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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5/19 03:57:36 |
Name |
Laurent |
Subject |
처벌은 하기에 따라서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새로 거듭나는 실마리가 된다. |
-1920년 미국. 시카고
여러가지 사건이 정말 많았던 1920년 가을. 미국의 언론들은 1년 전의 월드시리즈를 놓고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 수상하고 미심쩍은 점이 많았던 신시내티와 시카고의 1919년 월드시리즈 경기가 수사 대상이 된 것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너클볼로 유명한 에디 시카티. 그는 최강전력 시카고의 에이스로 전설적인 컨트롤러였으며 시리즈의 중요한 경기마다 선발투수로 등장했다. 당시는 3인 로테이션이었으므로 1선발의 비중은 오늘날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한화의 류현진이 차지하는 비중의 2배 이상이라면 유치하지만 실감이 나실 지도 모르겠다.
1919년 월드시리즈의 에디 시카티는 이런 명성과 사뭇 거리가 멀었다. 월드시리즈 1차전 1회부터 타자의 등을 맞춘 그의 투구는 모든 예고의 시작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그 유명한 '블랙삭스 스캔들'이다. 에디 시카티가 너클볼로 유명한 최고의 컨트롤러에서 승부조작을 리드한 최고의 사기꾼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에디 시카티는 당시 연봉이 6천 달러였다. 그는 30승 달성시 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기로 구단주와 약속을 했고, 29승을 달성하였다. 그 순간 구단주는 감독에게 지시하여 더이상 시카티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고, 시카티는 29승으로 리그 1위의 다승왕이 되었다. 시카티는 이런 억울함을 수사 과정에서 호소하였으나 그의 영구제명 결정과 뒤따른 처벌 내용은 어떤 변화도 없었다.
블랙 삭스 스캔들이 금방 발각된 것은 야구라는 팀스포츠의 유기적 특성도 있지만 에디 시카티에 대한 팬들의 엄청난 사랑 - 즉 시카티가 그럴 리가 없는데, 왜 그렇게 밖에 못 했을까 -라는 순수한 의문이 꼬리를 물며 증폭한데 기인한다. 잘 아시는 대로 시카고의 팬들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하는 팬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우상이었던 시카티 뿐 아니라 원투펀치를 이루던 래프티 윌리엄스도 '가담'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주축 선수 8명이 혐의를 시인하면서 강팀 시카고 화이트삭스 뿐 아니라 30여 년 역사로 도약하던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은 일대 위기에 휩싸인다.
-그리고 90년 후. 쿠퍼스 타운. 미국
뉴욕 시티에서 자동차로 넉넉하게 여섯 시간쯤 걸리는 조용한 마을 '쿠퍼스 타운'은 필자가 미국 동부에 가면 꼭 찾는 곳이다. 'short stop'이라는 카우보이 도어로 된 식당의 우악스런 앤쵸비 피자도 잊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 나에게는 미국의 상징인 'Hall of Fame'이라는 3층짜리 건물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에 전투기조종사로 참여했다가 다시 '방망이를 꺼꾸로 잡고' 4할의 타율을 기록한 테드 윌리엄스의 동판을 보며 숨이 막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디가나 칭얼대는 어린이들이 가득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 곳의 전설은 글자 그대로 범접할 수 없는 무게감을 자아내고 있는 느낌은 비단 필자 만의 오버는 아니었다. 다양한 관람객들의 표정을 보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 더욱 그렇다.
그 신성한 장소에 지금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2층 홀의 한 가운데 또렷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이 바로 위의 '블랙삭스 스캔들'이다. 아니 '명예의 전당'에 메이저리그의 가장 추악한 사건인 '블랙삭스 스캔들'이 떳떳하게 전시되어 있다니. 더 놀라운 것은 블랙삭스 스캔들의 사진과 상세한 사건 개요, 사건이 어떻게 발각되고, 어떤 선수들이 처벌되었는지가 냉정한 문장으로 적시되어 있을 뿐, 어떤 교훈이나 반성의 글귀도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그 장소에서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온 생각은 '아 메이저리그는 사실의 전시 만으로 그런 사건도 하나의 역사가 되는구나'라는 유치한 것이었으나 곧 이어진 것은 'Fame'의 한 가운데서 'corruption'을 만났다는 기묘한 감흥이었다.
역사의 일부가 된 이상 'Fame'과 'corruption'으로 나뉘었지만 1919년 가을까지 두 단어는 시카고와 신시내티를 오가며 야구장이라는 한 공간에 있었다. 즉, 사람의 마음이 이끄는 행동의 여파가 어떻게 판정되느냐는 엄숙한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이 메이저리그의 역사가 되어 세계 최고의 야구 리그라는 거대한 'Fame'을 자아내는 'material'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은 전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처벌, 그리고 주홍글씨.
사실 메이저리그라고 왜 그들의 리그를 미화하고 포장하고 싶지 않겠는가. 미국의 청교도적 질서를 논하기 전에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블랙삭스 스캔들'의 애프터이다. 알려진 대로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은 야구계에서 영구추방되었고, 그 결정은 지금까지 지켜졌다. 본 적은 없으나 온갖 기록에 의하면 너클볼이란 구종을 탄생시킨 마운드 위의 전설적 존재였던 시카티에게 살아 있는 남은 여생동안 그가 사랑하던 마운드를 두 번 다시 밟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디 시카티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따위의 행위를 그 어떤 미국인도 하지 않았다. 시카티의 너클볼은 지금도 웨이크필드의 너클볼 따위는 너클볼이 아니라는 올드팬의 응답이 북동부에서는 압도적일 정도의 그야말로 '전설'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가장 추악한 기억으로 뿌리내려 있다.
1919년 엄청난 스타플레이어였던 죠 잭슨은 '슈리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외야수였다. 그는 일부 참여는 시인했으나 주장을 번복했고, 계속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절대로' 그의 주장은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90년이 지난 지금 그는 화이트삭스가 아닌 블랙삭스의 멤버로 'Hall of Fame'에 헌액되어 있다.
8명의 선수 중에는 죠지 벅 위버라는 선수도 포함되어 있으나 그는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에 때문에 승부조작 사실을 알면서 묵묵히 있었을 뿐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이 사실을 시인했고, 결국 야구계에서 영구히 추방되었다.
그리고 블랙삭스 스캔들은 메이저리그에서 더이상 터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꿈의 무대'가 되어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장구한 역사가 있는 것 또한 중요한 점일 것이다.
필자의 가슴 속에 아로 새겨져 있는 것은 그 어떤 미국 야구팬도 '블랙삭스'라고 하면 다 안다는 것이다. 블랙 삭스는 루 게릭, 그리고 베이브 루스라는 스타탄생을 더욱 가속화시켰다는 비아냥을 듣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적어도 루 게릭이나 베이브 루스만큼 유명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메이저리그라고, 아니 메이저리그니까 100년 넘는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 그냥 묻어버릴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 특히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들이 나서서 그들이 사랑한, 아니 숭앙한 '지존'이자 '본좌'인 너클볼의 창조주 시카티를 포함한 8명을 영원한 배반자로 각인하고 나서는 데 앞장섰다.
시카고의 한 팬은 '나의 전설이었던 그를 추악한 이름으로 죽을 때까지 뼈에 아로 새길 것이다'라는 말로 그 심경을 표현했다. 그 후에 메이저리그는 이런 사례에 가차 없는 처벌을 내릴 감시체제를 가동한다. 이른바 '커미셔너 사무국'이 바로 그것이다. 당연히 법적 문제가 뒤따랐고 Eight Men out인가 하는 영화로 제작되어 헐리우드의 극장에 블랙삭스의 이야기가 상영된다. 팬들의 마음을 반영한 가장 무서운 처벌은 '절대로 너희들을 잊지 않겠다.'라는 것이었다. 누구도 인성 교육이나 소양을 문제삼지 않았다.
아직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처벌의 대상은 '승부'를 조작하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팀동료라도 무한 경쟁을 뜷고 온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실력으로 경쟁하는 '팀워크'를 가지고 있다. 승부조작 뿐 아니라 약물 등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커미셔너는 가장 강력한 처벌로 대응하는 곳이 메이저리그이다. 그리고 그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한 경기 한 경기마다 그 점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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