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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1/05/26 02:02:42 |
Name |
王天君 |
Subject |
凡人이여 손을 뻗어라 |
내가 스타를 볼 때면 다른 친구들의 이런 저런 소리가 거슬릴 때가 있다. 이렇게 유치한 게임 따위를 왜 보고 있느냐는 핀잔은 둘째 치더라도, 어떤 선수의 플레이나 게임 양상에 대해서 떠드는 문외한의 비평은 감상에 무척이나 방해가 된다. 교전시 캐리어나 뮤탈 같은 핵심 유닛들이 전멸했을 때, 멀티 하나가 접전 끝에 밀렸을 때 gg 선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스타에 별 관심이 없는 친구가 하는 소리가 무척 고깝게 들렸다.
“뭐야, 저 놈 왜 저리 근성이 없어???”
진 선수와 이긴 선수 모두가 찌질한 놈이 되는 순간이다. 저 선수가 왜 게임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지, 얼마나 불리한 상황인지를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싶어도 공방을 넘나드는 내 수준에는 사치스러운 입스타다 싶어서 관두고 만다. 유닛 하나, 건물 하나, 그리고 그것들을 0.1초단위로 수십번 클릭하고 드래그하는 손질 한 번에 승리가 왔다갔다 하는 이 심오한 게임을 단순히 근성론으로 바라보는 그 친구가 꽤 답답하게 느껴졌다. 게임에서 안나가고 버틴다고 딱히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난다 긴다 하는 best of best로만 이루어진 이 스타판에서 저런 정신론을 들먹이는 건 명백한 실례다. 허를 찌르는 기발한 전략, 심리전, 미세하지만 엄청난 컨트롤,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냉철한 상황판단,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 등 프로들이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다른 요소를 가지고 말을 하면 모를까, 이기고 싶다 라는 열망과 끈기는 한 게임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마땅히 논외로 쳐야 할 부분이다. 분명한 것은 이 스타의 달인들 가운데에서도 좀 더 나은 자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무언가 미세한 차이가 다승왕과 패왕을 낳고 골든 마우스와 피시방의 지배자를 나눈다. 근성을 불태운다면 그 미세한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라는 자문에 나는 항상 no라고 답하는 쪽이다. 재능이 있으면 자만하고 게으른가? 천만에. 스타판에 그런 선수는 아무도 없다. 근성은 기본이다. 근성없고 투지 없는 선수가 어디있다고. 너무나 당연한 것을 가지고 그것 때문에 졌다 이겼다 하는 것 떠드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인 것이다.
항상 스마트하게, 쿨하게 스타판을 감상하던 나에게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린 최초의 플레이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변형태다. 특히 김택용과의 8강 경기는 시작했을 때, 그리고 끝났을때 나도 모르게 이야 변형태 하고 그의 이름을 토해낼 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 1경기, 감춰뒀던 노림수가 들키더라도, 상대방이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라도 그는 돌격 앞으로를 외쳤고. 승리의 기치를 적진에 내꽂았다. 5경기, 자신의 힘이 빠져가는 순간에도 그는 상대의 발목을 붙잡고 악착같이 매달리며 패배의 수렁에서 스스로를 건져냈다. 김택용과 비교했을 때 변형태는 무엇이 앞서는가? 컨트롤, 전략, 물량, 피지컬, 그 객관적인 능력치를 묻는 질문에 있어서 “나쁘지 않다” 라고밖에는 대답할 수 없는 이 선수의 승리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 변형태가 이길 수 있는 이유가 근성 때문인지는 잘 모른다. 그래도 분명히 경기가 끝난 뒤에 컨트롤이니 심리전이니 하고 경기를 이리저리 재는 대신 보는 내가 뜨겁다고 느낄 만한 무언가가 경기 내에서, 변형태의 안에서 타오르는 듯 보였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삼성의 조기석, STX의 이신형 선수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 선수들의 경기는 변형태의 경기처럼 그 안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몇일 전 cj 조병세 선수에게 거둔 조기석 선수의 승리와 화승 이제동 선수에게 거둔 이신형 선수의 승리는 팬도 뭣도 아닌 내가 경기가 끝났을 때에는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기 내적으로 그들이 뭐가 그렇게 뛰어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컨트롤이라거나 병력 운영 같은 이런 저런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경기가 끝난 뒤 부스에서 나와 인사하고,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이 오히려 인상 깊게 느껴졌다. 뭔가 이상하다. 경기에서 감동을 받았는데 경기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니. 그들의 승리를 “잘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왜 무례한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들의 경기는 다른 경기에서 느끼는 재미와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두 선수에게서 스타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많이 점치지는 않았다. 누군들 그랬을까. 조기석 선수의 데뷔전에서는 왠 어리벙벙한 애가 영 미덥지 않은 경기를 하는구나 싶어서 같은 팀의 박대호 선수에 더 눈길이 갔다. 이신형 선수는 데뷔전을 치르기도 전 곰티비에서 무슨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나왔지만 연습생 꼬꼬마처럼만 보였지 stx의 에결을 책임질 선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다른 신인들이 갑툭튀해서 택뱅리쌍을 때려잡고 4강 결승에 가며 자신의 가능성을 활짝 펼쳐보이고 있을 때 그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켜왔고 그저 그런 선수들 중 하나로만 존재했었다. 옆집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외모에 무난한 경기 스타일, 평범 그 자체인 이 선수들은 승과 패를 쌓아가며조용히 자신의 내공을 다져 마침내 오늘날에 이르렀다.
신예의 패기라거나 미친 듯한 경기력이 돋보이지 않는데도 이 선수들의 경기에서 느껴지는 찐한 무언가의 정체는 무엇인가. 재능, 소위 말하는 특별함에 맞서는 보통 인간의 끈기와 의지, 즉 근성을 느꼈다면 그것은 이 선수들의 재능에 대한 나의 과소평가일까?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마린메딕을 찢어발길 이제동의 뮤탈과 러커를 맞서 0.8방 스캔러쉬를 결행하는 이신형에게서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도전하는, 스스로 가능성을 만드는 한 인간을 보았다. 자신의 병력과 자원이 열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따라가고 움직이는 조기석에게서 나는 희망을 놓지 않는, 치열하고 끈질긴 한 인간을 보았다. 어렵다, 힘들다고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 그들은 상대를 쳐다보고 두려운 가운데에서도 손을 뻗었다. 희고 가느다란 귀족의 손도, 억세고 커다란 장사의 손도 아니었지만 그들의 손은 승리를 움켜쥐었다. 생채기 투성이의 손, 땀으로 범벅이 된 작은 그 손으로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 동안 나는 한 게임 한 게이머를 콩쿨 심사위원처럼 이리저리 재며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프로이기에, 혹은 신이고 천재며 영웅이기에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며 항상 동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보고, 그렇지 못한 자는 내려다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변형태, 조기석, 이신형 이 선수들은 테크닉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을 나에게 가르치는 듯 하다. 나는 이와 싸우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 곳을 응시할 수 있는 눈과, 지긋이 방아쇠를 누를 손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벌써 의지의 총과 행동의 총알을 지닌 인간이니까. 나는 감히 그들의 경기를 채점하지 못한다. 같은 인간으로 기대하고,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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