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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4/01 15:22:18
Name 작고슬픈나무
Subject [소설 프로토스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supply 4/10)
"다, 당황하지 마! 어서 내 뒤로 피해!"

짧은 몇 마디로 성제를 뒤로 감추는 사이 녀석의 앞발이 막 성춘의 머리 한가운데로 들어오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우측, 좌측으로 피하면서 목 뒤에 일검! 숨도 쉬지 말고 바로 이어서 앞발에 일검! 반격이 있을 시 수비, 아니면 곧바로 머리에 연속 삼검!"이었겠지만, 그렇게 피했다가는 바로 뒤에 숨은 성제가 또 연기로 변할 찰나였다. 머리를 뒤로 있는 힘껏 젖히며 녀석의 목줄기에 있는 힘껏 사이언검을 박아넣으려던 성춘은 맨 주먹에 와닿는 섬뜩한 녀석의 피부 질감에 혀를 깨물 뻔 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사이언검 소환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앞발이 빗나간 녀석은 목에 와닿은 너무도 허약한 충격에 의아한 모양인지 두 눈을 껌벅거리고 있었다. '야, 당황스러운 건 나라고, 네가 그렇게 당황활 필요 없잖아.' 그 짧은 순간에도 성춘은 저능한 저글링을 비웃으며 오른 쪽 팔에 사이언 검을 소환했다. 하지만 기다려줄 저글링은 아니었다. 다시 이마를 노리고 덤벼든 녀석의 공격은 반대쪽 팔로 막는 수밖에 없었다.

무의식 중에 왼팔 타격 부위에 몸을 감싸고 있던 사이언 에너지가 모여들어 푸른 빛의 기운이 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이언 에너지 쉴드는 끝이었다. 성춘은 일단 성인이 아닌데다가 질럿이나 드래군처럼, 적들 앞에 자신의 몸을 노출시키지 않는 특수 계열인 다크 템플러 계급인 것이다. 소환을 마친 사이언 검이 푸른 빛을 뿌리기 시작하자마자 성춘은 일단 녀석의 한 쪽 앞발을 베어버렸다.

서걱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피로 물든 녀석의 앞발이 멀리로 날아가 버렸지만, 너무 크게 몸을 휘두르며 베어버린 탓에 등이 녀석의 정면으로 노출되고 말았다. 당황한 성춘이 신음을 삼키며 몸을 돌리려는 찰나, 이미 녀석의 다른 쪽 발이 척추 부위를 찍어오고 있었다.

짜릿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짜릿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어린 프로토스 아이들이 흔히 걸리기 마련인 병을 막기 위해 처음 맞던 주사기의 느낌도, 자라서 엄마에게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도, 아니 바로 몇 달 전에 시민 학교 학생 치고는 도도한 느낌의 여자아이와 첫 입맞춤을 했을 때도 이런 강력한 느낌은 아니었다. 뒤로 쓰러지는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을 다 떠올리는 자신이 스스로도 신기할 지경이었지만, 마냥 회상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녀석은 아드레날린 주사라도 맞았는지 잘린 한 쪽 발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펄쩍 뛰어올라 나머지 한 쪽 발로 머리를 찍어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사이언 검을 들이대는 성춘의 손엔 이미 힘이 한 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젠장, 이게 뭐야. 겨우 저글링 한 마리에...

"사, 사, 사이오닉 볼!"

저게 프로토스족 목구멍으로 나오는 소리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는가 싶었는데, 내려찍던 녀석의 한 쪽 발이 연결된 어깨 부분에 제법 큰 스파크가 파직 거렸다. 그래도 큰 충격이었는지 녀석은 옆으로 나가 떨어진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성춘의 눈에 전신을 오돌오돌 떨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성제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이 녀석이 지금 내 목숨을 구해준 거야? 생명의 은인 치고는 좀 초라하군. 언제나 그렇듯이 생각은 잠시, 행동은 순식간이어야 한다.

떨어져 있는 녀석에게 몸을 날린 성춘은 손 발 끝 마디마디에 있는 모든 힘을 오른 팔에 모아 녀석의 남은 앞발에 사이언 검을 날렸다. 역시 사이언 검은 성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피에 절어버린 녀석의 마지막 무기를 깨끗하게 날려버리고도 힘이 남아서 바닥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성춘이 검을 빼내려고 힘 주는 사이 저글링은 몸으로 부딪쳐왔다. 자칫 균형을 잃을 뻔 했지만, 박혀 있는 검을 손잡이 삼아 성춘은 나머지 팔과 발과 이마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녀석을 공격했다. 쳇, 다크 템플러 체면이 말씀이 아니시군. 결국 빠지지 않는 칼을 일단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가 다시 회수하는 방법을 통해 무기를 되찾은 성춘의 마지막 일격으로 저글링은 두 조각난 징그러운 세포 덩이로 변했다.

첫 전투였다. 전장에서 다크 템플러의 영웅담을 귀에 젖도록 들어온 성춘이 먼 훗날 자신의 활약상을 그려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어떤 상상에도 들어있지 않던 모습으로 성춘은 첫 전투를 치른 것이다. 그렇지만 승리는 승리, 성춘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사이에도 성제는 떨다 죽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떨었을 것이라고 보여주고 있었다. 성춘이 달려가 꽉 껴안고 달래주지 않았다면 정신 이상에 걸려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

"혀, 형, 으, 으..."
"괜찮아. 그래 이제 끝났어. 네 덕분에 형이 목숨을 건졌다. 정말 고맙다 성제."
"혀, 형. 봐, 봤지! 내 사이, 사이오닉 보, 볼. 내 사이오닉 볼이 녀, 녀석을 무, 물리쳤다고. 형도 봤지? 그치?"
"응. 그래. 멋진 타이밍에 멋진 일격이었다. 내가 본 사이오닉 볼 중에 최고였어."

당연히 최고지. 사이오닉 볼이 적의 몸에서 터지는 건 처음 봤는데. 더구나 그 덕에 나도 아직 살아있고. 그런데 뭐야, 이 녀석. 무서워서 떨던 게 아니었나? 복잡한 표정으로 성제를 바라보는 성춘의 뒤통수에 뭔가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성춘의 눈에 잠시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치열한 전투가 확 다가왔다.

그러나 잠시 동안 입구 쪽을 응시하던 성춘은 이건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거대한 가시 생물들이 숨어 있는 곳 위로 광범위하게 붉은 연기 같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넓은 범위에 둥글게 퍼진 그 기운은 드래군이 뿌려대는 입자 분해포가 닿는 범위에 모두 퍼져 있었다. 그 안에서 가시를 솟구치는 녀석들과 히드라들은 입자 분해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 보였다. 또 저글링은 그 범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형, 저그들이, 저그들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어. 그치?"
"멍청한 녀석. 드라군의 입자 분해포를 맞고서도 멀쩡하다는 얘기 들어봤어?"
"하,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춘 역시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몇 방이나 빛의 공에 맞았는지 모를 앞 줄의 히드라와 저글링들이 멀쩡했다. 반면 그리 좁지 않은 입구였지만 워낙 몸체가 거대한 탓인지 한꺼번에 많은 수가 들어오지 못하는 드라군들은, 몇 번 입자 분해포를 뿌려대고서는, 입구를 반원형으로 둘러싼 저그들의 집중 공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한 서린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드라군이 쓰러진 곳에 흘린 푸른 결정액이 모인 웅덩이가 점점 진한 색을 띠고 있었다. '리치와 템플러. 당신들이 지금 이 곳에 있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다행일지도.' 성춘은 그 웅덩이를 보면서 죽음의 순간까지도 용맹했던 질럿 리치와 그의 친구 템플러를 떠올렸다. 젠장, 도대체 저 붉은 기운이 뭐길래.

"저건 다크 포그. 어둠의 안개.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위협을 제거하고 편안한 휴식을 주는 어둠의 안개."
"으, 으아악!"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가냘픈 목소리에 성춘과 성제는 저글링 떼가 몰려든 것보다도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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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의 아들
04/04/01 15:50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잘 읽을께요^^

선리플 후감상!
총알이 모자라.
04/04/01 16:17
수정 아이콘
아, 이제 임해설의 전투가 본격적으로...재미 만빵입니다.
04/04/01 16:17
수정 아이콘
앗 드디어 글을 쓸수 있게 되었군요...ㅠ.ㅠ 잘 감상했습니다..~~!!
민아`열심이
04/04/02 19:09
수정 아이콘
오와 ...... 재밌네요 ^ ^ 어서올려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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