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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5/16 21:49:48 |
Name |
nickyo |
Subject |
스토리, 드라마, 종말. 불신지옥. |
우리가 사랑한 스타리그들은 수많은 드라마와 스토리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아무리 뛰어난 들, 대중이 아무리 그 게임에 대해 익숙하다 한들, 그저 단순한 승패의 이야기라면 이 판은 절대로 유지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작해야 게임으로 불리는 것을 존중받는 하나의 직업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 했고, 젊고 어린 그들의 작은 손에서 창조하는 새로운 방식들에 열광했습니다.
먼 옛날 로마의 검투사 시절부터, 지금의 UFC까지 인류는 누가누가 더 쎈가에 대한 논쟁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스타리그는 그런면에서 최고의 리그중 하나였습니다. 명확하게 승패가 가려지는데, 그 안의 반전과 가능성이 너무나도 다양했던 스포츠경기지요. 사람들은 그래서 최강자를 향해 환호를 날리고, 그에게 도전하는 수많은 도전자들을 응원하고, 그 혈투속에 피어오르는 감동이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 스타리그와 함께 10년을 보내왔습니다.
사실 승부란건 잔혹하기 그지없습니다. 스타리그는 더더욱 경쟁구도가 명확하고 치열하기에, 패자는 남는것이 아무것도 없는 잔인한 경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러한 승부의 승패와 함께 애증을 갖고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와 팀을 응원하며 함께 웃고 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뢰에 있었습니다. 당신들과 나는 남이아니다. 우리는 스타리그와 E스포츠를 함께 일궈낸, 불모지를 사람사는 곳으로 변화시킨 동료라고요. 그리고, 그 피와같은 혈약은 오늘 깨져버렸던 것입니다.
드라마같은 스토리, 사람들의 심금을 쾅쾅 두들겨 줄 스토리에 꼭 필요한건 기승전결같은 흐름만이 아닙니다. 극적인 요소만 필요한 것도 아니지요. 그 이전에 보장되어야 할 것. 순수성. 그들의 검에는 한치의 외압도 없었으며, 그들의 총탄에는 어떠한 거짓도 없었다-라는 신뢰. 믿음. 그들이 내걸고 싸웠던 모든 것은 진실했다고 하는 그 사실. 그렇기에 우리는 감동할 수 있었습니다. 고작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것에 그렇게 감동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손이, 그들의 마음이, 그리고 그들이 함께 우리와 바친 이 판에대한 삶의 시간이 진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렇게 잔인한 경쟁이 지속되는 스타리그를 아름답게 꾸밀 수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실력으로 나뉘는 강자에의 순수성. 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명확하게 최강자가 정해지고, 그 안에 어떠한 부정도 상상할 수 없었던, 너무나 가까웠던 이 판을 말입니다.
스타리그 사관을 새로이 했던, 이스포츠의 두번째 심장이라고 까지 불리던 본좌론을 끌어낸 마모씨든, 16강의 본좌든, 사실 그건 별 일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10억을 쳐묵쳐묵 했다거나 하는건 큰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들은 그러나 돈보다 더욱 더 커다란 것을 이 판에서 빼앗아 갔습니다. 진실. 순수성. 이 판의 승부를 아름답게 할 수 있었던 궁극적 가치들을 그들은 마치 믹서기에 과일을 갈아버리듯 갈아마셔버리고 떠나는군요.
이제 스타리그는 새 팬을 유입하기가 더욱 힘들어 졌습니다. 가뜩이나 옛날게임에 점점 스타인구도 줄어가는데, 걸출한 리쌍과 신인들의 활약으로 드디어 새로운 제 3의 심장이 탄생하는가라는 중요한 대목에서, 우리는 이 승부가 과연 구라인지 자연빵인지도 모르게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판이라는게 고작 10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그 순수성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조차 없었다는걸 생각해보면, 우리는 10년을 통째로 빼앗겨버린것입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 말이겠지요.
신림동 게임방 폐인의 도전. 무모한 꿈에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 스폰서 하나 없이 매일같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스스로를 연마했던 그들. 냉정한 승부의 세계와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강자들 안에서 빛나기 위해 피땀과 눈물을 키보드위에 뿌렸던 그들. 황제, 천재, 괴물, 영웅, 악마, 투신, 운신, 폭풍, 목동, 퍼펙트, 귀족, 몽상가, 사신, 소닉, 불꽃, 대마왕, 대인배, 광전사 그리고........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수많은 이 판의 게이머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모든것들의 순수성이 오늘 결국 부정당하고 만 것입니다.
앞으로 이 판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이 승부에 대하여 더 이상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조작사건이 과연 전부 다 뿌리뽑혔을까 하는 의심부터 시작하여, 과연 현재 최강자들은, 갑자기 기세가 오른 신인들은, 드라마틱한 역전의 모습들은, 압도적인 포스와 기록들은, 진실된 것인가 하는 의심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열광하게 했던, 우리를 이 마이너한 판에 끌어들여서는 끝까지 붙들게 했던 단 하나의 중요한 가치를 그들은 산산히 부숴버렸던 것입니다.
불신지옥. 우리는 이제 그들의 혈투를 순수히 바라볼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싸움과 승패의 여부에 대하여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의심의 꼬리는 마치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를 먹었던 것 처럼, 이 판에 그림자로서 드리워져 있겠지요. 이 판의 역사가 이대로 끝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저 개인에게 있어서 스타리그의 드라마는 이전과도 같은 감동을 받기는 어려워 지겠지요. 설마 조작? 설마의 무서움이 드디어 이 판에 증명된 오늘입니다.
이 판에 종사하고, 이 판을 사랑했고, 이 판에 달라붙은 수많은 사람들을 배신한 그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절대 굶어 죽을일 없을 당신들의 최후가 그저 비참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전성기에 보여준 상상 그 이상의 플레이 만큼이나 상상 그 이상의 짓들로 모든걸 부숴버리고 가는군요.
사람들의 마음에서 순수와 진실을 빼앗고, 종말을 향한 레퀴엠의 곡을 지휘하는 그 봉을 이제서야 부러트림에 후회가 됩니다.
부디 다시는, 이 세상 어디서도 그 이름 석자 몇몇을 보지 않고 살아가 언젠가 잊혀지길 바랍니다.
나의 순수와 열정을 바친 시간을 철저히 부정해준 그들의 앞길이 비참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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