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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4/06 14:07:01 |
Name |
마키아토 |
Subject |
이제 본좌 논란이 무의미하다 여기는 이유 |
흔히 본좌라는 칭호를 붙이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 그리고 최근 이영호 선수로 인해 생겨난 이유는 바로 다른 선수들과의 압도적인 차이(이른바 포스)입니다. 커리어는 그걸 확인할 수 있는 장치고요. 이제동이 그 뛰어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본좌로 불리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다른 선수와 그렇게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과거 e스포츠 초창기에는 지금처럼 프로게임단 체제가 마련되지도 않아 환경은 열악했고, 정보의 공유가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선수마다 각자의 전략 체계가 있었고, 그 중 압도적인 전략 체계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시절에는 다른 선수가 그 선수 따라잡기 정말 어려웠고 정말 그 선수가 다른 선수일 수 밖에 없었죠. 그렇게 본좌라는 칭호가 나오게 되었습니다(소급적용이긴 하지만).
그러다 김택용, 이제동이 나오고 택뱅리쌍 체제가 정립되면서 e스포츠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합니다. 프로게임단 체계는 완전히 자리잡았고, 선수들은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환경이 제공되었으며, 선수들간 정보의 공유는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신세계이죠. 그런 신세계는 기존의 것과 다른 강자의 모습을 요구합니다.
이제 한 선수가 잘한다는 것은 어떤 전략체계의 우위를 바탕으로 압도적인 실력차이를 보여주는게 아니라 철저한 자기관리와 연습, 마인드, 판단력 등의 문제로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축구나 야구를 보시면 알겠지만, 오랜 시간이 쌓인 프로스포츠에서 판을 뒤엎을 만한 전략전술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이미 수많은 데이타가 쌓였다는 증거지요.
마재윤이 구세계의 마지막을 찍었다면, 김택용부터 시작해 이제동과 이영호에 이르는 신세계의 강자들은 기존의 본좌들과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서로 큰 실력차이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흥망성쇠를 계속합니다. 마치 피닉스처럼 말이죠. 그러다 사람들은 서서히 택뱅리쌍이라는 식으로 엮어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4대천왕이라는 명칭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냥 인기순으로 1등부터 4등까지 잘라 표현한 정도였지 지금의 택뱅리쌍과는 다릅니다. 오랜기간동안 여러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클래스를 선보이며 최강자의 자리를 나눠먹고 있다는 것은 e스포츠 태동 이래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어떤 리그의 발전은 한 팀의 압도적인 우위가 아니라 여러 강자들이 우글거리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리에A의 세븐 시스터즈나 EPL의 빅4처럼요. 그렇게 e스포츠의 발전을 보여주는게 택뱅리쌍이었고, 프로토스의 발전을 보여주는게 육룡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택뱅리쌍과 같은 칭호를 너무 좋아합니다. 본좌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얄미운 생각이겠지만요.
이제동의 가치는 그 중 가장 많은 커리어를 쌓았다는 점입니다. EPL을 보시면 알겠지만, 빅4라는 팀이 있어 서로간의 경쟁을 통해 오랫동안 상위권을 휩쓸었어도 그 중 맨유가 가장 많은 우승을 하여 이름을 날렸습니다. 지금 이제동의 위치가 그러합니다. 이제동은 신세계의 최강자이지 과거 본좌의 뒤를 잇는 선수는 아닙니다.
이영호의 부상은 신세계를 무너뜨릴 만큼의 파괴력을 지녔지만 그것은 이제까지 있어왔던 것의 완성형으로, 어디까지나 이 신세계의 질서 속에 이루어진 것이지 과거의 본좌가 내려와서 그리한다 보기는 힘듭니다. 커리어의 문제는 오히려 부수적입니다. 이영호가 차지할 자리는 본좌가 아니라 이제동이 차지한 그 자리입니다.
김택용이 3.0으로 업그레이드 해서 돌아온다고 하면 지금은 약한 프로토스 또한 신세계에 자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너무도 반가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택리쌍이 나오는 긴 시간동안에도 송병구는 오랜기간 턱밑에서 보조를 맞춰왔습니다. 그가 없었으면 지금과 같은 신세계보다는 오히려 또 다른 본좌를 찾는 일에 더욱 얽매여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제 신세계는 더욱 확장되고 있습니다. 저그는 이제동의 독재시대에서 벗어나 김윤환, 김명운 등의 새 얼굴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테란은 이영호의 압도적인 힘 아래에서도 정명훈이나 이재호 등이 절치부심하고 있습니다. 프로토스는 지금과 같은 위기의 순간에도 육룡 출신의 기존 강자들과 신인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강자의 자리는 더이상 다른 선수를 눌러 혼자 빛나는 별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에 그랬다 하여 지금도 그 기준을 적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최강자란 한순간 피고지는 꽃이 아니라 서로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며 주고 받는 새로운 세계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선수도 원하지 않고, 팬들도 확신할 수 없는 본좌라는 과거 유물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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