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
2010/03/26 17:04:47 |
Name |
ipa |
Subject |
올시즌 위너스의 끝을 앞두고 풀어보는 잡설. |
스덕들이 방송리그를 통해 보고 싶은 건 결국 크게 두 가지 아닐까요.
하나는 일정수준 이상의 유저가 펼쳐내는 "플레이" 자체. 즉, 재밌는 경기내용.
다른 하나는 그 플레이를 "누가누가 잘하나"하는 것. 즉, 승부를 통한 강자의 변별.
마치 김연아의 피겨를 보는 흥미와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그녀의 우아하고 유연한 은반 위에서의 몸놀림, 즉 '연기' 자체가 주는 감각적 즐거움을 목적으로 그녀의 대회를 관람하는 동시에, 그녀가 아사다마오 기타 경쟁자들과의 '겨룸'을 통해 상대우위를 점하는 '승부'의 결과를 보기 위해 대회를 관람합니다.
어디 김연아 뿐일까요.
스덕(스포츠 덕후)들이 스포츠 관람을 통해 추구하는 재미라는 것이 대부분 본질적으로 그럴겁니다.
메시의 화려한 드리블, 앨런의 우아한 슈팅, 박진만의 미친 다이빙 캐치 등등등을 보는 재미와 더불어, 그 경기를 통한 '승부'. 즉 누가누가 더 강한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가 바로 스포츠 관람이 주는 기쁨인 것이지요.
어쨌든 스타도 그렇습니다.
스덕(스타 덕후)들이 스타를 관람하면서 보고싶은 것은 이제동의 말문이 막히는 두 부대 뮤짤, 이영호의 미친 마린 액션, 왔다갔다 치고받는 정신없는 난전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제동과 이영호가 붙어서 누가 이기는지, 누가 더 센지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자의 재미가 후자를 압도할 때 우리는 듣보들의 명경기에 열광하며, 후자의 재미가 전자를 압도할 때 우리는 찌파를 벌이며 경기시간 5분 짜리 크리스마스 벙커링을 두고두고 회상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싶은 말은 그 뭐시냐...스덕들은 경기의 내용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누가누가 강한가"를 확인하는 것이 리그를 보는 주요 동기가 된다는 겁니다.
개인리그가 프로리그보다 인기있는 것, 프로리그 방식보다 위너스리그 방식이 더 인기있는 것도 어찌보면 그런 맥락일 겁니다.
순수하게 경기의 내용만으로 보면 프로리그가 개인리그나 위너스리그에 비해 딱히 후달리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 시즌을 돌아봐도 이른바 명경기들이 가장 많이 나왔던 리그는 '프로리그'였죠.
-물론 프로리그의 경기수가 많으니 명경기가 많이 나올 확률도 높아질 수 밖에 없겠지만, 하고자 하는 말의 논리에 방해되니 '아님 말고'의 정신으로 일단 무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리그가 개인리그나 위너스리그에 비해 몰입감이나 호응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스덕들이 스타를 보며 기대하는 두 가지 흥미 요소 중 뒤의 것, 즉 "누가누가 강한가"에 대한 개연성과 스토리를 부여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단계적 대전과 단계적 탈락을 통해 최종적으로 1인만을 남기는 토너먼트 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개인리그야 말할 것도 없죠.
"누가누가 강한가"는 개인리그에 있어 본질이자 궁극에 가깝습니다.
위너스리그 역시 마찬가집니다. 강한 놈은 계속 이길 수 있죠. 강한 한 놈은 나머지 넷을 쓸어버립니다.
하루의 경기를 통해 1승 한 놈, 2승 한 놈, 올킬한 놈...으로 "누가누가 더 강한지"를 서열화하고 설명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리그는 다릅니다.
물론 에결이라는 예외적 상황을 통해 예외적으로 2승을 거둘 수 있기는 하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거둘 수 있는 승수는 더 강한자든, 덜 강한자든 누구나 1승입니다.
프로리그 내에서 "누가누가 더 강한지"를 서열화하고 설명해낼 수 있으려면 비교적 장기간의 '누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누적된 '데이터'의 비교를 통해 비로소 상대우위의 평가가 가능해집니다.
판단의 과정이 상대적으로 차갑고, 이성적이고, 느립니다.
"누가누가 더 강한가"를 확인하는 것을 리그를 보는 "재미"의 중요한 요소로 볼작시면, 프로리그에서 구현되는 그것은 감각적 의미에서의 "재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특징을 가진다는 거죠.
단 한 경기만에 선수간 강함의 서열이 승수에 따라 더할 나위 없이 직관적이고, 감각적이며,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위너스리그나, 경쟁상대를 '꺾음'으로써 '단계별로' 올라서도록 되어 있는 개인리그가 가지는 "누가누가 더 강한가"를 통한 재미는 확실히 프로리그의 그것과 차별된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스덕들이 직관적으로 혹은 감각적으로 개인리그나 위너스리그를 프로리그보다 선호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시작하는 msl도 부디 잘 돼서 양대 개인리그의 위상을 단단히 지켜냈으면 좋겠네요.-
...어쨌든 이제 올 시즌 위너스도 끝을 향해가고 있군요.
전에 어떤 피쟐러가 비유했듯이, 이제 뷔페 음식에 길들여져있던 입맛을 다시 급식에 적응시켜야 할 때가 온 듯 합니다.
그래서 맛난 진미의 바닥에 남은 진국을 끝까지 아껴 음미하듯이, 남은 위너스의 플옵, 결승을 최대한 재밌게, 소중히 즐기고 싶어집니다.
플옵에선 개인적으로 웅진이 이겼으면 좋겠네요.
무엇보다 한상봉, 김명운의 대 이영호 태그매치가 몹시 기대되기 때문이죠.
엔트리의 구도는 준플옵과 비슷해보입니다.
뒤에 염보성이라는 또 하나의 빅카드를 남겨두긴 했지만 이재호라는 에이스 카드를 오픈된 선봉카드에 배치한 엠히와 김민철이라는 다소 부담이 덜 한 백업 카드를 선봉에 내민 웅진.
준플옵에선 엠히와 비슷한 선택을 했던 김구현 선봉의 stx를 웅진이 멋지게 격파했었죠.
그 경기 엔트리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위너스 용병술의 백미는 오픈된 선봉카드가 아니라 바로 2세트의 차봉카드"에 있지 않은가 하는 겁니다.
승자연전방식인 위너스에서는 이긴 쪽에서는 승리의 기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이점을, 반대로 진 쪽에서는 "자신들만이 상대를 알고 있다"는 이점을 가집니다.
만약 웅진이 1세트를 질 경우, 웅진은 2세트에서도 김구현을 상대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면 이긴 stx는 기껏해야 추측만 할 뿐이죠.
그리고 웅진은 여기에서 stx의 추측을 아예 벗어나버림으로써 위너스 특유의 미지와 변수를 완전히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지위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너스에서 패자에게 주어진 고유한 이점의 극대화랄까요.
둘다 서로 상대를 알고 있는 프로리그와도 다르며, 둘다 서로 상대를 모르고 있는 클로즈드 엔트리와도 다릅니다.
자신은 알고 있고 상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원포인트 스나이핑의 최적화가 바로 이 위너스 2세트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거죠.
사실 김민철은 김구현만 잡고 그냥 내려왔어도 충분했다고 봅니다.
실제 경기에서는 김민철이 올킬까지 해버리는 바람에 이재균의 용병술이 거의 점쟁이 무당급이 되어버렸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히려 합리성이 돋보이는 선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1세트에서는 버려도 크게 아까울 것 없는 응수타진형 백업카드의 기용, 2세트에서는 변수를 극대화한 돌발카드의 최적화 스나이핑으로 위너스리그 특유의 변수의 흐름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는 용병술.
어쩌면 플옵의 김민철이 이번에는 준플옵의 정종현 같은 역할을 맡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재균 감독의 용병술에서 주목해야 할 key point는 이번에도 역시 김민철이 질 경우에 이재호를 노리고 나올 2세트 차봉의 스나이퍼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역시 문제는, 그렇게 엠히를 이기고 올라갔을 때 만날 KT에는 암수(暗數)든 변수든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은 먼치킨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겠죠.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