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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3/12/24 14:30:18 |
Name |
Utopia |
Subject |
작년 이 맘 때 쯤이었군요... |
어젯 밤, 오찬이가(제 동생입니다) 티비를 보고 있길래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우연히 오찬이가 Msn을 켜놓고 간 것을 확인했다.
장난끼가 발동했을까... 닥치는 대로 아무에게나 말 걸어
'아 오늘 빤쮸를 거꾸로 입었더니 영 컨디션이...'등등의 헛소리를 지껄여대고 있었다.
조금 시들해졌을까. Msn그룹을 확인 하던 중 '남자' 그룹에 정말이지 너무도 익숙한
닉네임이 자리잡고 있었다.
눈에 띄자마자 장난끼에서 시들해진 내 눈빛을 그리움으로 변하게 했던,
오른 손에는 그대로 마우스를 쥔 채 잠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던,
단 네 글자와 10개의 마침표로 이루어진, 하지만 내겐 너무나도 친숙하던 그 닉네임.
'인생이란..........'
내 Msn 리스트에서 지워진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동시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감각조차 무디어져 간다.
아마 내 깊은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기 싫은 거겠지.
작년 이 맘 때 쯤이었다.
눈이 바람을 타고 내려와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 주던 때.
대학 시험 다 끝나고 한창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삼겹살에 소주를 절이던 때.
이미 어느 정도 취해 전화벨이 울리는 지도 모르고 아이들과 시끌버끌 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누군가 '야 오규야 니 전화벨 울린다' 하는 소리에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인도에서 유학하던 학교에서의 내 소중한 한살 후배 중의 한명인 호였다.
"어~ 여보세요~ 어~ 호냐~? 그래 왠일이야~ 한국 뜨기 전에 또 형이랑 술 한잔 해야지 임뫄~"
"형.. $%#@$%@#(%^$...."
"에? 뭬라구? 호야 잠깐만~ 야야!! 너네 조용히 좀 해봐! 안 들리잖아~~ 응 뭐라구?"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조용해지고 시선이 다 내게 집중된 가운데
난 지금도 믿지 못할 것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믿지 못했다.
"형.. 인호... 죽었어..."
"................어? 뭐라고?"
순간 나의 표정이 굳어버리고 아무말도 못했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무슨 일일까 하고 궁금한 듯 지글지글 타오르는 삼겹살을 하나 둘씩 집어 먹으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호, 뭐라고?"
"형 인호가 죽었다고.. 지금 나 인호 화장하는데 가봐야돼.."
"뭐 이 새꺄 설명을 제대로 해봐 이 x끼야...!!"
"인호 어제 오토바이 타다가 어디 박았나봐.. 그래서 죽었대.."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기껏 전화로 더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논리적으로 '아, 죽었구나'라고 생각이 들어도 그게 안믿겨지고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는데
무슨 얘기를 더 할까.. 전화를 끊고 조용히 궁금해하는 아이들 가운데 정신없이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인호는 내가 정말 좋아하던 동생이었다.
코다이에 처음 갔을 때 같은 기숙사의 한국 사람으로 보이던 그 놈이 어찌나 반갑던지..
같이 술 먹고 걸려서 학교에서 경고 받고..
그놈 노트북에서 야한 사진 찾아내서 나는 자지러지게 웃고 그놈은 무안해하는 표정을 짓고..
외국인 vs 한국인 농구를 할 때는 둥글둥글 떡대있는 몸매로 잘도 파고 들어
공을 던지면 기적같이 너무 잘 들어가던 인호의 슛..
농구 뒤엔 함께 저녁 먹고 농구공을 통통 튀기며 7시 전에 기숙사로 발길을 향하던 많은 날들..
누가 한국인 고삐리 아니랄까봐 외국 애들 몇번 손봐줬다고 학교에서 쫓겨나던 마지막 날..
지금도 내 앨범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인호의 얼굴..
망할 놈이 오토바이 타다가 죽었댄다.
한국 와서 술도 한번 밖에 같이 못마셨는데...
나름대로 컴퓨터 엔지니어 될 꺼라고 큰소리 떵떵 치길래 공부는 하냐고 물으니 공고에서
꼴등먹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 자식은 스무번째 크리스마스를 못맞이하고 결국 나와는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다.
한달 쯤 전 폰을 바꾸기 전에 그때까지도 내 폰에 저장되어 있던 인호의 집 전화 번호가 있었다.
그때 재수한 친구들이 수능이 끝나서 같이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많이 취해서였을까.. 무심코 문자를 보냈다..
'인호야..잘 지내냐 x꺄.. 거긴 행복하냐.. 니가 원하던 세상이냐..'
메시지 전송을 누르니 나오는 한마디..
'메시지 전송이 불가능 합니다'
젠장.. 생각해보니 집 번호로는 문자 전송이 되질 않는군..
그러나 그때의 그 '메시지 전송이 불가능 합니다' 한마디는 왜 그렇게 내 가슴을
아프게 했을까.. 마치 내게 인호와 나는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것만 같았다.
그는 지금 하늘 나라에 있다.
나는 살아있다. 그가 죽고, 나는 살아있는데, 그가 만약 꿈 속에 나타나서
'형은 그동안 뭐했어?' 라고 묻는다면..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어 술 마셨어.' '어 형 스타좀 늘었어' 이딴 말?...
괜히 인호 앞에서 부끄럽기만 하다.
동생놈은.. 왜 Msn 리스트를 아직도 그따구로 남겨둔 건지..
크리스마스 이브 날, 내게 하루종일 궁상을 떨게 만든다.
*즐거워야 할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울한 글을 올려 죄송하네요 ^^
평소에 연습에 찌들어사는 프로게이머 선수들도(가능하다면..),
피쥐알에 오시는 모든 하트의 커플부대, 무적의 솔로부대 회원님들도,
p.p님처럼 생낙지에 소주보다는 가족과 선물을 먼저 택하시는 행복한 분들도,
모두 모두 행복한 성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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