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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5/25 12:53:46 |
Name |
칼라일21 |
Subject |
때 지난 뒷담화 감상문 |
제때 제때 게임 티비를 보기는 어려우니 아무래도 다운로드를 이용해 경기나 방송을 보게 되더군요. 진짜 철지나서 뒷담화를 봤습니다. 아마 이 글은 뒷담화에 대한 감상문 정도가 될 듯합니다.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다면 삭제하셔도 됩니다.
1. 그들의 분노
세명 해설은 뒷담화 내내 분노를 참지 못하더군요. 애초에 시작하면서 삐소리로 도배하자고도 하는 모습인데 일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가 결국 분노로 끝맺는다는 사실에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작년인가 게임 관련 다운로드를 받다가 2군 평가전 관련 뉴스를 본적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가 2군 따위 신경 씁니까. 뉴스에서는 말 그대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거명되고 몇일부터 몇일까지 진행된 평가전에서 누가 1등하고 누가 2등했고 하는 얘기들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비쳐지는 것은 커다란 사무실 같은 공간에 빼곡히 들어찬 컴퓨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아무도 환호해주지 않고 아무도 박수쳐주지 않는 승부를 펼치고 있었겠죠.
이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이기도 합니다만 프로게이머가 된다는 길은 결코 수월하지 않고, 되었다 하더라도 궁핍하고 힘겨운 생활을 감내해애 하는 직업입니다. 해당 게시물은 프레시안(인터넷 언론)에 게시도 되었는데,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걸어 준프로가 되고 연습생이 되고 마침내는 프로가 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프로가 되어도 그들 절반 이상은 '듣보잡'이라 불리게 되겠죠. 팬들로서야 승부조작에 대해 분노하고 성토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해당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고 프로페셔널로 밥먹고 사는 해설들이라면 분개의 목소리 뿐만 아니라 사건 자체를 이해하려는 시각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김태형 해설은 자기가 게임하던 시절보다 지금은 여건이 매우 좋아졌다고 말하더군요. 세명중 두명의 해설이 전직 프로게이머라서 그런지 요즘 좋아졌고 우리 때만하더라도 얼마나 어려웠는데, 하는 얘기를 꾸준히 하더군요. 그런데 이 해설들 그런 말이 얼마나 같잖은 것일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얘기 군대에서 정말 지겹게 들을 수 있는 것들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세대차가 나면 흔히 하고 듣는 말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시대의 차이와 상황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점차 그런 말을 하는 일이 생기는데(엄옹과 동년배임),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때는'으로 시작되는 말이 결코 지금 현재 상대가 처한 상황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노력하는 선수들은 아무도 박수쳐주지 않는 수없는 게임을 무보수로 치러왔을 것이고,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하더라도 '듣보잡'으로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겁니다. 이런 어린 소년들을 지금과 같은 열악하고 궁핍한 삶 속에 몰아넣고는 그들에게 열정과 순수만을 강요한다는 것은 그 바닥의 어른들이 할 일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듣보잡' 대열에서 조금 벗어난 선수라 하더라도 승부조작과 같은 일을 벌이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프로게이머. 나름 성공적이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누군가 이름을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과연 얼마나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을까요? 공군 에이스의 성적이 저조한 이유 몇가지에서 등장하는 것이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한창 잘나가는 선수라 하더라도 그 전성기가 얼마나 갈지 아무도 알수 없는 일이고, 군대 다녀와서 자신이 현재의 직업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중고등학교 때 학업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학 진학도 안될 것이고, 운동선수처럼 코치나 체육선생이 되는 방법도 없습니다. 20대 초반까지 모든 걸 쏟아부어 스타크래프트 하나만은 정말 잘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면 막막한 미래가 펼쳐질 뿐일 겁니다. 그런 생각이나 현실인지가 찾아오면 연습도 게을리 하게 될 것이고 성적도 떨어지겠죠. 그렇다면 '그런 잡생각 하지 말고 열정과 순수를 가지고 게임에만 몰두해라'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E스포츠를 계기로 평생 밥벌이를 만들어놓은 해설들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세 해설의 분개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분개가 그저 분개로 끝난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10대 후반의 아이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그 피와 땀 위에 만들어진 E스포츠판이라는 것에서 벌어먹고 살면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시각이 완전히 부재하다는 사실은 정말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2. 처벌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과 그 열악함, 궁핌함과 고통은 제쳐두고 처벌은 엄정해야 합니다. 그들의 처우나 그들이 가는 길에 어떤 희망을 열어주는 방법을 찾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과 처벌은 별개일 것입니다. 승부조작은 엄연히 배임, 사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처했던 상황이 어떻다 하더라도 승부조작을 사주하고 가담했던 선수와 관계자들은 반드시 처벌되어야 합니다.
그에 대한 말들을 엄재경 김태형 해설이 서로 다른 버젼으로 주장하더군요. 저로서는 김태형 해설의 논리에 더 수긍하는 편입니다. 이 바닥에서 승부조작과 관련된 모든 선수들은 확실하게 밝혀야 하고 확실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사실 감독이나 코치에 대한 처벌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엄재경 해설은 그렇게 하면 이 판이 너무 흔들리고 존립이 위태롭기 때문에 적절한 처벌과 향후의 조치를 말하더군요. 어불성설입니다. 선수와 관계된 자들, 감독과 코치들까지 모두 엄벌해서 이 판이 흔들리고 위태로워진다면 바로 그것이 향후 재발 가능성을 낮추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E스포츠의 존립 자체가 위협당하는 상황이 된다면 아마 향후 승부조작과 같은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방송관계자든 협회든 각팀 감독이나 선수 모두 그게 얼마나 엄청난 재앙이 될지 배울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승부조작 사건은 바로 그럴 때에 새로운 의미를 가질 겁니다. 모두가 그것으로부터 배운다는 의미겠죠.
엄재경 해설의 말과 같은 상황을 직장생활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사내에서 한 여직원이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는데 간부랄만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이런 상황을 다른 직원들이 다 알게 되고 문제시하게 되면 조직이 흔들린다. 그냥 조용히 두 사람만 법적으로 해결하게 하고 함구해야 한다' 따위의 얘기들이었습니다.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그런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유야무야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 하는 집단이 있다면 과연 그 조직은 존재할 가치가 있겠는가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의 E스포츠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선수와 이를 사주한 선수, 그 뒤에 있었던 관계자, 코치, 감독까지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E스포츠가 이번 승부조작을 진정 반성하는 계기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E스포츠 따위 존재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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