퇴전이라도 했으면 좋을것을 ㅠㅠ
11/06/16 02:50
수정 아이콘
은퇴전을 기원하며 댓글 남겨봅니다.
KT 관계자분들도 분명 피쟐은 모니터링 하실거라 생각됩니다.
사람two
11/06/16 03:02
수정 아이콘
음...4대천왕중에서 남은건 박정석선수 하나뿐이군요...
그런데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 선수 모두 제대로된 은퇴식이 없다는 점은 정말 아쉽네요...
하다못해 김정민 해설위원 군대갈때에도 잘다녀오라고 온게임넷에서 뭔가 해주었는데...
협회나 구단에서 좀...뭐 좀...없나요???
DarkSide
11/06/16 05:07
수정 아이콘
아 ........... [NC]Yellow 홍진호 ............

KT 온게임넷 스타리그 왕중왕전 "우 승 자"

저그의 역사, 저그의 산 증인, 저그의 아버지, 저그의 모든 것 ........
11/06/16 05:58
수정 아이콘
언젠가 반드시
오로지 당신을 위하여 준비된
그 날이 온다.

그러니 그 때까지
어디로도 사라지지 말고 싸우라.

비운의 저그로서 오로지 당신만이 가질 수 있었던 건
그 동안 수많은 적수들과 쌓아온 나날과

그리고 그 싸움과 좌절 속에서 결코 도망치지 않았다는
바로 그 긍지다.


가지 마요...
아직 당신의 날을 보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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