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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1/29 16:14:28
Name Artemis
Subject 자이언츠 킬러가 모처럼 웃은 날
그가 공군 에이스에 입대하게 됐을 때 나는 눈물이 났다.
그가 군에 입대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던진 아픈 말 때문에 무척이나 아프고 서러웠다.
그때 게시판에 난무하던 온갖 비난들.
그래, 그런 사람들의 평가가 너무하거나 잘못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으로서는 가슴 아팠다.
단순히 '공군 에이스 입대'라는 상황 하나로 난도질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손이 떨리고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냥 그는 내게 애정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만큼 오기도 생겼다.
가서 잘해라, 네가 공군 가서 뭐 하냐라는 사람들의 말을 쏙 들어가게 해라, 내가 응원한다.
하지만 암담했다.
몇 번의 출전.
그는 내 기대와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답보 상태였다.
갑갑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마음을 바꿨다.
승패는 상관없다, 그냥 경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겠다.
아예 못 보는 것보단 그 편이 나았다.

그렇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조금씩 지쳐간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패를 기록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란 힘든 일이다.
뭔가 엉성하고 세련되지 못한 플레이에 원망의 말을 쏟아낸 적도 있다.
그리고 이후 속속 새 테란 선수들이 공군 에이스에 편입되면서 나는 마음을 놓아버렸다.
어쨌든 그보다 훌륭한 테란 선수들이 팀에 많았다.
나는 이제 그가 경기에 나올 수나 있을까 의문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공군 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벤치에 그가 있는지 먼저 살피곤 했다.
거기, 그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난 조금씩 손을 놓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프로리그 엔트리를 살피는 일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내 일상 자체가 무기력했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열정적이지 못했다.
나는 슬슬 무심해져갔다.

밤새 놀고 들어와 늦은 잠에 피곤함에 눈을 부비고 깬 오후.
누군가 "알양 좋아하는 재욱이 나왔네요"라고 말을 한다.
진짜요?
"지금 경기 할 만한 상황"이라고 덧붙여 말해준다.
황급히 채널을 돌린다.
화면 왼쪽 상단에 뜬 그의 이름.
왠지 모르게 반갑다.

한눈에 봐도 그가 유리한 상황이란 게 보인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유리할 때 결단 못 내리고 지지부진하다가 엎어진 경기 한두 경기가 아니라서.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분위기가 묘해진다.
아무래도 응원하는 사람 입장을 중심으로 보다 보면 조금만 불리해져도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당연 내 마음은 암담해진다.
이러다 엎어지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생기고,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그의 드랍십은 위용이 있다.
그거에 희망을 건다.

그리고 본진에 떨어지는 드랍십.
이제야 좀 안도가 된다.
누군가 "드디어 끝났네"라고 말한다.
긴 한숨이 입에서 흘러나오며 화면이 흐릿해진다.
그리고 그의 환히 웃는 모습에 같이 웃는다.
울었다, 웃었다,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프로리그 1254일 만의 승리, 공식전 1181의 승리.
그냥 그의 승리가 기쁠 따름이다.

인규 씨 때도 그랬지만, 이래서 좋아하던 사람을 쉽게 놓칠 수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지내다보면, 이렇게 감동을 안겨주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의 감동은, 강자라 일컬어지는 선수들이 압도적으로 이긴 경기를 보여줄 때의 느낌과는 비교할 수 없다.
가슴 저 밑에서 차오르는 벅차고 울리는 감정이다.

다음에 또 이렇게 이기리란 보장은 없다.
나는 최소한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오늘 그가 '이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입대했을 때 사람들이 쏟아내던 아픈 말들을 기억에서 조금 지운다.
그저 나만의 위안일지라도.

그리고 홀로 중얼거린다.
잘했어요, 차프로.
잘했다, 차재욱.


-
경기가 끝나고 바로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이기에 좀 거칠긴 합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올리는 건, 차재욱 선수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어서요.
한때 '자이언츠 킬러'로 불리었고, KOR 시절 우승의 주역이었던 그는, 사실 개인리그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선수는 아니었죠.
게다가 생각보다 실력 저하가 빠르기도 했고, 그러기에 공군 에이스에 입대한다는 사실이 전해졌을 때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뭐 군에 입대해서도 그리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건 저조차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잘했을 땐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고, 그의 승리에 기분이 좋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어쨌든 경기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응원을 먹고 사는 것일 테니까요.^^;;

오랜만에 승리를 거뒀는데, 좋게 마무리가 되어서 그 또한 기분이 좋네요.
최인규 선수가 1405일 만인가, 김택용 선수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에결에 나왔던 임요환 선수를 내 평생 그렇게 응원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죽어라 응원했는데, 오늘 역시 그랬습니다.
게다가 오늘 공군 에결 출전 선수는 제가 좋아하는 오영종 선수라서 더욱 조마조마 마음이 오리락내리락했네요. 하하.

여튼 아직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 있음을, 오늘 승리에 기뻐하는 사람이 있음을 그가 알아주었으면 싶고, 더욱 힘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정말이지 같이 환하게 웃어주는 한동욱 선수의 미소마저 참으로 흐뭇했어요.^^

-Artemis


덧.
지난달 PgR 모임 때 5조의 어떤 분이 본인이 퀴즈 맞춰서 받으신 차재욱 사인 마우스를 제게 양도해주었는데, 지금에서야 고맙다고 제대로 인사드립니다.
오늘 경기 끝나자마자 그거부터 제일 꺼내 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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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타이크
09/11/29 16:21
수정 아이콘
점점 떠나가는 올드 팬들을 붙잡는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고 봅니다.
공군 에이스. 화이팅..
09/11/29 16:24
수정 아이콘
공군 ACE는 한명 한명 모두가 소중합니다.
차재욱 선수의 1승은 오늘 공군 ACE의 1승을 위한 정말 소중한 1승이였습니다.
09/11/29 16:56
수정 아이콘
그때 결승전에서 x밥 인터뷰만 안 했어도 이미지가 좋았을텐데...

그 인터뷰 때문에...
Kaga Jotaro
09/11/29 16:58
수정 아이콘
차재욱선수, 진짜 오랜만의 승리 축하드립니다. 오늘 공군이 이겨서 더 기분이 좋네요.
ROKZeaLoT
09/11/29 17:06
수정 아이콘
04년 프로리그 우승할 당시 6명으로 7경기의 엔트리를 만들었던 KOR. 그리고 결승 에이스결정전에서 조용호를 격파하고 팀 우승을 견인했던 주역이 바로 차재욱 선수였었죠.
비록 e판을 안지 그리 오래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예전의 경기는 모두 VOD로만 본 저지만, 그당시 결승 에이스결정전은 VOD에서조차 감동이 느껴지던 몇몇 장면들중 하나였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올드죠.
날아가고 싶어.
09/11/29 17:15
수정 아이콘
공군 경기 때마다 차재욱 선수는 눈에 밟히는 선수 였습니다. 홍진호도 살아나고, 박정석도 살아나는데..너도 살아나야지..이런마음?

그나저나 공군 팬미는 좀 "군대"스럽게 다 같이 하면 안되나요? 아무리 개인 팬미를 원하는 팬들이 있다지만.. 언제 이길지 모르는 경기, 팬들이 역시나란 생각에 안올경우, 다른 선수 팬미할때 멀뚱하니 뒤에 있거나 안나오는 선수들 너무 맘아프더군요..

가끔 공군 이기는날,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는 선수들 뒤에 남아 있는 선수 보기 안타까워서 ..여운이 있더라도 빨리 자리를 뜨는 편입니다.
한번쯤 담당자 께서는 생각해 보시길...
09/11/29 17:40
수정 아이콘
광안리 인터뷰사건은 본인도 상당히 후회한다고 하더군요. 자신도 그당시 왜그랬는지 모르겠다며 많이 반성했다더군요. 애당초 게임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공군에 간거니 어느정도 성과를 냈으면 좋겠네요.
내일은
09/11/29 18:04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아르테미스님인 줄
09/11/29 18:39
수정 아이콘
항상 올드의 승리때문에 스타시청을 끊을수 없네요.
09/11/29 18:45
수정 아이콘
Eva010 님// 광안리 인터뷰는 당시 오프더레코드라서 그냥 사석에서 도발하는 분위기로 한 건데 역효과가 난 셈이라고나 할까요. 이후 상황은 noknow 님이 말씀해주신 대로입니다.

날아가고 싶어.. 님// 요새는 공군도 팬미팅하나 보군요. 흠... 최인규 선수 공군 에이스에 있을 때 두어 번 갔었는데 경기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가더라고요. 아, 져서 그랬나...?-_-a

내일은 님// 헉...
09/11/29 18:52
수정 아이콘
겜게인 줄 모르고 롯데 자이언츠 킬러 얘기인줄 알고 어라? 했다는..쿨럭;
오랫동안 지켜보는 선수의 승리의 맛이란..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영종이의 에결 마무리에 그저 덩실덩실~
공군은 우리의 꿈이자 희망입니다. 으하하-
도달자
09/11/29 19:58
수정 아이콘
CJ의 박태민을 플레이오프에서 KTF의 조용호를 에결에서 잡아내던 느린테란이 애정이 가네요.
성실함이 이미지였던것 같은데 광안리 사건은 프로게이머인생이 유일한 실수일듯싶네요.
아무튼 1승도 못하는 차X밥 이러면서 제발까지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차재욱선수는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09/11/29 20:10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아르님의 팬심이 발동 했군요. 담담한 느낌의 팬심 발동글 오랜만에 보네요.
Ms. Anscombe
09/11/29 20:57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아르테미스님인 줄 (2)
돈키호테의 꿈
09/11/29 22:58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트XXX'님을 떠올렸다가 그 양반은 여기 안 온다는 걸 생각해내고 아르테미스님인 줄....
차재욱/박정석/홍진호의 3연승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대해봤는데...
그래도 그 중 한 사람이라도 이겨서 다행입니다. ^^
회전목마
09/11/29 23:13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아르테미스님인 줄 (3)
그때 그 마우스 이야기 꺼낼줄도 알았다는...
一切唯心造
09/11/29 23:23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아르테미슨미인줄 알았네요 (4)
사실좀괜찮은
09/11/29 23:54
수정 아이콘
헉... 오늘 드디어 1승 했군요...
게르드
09/11/30 00:34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자이언츠라길래 롯데인줄 -_-
彌親男
09/11/30 00:36
수정 아이콘
게르드님// 뭐 자이언츠나 자이언트나 문맥상에 큰 의미 차이는 없으니까요. 근데 방송에서는 거의 자이언트 킬러라고 했었죠.
해골병사
09/11/30 00:47
수정 아이콘
1254일.. -_-;; 정말 길군요 그런데 11연패도 최고기록이 아니라고 해서 좀 충격입니다

이판엔 정말 근성가이들이 많은듯 하네요
Anabolic_Synthesis
09/11/30 03:51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아르테미스님인 줄 (5)
^^; 차재욱에 오영종까지 오늘 최고의 하루 보내셨겠어요!
09/12/01 01:27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아르테미스님인 줄 (6)

공군 오늘 멋졌습니다!

그런데...

황신의 저주 어떻게 좀..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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