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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5/23 00:12:00 |
Name |
비내리는숲 |
Subject |
김정우, 깊이를 보여주다. |
사실 2경기까지 보고 저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1경기는 김정우 선수의 실수도 있었고 게임 자체가 전체적으로 엉성한 면이 있었습니다만, 2경기는 그야말로 완패. 그야말로 천하제일의 이영호, 완전무결의 이영호를 보여줬으니까요. 2경기중에 제가 내뱉은 탄식만 해도 한 두번이 아닙니다. 도대체 저 럴커는 촉수를 설탕가루로 만들었나, 무슨 스캔이 뿌리는 족족 병력을 보네, 완전 백발백중 스캔에 드랍쉽을 운영하면서도 따로 잘만 활개치는 본대 병력에 죽지 않는 마린에, 허를 파고드는 드랍쉽에..휘둘리기만 하는 김정우 선수의 플레이를 보며 한숨이 나왔고 왜 하늘은 하필이면 테란을 또 선택해서 나같은 토스빠나 저그빠를 가슴 아프게 하나 뭐 이런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삼성과 CJ의 팬으로써 송병구에 이어 진영화, 김정우마저 밟아버리는 이영호라는 선수에 대해 임성춘 해설의 표현을 빌려서 이렇게 소리지르고 싶었습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3경기를 볼까 말까 생각해보다가 '그래 나는 팬이니까 지든 이기든 끝까지 볼 의무가 있지'라는 생각에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맵이 투혼이라는 것도 한 몫 했구요, 투혼은 저그가 쉽게 무너지는 맵이 아니니까요. 가스도 많고 두번째 확장 가져가기도 쉬우니 중후반 집중력이 좋은 김정우 선수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의 바램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 이상의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봅니다. 그것은 심리전, 항상 심리전에서 상대보다 우위에 있던 이영호 선수를 심리전으로 잡아낸 경기이니까요.
이영호 선수는 언제나 그렇듯이, 원배럭 더블입니다. 저는 치킨 다리를 하나 뜯고 있었기 때문에 배럭스 두개째 올라가는 거 보고 순간 타이밍 계산을 잘못해서 '앗 이영호가 확장도 없이 투배럭을!!'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래에 확장이 있더군요. 그리고 김정우 선수는 장윤철 선수가 그랬듯, 자신이 2경기에서 그랬듯 앞마당보다 먼저 9시의 확장 기지에 해처리를 폅니다. 본진과 확장 두개의 해처리만 있는 상태에서 레어를 올리고 테크를 빠르게 가져갑니다. 저는 확장 기지가 이영호 선수의 앞마당과 가깝기 때문에 테란이 어떻게든 이른 타이밍에 견제가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영호 선수는 제가 생각한 타이밍보다 더 빨리 바이오닉 병력을 내보냈습니다. VOD를 봐야 알겠습니다만 이영호 선수는 김정우 선수가 초반에 앞마당에서 알짱거리던 저글링 몇기를 줄여주면서 안심했고 추가 저글링의 존재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우 선수는 무지하게 가난했거든요.어찌 되었든 추가 저글링은 달려들었고 약 7기의 마린 병력을 허무하게 잃고 맙니다. 김정우 선수는 2개의 해처리 상태에서 테크가 상당히 빨랐고 상대의 바이오닉 병력이 잡힌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영호 선수는 바이오닉이 잡히고 김정우 선수의 뮤탈리스크가 뜨는 순간 앞마당 SCV를 빼고 본진에서 막을 생각을 했겠지만 마린을 다수 잃은 시점에서 사실상 경기는 끝났다고 봐야 했습니다. 뮤탈리스크와 저글링의 활약에 의해 결국 GG 김정우 선수는 드디어 1승을 가져갑니다.
이 경기는 이영호 선수의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이기도 하고 김정우 선수의 배짱이 잘 먹힌 승부이기도 합니다. 3경기에서 김정우 선수가 그런 극단적인 빌드를 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게다가 투혼은 저그가 장기전으로 끌고 가기 정말 좋은 맵입니다. 확장마다 가스가 있고 확장을 가져가기도 용이합니다. 그 누가 이영호 선수의 상황이 되더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설마 2: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배짱 플레이를 할까' 김정우 선수의 앞마당이 펴져 있다면 이영호 선수가 바이오닉 병력을 초반에 내보낸 것이 잘 먹힐 수도 있었지만 김정우 선수는 저글링 뮤탈리스크 올인을 했고 결국 이영호 선수의 첫 바이오닉 병력이 잡아먹힌 것은 그야말로 통한의 실수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반면에 김정우 선수는 초반에 약 8-10기의 저글링을 이영호 선수의 앞마당에서 왔다 갔다 하며 조금 잃어준 것이 이영호 선수의 병력을 끌어내는데 성공하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추가 저글링이 달려들면서 마린을 끊어 상대적으로 뮤탈리스크에 무방비가 되게 만드는 플레이가 일품이었습니다.
4경기야 이영호 선수의 전진 배럭이 극 초반에 발견되고 김정우 선수의 저글링이 이영호 선수의 3기의 마린중 2기를 잡아내어 앞마당의 시도는 아예 생각조차 못하게 했으며 저글링 한기를 밀어넣음으로써 스타포트를 발견해 손쉽게 가져간 승리라고 하겠습니다만 이 경기에서 김정우 선수의 대처나 반응은 집중력이 살아났다는게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이영호 선수의 4경기 패배가 어어지고 나서 경이의 5경기, 많은 팬들을 광분시켰던 역스윕의 그 경기가 시작됩니다.
5경기는 여러 상황이 맞물린 심리전의 결정체라고 표현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이영호 선수는 노배럭더블을 사용합니다. 그에 반해 김정우는 빠른 가스와 2해처리 레어라는 비교적 극단적인 빌드를 꺼내듭니다. 저는 이 빌드가 저글링 럴커 올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김정우 선수는 저의 생각보다 한 단계 더 앞에 있었습니다. 이영호 선수의 SCV가 김정우 선수의 본진에서 레어를 확인한 순간 저글링을 추가시키며 총 8기의 저글링으로 앞마당 우측 미네랄 바깥쪽으로 돌아가는 액션을 취합니다. 이영호 선수는 부랴부랴 벙커에서 마린을 빼내어 김정우 선수의 저글링에게 SCV와 함께 달려들고 저글링은 다시 위쪽으로 돌아 벙커 아랫쪽으로 일렬로 서서 일제히 마린에게 달려듭니다. 이 때 몇기의 저글링을 잃지만 김정우 선수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남은 저글링을 본진으로 난입시켜 이영호 선수의 시선을 끌고 추가 저글링을 다시 밀어넣습니다. 벙커를 무시하고 발빠른 저글링이 또 본진에 난입되고 마린은 죽어나갑니다.이쯤 되면 저글링 생산을 멈추고 상위 테크의 유닛을 뽑을 만 한데 김정우의 저글링은 멈추지 않습니다. 김정우 선수는 저글링 이외의 유닛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김정우 선수는 저글링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씁니다. 저그전에서도 그렇고 프로토스전에서도 그렇습니다. 저글링이 온 맵을 헤집고 다니면서 상대를 휘두른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저글링을 이용한 운영에서 단연 손에 꼽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장기인 저글링을 전술적으로 운용했고 결과적으로 레어는 트릭이 되었으며 결국 이 경기는 간단한 몇 가지의 트릭만으로 승리를 가져오게 된 저그로써 할 수 있는 심리전의 백미가 되었습니다. 이 선수의 심리전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사소한 움직임 하나 하나가 상대의 생각을 고정시키고 때로는 혼란시키며 또는 타격을 안깁니다. 병력을 전술적으로 운용하는데 김정우 선수는 최상위 클래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전술을 여러 심리전에 이용함으로써 상대의 헛점을 만들어내고 승리를 따냅니다. 오늘 비록 다수의 디파일러를 전방위적으로 이용한 화려한 경기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선수간에 서로의 마음을 훔치기 위한 격전에서 한 선수는 자신의 플레이 위주로 상대를 휘두르려 했고 한 선수는 상대 플레이의 헛점을 노려 승리를 낚아채려 했으며 결과적으로 이영호 선수의 마음을 훔쳐낸 김정우 선수는 오늘의 주인공이 되기에 결코 그 부족함이 없다 하겠습니다.
매는 굉장히 날렵한 사냥꾼입니다. 김정우 선수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오랫만에 감상글을 쓰려니 잘 안되네요. 원래는 VOD를 돌려보며 쓰는데 오늘은 어쩐지 굉장히 흥분해서 경기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손을 움적거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예전에 '시퐁'이라는 닉네임을 썼고 우주의 스텔비아에서 고것이 코타론지 하는 녀석이랑 키스질을 한 순간부터 그 닉네임을 바꾸고 싶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아 바꾸지 못했었습니다. '비내리는숲'이라는 닉네임에 관해서는 언젠가 즐겁게 말씀드릴 순간이 오겠지요. 글솜씨도 많이 줄었고 손가락도 느려졌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자주 이런 저런 말씀들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즐거워도 즐겁다 표현하지 않았고 부당해도 부당하다 손가락질 하지 않았으니 지금의 안좋은 상황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건강하세요. 함께 즐거워하는 순간이 오래 가길 바랍니다. 건강하라고 기원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진심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더불어 일주일 후 이영호 선수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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