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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5/01 00:31:17
Name Artemis
Subject [잡담] 선물 이야기.
오늘 우연히 어느 수필 동호회에서 발간한 수필집을 읽었습니다.
사실 우연히는 아닙니다.
오랜 동안 제 주변에 머무르면서 눈에 띄던 수필집이긴 한데 오늘에서야 살짝 구경할 겸 들춰 보았던 거죠.^^;;

사실 그분들이 쓰시는 수필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돈 많고 시간 많은 아주머니들의 우아한 취미생활쯤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수필의 내용 대부분이 유럽의 어디를 갔다 왔네, 몇만 원짜리 공연을 보고 왔네 하는 것들이라 저같은 소시민하고는 안 맞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오늘은 왠지 제 감성과 맞는(?) 수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선물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분은 길 가면서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구입을 한다더군요.
누구에게 선물로 주면 좋겠다, 하면서...
그렇게 자기만의 선물 가게를 만들어 놓고 알맞은 때에 알맞은 선물을 골라 직접 포장을 해서 선물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무엇을 살까 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어느 누군가를 위해서 준비를 해 놓은 거죠.
거기다가 직접 하는 포장과 카드까지...
선물이란 과연 정성이구나 하는 걸 저절로 느끼게 되었죠.
뭐, 이것도 가진 자의 여유라면 그다지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선물은...
첫사랑에게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직접 베껴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새로운 <독일인의 사랑>을 만들어 주었다는 거였습니다.
요즘의 두꺼운 책에 비하면 비교적 소책자에 속하는 <독일인의 사랑>이긴 하지만, 그것을 직접 손으로 베끼고 했다는 것은 정말 보통의 정성을 가지고는 안되는 일이라 여겨지더군요.
그러면서 그런 그녀의 선물을 받은 과거의 그 남자는 어떤 남자였을까, 그리고 과연 그 선물을 받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저의 과거가 떠오르더군요.

저도 제 첫사랑에게 그와 비슷한 선물을 했었습니다.
(물론, 이전에 짝사랑은 많이 해봤죠. 짝사랑 제외하고 말하는 첫사랑입니다.^^)
아마도 사귄 지 백일을 기념하는 선물이었을 거예요.
엽서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 저는 그때 당시 모아두었던 엽서 중 고르고 골라 100장을 만들고 그 각각의 엽서에 사랑에 관한 시를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쓴 자작시를 포함해서 말이죠.^^;;
그리고 편지도 쓰고 종이학도 천 마리 접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마음이 생겨났는지 저로서도 알 수가 없군요.
또 다시 누군가를 만나면 다시 그렇게 할 자신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렇지만 제가 누군가에게 줬던 선물 중에 그렇게 정성을 쏟은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합니다.
그리고 또 궁금하네요.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지...
어쩌면 그에게는 부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살짝 드는군요.^^;;

반대로 제가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친구가 선물해 줬던 꽃다발과 머리핀이 들어있던 메모입니다.
대학 다닐 때 단짝이던 친구와 사소한 일로 다툰 적이 있었는데요, 그 다음 날 그 친구가 미안하다고 하면서 소국을 한 다발 안겨 주더군요.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꽃다발을 선물로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그렇게 화해의 마음을 전해 준 친구의 마음과 함께 그 꽃다발의 기억은 계속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머리핀은, 또 그 친구가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우리의 선배인 오빠와의 이별을 취소하러 수원에 갔다 오면서 사다 준 것이었습니다.
수업까지 빼먹고 갔다온 그 길에 제 생각이 났다네요.
(그건 아마도 그 선배네 집과 우리 집이 걸어서 15분 정도밖에 안 난 이유도 있을 거라 멋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ㅡㅡ;;)
메모에 그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들어있었죠.
지금은 메모만 남아 있고 그 머리핀은 어디로 갔는지조차 희미하지만 그때의 그 기분은 아직도 마음이 기억하고 있네요.

사회 심리학 시간에 '선물'에 관해서 우리는 인간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나 수단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건 이론상의 것일 뿐이고 표면적인 것일 뿐이겠죠.
어쩌면 선물은 그 이상의 것들을 내포하고 있을 테니까요.
앞으로도 제게는 선물을 주고받을 일이 많이 생길 겁니다.
지금보다는 좀더 제 마음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여러분에게는 어떠한 선물의 추억이 있을까요?*^^*

-Arte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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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SOO수
04/05/01 00:35
수정 아이콘
짝사랑하던 아이가 준 편지와 증명사진 한장 , 그리고 늦잠 자지 말라던 알람 시계 하나. 지금은 모두 제 손에 의해 잘라지고 불태워지고 부서졌지만 말입니다...
냉장고
04/05/01 01:22
수정 아이콘
전 선물을 좋아합니다. 사소한 핸드폰 줄이나, 열쇠고리같은건 제가 절대로 안사고 친구나 가족들에게 사주게끔 합니다. 물론 그 사람들 것은 제가 사줘야죠 ^^ 제 주위의 것들을 보며 이건 그애가 그때 사준거지 이건 누가 생일때 준거고..이런게 문득문득 생각나고 그때마다 행복해집니다.

오래된 친구의 집에서 제가 선물한 물건을 보는것도 아주 기쁜 일이더군요. 다만..빌려줬던 책이 몇년째 친구집에 있는걸 보면 좀 화가 나기도 합니다..-_-;;
총알이 모자라.
04/05/01 08:29
수정 아이콘
흑흑, 저는 평생 선물=이별의 공식에서 벗어나진 못한....
선물 싫어요...(울며 달려가다 돌부리에 넘어짐...철퍼덕)
사고뭉치
04/05/01 13:39
수정 아이콘
저도 싫어요... (울며 총알님 따라가다 넘어진 총알님에 걸려 넘어진다... 철퍼덕!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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