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KT 롤스터의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과거에 이윤열 선수가 소속되어 있던 게임단이기도 하고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려 온 주위 지인들도 있고 해서, 경기는 관람하지 않았지만 우승하기를 바랐습니다. 소망이 이루어지셨으니 기쁨을 마음껏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개인리그는 끝나지 않았지만, KT 롤스터의 광안리 우승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9-2010 시즌이 종료되었습니다. 다음 시즌이 개막되기까지 맞이하게 되는 스토브 리그 동안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번 스토브 리그에서는 예년의 스토브 리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늘 해 오던 영역의 업무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벌어진 사고들을 수습해야 할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양해를 구할 점이 있다면, 저는 뉴스는 일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계속 챙겨보았지만, 시즌 종료를 3개월 가량 남겨놓고 발표된 승부조작 건 이후 스타크래프트 I 경기를 한 경기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장감이나 경기를 반드시 봐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은 간과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사실과 다른 서술이 나올 수도 있으니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지적해 주시면 잘 알아보고 가감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 제목에 쓴 것처럼 'KeSPA가 이번 스토브리그에 해야 할 일 네 가지'를 하나씩 나열하도록 하겠습니다.
1. 승부조작 및 불법베팅과 관련된 후속 조치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의 존립 측면에서 따지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지적재산권 부분이겠습니다만 제 생각에, KeSPA라는 단체의 정당성과 존재 이유에 있어 지적재산권 문제보다 조금 더, 그리고 어떤 문제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승부조작 및 불법베팅과 관련된 후속 조치입니다.
사건이 처음 표면화되었을 당시 검찰의 발표 이전에 이러한 사항에 대해 게임단측은 몰랐을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과는 달리, 지금까지 공판보도 등의 여러 사실에서 보았듯 승부조작 및 불법베팅 사건에 대해서 각 게임단에서는 빠르면 작년 12월, 늦어도 올해 2월 정도부터 알고 있었고 2월 말부터 있었던 엔트리 조정이나 원종서, 박찬수 등에 대한 게임단/협회간의 암묵적 처리 역시 문제가 되는 선수들을 사전에 인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이렇게, 상벌위원회를 열어 제명조치가 내려지기 전까지의 KeSPA의 행동은 공개적이고 투명하다기보다는 쉬쉬하고 어떻게든 드러난 선수만을 매조지하려고 하는 행동으로 보였고, 거기에 지적재산권 분쟁까지 터지며 결국 KeSPA는 돌이킬 수 없는 이미지 손상을 입었습니다.
어쨌거나 관련자 전원의 영구제명으로 이번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사건 이후 KeSPA가 후속 조치로 하겠다고 한 불법베팅 사이트 단속, 소양교육 강화나 처우개선 등의 후속대책을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기고 제도화해야 하는 시점이 드디어 왔습니다. 당연히 팬들이나 e스포츠 전문 언론은 비시즌 기간 동안 소양교육이 어떻게 시행되며, 후속대책 등등이 무엇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소양교육이 어떤 인식을 받고 있는지는 얼마 전 그래텍 오주양 본부장님의 인터뷰만 봐도 대강 알 만한 사실이고 불법베팅 사이트 운영자들은 제대로 잡히지도 않았으며, 수요에 비해 공급 과잉 상태인 구조적 문제는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해 KeSPA는 조작 건으로 흔들릴 위험이 높은 게임단 체제 유지에도 어느 때보다 더욱 힘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대외적으로는 해체를 안 하겠다고 했으나 현역 군인이 조작 및 도박에 연관되었다는 사실이 공군 에이스의 입지에 큰 불안요소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다른 게임단의 경우에도 스폰서 철회나 해체, 추가적인 인책론 등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때마침 발생한 조규남 감독님의 사퇴 건은 마재윤의 승부조작 연루가 적든 많든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인식되며 팬들에게 불안감을 던져 주고 있지요. 스타크래프트를 위시한 블리자드 게임에 대한 원천적 권리가 없는 KeSPA의 유산이라고 해 봤자 12개 게임단과 소속 선수를 프로게이머라는 이름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연 어떻게 유지를 시키려고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몫이니까요.
어쨌거나 만일 이번 스토브리그 기간에 제대로 된 후속 조치가 없다면 - 다음 시즌에도 스타크래프트 I 리그가 있다 해도 - 다음 시즌에 스타크래프트 I 경기에 시청률을 보태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2. 지적재산권 협상
앞서 말한 것처럼 KeSPA라는 단체의 정당성과 존재 이유에 있어서는 조작파문의 수습이 좀더 시급한 일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e스포츠의 존립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KeSPA의 지적재산권 협상입니다. 여러모로 좀 많이 성급해 보입니다만 스타크래프트 II의 물량공세가 시작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또한 스타크래프트 I 리그의 유예기간이 이달 말로 마감되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에 맞서 스타크래프트 I 리그의 존속과 상생을 위해 그래텍 혹은 블리자드와 협상을 하지 않으면 KeSPA와 스타크래프트 I 리그에 미래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간의 언행을 볼 때 KeSPA 측이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이라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계권 행사 등으로 자신들이 공익이 아닌 사익을 취한 행동이나 스타크래프트 I에만 종목이 집중되어 있는 편중 현상에 대해서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이익 취득은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를 펴면서 정작 게임사가 행사할 정당한 권한이 있는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는 소위 '공공재 드립'을 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스페셜포스 프로리그는 게임사가 프로그램 제작비, 상금, 게임단 운영비 일부를 대는 구조이지만 중계권은 협회가 갖는 불평등 계약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입장의 변화가 없다면 협상은 하나 마나일 것이고 KeSPA가 선수를 볼모로 다시 찌질한 추태를 벌이는 것을 다시 목격해야 될 수도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협상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무슨 정보가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NDA 때문이든 시즌 기간이라 협상의 진척이 더뎠든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상황이라 해도 아직 결렬되었다는 말이 없으니 협상 진행 중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지요. 거기에 최근 문화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중재 입장도 협상이 진행 중임을 시사하는 부분입니다. 또한 KeSPA 사무국은 협상의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한 인상입니다. 더불어 문화부 측에서 "KeSPA에 우선 (스타크래프트의) 지재권을 인정하고 협상에 임하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사무국도 협상 전면에서 한발 물러나고 이사사 중심으로 협상을 진행하라고 했다" 등의 발언은 지적재산권 문제의 책임이 KeSPA의 지적재산권 협상 태도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KeSPA는 협상을 해야 합니다. 내부적으로 잘못 끼운 첫 단추조차 제대로 다시 끼우지 못한다면 이미 중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 한참 뒤져 있는 e스포츠의 글로벌화를 따라잡기는 고사하고 KeSPA란 단체와 국내 e스포츠의 멸망 외에 다른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이 있다면 보일 것이고 귀가 있다면 들릴 것입니다. 선수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우리가 지금껏 만끽했던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모두 거짓된 판이 아니기를 바란다는 외침이. 그것을 무시한다면 KeSPA는 협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3. FA - Not Free Auction But Free Agent
작년에 FA 제도가 생겼고 매 스토브리그마다 FA에 대한 협상이 이루어지는 만큼 이번 시즌에도 FA 대상 선수는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관련 보도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FA 대상 선수가 누가누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FA 선수가 존재하느냐, 아니냐와는 상관 없이, Free Auction이라는 비웃음을 샀던 FA 제도는 상당 부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FA 제도의 모순점 및 문제에 대해서는
1년 전에 이 글에서 서술한 것처럼 크게 다음의 사항들이 있습니다.
● FA(Free Agent)제도에서 (총액 연봉이 가장 많은 팀과 무조건 계약해야 하고) 선수들에게 팀을 선택할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며 선수 권리 침해입니다.
● 연봉 공개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투명한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 에이전트 선임을 금지한 것은 프로게이머를 무시하는 처사이자, 대놓고 불평등 계약을 하겠다는 행동입니다.
● 게임단의 사전 접촉 및 담합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FA를 선언한 선수들은 한 명도 이적되지 않았고, 소속팀에 남거나 은퇴했습니다. 심지어 그 중에는 - 물론 선수 본인은 화승에 남고 싶다고 했으나 - 당시 랭킹 1위의 선수인 이제동 선수도 끼어 있었는데도 어떤 팀도 입찰하지 않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오히려 FA가 끝난 다음에 전상욱 선수가 위메이드로 이적하는 등의 선수 이동이 일어났지요. 이런 제도나 모습들은 2009년 스토브리그 당시 KeSPA와 게임단들이 FA라는 것을 실행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FA에 대한 개념은 더더욱 없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FA는 순전히 선수 및 팀간의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제도입니다. 다른 국내 스포츠만 봐도, 배구의 경우 박철우 선수를 영입하자 최태웅 선수를 데려가고, 농구는 서장훈 선수를 영입하자 이상민 선수를 데려갑니다. 물론 e스포츠의 FA가 그렇게 무조건 살벌한 모습일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KeSPA는 선수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규정 및 제도를 강요하여 결국 선수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팀들의 담합으로 그나마 열려 있던 변화의 가능성을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당연히, 2010년 스토브 리그에서 이런 독소조항에 악습만을 담고 있는 FA가 아무런 변화 없이 실행된다면 똑같은 문제가 또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제도가 달라지지 않았는데 움직임이 달라질 가능성은 별로 없으니까요.
KeSPA가 정말 선수 권익을 생각하고 그것을 개선할 의향이 있다면 FA에 대해서도 하루빨리 개정안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스토브리그에는 Free Agent를 보고 싶지 Free Auction을 통해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들이 노예가 되는 꼬락서니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4. '말뿐인' 종목 다변화의 '실천'
KeSPA는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항상 종목 다변화와 글로벌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KeSPA의 행보를 보면 그런 말과 행동이 따로 논다는 것을 어렵잖게 알 수 있습니다. 글로벌화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참담한 수준이고, 종목 다변화에 있어서는 중계권을 가지고 주 5일 프로리그제를 정착시켜 프로리그로 황금시간대를 점령한 이래 스타크래프트 I 경기의 점유율은 더욱 높아졌으면 높아졌지 낮아지지는 않았으며 철권, 카트라이더, FPS 등등의 다른 종목들은 그 황금시간대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공정한 상황에서는 종목 다변화라는 말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어떤 분들은 KeSPA가 스타크래프트 게임단을 가진 이사사들을 모아 놓은 단체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KeSPA가 이사사들이 모인 단체라고는 해도 최소한 자기들이 내뱉은 말은 행동으로 지켜야 할 만큼의 책임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KeSPA는 사기업이 아니라 '협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로만 말하는 종목 다변화를 실천하려면 황금시간대에 스타크래프트 본방송, 다른 시간대에 스타크래프트 녹화방송 일색이 되어 60% 이상이 스타크래프트 I 관련 프로그램 구조가 되게 만드는 KeSPA의 정책부터 스스로 부숴야 하고 따라서 가장 먼저, 그리고 필히 부숴야 할 것은 프로리그의 주 5일 체제일 것입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주 5일 체제 자체보다도 스타크래프트 I 경기만 황금시간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체제를 부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제가 지금의 KeSPA의 입장을 찬성하지 않고, 지적재산권이라는 부분의 정당성에서 블리자드를 지지하기 때문에 어떤 분들께서는 제가 스타크래프트 II의 진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프로리그 축소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II가 아니라 다른 종목이 진입하려 한다 해도
지금처럼 KeSPA가 스타크래프트 I의 주 5일 프로리그를 강권하고 스타크래프트 I만이 황금시간대를 거의 차지하고 있으면서 철밥통을 쥐고 있는 불공정 상태가 지속되는 한, 다른 e스포츠 종목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런 상황에서 말로만 다변화를 말하지 실제로는 - 지금까지 보여 준 행동으로 판단할 때 - 의지도, 실행력도 없는 협회가 종목 다변화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 봤자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들 외에 차기시즌 스폰서쉽 유치 및 협회가 불법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중계권의 만료(2007년 3월 이후 3년간이었으니까요) 등등, 수습해야 하는 다른 크고 작은 할 일들도 있지만 제가 생각을 이야기할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은 부분이라 생각되어 더 서술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동안 저지른 잘못으로 따지자면 차라리 없는 게 나은 협회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KeSPA의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KeSPA라는 협회가 대한민국 e스포츠에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eSPA는 국가의 인정단체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의 전체적인 e스포츠와 그 구성원들을 조율하고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존재하는 단체인 반면 블리자드는 선수나 이 판에 대해 크게 신경써야 할 의무가 없고 자신의 게임의 흥행만 중요하게 여겨도 되는, 말 그대로 사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KeSPA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지적재산권을 멸시하는 인지부조화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데다가, 공익적인 명분을 쌓는 데에서도 오히려 사기업인 블리자드보다 못하다는 굴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발 이번 스토브리그에는 '협회의 일을 하는' KeSPA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 The x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