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이쪽은 며칠 전의 꽃샘추위 때에 걸린 감기 기운이 아직까지 남아서 약간 고생 중입니다만, 당신은 아무쪼록 건강 하나 만큼은 문제가 없었으면 합니다. 뭐, 자잘한 문제야 '기합' 하나면 절반은 해결이지만 건강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지 않습니까.(고인이 되신 이미경 씨의 명복을 빕니다.)
자,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은 음반을 하나 소개해 볼까 합니다.(물론 이 글을 쓰면서 듣고 있는 앨범입니다.)
"무라카미 류의 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You Don't Know What
Love Is-"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무라카미 류 씨의 동명의 연작 소설과 함께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이 바로 그것입니다. 1998년에 이 앨범이 나왔으니 나는 뒤늦은 작년 이맘 때 쯤에 동명의 소설을 먼저 접한 셈입니다. 책을 다 읽자마자 곧장 달려나가 몇 개의 음반shop을 뒤지다가 대형 음반점에서 겨우겨우 이 녀석을 찾아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에 나는 재즈를 마음 먹고 듣기 시작한 정도였고 여기에 수록된 곡들과 뮤지션들에 대해서도 무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그 당시 힘들게 앨범을 찾았을 때의 감동과 지금 앨범을 듣고 있으면서 느끼는 감동을 떠올리면 이 앨범 앞에서 숙연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윗집 형과 너바나가 세계로의 문을 비좁게나마 열어주었고, 고 1때 왕가위 감독과 넷 킹 콜이 그 문 너머에서 재즈로의 길을 알려주었듯이, 이 당시 하루키와 류, 그리고 이 앨범은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내 나름대로' 재즈를 즐기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내게 전문가적인 식견 같은 것이 있을리 만무합니다만, 어디까지만 '내 나름대로' 재즈를 듣는 방법을 통해 이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짚어나가보기로 합시다.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당신 나름대로' 내용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좋은 수렴 방법이 될 것 같군요.
첫 트랙은 로레즈 알렉산드리아가 부른 '엔젤 아이즈'. 곡 자체를 정말 잘 자신의 영역 안에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그녀의 음성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탁한 것이 아니라, 그 '탁함' 깊숙이의 원액을 뽑아낸 듯한 보이스가 독특하고 매력적인 창법과 맞물려 더할 나위 없이 좋죠. 5번 트랙에는 그녀가 부른 '오버 더 레인보우'도 수록되어 있고, 그것 또한 그녀만의 풍부한 매력이 물씬 드러나 있어서,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득본 듯한 기분이 들어 미소가 히죽 지어지게 됩니다.
이 앨범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여성 보컬 가운데, 엘라 피츠제럴드와 빌리 홀리데이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또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각자 확연히 다른 매력을 지닌 두 사람은 시대를 가로지르는 여성 보컬으로서 또한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심장에 자신들의 영혼의 흔적을 새겨 놓았습니다. '사람은 철저하게 혼자 살아가다 혼자 죽겠지만, 그래도 어쩌면 내 영혼은 타인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몰라.'하는 식의 인간 본연의 고뇌를 관통하는 듯한 애절함과 사랑스러움이 넘쳐납니다.
지금도 각광받고 있는 다이애나 크롤(굳이 로라 피기와 비교하자면 나는 다이애나 쪽의 음성을 좀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마냥 기분을 풍성하고 즐겁게 해주는 루이 암스트롱. LA VIE EN ROSE는 우리나라 모 프로그램에서 과거 TV프로그램들을 돌아보면서 흘러나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정겹게 듣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과연 그 사람들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자니 하트만의 곡이 2곡이라는 점에 굉장히 만족했는데, 4번째 트랙의 'MY ONE AND ONLY
Love'에서의 존 콜트레인의 합작도 정말 멋졌지만 정말로 좋았던 것은 9번 트랙의 CHARADE에서 입니다. 깊고 맑은 그의 음성이 제대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그의 보컬로서의 진정한 매력이 흠뻑 묻어나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재즈의 명인으로 추앙받는 존 콜트레인의 매력은 18번 트랙의 YOU DON T KNOW WHAT
Love IS에서 다시 한 번 맛보시길.(사실 한 두곡만으로는 도저히 그의 깊이와 결정적인 '무엇'을 알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만.)
15번의 아트 테이텀의 'TEA FOR TWO', 16번 트랙에서는 알토 섹소폰의 명인으로 유명한 올리버 넬슨의 THE SHADOW OF YOUR SMIL은 세련된 감각으로 유려하게 표현된 그들의 음악을 흥겹게 따라가며 듣어봅시다.
수많은 명 뮤지션들의 명곡들이 즐비하는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카멘 멕레가 부른 'MY FUNNY VALENTINE'이 이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듭니다만, 끝없이 깊은 곳으로 젖어들어가는 그녀의 음성을 조용히 듣고 있으면 '아, 그녀의 발렌타인은 도저히 당해낼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고마는 겁니다. 비할 것 없는 당당함과 미려한 우수, 그리고 최후의 한 음에 이르러 왈칵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느끼면서 그 벅찬 감정이 새롭게 사방으로 펴져나갈 것 같습니다.
재즈를 잘 모르고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분들에게 이 앨범은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부담없이 재즈에 입문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표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탄 겟츠를, 또 나의 지인 중 누군가는 루이 암스트롱, 존 콜트레인, 빌리 홀리데이를 가장 'The Jazz'의 본연에 닮아있는 이들이 아닐까 하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 재즈 본연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듣다보면 "아, 그럴지도 모르겠군."하는 생각이 들고 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사실 그건 타인의 인상적인 말이 음악을 듣는 도중 뇌리에서 뇌살아나서 생겨나는 연상작용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동감을 느끼든지, 확신을 가지든지, 그건 물론 개인의 자유겠지만 '잘 모르겠다.' 싶으면 모르는 채로도 괜찮고 굳이 남의 말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내 경우에는 넷 킹 콜만큼 '아, 재즈구나.'하고 생각케 하는 뮤지션은 없으니까요.
재즈를 듣는 방법과 마음가짐만 확고하게 갖추고 있다면 누구라도 '자신 만의 재즈'에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소신입니다. 다만 앞에서 말한 재즈를 듣는 방법과 마음가짐이란 '이렇게 듣고, 이런 마음을 가져야 겠다.'라고 결정해서 바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는 건 명심하야 겠죠. 냉혹한 이야기지만, 재즈에 '시건방짐'은 좀처럼 통용되지 않습니다. 귀를 겸허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천히 스윙감을 느끼가기 위해서는 일단 귀가 겸허하지 않으면 안될테니까요.
나중에 다른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좋은 음악과 함께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 잘 유지하시길.
01 ANGEL EYES - Lorez Alexandria
02 SOMEONE TO WATCH OVER ME - Ella Fitzgerald
03 MY FUNNY VALENTINE - Carmen Mcrae
04 MY ONE AND ONLY
Love - Johnny Hartman & John Coltrane
05 OVER THE RAINBOW - Lorez Alexandria
06 I MISS YOU SO - Diana Krall
07 IT S ONLY A PAPER MOON - Ella Fitzgerald
08 I LL REMEMBER APRIL - Carmen Mcrae
09 CHARADE - Johnny Hartman
10 DON T EXPLAIN - Billie Holiday
11 BUT NOT FOR ME - Ella Fitzgerald
12 LA VIE EN ROSE - Louis Armstrong
13 BYE BYE BLACKBIRD - Carmen Mcrae
14 WHAT S NEW - John Coltrane
15 TEA FOR TWO - Art Tatum
16 THE SHADOW OF YOUR SMIL - Oliver Nelson
17 YOU DON T KNOW WHAT
Love IS - Ella Fitzgerald
18 YOU DON T KNOW WHAT
Love IS - John Coltr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