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 배달입니다.
포모스 나이더스님의 글입니다.
역대 테테전 스페셜리스트를
재조명하는과 동시에
서지훈을 중심으로한 테테전 역사와 트랜드가 어떤식으로 변해왔는지 잘 나타나있는 글이네요.
테테전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시는 분들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인거 같습니다.
그럼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테테전의 거장 서지훈 (1)Before Xellos
-지루하다는 인식에 갇혀 팬들에게 외면받을 때도 있지만 테테전의 속에 들어있는 빌드와 유닛과 게이머들의 두뇌 싸움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3개 동족전 가운데 유일하게 멀티와 테크, 병력의 삼각관계가 잘 살아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온 테테전의 트렌드와 테테전의 역사에 획을 그은 거장, 서지훈을 미약하게나마 조명해보고자 한다.
1편에 이은 뒷 이야기는 2편에서 마무리 짓는다.
"그 어떤 유닛도 천적이 있다."
스타크래프트를 지배하는 주 법칙 중의 하나다. 단, 이 원칙은 종족간의 밸런스를 위해 만들어진것인 만큼 Z vs Z, P vs P에서는 빗나가는데, 뮤탈과 드래군을 제압하는 유닛이 각 종족에 없기 때문에 게임의 양상이 오래전부터 고정되어 왔다. 반면 테란은 조합의 종족, 범용성 유닛의 양이 아닌 특화형 유닛의 조합으로 힘을 발휘하는 종족인 탓에 동족전에서도 유닛간의 먹이사슬이 남을 수 있었다.
탱크-레이스-골리앗의 물고 물리는 천적관계와 속도와 마인으로 변수를 만들어내는 벌처의 의외성이 겹쳐지면서 테테전은 동족전임에도 천변만화의 전략과 조합이 난무하는 종족전이다.
그래서 테테전을 보면 테란 게이머의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다. 본디 스타일이란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에만 발현될 수 있는데 테테전은 테란에게 가장 다양한 선택지를 보장해 준다. 빌드의 선택 이외에도 후반 운영에 있어서도 선수의 스타일에 따라 플레이는 갈린다.
오리지널에서는 테테전도 레이스 싸움 하나로 정리되었지만 브루드워로 넘어오면서 골리앗의 사거리 업의 추가로 레이스-탱크-골리앗의 천적 관계가 시작된다.
브루드워 초기까지 테테전 레이스 싸움은 관성으로 이어져 왔는데 이 무렵 유병준(현 MBC게임 해설)은 메카닉의 달인 김대건을 상대로 빠른 골리앗으로 허를 찌르며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이후 테테전에서도 골리앗과 탱크의 존재가 수면위로 떠오른다.
초창기 테테전에 많은 공헌을 한 선수는 임요환. 저그전의 드랍쉽이나 바이오닉 컨트롤의 화려함에 가려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임요환은 테테전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열어젖힌 선구자였으며, 실력 또한 당대 최강에 모자람이 없었다.
테테전에서 벌처의 가능성을 발견하였고 드랍쉽의 무서움은 저그전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동료 테란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며, 탱크/골리앗의 유기적인 운용을 깨우쳤다. 그러는 한편으로 한 타이밍 빠른 소수 레이스 찌르기와 같은 교묘한 수단을 병행하며 무적의 테테전을 자랑했다. 이 모두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테테전의 기본기라 불리우는 것들이다.
메카닉의 달인 김대건을 상대로 패배 직전까지 몰렸던 경기를 뒤집은 한 방의 드랍쉽, 탱크인 척 마인 벌처로 베르트랑의 탱크를 전멸시키며 승리를 거둔 경기, 최인규를 완전히 당황시켰던 집요한 개스 테러.
이렇게 레이스 싸움의 시대를 끝내고 유닛간 천적관계를 이용한 두뇌 싸움으로의 이행을 만들어낸 선수가 임요환이다.
전성기 임요환에게 테테전의 맞수는 단 한 명, 그와 마찬가지로 테테전의 오의를 깨우쳤던 라이벌 김정민 뿐이었다. 임요환이 수싸움의 달인이었다면 김정민은 테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심지 있고 단단한 플레이로 상대를 제압했다. 임요환과 김정민이 맞붙는 경기는 늘 치열함 그 자체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통산 전적 24전 12승 12패. 황제와 귀족은 그렇게 하나의 전설을 남기고 있다.
임요환
시간이 지나 임요환의 뒤를 이어 테테전의 또다른 묘를 깨우친 한 천재가 등장했으니 그가 이윤열이다. 임요환의 테테전이 “어떻게 하면 상대를 농락할 수 있는가”로 표현되었다면 이윤열은 묵직한 강펀치로 상대를 찍어 누르기 위해 고심하는 선수였다. 이런 마인드는 비단 테테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는데 임요환의 견제가 상대의 걸음을 엉키게 만들어 자신의 우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면 이윤열의 견제는 강력한 훅 한 방을 날리기 위한 잽이었다.
이윤열은 테테전의 유닛관계에서 나오는 테크트리의 힘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갔다. 상대의 소수 탱크를 비집고 들어가는 벌처, 탱크를 강요한 이후 레이스로 흔들기, 뼈아픈 지점을 골라 날아가는 4골리앗 드랍. 이 모든 행동 뒤에 늘어나는 멀티와 물량. 이게 이윤열의 테테전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히 상대의 체제를 읽는 시야와 템포 빠른 병력 진출이 필수적이었고 이윤열은 여기에 발군의 재능을 보였다.
이윤열의 등장 이후 테테전의 판도가 바뀌는 와중에도 임요환은 여전한 강자로서 이윤열과 팽팽한 구도를 보여주었지만 이윤열은 끝내 임요환을 제압해냈다. 스타우트배 MSL 8강과 프리미어리그 통합 결승전에서 임요환을 상대로 빠른 템포의 경기 운영과 한 수 위의 견제로 이윤열은 마침내 테테전의 정상에 선다.
이윤열
그러나 곧이어 임요환이 그랬듯이 이윤열 또한 후기지수 최연성의 도전을 받는다.
최연성은 이전까지 테테전을 지배해오던 공격으로 이득을 보고 굳히는 플레이 대신 치밀한 사전 포석으로 우위를 점하고 수비를 통해 이를 지켜냈다. 선대 테란들의 수싸움이 상대를 흔드는 전술적 플레이에 집중되어 있었던 데에 반해 최연성의 테테전은 전략의 수준에서 상대를 앞서고, 기만함을 바탕으로 했다. 당골왕 MSL에서 김동진과 벌인 경기에서 최연성은 김동진으로 하여금 일부러 자신의 사소한 지역에 집착하게 만들고, 소수 병력을 슬슬 잃어 주면서 더 많은 병력과 멀티를 확보해 돌을 던지게 만들었다. 흡사 바둑을 두는 듯한 플레이였다.
이윤열이 유독 최연성에게 약했던 이유는 04 에버배 8강 펠렌노르 경기에 잘 나타나 있다. 골리앗 드랍으로 최연성의 SCV를 다수 잡아내며 승기를 잡은 이윤열은 동시에 여러 개를 가져간 멀티를 가져가며 우세를 지키는가 싶었지만 한 박자 빠르게 폭발한 병력으로 일점 돌파를 시도한 최연성에게 역전을 허용하고 만다. 소수 병력의 생사가 게임의 승패로 이어 지지 않았던 것은 곧 최연성 클래식이다.
최연성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테테전의 양상은 다양한 갈래로 뻗어져 나왔다.
임요환이 자주 보여준 드랍쉽/골리앗류의 원팩 원스타부터 이윤열의 골리앗을 생략한 탱크과 레이스의 콤보, 앞마당 노개스 맵의 범람으로 자주 출현한 벌처싸움과 여기에 집중한 최연성의 7팩 벌처 플레이 까지.
그리고 당시에 재발견된 레이스의 효용으로 인해 흡사 오리지널과 같은 레이스 싸움이 테테전의 대세가 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결국 테테전은 물량 혁명과 맞물리면서 일단 진출해서 자리잡고 터렛을 깔아 전선 뒤쪽의 멀티를 안전히 한 이후에야 싸움에 임하는 양상이 자주 반복되었다. 가열차게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르는 대신 서로가 수비에만 집중한 탓에 이 시기의 테테전은 수면제라는 오명과 함께 보고 싶지 않은 종족전으로 악명을 남기게 된다.
서지훈
그러나 이 무렵 새로이 각성을 시작한 한 명의 거장의 출현과 함께 테테전의 판도는 현재와 같은 역동성의 싸움으로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가 바로 서지훈이다.
서지훈은 본래 이윤열의 시대에 두각을 나타내며 올림푸스 우승을 차지한 선수다. 일찍이 그의 테테전 기량은 최고 수준으로 인정을 받아왔지만 이윤열의 벽에 가려 한번도 테테전의 최강자로 불리지 못했던 비운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대 이윤열전 10연패의 그림자는 그만큼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서지훈의 테테전 스타일은 빠른 손을 바탕으로 견제와 수비를 동시에 해내며 상대를 차근차근 짓누르는 것이었는데 이윤열에게는 이것이 통하지 않았다. 서지훈의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막혔고 그 수비는 정확히 약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이윤열식 견제에 취약했다. 이윤열 또한 그와 같은 빠른 손놀림을 바탕으로 상대를 농락하는 선수였기에 난전에서도 불리할 것이 없었다.
이윤열의 빠른 타이밍 탱크 집중에 뚫려버리며 패배한 피망배 결승 개마고원.
치열한 레이스와 발키리 싸움 끝에 힘이 다하며 패한 LG 팀리그 패러럴 라인즈.
계속 이윤열의 보폭을 쫓아다닌 끝에 무력하게 패한 프리미어리그 결승전.
이상의 경기들에서 항상 2% 부족함을 내보이며 게임을 내준 것은 서지훈에게 시련을 안겨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일련의 경험과 극복을 위한 노력은 테테전의 각성을 위한 거름이 되었으니 드디어 스프리스 MSL에서 반격의 신호탄이 쏘아진다. 1패가 곧 곧 메이저/마이너 리그 결정전으로 이어지는 벼랑끝 패자조에서 천적 이윤열과 마주친 서지훈은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마침내 이윤열을 떨어뜨리며 살아남는다. 이윤열의 플레이를 미리 읽고 과감한 드랍으로 발목을 흔든 다음 예상 드랍 루트를 모두 대비하는 꼼꼼함과 정확한 타격지점 선정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어설픈 공격과 수비의 병행이 아닌 완벽한 공수 교대가 주는 이점을 깨우친 것이다.
그렇게 패자 8강에 진출한 서지훈의 상대는 이병민. 이후 벌어질 테테전의 새 시대를 서지훈과 함께 열어젖혔으며, 그의 가장 격렬한 대적자로 남았던 선수를 만나게 된다.
테테전의 거장, 서지훈 (2)테테전의 혁명가
-지루하다는 인식에 갇혀 팬들에게 외면받을 때도 있지만 테테전의 속에 들어있는 빌드와 유닛과 게이머들의 두뇌 싸움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3개 동족전 가운데 유일하게 멀티와 테크, 병력의 삼각관계가 잘 살아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온 테테전의 트렌드와 테테전의 역사에 획을 그은 거장, 서지훈을 미약하게나마 조명해보고자 한다.
테테전에서의 운영이란 수비에 필요한 최소 병력을 제외한 잉여 병력의 운용이 8할을 차지한다.
여기에 테란 게이머의 실력과 스타일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초가 들어있다. 서지훈 이전의 테테전에서는 잉여 병력이란 주로 전선의 확대로 이어져 서로의 전선이 맞물리는 지점에서의 전투가 자주 벌어졌다. 한번 이득을 본 게이머는 그 이득을 좋은 자리와 더 넓은 지역의 점거로 환산하기 위해 탱크-터렛 라인으로 일정 지역을 수비하고 더 많은 멀티가 가져다준 병력의 우위를 통해 상대를 제압했다.
이런 마인드는 무슨 빌드를 쓰건간에 결국 테테전은 자리 싸움이란 형태로 빚어졌다. 레이스나 드랍쉽처럼 기동성을 바탕으로 한 유닛의 활용 역시 마찬가지여서 레이스로 탱크 걷어내고 조이기, 드랍쉽으로 멀티 선점 등의 형태로 구현되었다.
MSL 패자조 3회전에서 서지훈은 1:2로 이병민에게 무릎을 꿇는다. 경기 내용을 들여다 보면 1경기에서는 이병민의 벌처활용에 서지훈의 실수가 겹치며 패배, 2경기에서는 이병민의 드랍 공격을 눈치챈 기막힌 감각으로 승리, 3경기에서는 타이밍 좋은 전진과 멀티 장악으로 역전을 이루고도 단 한 번의 판단 미스로 공격 병력을 모두 잃으며 패배했다.
이 날의 패배가 결과적으로 서지훈에게 약이 되었음인지 이후 서지훈의 테테전은 무서운 연승 가도 를 달린다. WCG 예선에서는 자신의 숙적 이윤열에게 0:2 패배를 선사하며 더 이상 그의 천적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고 투싼 팀리그 결승에서는 임요환을, 당골왕 MSL에서는 변길섭을 연파하는 등 막강한 테테전 기량을 자랑했다.
그렇게 서지훈은 MSL 승자 8강에서 4회 연속 우승을 노리며 천하 제일인의 길을 걷던 최연성과 만난다.
이전까지 0:3으로 최연성에게 밀리던 서지훈이기에 그의 승리를 점치는 쪽은 드물었으나 여기서 테테전 역사의 큰 족적이 만들어진다. 1경기 아리조나에서 최연성과 마주한 서지훈은 최연성보다 앞마당 멀티를 늦게 가져갔음에도 SCV까지 모두 동원하는 난타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1경기가 가져다준 압박 때문 이었는지 2경기에서 최연성은 치명적인 빌드 오판으로 허무하게 경기를 내준다. 노배럭 더블을 시도한 서지훈의 빌드를 전진 배럭으로 오해하고 본진에 벙커를 짓는 치명적 인 실수를 범한 것이다.
둘 사이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연성을 누르고 4강에 진출한 서지훈은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저그 박태민에게 패하고, 박성준을 격파하고 살아남은 최연성과 다시 한번 패자조 에서 마주친다.
그리고 서지훈은 한번 더 최연성을 2:1로 제압해낸다. MSL 3연패 이후 OSL 우승에 빛나던 당대 최강 테란의 무적 행보가 꺾인 것이다.
이후 팀리그와 OSL 8강에서도 서지훈은 3연승을 거두며 완벽하게 최연성을 제압해낸다. 0:3으로 밀리던 상대전적이 7:4로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최연성의 테테전의 강력함은 자원 상의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 주도권을 잠시 내주며 수비적으로 플레이 하고, 이후 자원의 힘으로 내주었던 센터를 되찾는 것이었다. 상대는 최연성의 뚫릴 듯한 방어진을 두드리자니 수비력에 막히고 그냥 있자니 이후의 강펀치가 무서웠다.
여기서 서지훈은 최연성이 강요한 공격-수비의 이지선다를 역으로 돌려준다. 최연성의 수비 라인에 공격을 가하되 역으로 뚫리지 않을 만큼만 두드리고, 최연성이 수비에 집중하는 사이 자신의 멀티를 안착 시켰다. 앞마당이 늦은 핸디캡은 드랍쉽이라는 테크의 힘으로 흔들면서 한 타이밍을 버티고 최연성이 시도하는 제 2, 제 3의 멀티를 계속해서 소수 병력으로 방해했다. 그리고 자신이 병력의 우위에 섰다는 계산이 서면 지체없이 뚫어버렸다. 앞마당의 SCV를 모두 동원하여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나 최연성의 병력이 빠진 틈을 타 치고 들어가는 탱크의 대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흡사 프로토스전 FD와 같이 가위 바위 보를 엉성하게 내고 상대의 선택에 따라 패를 바꾸어 버리던 최연성의 기만책은 서지훈의 전술적 움직임 앞에 번번히 간파당했다.
결정적으로 서지훈은 테테전의 지루한 대치 전선을 걷어내고 병력 활용의 새로운 바이블을 썼다.
서지훈의 테테전에서 가장 특징적이었던 것은 끊임없이 병력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여타 테란들과는 달리 각 전선에는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겨두고 잉여 병력은 계속 드랍쉽을 타고 움직이며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불리한 상황에서는 병력의 분산으로 이익을 보았고 유리할 때에는 병력을 뭉쳐 다니며 상대가 드랍이나 일점 돌파 등의 변수를 두기 위해 움직이면 빠르게 날아가 진화함으로써 승기를 굳혔다. 현재 테테전의 중심인 병력의 분산과 집중이라는 테마가 이렇게 서지훈의 손으로 완성된다.
이것을 가능케 한 근본적인 힘은 서지훈의 전술적인 시야에 있었다. 자리잡은 상대의 탱크를 돌파 하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병력이 필요한지를 적절하게 계산하는데 있어서 비견할 선수가 없었다. 본진에 드랍이 떨어져 앞마당이 날아가고, 팩토리에 불이 붙어도 화들짝 놀라는 법 없이 오히려 상대의 멀티나 본진을 역으로 노리면서 추가 생산병력으로 어떻게든 수비해내는가 하면 드랍이나 병력 우회로 서지훈의 시선을 돌리려 할 때면 툭툭 시즈모드를 접고 돌진했다.
반드시 드랍쉽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탱크의 움직임 하나로 자리를 잡으며 압박감을 심어주고 공격과 수비를 해내는 미덕을 보여주었고 공격이 아닌 수비를 해야 한다 싶을 때에는 주저없이 엎어지면서 승기를 굳혔다. 반면 서지훈 앞에서 함부로 초반의 이익을 엎어지며 굳히려 하던 테란들은 그 기회비용의 타이밍을 치고 들어오는 공격 앞에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테테전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경기의 하나로 기록될 VS 김윤환.
단 한 번의 팩토리 장악으로 모든 상황을 뒤집어 종료시킨 VS 한동욱.
자리싸움의 최강자 전상욱을 상대로 한 수 위의 거점 장악을 보여준 러시아워 대전.
무엇 하나 고정됨이 없이 그때 그때 최고의 판단을 내려가며 상대를 농락하던 것이 서지훈이다.
이 무렵 이병민 역시 마찬가지로 테테전의 혁신에 눈을 뜬다.
본래 이병민은 이윤열 식의 테크/견제로 점수를 따내고 멀티를 안전하게 만드는 플레이에 바탕을 두고 빠르게 가져간 멀티와 물량을 접목한 수준 높은 테테전을 구사했다. 앞서 이야기한 MSL 패자조 경기에서 서지훈과 만났을 때만 해도 서지훈과 이병민 모두 구식의 테테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은 같은 시기에 비슷한 궤적의 성장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서로의 앞길을 방해했다. 이병민 역시 T1식 수비형 테란의 일원이었던 전상욱에게 매우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두 번이나 전상욱을 8강에서 좌절시킨 장본인이었다.
서지훈에게 바쳐진 별명이 테테전의 짐승이었다면 이병민은 테테전의 요정이라는 익살스러운 별명으로 불렸다.
이병민은 서지훈과 마찬가지로 테테전에서 뛰어난 전술적인 시야를 바탕으로 병력의 움직임을 통해 상대를 제압해내는 선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서지훈의 유동적인 움직임 보다는 자리잡기의 강력함에서 오는 수비의 미학을 좀 더 선호했다는 점이다. 서지훈에게 이병민이 상대 전적에서 크게 앞서는 이유도 서지훈이 펼치는 움직임을 읽어내고 맞춤 수비를 할 줄 아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싸이언 MSL에서 벌인 이병민과 서지훈의 알포인트 대전은 그야말로 테테전의 모든 미학을 보여준다. 레이스로 흔드는 서지훈, 벌처와 마인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이병민, 그리고 터렛 밀봉 따위는 생각지 않는 자유로운 병력의 움직임과 치열한 전술 싸움까지. 이 한 판에 담긴 의미는 그만큼 방대하다.
이병민은 여기서 패배했지만 이후 1년여가 지나 다시 서지훈과 마주쳤을 때 4연승을 거두며 복수에 성공하고, 그들의 마지막 대전이 된 곰티비 시즌 2에서는 서지훈이 승리한다. 그리고 이병민의 은퇴로 두 번 다시 둘 사이의 테테전은 볼 수 없는 대진이 되고 만다.
서지훈은 2006년에 들어서며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고 테테전의 최강자라는 닉네임마저 상실한 체 부진에 허덕인다. 이후 부활의 정점이 된 곰티비 시즌 3에서는 전성기 테테전의 클래스를 보여주며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서지훈은 현재 공군에서 제 2의 게이머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이제 테테전에서 자리싸움은 있지만 지루한 전선 대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의 맵을 제외하면 테테전에서의 전선은 항상 유동적이며, 선수들은 조금이라도 전술적인 이득을 보기 위해 눈을 번득이면서 병력 운용의 속도, 판단의 속도를 겨룬다.
느긋이 앉아서 두는 바둑으로서의 테테전은 사라지고 이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병력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위해 미니맵의 광점을 응시해야 하는 속도의 테테전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렇게 서지훈의 유산은 테테전의 중심 정리로 자리잡았음에도 그 원저자의 이름은 조금씩 잊혀져 갔다. 많은 사람들이 테란의 모든 것은 곧 최연성의 정리라고 믿으며 서지훈의 이름을 지웠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저그전 한 방 러시의 대가, 그리고 테테전이 강력했던 선수 정도로 남아있다.
곰티비 시즌 3, 고인규는 16강에서 서지훈에게 역전패를 당한 이후 웃으며 서지훈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그것은 어쩌면 테테전의 새 시대를 열어젖혔던 이 거장의 재래를 축하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