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 마재윤을 보면 원래부터 제 좋은 것을 위해서라면 물불도 안 가리는 인간성이 보였지요.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 성격이기에, 김성기의 돈을 가로챘다는 것도 평소 행실을 보면 별로 놀랍지가 않더군요. 다만, 조규남 감독만 선수를 잘못 만나서 고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마조작과 조규남 감독의 궁합이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조규남 감독이 무능하다는 게 아니라, 감독 성격이 마조작 같은 선수와는 맞지 않습니다. 조 감독의 스타일은, 대기만성형에 수동적이고 몰락과 상승을 거듭하는 선수에게 알맞습니다. 아마 이윤열 같은 선수가 조감독 밑에 있었으면 분명 잘 되었을 겁니다.

반면에 마조작은 다르죠. 마조작이 임요환과 닮은 일면이 있는데, 자기한테 유리한 것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죠. 이런 사람은 정과 신뢰로써 가르치기보다는 채찍과 단련으로 대해야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그렇기에 임요환은 그에 걸맞는 엄격한 주훈 감독의 지도를 받아 몰락 후에도 대선배로써 자리를 유지했지만, 마조작은 조규남 감독의 사람 좋음을 오히려 역이용해 배신 크리를 터뜨림으로써 자신도 팀도 모두 수렁에 빠뜨려 버렸지요. 만약 마조작이 조정웅 감독이나 하태기 감독처럼 엄격한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2. 이번 사건의 유일한 의의라면, 팀의 정신적 지주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되었다는 거죠. 현재 확인된 승부조작 게이머들 소속 팀을 살펴보면 존경할 만한 올드 게이머를 갖춘 팀이 거의 없습니다. CJ야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해줘야 할 마조작 본인이 그리 되어버렸으니 말할 것도 없고, STX는 박성준 등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사람 인상이 권위적으로 군림할 사람은 아닌데다 애초에 진스막이 마조작을 더 따라버렸고, 이번에 가장 많은 검거자를 배출한 걸로 악명을 떨친 하이트 스파키즈는 애초에 감독부터가 애들 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 게 아예 눈에 보였죠. 요즘 성적이 안 좋은 것도 그렇고, 일전에 강민의 올드보이에서 스파키즈 소속 김창희가 제 팀에서는 그 정도로 연습하지 않는다고 말한 걸로 보아 열두 게임단 중에서 선수 관리가 가장 최악인 팀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원종서가 주장이라지만 어떻게 무슨 굴비마냥 줄줄이 엮여들어가는지. 심지어 조작 의혹을 받는 김창희가 버젓이 예능에 출연하는 걸로 봐서 감독이 당최 생각이 있는 사람이기나 한지 의심스럽더군요. KT는 박정석과 홍진호가 공군에 가버렸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뼈에 사무칠 듯합니다. 아무리 찬수명수가 형제지간이라 한들, 박정석이 남아서 가르치기만 했어도 최소한 박찬수만큼은 넘어가지 않았을 거라고 단정합니다. 이스트로는...그냥 말을 말겠습니다.

3. 이후로 인성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말들이 많은데, 과연 그게 효과가 얼마나 될까요? 작년 FA 교육이나 정기 소양교육 때 선수들 모습을 보셨나요? 제가 포모스에서 구경한 바로는, 서지수 선수와 같은 올드 선수들만 열심히 배우고 있지, 대부분은 엎드려서 자고 있더군요. 만약 그 인성교육이라는 것이 초중고의 도덕·윤리 교육과 같은 수준이라면 그야말로 돈 낭비·시간 낭비밖에 안 될 겁니다. 애들 수면시간밖에 안 될 인성교육보다는 이러이러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어떤 처벌을 받고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를 확실히 주지시키는 게 낫죠. 원래 인간은 공허한 윤리적 담론보다 인센티브의 자극이 훨씬 더 효과적이게 마련입니다. 또, 인성 교육 담당 강사가 교단에서 애들한테 직접적으로 수업시키기보다는, 코치와 올드 게이머들을 교육시켜서 이들이 다시 게이머들을 관리하는 간접적인 방법이 더 효율적입니다.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는 제대로 된 공부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보통 학생들 다루듯이 가르쳐봐야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굳이 게이머가 아니더라도, 생판 모르는 외부 강사가 와서 수업이랍시고 따분한 고담준론을 늘어놓는 거랑, 이 바닥에서 수 년을 살아온데다 앞으로도 동고동록해야 할 선배가 연습 도중에 옆자리에서 일러주는 말, 어느 게 더 귀에 잘 들어올까요?

4. 물론 다 이번 사건이 무사히 지나간 다음에야 이런 논의도 유의미해질 겁니다. 전례가 없는 일인데다 스타2의 출시도 임박해 있는 만큼, 당최 이후가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게 현실이죠. 일벌백계만 잘하면 무사히 지나갈 것이란 사람도 있고, 판이고 나발이고 다 죽어 없어질 거란 사람도 있고, 축소된 채 근근히 명맥만 이어갈 거라는 사람도 있고, 아예 끝장낸 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같이 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 누가 옳다고 볼 수가 없네요.

5. 그러고 보니 마조작은 블리자드로부터 서리한(프로스트모운)을 받은 적이 있는데, 어떤 스갤러는 이를 두고 이 모든 게 마조작을 타락시켜 스타크래프트1을 몰락시키고 스타2를 흥행시키기 위한 블리자드의 음모라고 보기도 합디다. 아서스가 무엇 때문에 타락해서 누구 목에 칼을 꽂았는지를 아는 분은 아마 수긍하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