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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5/18 02:37:39 |
Name |
Diadem |
Subject |
순수 [純粹] :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
순수 [純粹] :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이스포츠가 여타 대형 스포츠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 남았던 것은 바로 '순수'라는 생존방식 덕분이었다.
우리는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직, 간접적으로 삶의 국면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다. 긴박감 넘치는 승부 속에서 팬들 하나 하나의 저마다의 삶과 연결되는 고리들을 자극하여 잠시나마 극적인 흥분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럼 다시금 묻겠다. 우리는 왜 이스포츠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바로 '순수'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보고 있을 이스포츠의 주요 팬들은 10대~30대로 훗날 어느 분야에선가 이 사회에 이바지 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젊은 세대들이다. 이스포츠 역시 그들의 팬을 닮았다. 이미 수 세대를 거친 역사가 누적된 다른 종목과 달리 모두가 기억 하는 태동기 - PKO를 기점으로 한 1세대 게이머 - 에서부터, 걸음마 - 스폰서쉽과 방송국의 분리 - 단계를 거쳐 자유로이 자신들의 기관을 제어, 통제하는 법을 익히고 점차 점차 성장해나갔다.
판이 커가면서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거듭했고, 때로는 몸에 맞지 않는 옷 때문에 고생한 적도 있었으며,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와 같이 내재된 사춘기를 겪기도 했다. 무엇보다 누구도 이렇게 의젓한 모습으로 자라줄 것으로 생각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청춘을 이스포츠에 바친 팬들과 무척이나 닮았다.
어른들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키워드가 '순수'란다. 그랬다. 어리지는 않지만 젊다고 하기엔 부족한 사춘기 시절, 우리는 정말 순수하게 자신의 삶에 대하여 고심했다. 나와 친구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까지 인식의 폭이 넓어져 가면서 우리는 순수하게 올바른 삶의 위한 몸부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몸부림에는 어떠한 불순한 동기가 개입될 여지도, 필요도 없었다.
이스포츠 역시 '순수'하게 자라왔다. 단순한 밥벌이를 위해 마우스를 잡고 마이크로 세치 혀를 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재미와 감동이 있었기에 그들은 이 판에 뛰어들었다. 승부라는 젊음의 콘서트가 가져다주는 불안과 흥분, 쾌감과 초조가 뒤엉켜 그저 뜨거운 핏덩이인 채로 점차 그네들만의 걸음과 문법을 스스로 터득해 온 것이 오늘날의 이 스포츠이다. 그들이 경험한 감동을 보다 많은 이와 공유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스타리그 였고 프로리그 였던 것이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 이러한 '순수'의 종말을 눈 앞에서 목격했다. 우리를 불타오르게 했던 승부가 누군가의 손장난일 수 있음을 모두가 찬탄해 마지 않았던 누군가의 실루엣으로 부터 보게 되었다. 어떤 이 에게는 이미 지난 취미에 불과하여 한 잔 안주거리로나 쓰일 것이고, 어떤 이 에게는 불타는 가슴을 주먹으로 달래야 하는 밤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열정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이 판을 공유했던 팬들이라면 누구나 순수의 변절앞에서 느꼈던 그 먹먹함, 그 쌉싸름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전자에게는 그것이 회고로, 후자에게는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오겠지만.
순수하다는 것. 무척이나 아름다운 말이다. 하지만 순수함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 이면의 성숙이 가져다주는 쓰디쓴 성장통 때문이라 믿는다.
젊은 우리와 무척이나 닮은 이스포츠는 이제 그 에너지의 원천이었던 순수성에 무척이나 큰 타격을 입었다. 삶의 과정이 그러하듯이, 판의 성장도 비가역적이다. 이대로 곧 이스포츠는 알 만한 것은 다 알고, 모를 만한 것은 없는 그저 그런 어른으로 늙어갈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떤 형식으로든 겪게 될 순간 아니었던가? 당신 역시 언젠가부터 세상의 때를 묻혀가면서, 때로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어른이 되어있지 않았던가.
이번 사건은 김태형 해설의 말대로 이겨내야할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이스포츠가 성장을 거듭하고 10주년을 넘기면서 명실상부한 프로스포츠로 자리매김 했다며 자축을 마다않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우리 안의 아마추얼리즘을 우리 스스로가 뼈저리가 목도했다.
우리를 키운 팔 할이 순수한 열정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그것만으로 살아갈 사람은 없다. 세상이 그렇게 두질 않기 때문이고,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우리 안의 순수한 아마추얼리즘이 냉철한 세상에 발을 내딛어도 살아갈 수 있는 프로페셔널로 진화하길 기도한다. 세상에 널려진 사사로운 유혹에서도 굳건히 살아남는 진정한 프로로.
거듭 곱씹어도 무척이나 슬픈 이번 일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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