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9/11/18 22:28:25
Name 손세아
Subject 엠겜은 제발, 'MSL의 존재 의의'가 뭔지 좀 되새겨주세요.
어떤 두 개의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이 아니면 드라마, 혹은 영화라도 좋습니다.

색채도, 내용도 많이 다른 두 소설. 그러나 이 소설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클라이막스에서 읽는 사람의 뒤통수를 날려버리는 커다란 반전이 일어난다는 점이지요.

그런데 어떤 소설은 엄청난 반전이라며 독자들을 환희에 차게 하고 찬사를 받습니다.
반면 어떤 소설은 이야기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며 무수한 비판을 받습니다.


똑같이 반전이 있는데,
어째서 한 소설은 찬사를 받고 다른 소설은 비판을 받을까요.




종류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스포츠의 의의는 특정한 규칙 아래에서의 '최강자'를 뽑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최강자를 정하냐,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해야 그 스포츠를 보는 사람들이 최강자를 최강자로 인정하느냐.
그 수단으로서 사용되는 것이 토너먼트니 리그니 하는 경기, [대회]입니다.

A라는 사람이 최강자로서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보통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그 A가 대회에 참가하여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면 사람들은 그의 실력을 인정하게 되지요.
그리하여 A가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을 때, A의 실력은 증명이 됩니다.

육상, 수영, 양궁, 사격.. 사실상의 모든 스포츠들은 바로 이 문법대로 진행됩니다.
그건 E-스포츠도 마찬가지. 단순히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게임 이상의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E-스포츠는 다른 일반 스포츠와 달리 단순히 '대회'가 열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자체의 진입장벽을 들 수 있습니다.

육상이나 수영에서 누가 잘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제일 빠르게 들어온 사람이 제일 실력이 좋죠.
양궁이나 사격에서도 역시 누가 잘하는 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중앙 과녁을 가장 많이 맞춘 사람이 실력이 좋죠.

스타크래프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흘낏 보았을 때 누가 잘 하고 있는지, 어느정도 게임의 문법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어렵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직관성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E-스포츠의 주 관람 연령층은 타 스포츠보다도 유난히 젊은 편입니다.
그리고 DC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특유의 인터넷 문화, 속칭 '까기와 까이기' 문화와 함께 성장해왔지요.
까고 까인다는 건,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실력을 지니고는 있지만 아직 입증하지 못한 새로운 강자에게 배타적이라는 뜻입니다.
대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당성 입증'의 기능이 약화된다는 뜻이지요.
(소위 나오는 운빨 논쟁, 맵부커 논란과 상성전 역상성전, OME니 뭐니 하는 경기 평가.. 그 모든 것들이 포함됩니다.)

이제 대회 자체만으로는 최강자의 실력을 입증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최강자를 입증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곧 대회의 의의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뜻이지요.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 대책은, 이제 다들 짐작하셨겠지만 소위 '포장'이라고 불리는 정당성 부여입니다.


맨 처음에 언급한 두 개의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찬사를 받는 반전과 비난을 받는 반전의 차이는 딱 하나입니다.

'복선'과 '암시'가 적절하게 존재했느냐.

복선과 암시, 이러한 반전이 나오게 된 원인.
다시 말해 정당성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소위 '조지명식은 쪽박, 결승전은 대박'인 스타리그와 '조지명식은 대박, 결승전은 쪽박'인 MSL의 차이입니다.


리그 브레이커를 향한 반감이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소위 '갑자기 툭 튀어나온' 쌩뚱맞은 인물에게 개연성 없이 처절하게 무너질 때의 기분과 비슷하죠.
그러나 같은 캐릭터라고 해도 그 인물이 그만한 실력을 가지는 복선, 다시 말해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말은 다릅니다.
갑툭튀가 아닌, '시기를 기다려 온 은거 고수'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 소위 리그 브레이커가 '최강자라는 자리에 오를만한 은거 고수'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MSL의 저조한 흥행 성적은 이 점에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MSL은 단점을 개선해 결승전을 포장하려기는 커녕,

장점이었던 조지명식마저 무너뜨리며 대회의 의의 그 자체인 최강자의 정당성 부여마저 훼손하려 드네요.


'흥행'을 위해, 스스로의 '공정성'을 잃은 대회..

개연성 없이 튀어나온 캐릭터가 있으면 복선과 암시를 깔려는 노력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캐릭터를 아예 주연으로 승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소설 자체의 정당성마저 망쳐버리고 있는 작가.
그런 사람이 쓴 글에, 독자가 던질 것이라고는 비판과 냉소 뿐인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흥행을 원한다면 흥행인 캐릭터를 만들어내야지,
이미 흥행인 캐릭터만 억지로 이야기를 꼬아가며 어떻게든 모아내려고 해봤자 재미있는 글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최강자의 산실이라 부르기 어려워진 MSL.
제발 초심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왜 스타리그를, MSL을 개최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기억해 주세요.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정당성을 얻은 당대 최강자들의 경기입니다.

제대로 된 검증 절차가 붙지 않은 대회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9/11/18 22:44
수정 아이콘
MSL은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 보이지 않는 곳 까지 가버린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09/11/18 22:53
수정 아이콘
OSL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엄옹의 포장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어떤 듣보잡 선수가 와도 엄옹의 포장과 함께라면 그댄 본좌라인 ~ (비꼬는 거 아니예요;;)
MSL...탈도 많고 흥행대진 안 나오는건 안타깝지만 너무 흥행흥행만을 외치는 것은 아닌지.
09/11/18 22:55
수정 아이콘
msl은 더이상 '최강자를 논한다'라는 문구를 쓰면 안되겠어요.

그나저나 이리님이 발그래 하며 좋아할 글이 마구 올라오네요.
손세아
09/11/18 22:57
수정 아이콘
꿀라님// 사실 100% 엄옹의 포장능력에만 기인한 것도 아니죠. 그만큼 스타리그 기획진들과 연출진들도 노력했고.. 전 아직도 EVER 스타리그 2007 결승전 엔딩을 못 잊고 있습니다.
MSL은 되먹잖은 부커질은 그만두고 제발 기획부랑 연출부부터 갈아엎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링글스와 곰TV 시절 예고편은 다 어디로 갔는지.
09/11/18 22:57
수정 아이콘
발그레
09/11/18 23:00
수정 아이콘
손세아님// 제가 아직 스타본지 오래되지 않아서 .. 100%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같다.. 뭐 그정도? 온겜의 노력을 비하하려는건 아니었습니다 ㅠㅠ 전 경기를 볼때 경기의 내용보다는 그 경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스토리에 관심이 많아서 그만큼 엄옹의 포장능력에 애착이 가는 것 같네요 ^^;
YounHa_v
09/11/18 23:07
수정 아이콘
엠겜쪽에서도 뭔가 피드백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DavidVilla
09/11/18 23:09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을 원했습니다.

추천 꾹! 아니, 쾅!
SigurRos
09/11/18 23:15
수정 아이콘
MSL의 흥행을 위한 노력은 높이 사지만.. 이번 방침은 진짜 좀 아닌거같습니다. 도가 지나친것 같다는 말입니다. 스포츠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치열한 경쟁의 무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정당한 근거 없이 인위적으로 이러이러한 결과가 최대한 나오게끔 조작된 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MSL은 이런 맥이 빠지는 일보다는 티져영상, 무대, 오프닝 등에 더 신경쓰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타리그는 세련되고 화려하며 뜨겁습니다. MSL은 촌스럽고 칙칙하고 평범합니다. 매스미디어로 보여지는 이미지가 그렇습니다. 사소한 장치 하나하나에서 그 집단의 이미지가 형성된다는 것을 MSL 관계자들은 모르는걸까요
09/11/18 23:42
수정 아이콘
저의 경우는 엠에셀의 선택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해보려는
노력이 보이기 때문에 따로 멘트를 하지 않았었는데요.
이 글을 읽고 살짝 마음이 흔들리네요.

글을 참 잘 쓰십니다. 맛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는누구
09/11/19 01:24
수정 아이콘
동의합니다. 이렇게 계속 대진 방식을 바꾸다가 진짜 부커질까지 나올 기세네요
파블로 아이마
09/11/19 01:32
수정 아이콘
흐미... 어쩌다 msl이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모범시민
09/11/19 01:58
수정 아이콘
사실 강한자가 살아남는다는 그 명제는 더블 엘리미네이션 제도를 포기했을때부터 같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기에...
올드올드
09/11/19 02:58
수정 아이콘
한때는 온겜 우승은 하늘에서 내려받고, 엠겜 우승은 실력으로 쟁취한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다 과거일이 되버렸네요.
이젠 상위리그 온겜 하위리그 엠겜소리까지 나오니 뭐 어쩌겠습니까....
엠겜이 자초한거니까요.
Anti-MAGE
09/11/19 04:13
수정 아이콘
엠겜이 흥행의 열을 올리고 이것저것을 시도하고 있긴 하는데.. 너무 무리수만 두고 있네요.
상위랭커선수들이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진정 그들은 정작 신경을 써야 될곳에 신경을 못쓰고 있으니.. 허허.. 이것참..
임이최마율~
09/11/19 09:31
수정 아이콘
엠겜은 E-Sports에서 Sports의 의의와 의미를 잃어가고 있군요..흥행을 위한 무리수....주객전도..본말이 뒤바뀐 상황........
드라마는 제작진이 연출하는게 아니라, 선수들이 만들어간다는걸 잊은듯...
영웅의물량
09/11/19 11:52
수정 아이콘
이윤열 최연성 마재윤이 어떻게 나온 선수들인지
엠겜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엠겜에서 키운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강자가 살아남는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최강에 자리를 찾은 선수들이죠.
모범시민
09/11/19 12:33
수정 아이콘
아예 미친척 하고 풀리그로 가보는것은 어떨지...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9260 Nate 2009 MBC게임 스타리그 조지명식(2) [378] SKY927285 09/11/19 7285 0
39259 네이트 2009 msl 조지명식 [346] SKY926476 09/11/19 6476 0
39258 이번 스타리그 16강 조지명식 방식이 생각보다 신선하게 변했네요. [15] Alan_Baxter5799 09/11/19 5799 0
39257 아곤(agon) [26] skzl5235 09/11/19 5235 3
39256 09-10 1R 6주차 엔트리 [80] SKY927972 09/11/19 7972 0
39254 아발론 MSL 8강을 풀리그라고 가정한 '가상' 진행상황입니다. [7] 아비터가야죠4707 09/11/19 4707 0
39253 해법은 간단했는데. [22] SaiNT5806 09/11/18 5806 0
39252 엠겜은 제발, 'MSL의 존재 의의'가 뭔지 좀 되새겨주세요. [18] 손세아6169 09/11/18 6169 8
39251 흥행을 위한 msl의 안간힘. [49] ipa11016 09/11/18 11016 9
39250 이번msl 조지명식 시드자의 권한은 없다고해도 무방하네요. [83] 히든과스캔8979 09/11/18 8979 0
39249 머지 않았을 세대교체? - EVER 스타리그와 네이트 MSL이 가지는 의미 [30] 손세아8159 09/11/18 8159 3
39248 13번째 로열로더는 언제쯤? [12] V4739 09/11/18 4739 0
39247 포스는 느낌이 아니라 커리어지요. [145] skzl7224 09/11/18 7224 3
39246 이제동의 화룡점정... [37] skzl5541 09/11/18 5541 0
39245 제가 1년전에 팀플폐지로 인해 저그가 살아날거란 글을 올린적이 있습니다 [5] 삭제됨4224 09/11/18 4224 0
39244 저그의 시대가 도래, 그리고 이제동이 가져온 것 [15] NecoAki5681 09/11/17 5681 9
39243 프로리그 주5일제와 본좌는 공존할 수 있는가 [126] 마약5864 09/11/17 5864 2
39242 이제동은 마재윤을 넘어섰는가? [266] 디에고 마리화12563 09/11/17 12563 1
39240 스타크래프트2 배틀넷 2.0에 대한 정보. [23] 물의 정령 운디8428 09/11/16 8428 2
39239 테켄 크래쉬의 가능성. [76] ipa8155 09/11/16 8155 0
39237 이제동이 도전해 볼 만한 새로운 기록 - Triple Gold [17] Noki~5840 09/11/16 5840 0
39235 간단하게 보는 택뱅리쌍 성적표 ver.02 [20] 마빠이7705 09/11/16 7705 1
39234 2009년 11월 셋째주 WP 랭킹입니다 (2009.11.15 기준) [2] Davi4ever4837 09/11/16 4837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