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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3/25 01:32:34
Name Bar Sur
Subject [편지] PgR21의 누군가에게(1)
  음, 저는 EMI(과거의 명반들을 아시아 쪽에 새로이 들여오는 걸로 꽤 유명한 레이블이죠. 물론 그것만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습니다.)에서 재구성해서 발매한 넷 킹 콜의 앨범을 듣고, 있는 힘껏 밤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들어마시고 나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꽤 복잡한 냄새가 나는 공기입니다. 어지럽게 뒤섞인 이물질들과 배기가스 같은 유해성 물질들이 짬뽕되어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리 불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산뜻하게만 들리는 넷 킹 콜의 음악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를테면 우리는 '나쁜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을 극단적인 위치에 고정시켜 놓고 사고의 흐름을 그 방향으로만 몰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의 전후 사정이나 인과 관계를 따지기도 이전에, 심미적인 분노에 몸을 맡기는 경우 말입니다. 분노로 시발점으로 화제를 이끌어가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오직 분노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그것에 기대기만하면 그 이후의 어떤 논리도 사실 그 당위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이런 딱딱한 이야기는 그만두죠. 누구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누군가에게 설교조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건 듣는 입장에서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만, 대개 설교나 조언을 하는 이가 '~~는 절대 안돼.' '~~만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단언하듯 말한다면 그건 들어 맞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걸 우린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시시콜콜한 주제로 사람 귀찮게 만드는 듯한 화제도 마찬가지지만(물론 본인은 심각할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 화제가 주기적으로, 그것도 비슷한 레퍼토리로 계속 등장하면 보는 입장에서는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합니다.), 또 그런 화제에 맞장구치며 자기 경험만을 최우선으로 설교하는, 그런 이야기들은 대충 한쪽 귀로 흘려 들어 버립시다. 그런 건 일시적인 동질감과 위안이 될 지언정 문제 자체의 해결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혹여 섣부르게 남의 이야기에 자신을 일체화시켜 버리면 하나의 유형에 영합되는 것 이외에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부터도 불분명하군요. 잠깐만요. 한 번 짐작해 봅시다. PgR은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프로게임계의 팬들이 보이는 곳이고, 물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겠죠. 이를테면 pgr이라는 커뮤니티의 애향민, 혹은 pgr 속의 멋진 누군가에게 연심을 가진 이들일지도 모르죠.

  지금 나는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제 글을 읽으며 가슴 따뜻해지는 미소를 짓고 있는 긴머리 미녀를 떠올리고 있습니다만, 으음, 그건 정말이지 딱 좋습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ㅡ, 사실 그렇습니다.(농담입니다.) 어차피 우린 외모에 목숨을 거는 흔한 소개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니 당신의 외모 따위는 아무래도 좋습니다.(어느 샌가 남성을 배제하고 있지만 결코 의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아니, 무의식적인 것이 더 나쁜 건가...) 외모 대해서도 나중에 글을 쓸 기회가 된다면 다시 적도록 하겠습니다만 일단 그런 것은 건너 뛰고 다른 부분을 생각해 보죠.

  내게 있어서 당신이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지금 행복하든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지금 시대에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평생직업이라는 안도감에 젖어 있다거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행복'이라는 둥근 동앗줄에 목을 메고 있다면 당신은 명백히 바보입니다. 물론 바보가 나쁘다, 라고 딱 짚어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만, 거기에는 있지도 않은 희망과 막연한 미래에 대한 환상이라는 이미 신용등급도가 바닥까지 추락한 가치들 밖에 그들을 지탱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그것들은 두말할 나위 없는 죄악일지 모릅니다. "난 직업도 있고, 여자 친구 때문에 행복해."라는 지금에 고정된 사실이 당신의 무엇을 대변할 수 있습니까? 외로움과 불안은 선천적인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지금'이라고 하는 고정된 상태로 애써 지우려 자위하는 것은 어찌보면 무척이나 교활한 방식입니다. 언제나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외로움을 못 이기고 쉽사리 남에게 의존적이 되면 기존의 관계까지도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맨 처음에 언급한 부분이지만, 전 당신이 정당한 분노를 느낄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으되, 분노를 넘어선 당위에 의해 움직이고, 그러한 자신의 행동에 당당함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입니다. 첫째로는 행동을 종용하는 집단 혹은 타인의 시선이 두렵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안다라는 것과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안다'라는 행위는 '모르는 것이 더 있음을 안다'는 행위라고 합니다.(누가 이런 말을 했지?) 지금 당신이 내린 결론은 아직 많은 것들을 '모른다'라고 하는 사실을 '아는'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이라는 것을 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잠정적 결론에도 당당해야할 필요는 있겠지만 말이죠.(그 당당함이 순간의 오만이기 보다는 변화 가능성을 지닌 마음가짐이라면 더욱 좋겠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상상하고 있는 당신은. 긴 시간이 흘러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오늘 날의 프로게이머와 그들의 경기를 좋아했던 지금의 당신을 아쉬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은 앞서 말한 위기감과 자의식을 모두 갖추고 자신의 인생을 즐겨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뭘 그렇게 바라는 게 많냐?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웃음) 그럴 듯 한 척 하면서 시각도 편협하고 말이죠. 음, 문제점이 있다면 앞으로 고쳐나가야 겠죠.



  아참, 이 글은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누군가를 향해 부치는 수취인불명의 편지입니다. 나는 앞으로 심심하면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낼 생각인데, 그 누군가는 내 편지를 받고 어떤 기분이 들까요? 혹여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화를 낼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기분이 나빠지거나 화를 내고 한다면 편지를 찢어버리거나, 다음에 편지가 온다면 아예 개봉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아, 답장은 보내주지 않아도 됩니다. 애초에 그런 것을 바라기에 이 글은 터무니 없이 뻔뻔하고 시건방지군요. 혹여 답장을 보내실 거라면 여성 분이라면 사진을 첨부하셔도 됩니다.(절대 농담입니다.)


  무겁게 잠이 오는 군요. 넷 킹 콜을 넘어, 롤러 코스터의 4집을 들으며 잠자리에 들어야 겠습니다. 다음 편지는 좀 더 밝은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s.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것은 무라카미 류의 '보통 여자로 살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의 첫 편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편지'를 보내자라는 근거 불명의 의지와 그 수취인에 대한 주관적 설정만에 한정된 이야기 입니다.(물론 매력적인 모티브에 마음이 혹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시작부터 어수선하지만,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저로서도 불명입니다.(웃음) 저는 류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내고 있지는 않고 있지 않지만, 또 주변에는 얼마든지 편지의 소재가 넘쳐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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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25 01:43
수정 아이콘
콜라를 마시며 변길섭 선수의 표정을 하고 글을 읽은 긴머리 미...... 입니다..
사진첨부해 답장보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받은 순간 글 쓰시는 일을 당장에 관두실까 싶어 자제합니다..^^;;
Bar Sur님의 글은 MW에서도 이 곳에서도 잘 읽고 있습니다..
과자공장사장
04/03/25 02:21
수정 아이콘
읽는 순간, 일본번역어체가 물씬 풍겨온다 했더니
역시, 그랬던 것이었군요 ^^
싸이코샤오유
04/03/25 11:00
수정 아이콘
본문과 같은 여자분이라면 남자도 "어지간히 대단한 분" 이어야 하겠는데요..
슬픈비
04/03/25 13:29
수정 아이콘
아..몽롱한 새벽안개같은 글인데요.
04/03/25 15:36
수정 아이콘
요즘들어 이런 긴 글들은 귀찮아서 안 읽고 있는 제가 한심해 지는군요;;
04/03/25 18:22
수정 아이콘
좋군요.... 저도 이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안전제일
04/03/25 23:55
수정 아이콘
제가 받았다고 하고싶지만.--;;
(긴머리도 아닌데다가 미녀는 더더군다나..쿨럭.)
여튼! 잘읽었습니다.
가끔은 아무말도 않고 들어주는게 필요하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상대는 으음...재미없지요.^_^
늘 없는것 부족한것을 꿈꿉니다.
04/03/28 15:06
수정 아이콘
저는 긴머리 미녀입니다만,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니 녹차로 바꾸겠습니다. 우하하.(농담입니다*^-^*)
04/03/28 15:38
수정 아이콘
전... 긴머리 입니다.. 커피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에잇... 요가나 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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