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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1/04/20 15:53:34 |
Name |
王天君 |
Subject |
김민철 대 정명훈 감상문 Queen over the Emperor |
무엇을, 어떻게 - 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테란과 프로토스에 비해 많이, 잘 - 말고는 딱히 포인트가 없는 저그는 어쩔 수 없이 단순해 보인다. 디파일러라는 마법유닛의 발견은 저그라는 종족이 그저 미니맵을 얼마나 자신의 색으로 칠하는가 박리다매의 종족이 아니라 제법 세련되고 심오한 종족임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저그의 미덕은 생산 그리고 퍼붓는 것으로 대표된다. 이 최종목적,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기 위해 중후반까지 공격을 견디고 피해야 하는 전쟁양상 때문에 저그는 주연보다는 조연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현 저그 top 이제동의 테란격파는 다소 역설적이다. Mass의 종족 저그를 보다 세밀하게, 예민하게 다루는 그의 아슬아슬한 손짓은 분명히 모든 저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저그의 본질인지, 명백한 정답인지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가 아무리 날렵하게, 신속하게 움직여도 패배했을 때에는 어쩔 수 없는 저그의 한계를 엿본 듯한 느낌이 든다. 저건 저그가 강해진 게 아니야, 이제동이라는 인간이 특별한 거지, 하고 내뱉는 한숨 속에서 더, 더, 더를 외치는 것은 사고에 게으른 자들이 내놓는 미련한 기도처럼만 들린다.
결국 이제동의 역설적 방법론을 다시 순리로 되돌린 자가 있으니 궁극의 테란, 깨달은 자 바로 이영호다. 첫 우승을 거머쥐는 그 순간 그가 이제동을 상대할 때 집중한 것은 테란의 본질 - 강대한 화력이었다. No matter how much you are, how fast you are. 내가 모든 공정을 끝마쳤을 때 당신의 그 생명력은 단지 이 총구 앞에 들이밀어진 요릿감일 뿐이오 - 라고 선언하는 듯 3·3 업, 인구수 200의 병력은 이제동이 지휘하는 모든 생명체를 살코기로 짓이겨놓았고 뻔뻔한 그의 승리 공식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이후 저그들은 바이오닉의 효율과는 또 다른 메카닉의 견고함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이후 메카닉은 맵을 불문하고 여러 형태로 나타나면서 저그에게 더 복잡한 숙제를 안겨주었다. 정명훈이 선보이고 이영호가 완성시킨 테란의 마지막 정리 - 레이트 메카닉은 울트라를 100마리를 뽑고서도, 가스멀티를 6개 먹고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저테전 사상 최악의 난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초반, 중반, 후반까지 주도권을 가지고 가면서 자원 병력 체제 그 무엇 하나 꿀릴 것 없는 상황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도대체 저그는 무엇을 해야한다는 말인가? 축구를 좋아하는 어느 테란은 레이트 메카닉만 가면 저그가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인터뷰에서 공공연하게 확신을 내비췄으며 여태까지 정립해놓았던 승리 공식들을 가지고도 유망한 저그들은 문제를 풀지 못했다. 레이트 메카닉 = 테란의 승리 라는 이 공식의 오류는 이전처럼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퍼붓는 저그의 본질위에서는 증명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길이 막혔다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웅진의 어느 한 저그가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은 길 위에 발자욱을 남겼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숲을 벗어나 날아올랐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테란이 잠가놓은 육중한 자물쇠는 퀸이라는 열쇠에 의해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내며 결국 열리게 되었고 정명훈의 gg가 모니터에 떠오르는 순간 풀리지 않던 문제를 푼 마냥 내 가슴 한 켠이 후련해졌다. 가히 신대륙의 발견이오 새로운 발명품의 등장이 아닌가. 김민철의 퀸을 활용한 플레이에서 나는 저그가 이렇게 참신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와 동시에 김민철과 정명훈의 대결은 서로 어떻게 맞물리며 순환하는지를 보여주는 테저전 전략사의 분기점처럼도 보인다. 이영호의 메카닉을 울트라로만 꽉 채운 오버로드 드랍으로 대인의 면모를 뽐냈던 웅진 저그의 우두머리 김준영, 그리고 그 김준영을 새로운 메카닉으로 압도하며 로열로더에 도전했던 정명훈, 레이트 메카닉에 가장 근접한 해답을 내놓았던 김명운, 그리고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 레이트 메카닉을 파해한 김민철까지, 그 게임은 그 안에 이제까지 흘러왔고 앞으로 변해갈 ‘역사’가 살아있는 게임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자, 그리고 그 자가 지키고 있는 문을 연 또다른 히어로, 무너뜨린 자가 무너진 자의 後學후학에게서 다시 무너지는 이 아이러니에는 단순한 복수, 우연이라고 칭하기에는 훨씬 오묘한 무엇인가가 숨어있는 듯하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게이머가 게임을 하는 한, 이 스타판의 역사 또한 그 톱니바퀴를 끝없이 돌려가며 종을 울리고 어딘가를 가리킨다. 아직 끝나지 않은 흐름은 어딜 향해 흘러갈 것인지, 그 결착은 테란의 라스트맨 스탠딩 이영호에게 구해야 할 것이다. 전 맵을 이영호의 기지로 점철되는 굴욕을 또 다시 맛보며 flesh by Flash로 전락하고 말것인가? 혹은 그를 만나기도 전에 들고있는 新zerg의 불씨를 꺼트릴 것인가? 김민철의 ‘퀸’이라는 새로운 해답이 이영호 앞에서도 오류가 검토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분명히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 틀림없다. 나폴레옹이 제국의 깃발을 꼽지 못했던 나라 영국처럼, 한빛에서 이어오는 웅진의 전통과 역사의 기치를, 데뷔무대를 올킬로 장식했던 파격적 가능성을 곧 몰려들 테란의 포화 앞에서 지켜낼 수 있기를. May the Queen be with you!
문제. 다음 공식에서 x에 대입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x + 히드라 ) - ( 탱크 + 벌처 + 마인 +터렛 + 베슬 ) = zerg
덧붙임. 솔직히 김명운의 팬으로서 조명세례를 가로채인듯한 느낌에 아쉬운 것도 사실.
덧붙임. 팀이 제국을 지칭하고 있어서인지 정명훈은 유독 퀸이 나오는 경기에 험한 꼴을 많이 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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