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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1/01/31 13:15:49 |
Name |
RabidWolves |
Subject |
도대체 멍청한건지 아님 순진한건지 |
나는 콩빠였다.
3연벙 때 울고 5회 준우승 때 울고 승부사 임요환에게 비교당하며 프로답지 못하다고 욕먹을 때 울고, 홍진호가 여자한테 졌다고, 웃기지도 않는 변명 댄다고 웃음거리가 됐을 때 울고 수백 수천 수억 게임을 해서 게임을 이해했다고 웃음거리가 됐을 때 울고 어설픈 춤을 췄다고 웃음거리가 됐을 때도 울고 나중 가서는 자기 자신도 그 처지를 인정하고 심지어는 즐기기까지 하는 모습에 울었다.
홍진호는 스타는 잘했지만 이기는 걸 참 못했고 훌륭한 행동을 보이면서 말은 참 못했다.
그래서 정말 잘하고 멋진데도 항상 지고 항상 놀림당하고 항상 구설수에 올랐다.
나는 토스 유저이면서 토스빠였다.
벌쳐가 난입할 때의 짜증
벌쳐 난입한 걸 막으러 가다가 프로브가 마인에 폭사 당할 때의 짜증
언덕 위의 탱크가 내 프로브를 때릴 때의 짜증(그것도 꼭 한 대)
그 언덕 위에 터렛이 있을 때의 짜증
멍청한 드라군이 멍청하게 버벅대다가 마인 밟아서 순식간에 녹을 때의 짜증
조이기 당해서 질럿과 드라군(여기서도 멍청하다)이 버벅대다가 자꾸 한두 대씩 맞으면서 병력은 점점 줄고 조이기가 더 심해질 때의 짜증
그 조이기 라인에 서플에 엔베에 터렛에 마인에 벙커까지 있을 때의 짜증
저글링이 난입할 때의 짜증
뮤탈인 줄 알았는데 히드라였을 때의 짜증
히드라인 줄 알았는데 뮤탈이었을 때의 짜증
겨우 버텼는데 저그가 전 맵 멀티를 장악하고 있을 때의 짜증
아드레날린 저글링이 내 본진 내 멀티 부술 때의 짜증
폭탄 드랍이 내 게이트를 다 날렸을 때의 짜증
폭탄 드랍 막으러 가는 걸 멍청한 드라군들이 버벅대면서 길을 막고 있을 때의 짜증
개떼 소떼에 내 비싼 병력들이 다 쓸려나갈 때의 짜증
러커가 언덕 위에서 내 프로브 때릴 때의 짜증(그것도 꼭 한 마리)
러커로 연탄 조이기 당할 때 저그 멀티 늘어나고 드론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짜증
내가 못해서 그랬겠지만 토스를 하면서 느낀 건 당최 짜증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홍진호와 토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뱅빠다.
송병구는 게임 내적인 부분에서, 제일 잘할 때도 어딘가 모자라다.
그의 플레이는 상대방이 이렇게 하는 걸 확인하고 그럼 나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이겨야지 라는 식이지 상대방을 이렇게 하도록 강제해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걸 통해 이기려는 모습이 없다. 즉 상대방을 못하게 해서 이기기보다는 자기가 잘해서 이기려는 식이다. 마치 장인과 같은 마음가짐인데 공을 들여 작품 하나를 깎는 듯이 자신의 플레이를 완성한다.
그래서 체제적 상성을 띄는 저그에 잠시 강하다가도 곧 무너지고 사고방식이 유연한 테란들에 결정적인 순간에서 약하다.
그래서 송병구는 준우승을 4번 했다.
저그를 하던 대로 하다가 졌고 이영호의 책략에 박살 났고 이번에는 자기 자신도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자기가 그전에 현시점에서 테란에 대한 최적의 파훼법이라고 생각한 빌드를 그대로 쓰다가 맞춰 연구해온 정명훈에게 그대로 스윕당했다. 2010 박카스 스타리그 결승을 보며 2008 박카스 스타리그 결승이 오버랩 됐었던 사람이 나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영호와 정명훈은 달랐지만.
송병구는 항상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른다.
김택용과의 결승전 때도 그러했고 마재윤과의 올스타전 패배 이후에도 그러했고 한상봉 때도 그러했고 이영호에 대한 도발도 그러했다. 그때마다 송병구는 핑계를 댄다는 소리를 들었고 성격장애, 이중인격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나만의 믿음일지는 모르겠으나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님에도 어처구니없는 말실수로 팬들의 공분을 사고, 놀림거리가 된다.
송병구는 승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착이 모자라다.
결승 전, 뒷담화에서 송병구가 이영호에 대해 한 말은, 뒷담화라는 프로그램 특성상 나온 말이긴 하겠지만, 자신이 성숙한 사람으로서 할 말이 아니라는 것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말하던 김에 나온 본심이었을 것이다. 3연벙을 당했을 때의 홍진호가 ‘저는 멋진 게임을 해보려고 5경기 장기전 운영을 연습해 왔는데!‘ 라고 반 장난이긴 하지만 억울한 모습으로 외쳤을 때처럼
그래서 나는 송병구에게 홍진호와 프로토스를 보았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송병구를 본다.
인크루트 4강에서 남의 본진에 게이트를 짓던 송병구를 본다.
인크루트 결승에서 전진 게이트에 프로브 러쉬까지 감행하던 송병구를 본다.
진정 절박했던 상황에 송병구가 부딪쳤을 때 보여줬었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어제의 인터뷰를 본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비로소 송병구가 다름을 안다.
팬들이 저를 동경의 대상으로 좋아하시는 게 아니라 다른 의미로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씁쓸하게 웃으며(그것은 그야말로 씁쓸하게였다.) 그것을 인정하던 대인배 홍진호와 송병구가 다름을 이제야 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송병구를 송병구로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p.s:혹시 이 글이 송병구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에 오글거리는 손 붙잡고 형편없는 글 솜씨로 힘들게 쓴 건데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오글거리게 쓸게요.
En Taro St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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