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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1/31 17:31:39
Name 王天君
Subject 황새 함정에 빠지다, 다시 날아오르다.
결승전이 끝난 지 이틀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속이 쓰리다. 내가 응원하는 선수가 아무것도 못하고 개박살이 나는 꼴이나 구경하려고 여기까지 와서 몇시간동안 떨면서 이 생고생을 했단 말인가 부글부글 끓는다. 전라남도가 고향이고, 염주체육관에서 편하게 버스타고 가면 되는 나도 그 허무함에 시달렸는데 서울에서 버스를 빌려타고 오신 분들은 돌아가는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텁텁하게 느껴졌을지. 이 글을 빌어 그날 울분과 허탈함에 시달렸을 뱅빠 동지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응원하는 선수가 항상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그 맥빠진 경기 내용과 스코어를 보고 있자면 굳이 팬이 아니더라도 혀를 찰 노릇이다. 그것도 벌써 두 번째, 같은 장소에서 같은 종족을 상대로 셧아웃을 당하는 사례는 전무후무한 역사로 남게 되지 않을련지. 같은 실수를 고대로 되풀이하는 그 우둔함은 코치진이니 감독이니 다른 곳을 보고 꾸짖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승을 앞둔 팬으로서도 이상하리만큼 긴장되지도, 설레지도 않던 나만큼이나 송병구도 들떠있었을 것이다. 상대는 테란, 맵도 참으로 좋은데다가 벌처 빼면 딱히 까다로울 것도 없는 정명훈이란 상대 앞에서 우리 모두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스타리그 우승이라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승 장소 또한 이 웃지 못할 희극에 한 몫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는데, 이전에 한 엄청난 실수를 하던 때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긴장을 풀려는 것이 지나치게 사람을 느슨하게 한다는 것이다. ‘에이 설마, 저번에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는데, 이번에도 설마 그럴려구? ’ 하고 넋을 놓고 있다가 Great Mistake season 2,3를 여지없이 찍고 마는 것처럼 지난 날의 과오는 사람을 여러 형태로 괴롭힌다. 누가 봐도 그 날의 송병구는 나사가 하나 풀려있었다. 다른 쪽을 너무 조이느라 비어있는 구멍을 그냥 지나치고 만 것처럼.

  택뱅리쌍의 한축이자 갓영호의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현 스타판 최강자 중 한명 송병구. 그와 동시에 상대전적 10:0의 상대를 만나더라도 지는 게 이상하지 않은 아스트랄 라인의 한명 송병구. 안정감과 불안감이 공존하는 이 딜레마는 그가 게임을 할 때 풍기는 우직함 때문이다. 무결점의 총사령관이라는 그의 별명이 그가 게임에서 지향하는, 가장 잘 할수 있는 바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를 부르짖는 대신 그는 그냥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데 집중한다. 무결점이란 별명은 멋지게 들릴지 몰라도 사실은 별 거 아니다. ‘실수하지 말자’ 로 축약되어버리는 이 심플함. 그의 플레이에서는 스포츠의 본질인 경쟁보다 무도의 본질인 자기 단련의 성질이 더 강하게 보인다. 그래서 그의 게임은 속도, 힘, 또는 독기같은 비범한 포인트가 없는 대신 무난하지만 고전적이고 정통파의 그윽한 맛이 있다. (아마 이런 부분이 최강을 부르짖는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일지도)

그러나 고전은 혁신과 파격 앞에서 결국은 역사의 흔적으로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상대방과 전투를 벌이고 승리를 쟁취하는 스타크래프트의 본질은 경쟁이다. 이소룡이 절권도를 만든 계기는 자기 단련의 숭고한 이상 속에서 몇천년이나 꿈을 꾸는 중국권법이 당장 내 앞의 적을 쓰러트릴 수 없던 한계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언제까지나 기왓장을 격파하고 소나무 아래에서 참선을 하면서 강하다는 자아도취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쓰러진 상대방을 내려다봤을 때 확인할 수 있다. 무도가 가장 실용적인 순간은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서 지켜낼 수 있을 때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결승전에 우직함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던 송병구를 “순진하다” 고 꾸짖고 싶다. 스타리그 결승이야말로 가장 절박하고 위험천만한 순간이다. 그곳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면 여태까지 자신을 지켜오고 다른 이를 쓰러트린 의미는 온데 간데 없어진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가보자. 나는 송병구의 게임 스타일을 ‘The Shield of Aegis"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이는 송병구가 항상 선수후공의 세를 취하고 게임에 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 속 모든 것을 막아내는 절대무적의 방패처럼, 그는 모든 공격을 막아주고 그 후에 생기는 틈을 찌르며 경기를 가져가겠다는 의도로 게임을 진행시키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데, 이상적이지만 참으로 안일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이소룡이 괜히 ’공격이 최선의 방어‘ 라고 주장했겠는가? 사람이 제 아무리 빨라도 0.1초간의 간격으로 벌어지는 상황에 전부 대응할 수는 없다. 그것은 apm300~400의 속도로 흘러가는 스타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공격을 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라는 소리가 아니다.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적극적으로 풀어가려는 의지가 엿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3경기야말로 송병구의 우직함이 느긋함으로 변질되어버린 절정의 순간일 것이다. 막고 막고 또 막고. 그리고 끝은 막을 수 없는 공격 앞에 무너지는 일 뿐이었다. 모든 무도는 공격을 단련하지 방어를 단련하지 않는다. 적을 쓰러트리는 것은 지쳐 쓰러질때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먹과 발로 직접 때려눕혀야 하는 것이다. 공격은 이 주도권을 빼앗는 가장 기초이고 기본이다. 최소한 결승전에서만이라도 그는 자신의 지향점을 조금은 다른 곳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가 그만의 이상을 포기하고 날빌을 질러대고 도박수를 두며 게임에 임했을 때 비로소 그리도 꿈꾸던 우승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송병구에게 가장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라고 닦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변화를 포기한 그가 가슴 시리게 부딪혔던 한계를 이제는 더 이상 겪게 하지 않고 싶을 뿐이다. 마지막에서 번번히 무릎 끓었던 비참한 패배자의 모습을 더 이상 그와 겹쳐보이고 싶지 않다. 이제는 다른 의미로 모두의 기대와 예상을 뒤엎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우승은 영영 물건너갔다고 씁쓸히 웃던 사람들 앞에서 꽃가루와 샴페인을 뒤집어쓰고 환히 웃던 그의 모습을. 한동안은 일어서기 힘들거라는 걱정 속에서 보란 듯이 하루도 지나지 않은 유통기한 따끈따끈한 복수의 일격을 날리는 그의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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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왕자
11/01/31 18:03
수정 아이콘
송병구 선수 처참하게 무너지고 나서,
송병구 선수 또는 택뱅리쌍 관련된 글이 그것도 고퀄리티의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다니..놀랍네요

잘 읽고 갑니다~~
11/01/31 18:09
수정 아이콘
미련해 보일 정도의 우직함때문에 결승에서 패했지만, 다음날 복수를 성공하게 만든 것도 그 우직함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송병구 선수의 방식을 지지합니다. 그가 지금의 엄청난 팬과 인기를 얻게 된 것은 그동안 자신의 길을 관철해왔기 때문입니다.
패배는 두 번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반복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밑의 키메라님 소고 중 송병구 선수에 관한 내용, 애니메
이션 그렌라간의 명대사 '나는 일분 전의 나보다 진화한다.' 처럼 다시 결승에 올라왔을때 그는 더 진화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변화와
파격일 수도 있지만, 보다 완벽함을 추구하며 자신을 갈고닦은 고집 센 장인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전자든, 후자든
간에 몇일전같은 치욕같은 패배는 다신 당하지 않겠지요. 첫번째 패배에서 유연함을 배웠다면 이번 패배에선 마음가짐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방심과 확신, 흔들림과 아픔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선수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성훈
11/02/02 22:30
수정 아이콘
자신의 길을 힘든 척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간다는 것.
아마도 송병구 선수가 선택한 정도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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